7월 21일 말씀 묵상 : 요한복음 2장 23-25절
1. 내용 요약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서 행하신 표적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친히 모든 사람들을 아셨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다.
2. 질문과 대답
1)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적들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무리지어 예수님을 따라다니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신다. 이는 예수님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이룰 수도 없었다.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은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의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이셨다.
3. 적용
본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심을 더욱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는 듯하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유월절을 지내고 있지만- 그들의 증언과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께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분은 그 많은 사람들을 친히 아셨다고 말씀은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참인간이시자, 참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고, 표적이 나타나면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메시아로 받아들이며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본문도 마찬가지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나타나는 표적들을 기뻐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도 기뻐했다. 그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왕으로 외치며 구원을 노래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심으로 그 외침의 소리와는 무언가 모순적인 모습으로 입성하신다. 이 때 예수님의 표정은 어땠을까? 함부로 추측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들의 표정과는 상반 되었으리라 조심스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분명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옛적부터 이스라엘 땅에 선포된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기 위함이다. 선지자들로부터, 그리고 조상들로부터 전해온 아브라함의 언약, 다윗의 언약, 메시아에 대한 소망은 이스라엘에게 살아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일 것이라는 표적들이 나타나자 기뻐하며 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그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 모두가 메시아를 원했고 예수님을 기대하지만, 예수님께서 걷고자 했던 참된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은 그 누구도 걸을 수 없었던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께 저주 받는 자가 달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십자가에 메시아가 달린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에, 십자가에 달리는 메시아는 가짜일거라 단정 짓는 것이 편하다.
이는 그 때 당시의 유대인들에게 국한된 악한 모습이 아니다. 성경 속에 기록된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밝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보고, 예수님의 공생애를 이해하고, 당시 유대인들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노래한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에 손을 얹고 조심스레 물어본다. “사라야, 정말이야?” 나 또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내가 원하고 알고 있는 만큼의 복음으로만 예수님을 이해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나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이루어진 뒤에 태어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잘 알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말씀을 통해서 주어진 예수님께 순종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의 죄 된 본성은 교묘하게, 계속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려고 한다. 마치 십자가가 능력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웰스가 어떤 책에서 말했던 내용이 생각난다. “시대마다 사탄의 전략은 바뀐다. 구시대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지 못하도록 사탄은 괴롭혔지만, 현시대에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교회에 모이도록 한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다만 그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 정확한 문구는 생각나지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다. 그리고 여기서의 믿음은, 행하는 믿음- 즉 순종할 수밖에 없는 참된 믿음을 가리켰다.
앞선 본문에서 읽었듯이, ‘주님의 집을 위한 열심’이 나를 삼킨다 했던 다윗의 고백과도 마찬가지로- 선한 것, 즉 예수님을 추구하지만 결국 어느 순간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함몰 당해 정작 십자가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 21살 때 읽다가 너무 충격 받아 그 후로 까먹을 수 없는 구절이 되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여야 천국에 들어 갈 것”이라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그 어떤 사람도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날에 아무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예언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내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예수님을 부르면서도 예수님을 모를 수가 있다. 선한 것을 추구한다 하면서, 악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개혁주의, 말씀 중심, 솔라 피데, 하나님의 교회- 다 좋은 말이다. 그리고 내 평생에 가슴에 새길 내용들이다. 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전수받아 그것을 보존하고 전승할 한 명의 교회로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 자체에 함몰되면 안 될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근원되는 단어는 딱 하나다.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겠지만- 다 지우면 딱 하나가 남는다. 삼위 하나님- 하나님께서 시작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마치실 것이다. 또, 오늘 이렇게 나의 무능을 깨닫는다. 나의 믿음 없음을 깨닫는다. 이전에 어떻게 옳다고 믿으며 자신했는지, 나의 지나온 모습들을 생각하면 너무 소름이 돋는다. 슬픔뿐이다. 교만한 자는 눈물밖에 흘릴 것이 없다.
그러나 나의 교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선을 이루시어 날마다 소망의 터를 견고하게 하신다. 참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신다. 하나님 뿐이구나. 정말 하나님 뿐이구나.. 때로는 무섭다. 쉽게 기뻐하는 것도 무섭다. 이 기쁨을 뺏길까봐.. 너무 기쁜 척, 너무 확신하는 척 안 하고 싶다.. 또한 나는 쉽게 무너지니까. 하나님께서 만물보다 부패한 내 마음을 다 아시니, 친히 지켜주시길 소망할 뿐이다.
4.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하나님께 저의 영혼과 육체를 의탁합니다. 참 비참한 것뿐입니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저의 무능을 확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다짐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만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이 시간 소망하기를 저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이제는 오랜 시간 들어, 장성하여 단단한 것을 씹어야 함에도 여전히 연약하여 물렁한 것을 씹고자 하는 저의 믿음 없음을 악하다 여기지 말아주십시오. 은혜가 필요한 자입니다. 더욱이 악하기에, 더욱이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간절한 자입니다.
저의 마음속을 아신다 하셨습니까? 제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지, 하나님을 사랑하고자하는 그 선한 갈망조차 저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니 그렇기에 하나님!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교회로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제가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저의 믿음 없음을 악하다 여기지 마시고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굳건하게 세워주십시오. 성령 하나님께서 날마다 저를 강권적으로 붙드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나의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도 같이, 저 또한 예수님과 함께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을 경험하며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밖에 없음을 또한 고백합니다. 성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과 본체이심에도 죽기까지 복종하사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지금도 성실하게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날로 강성해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 마땅히 구해야 할 기도의 제목을 허락하여주세요. 그리고 모든 영광을 받기 합당하신 하나님께 온전한 찬송을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하여주세요.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렇기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