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의 계절 5월 화창한 날씨에 실버들이 등산복 차림으로 모여들었다. 지난 11일 오전 8시, 독립문공원 주차장에는 관광버스 7대가 나란히 대기했다. 서대문노인종합복지관에서 효도 관광이 있는 날이다.
서대문 구청장(문석진) 이 탑승한 회원들에게 일일이 악수하고 있다.
신청회원 300여 명은 각자의 명찰을 받고 부부 또는 친구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목적지는 역사의 도시 천안의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다. 이 기념관은 유관순 열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2003년 4월 1일 건립했다.
직원이 도착 회원들 명단을 파악하고있다.
이곳은 많은 학생과 시민단체가 견학하고 참배하는 역사유적지이다. 육현구 복지사는 미리 답사하며 느낀 내용을 전하며 독립기념관과 유관순 열사 기념관이 천안에 있는 이유는 삼일운동의 시발점이 아우내장터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지관 나들이 행사에 자주 참석하시는지요. 김순덕(79·여·아현동) 씨는 “복지관에 나온 지는 10년 됐어요. 그동안 온천만 열심히 다녔는데 오늘은 독립투사에 대해 공부하는 날이네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은 처음 방문해요”,“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이렇게 부르지요? 라며 웃으며 노래 한 소절을 읊었다.
한시간 여 후, 도착지에 내려서 유관순 기념관을 향하고 있다.
유관순 동상이 보이는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천안은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다. 열사는 1966년 기독교 감리교 충청도 교구 본부의 미국인 여자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의 교비생으로 입학했다. 재학 중 1919년 3.1운동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고 천안,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학교와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시위를 협의했다.
사적 제230호 유관순 열사의 유적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있다.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1일) 아우내[竝川] 장날 만세운동을 지휘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공주감옥에서 서대문 감옥으로 이감되었다. 서대문 감옥 지하 감방에 감금된 열사는 야만적이고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으로 1920년 9월, 18살의 젊은 나이로 옥사했다.
추모각을 둘러본다.
추모각에 모셔진 유관순 열사 초상
열사를 추모하는 향을 피우고 있다. 일부 회원들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회원들이 기념비앞에서 사진을 찍고있다.
아름다운 정경과 무성하게 자란 이팝나무를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있다.
100여 년 전 마을 사람들이 독립을 외치며 핏빛으로 물들었을 아우내 장터가 현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조용히 장이 서고 있었다. ‘아우내’란 두 개의 내를 이룬다는 뜻으로 경상도와 한양을 이어주는 길목이다. 아우내 장터는 일명 병천장터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부터 전국의 상인들이 몰려들며 크게 번창한 곳이라고 했다.
아우내 장터를 돌아보며 갖가지 시골장을 감상하기도 했다.
갖가지 농기구들을 전시하고 팔고있다.
시골 장터에는 도회지에서 보기 드문 쥐덫과 칼과 낫 등 농기구들이 펼쳐져 있다. 특히 염소와 오골계 등 여러 종류의 닭을 진열한 가게에는 손님들이 쭉 둘러서 있었다. 특히 양파, 파, 고추, 마늘을 넣고 선지와 함께 끓인 병천순대는 마을 사람들에게 유명하다. 회원들은 병천순대를 점심으로 하고, 아우내 장터를 돌아본 후, 순수 국산 고추와 대나무 빗자루 등을 구매했다.
닭과 강아지를 팔고 사는 시골장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이영자씨가 고사리를 사서 봉지에 담고있다.
이영자(72·여) 씨는 “사위가 고사리를 좋아해서 맛있는 국산 고사리를 샀어요”라며, “유관순 열사기념관을 돌아보니 다시 한번 나라를 위해 피 흘리며 싸운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게 되네요. 우리나라가 속히 안정되어서 서로 싸우지 않고 불평 없이 사는 나라가 되어야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2017. 5월 12일 이복원, 정재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