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 주신 어도魚圖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라는 아담한 마을. 천성산 편백나무 군락지를 끼고 있어 사람들 발길이 잦았다. 홍룡사로 오르는 어귀이기도 하여 몇 번 지나치곤 하였다. 마을 뒤에 대석지大石池 라는 아담한 못이 있었는데 50년은 좋게 묵은 못 같았다. 면적이 좁고, 물이 맑아 붕어가 없으리라는 짐작 때문인지, 무넘기 좌우, 상류에 낚시꾼이 어지른 흔적이 없었다.
환경오염이 심했던 시절 깨끗한 못을 보니 경이로움과 함께 낚싯대를 드리우고 싶은 마음이 너울처럼 밀려왔다. 어느덧 대석지에 정을 붙여 짬만 나면 낚싯대를 드리웠다. 한밤중 선잠을 깨어서도 내달았으니 대석지에 쏟은 애착이 많았던 셈이다. 수확은 변변찮았지만 앉아있는 시공이 여니 못과 달리 아늑하였다.
그믐밤이면 별들이 쏟아져 하늘과 못이 맞닿았다. 나는 유체이탈을 일으켜 공중을 유영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퀭한 고요는 소리 없음이 아니라 산의 소란이었다. 소란은 물결을 일으키고 찌가 쏘옥 치솟으며 별들을 흩어놓았다. 그렇게 별이 많은 날은 못 속에 보석을 뿌린 듯 눈이 어지러웠다.
보름밤이면 시야가 투명해서 랜턴이 필요 없었다. 하늘에 뜬 달이 못 속달과 조우하는 동안 달빛 흐름을 따라 찌가 떠올랐다. 달빛 아래 케미라이트 초록 반짝임은 눈이 아리게 아름다웠다. 낚시보다 호연지기에 흠뿍 빠져서 몰아沒我를 경험하곤 하였다.
낚시하는 묘미를 곧은 낚시니, 찌 보는 재미니 하며 조사釣士연 해도 입질과 챔질이 오가는 긴장이 있어야 낚시라 할 것이다. 대물과 한 판 승부를 기다리며 잔챙이를 솎아내는 쏠쏠함도 낚시하는 재미다. 그렇다고 낚시를 살생행위로만 폄훼할 일은 아니다.
지루한 기다림, 인내 끝에 놓치는 아쉬움. 차라리 희망이자 설렘이다. 미물과 나누는 대화는 침묵 속에 혼자 즐기는 교언영색이다. 찌를 주시하는 집중은 삶을 관조하는 심미안이다. 찌를 안테나 삼아 물밑을 더듬는 사색은 어획보다 상위로 누리는 소확행小確幸 이다.
한 해쯤 넘기던 어느 날 차츰 피라미도 붕어도 뜨음하다는 느낌으로 못을 살폈다. 유심히 훑어보니 누군가 그물을 치고 어업 중이었다. 그물코를 보니 치어도 알배기도 모조리 잡아내겠다는 무자비함이 보였다. 산란철엔 삼가고, 어쩌다 치어가 잡히면 즉시 방생하는 것이 낚시꾼의 불문율이다. 그래서 어업과 낚시는 엄연히 구별된다.
마침 축조 중이던 운문댐 상류에서는 준척에 가까운 붕어들이 무더기로 낚였다. 팔이 아파 쉬엄쉬엄 잡아야 할 정도였다. 대석지를 생각하면서 낚시 목적이 바뀌었다. 운문댐에서 포획한 붕어는 대•소구별 없이 대석지로 이주시켰다. 붕어를 장시간 물 밖에서 살리는 노하우도 익혔다. 댐이 완공되고 저수량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붕어들은 편안한 중심부로 이동하여 낚시로는 잡히지 않는다.
붕어를 청도에서 양산까지 산 채 고스란히 옮겨야 했던 나는 한시가 급했다. 톨게이트에서 어정거리는 시간에 붕어 목숨이 좌우된다 싶었다. 과속 단속카메라 쯤은 아랑곳하지도 않았다. 낚시라고 하는 이기적 즐거움과 밀도 조절이라는 해괴한 명분이 정의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다른 못보다 대석지에 남다른 애정이 있어서였다. 키워 잡겠다는 음흉함은 아니었다. 붕어가 많이 살아야 예쁜 못이다 싶었다. 한때 즐거움을 누렸던 못이니 그물로 훑어 낸 수량만큼 메워 주는 것이 예의를 다하는 일이라 여겼다. 때맞추어 대석리 청년회에서 자연보호라는 기치 아래 그물도 걷어내고 주변 정화에 착수하였다.
이듬 해 봄. 큰스님으로부터 뜻밖의 전갈이 왔다. “홍룡사 법우 스님에게 가면 주는 것이 있을 것이니 잘 간수 하라.” 법우 스님은 홍룡사 방장인가 주지로 계셨고, 큰스님 직계라 몇 차례 면식이 있었다. 절집으로부터 속가에 전해지는 법물이 기대할 만한 것은 아니라 여겼으나 엄중함을 느껴 그러겠다고 여쭈었다.
수 주 뒤 홍룡사에 들렸다. 법우 스님은 돌가루 종이로 돌돌 말은 원통형 물건 하나를 내밀었다. 스님께서 내용물을 보고 싶다고 하도 정중하게 청하기에 그 자리에서 포장을 풀었다. 포장부터 큰스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펼치는 순간 나는 탄식과 함께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옆에서 보시던 법우 스님도 많이 놀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금붕어 세 마리를 그린 어도魚圖 였다. 한 놈은 바닥으로 몸을 숙였다. 먹이를 취하는 자세다. 생명 유지를 위한 심오한 몸짓이었다. 한 놈은 몸을 홱 틀며 동심원 물굽이를 만들고 있었다. 자유를 만끽하는 처연함을 느꼈다. 한 놈은 태연자약 잠수함이 부상하는 자세로 정중동의 힘을 도도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외계를 향하고 있는 두 눈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았다.
기어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수년 전, 낚시질 시작할 때 이미 알고 계셨음이다. ‘목숨 장난 그만하라! 그 죄를 어찌 다 감당하려느냐.’ 큰스님 일갈이 하늘에서 울리는 뇌성처럼 들려 왔다. 금붕어 몸짓에 염화미소를 담으셨다. 항상 인자하기만 하셨던 스님께서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라 하셨다. 섬광이 번쩍하였다. 혼미한 현기증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하늘에서 울려오는 법고 소리가 화폭에서 진동했다. 에밀레종 소리가 물결을 일으켰고 바늘에 걸려 몸부림치는 붕어들의 아우성이 비늘마다 창백하게 다가왔다. 살생하면 지옥 간다는 으름장이 아니라 생명을 귀히 여기라 도닥여 주셨다. 생명은 생명끼리 평등한 것임을 불립문자로 이르셨다. 낚시가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에 당초부터 찜찜함을 금치 못했다가 드디어 큰 스님께 발각됐다는 긴장이 법당을 가득 메웠다.
방생이 적덕임을 가벼이 여겨 살생이 업장임을 등한히 했다. 알아들으리라 믿어주신 혜량에 눈물이 북받쳤다. 큰스님께서 주신 묵언법문을 법우 스님이야 알 수 없었을 터라 어도 앞에 숙연해진 내 모습을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수묵화처럼 묵은 이야기지만 큰스님을 추억하며 깊이 간직하고 사는 족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