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개마고원에서 담아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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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꽃이 피면 볍씨를
청명과 곡우가 들어있는 4월입니다. 올해는 3월 윤달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 추위가 썩 물러가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들이나 산에 나가보면 푸르스름한 기운이 돌고 나무에도 작은 꽃들이 피고 여린 싹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농부들은 청명을 기해 봄일을 시작하고 곡우에는 파종을 했습니다. 벼농사 파종이 있는 곡우는 죄인도 잡아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날이었다 하지요.
자연의 변화로 철을 알던 옛 농부들은 ‘진달래꽃이 피면 볍씨를 담근다’고 하였습니다. ‘볍씨를 담근다’는 게 무얼까요? 옛 농서에서 들려오는 농부들의 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청명이 되면 보관해 놓은 종자를 끄집어내어 대야나 동이에 잘 담아 물에 적시고, 3일이 지나 걸러내어 둥구미 안에 넣었다가 날이 맑으면 햇볕에 쬐어 따뜻하게 하고 물로 적시며, 날이 흐리거나 추우면 따뜻한 물로 적신다. 싹이 희고 가지런하게 나온 뒤에 파종한다.’ 거나, ‘눈 녹은 물은 오곡의 영양분이고 작물로 하여금 가뭄에 견디도록 한다. 따라서 겨울에는 항상 눈녹은 물을 그릇에 담아 땅 속에 묻어 저장하였다가 곡물의 종자를 씻어준다 이와 같이 하면 수확이 보통 때보다 갑절이 많아진다.’고 하는군요.
이것은 요새 말로 ‘침종처리’라고 하는데, 발아에 필요한 수분을 미리 흡수시키고 종자내의 발아억제물질을 소거하여 빠르고 균일하게 싹을 틔우는 기술입니다. 옛 농서는 올벼, 메벼, 찰벼, 늦벼 등 종자의 종류에 따라서, 또 차고 따뜻하거나 습하고 건조한 기후에 따라서, 종자를 고르고, 보관하고 파종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자세하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농학자들에 의하면 옛 농부들의 농사방법과 지혜는 현대의 농사에 비추어 보아도 매우 과학적이고 적절한 것이라 합니다.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땅일까요? 물론 땅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원천으로서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건설업자에게도 땅은 중요하지요. 농부를 다른 업을 가진 사람들과 구별지워주는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 씨앗입니다. 농부란 바로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사람이지요. 씨앗은 농부에게 가장 소중하고 농부를 농부답게 하는 것입니다. 씨앗을 잃은 농부는 더 이상 농부가 아니었기에 ‘농부는 굶어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는 속담마저 생겨났겠지요.
씨앗, 종자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씨앗은 물론 자연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지만 농사의 근본을 이루는 씨앗은 그냥 씨앗이 아니라 ‘종자’라고 불립니다. 한자로 씨 종(種)자에 아들 자(子)자를 붙인 것을 보면 사람과 동격으로 대우했던 것일까요? 수많은 식물의 씨앗들 중에서 특별히 ‘종자’라는 말을 붙인 것은 역시 사람의 농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조선의 브리태니커라고 일컫는 <임원경제지>의 저자 서유구선생님은 종자를 다루는 방법을 이르면서 “비록 하늘의 때(天時)와 땅의 조건(地宜)을 알더라도 씨앗, 즉 선대(先代)의 기(氣)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운동(苞命)을 이해하고 거기에 따른 합리적 준비를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씨앗을 선대의 기, 즉 ‘유전성’이라고 파악합니다. 서유구선생님의 이 말은 종자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종자는 전승(傳承)입니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했던 일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의 단절도 없이 전해져 온 유장한 전승입니다. 종자는 장차 작물이 될 단순한 씨앗이 아니라 선조들이 전하는 지혜의 그릇이며, 문화와 역사의 저장소입니다. 우리가 문화유적을 귀히 여기는 것이 단순히 그 물질적 형체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듯이, 종자는 그 작은 한알 한알에 우리 선조들의 삶과 고난과 기쁨이 오롯이 담겨있는 실체인 것입니다.
종자는 아무 일없이 순조롭게 전해져 오지 않았습니다. 재앙과도 같은 숱한 기후변화와 토양의 침식, 병충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위기들 속에서도 진화를 거듭하며 성공적으로 전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로는 생산력과 자기재생능력을 가진 생명체라는 씨앗의 본질로부터이며, 두 번째로는 세대를 이어 그것을 전한 옛 농부들의 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농부들은 매해 작물을 생산하고 가장 좋은 씨앗들을 보관하여 다음 해에 파종했습니다. 농부들은 종자를 선별하고, 보관하고, 파종하고 거두는 외에도 끊임없이 혁신과 개량을 거듭해왔습니다. 일정한 지역의 환경에 적응한 튼실한 종자들은 바로 농부들의 품종개량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자유로운 교환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좋아하는 토종이지요.
농부들의 품종개량은 씨앗의 생산력과 자기재생능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병충해와 재해에 견디는 힘을 가진 강한 종자와 생산성이 높은 종자, 맛이 좋은 종자,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종자들이 만들어졌습니다. 농부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오랜 품종개량의 과정에서 다양하고 훌륭한 종자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씨앗의 자유로운 교환’이었습니다. 협력과 도움을 기초로 농부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종자의 자유교환은 지속적인 식량생산의 기초일 뿐 아니라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바탕이었습니다. 또한 종자의 교환은 단순한 씨앗의 교환을 넘어서 생각과 지식의 교환, 문화와 유산의 교환을 내포합니다. 그것은 전통의 축적이자 종자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다양한 지식의 축적이었지요. 그것은 역사가 있기 이전부터, 과학이 있기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세계 모든 토착농부들의 관행이자 권리였습니다. 세대에서 세대를 이어 전해진 그 종자들이 지금 우리를 먹이는 식량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세계 곳곳에서 그러한 수많은 종자들이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수없이 헤쳐 나왔던 자연의 재앙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에 의한 재앙, 특허와 지적재산권과 WTO와 FTA로 무장한 거대기업들에 의한 재앙, 바로 유전자조작입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침략한 이래 서구열강의 식민지정복은 19세기에 그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폭력과 살육으로 점철된 점령과 식민화 과정에서 그들이 조금치의 죄의식도 갖지 않았던 것은,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그 땅을 ‘텅 비어있는 곳’, ‘임자가 없는 땅’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그 땅의 사람들을 자신들과는 다른 육식동물군으로 취급하였고, 토착민에 대한 학살과 노예화는 그러한 논리에 기초해 정당화되었습니다.
콜럼버스 이후 500년이 지난 20세기에 그들은 종자에서 다시 식민화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인류를 기아에서 해방시키는 과학기술이라고 포장된 유전자조작은 생산력과 자기재생능력을 갖고있는 씨앗을 ‘텅 비어있는 것’, ‘임자가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오랜 세월 씨앗의 품종개량과 전승에 바쳐온 농부들의 땀과 노력을 부정하고, 오랜 세월 씨앗에 대해 지적 공헌을 해왔던 농부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씨앗에 대한 침략을 개시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정복이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무자비한 함포침공으로 이루어졌듯이, 씨앗에 대한 침략은 유전자대포에 의한 무차별 사격으로 이루어집니다. 교황이 식민지에 대한 소유권을 부여하고, 선교사무소와 무역기지를 일착으로 세운 나라가 그 땅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는 아프리카 점령의 원칙이 비스마르크가 연 베를린 회의에서 도출되었던 것처럼, 씨앗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은 미국과 유럽특허에 의해 부여되고 WTO와 FTA체제에 의해 확장됩니다. 동일한 주체들에 의해 진행되는 그 방법의 유사성에 소름끼치는 기시감을 느낍니다.
종자의 지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일만년 동안 농부들이 흘려왔던 땀의 결정체로서, 자유로운 교환에 의해 개량되어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왔던 종자들이 이제 소수의 거대기업들의 치명적인 조작에 의해 재생력을 잃어버린 상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농부들에게 수확의 기쁨과 미래의 꿈을 가져다주었던 종자들이 자생력을 잃어버리고 온갖 화학약품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되는, 소수기업의 이윤창출을 위한 도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단 10개의 기업들이 230억 달러 규모의 상업용 종자시장의 32%와 유전자조작에 의한 변형종자시장의 100%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농부의 지위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공동의 유산을 물려받은 주체로서 자유롭게 작물을 선택하고 가꾸고 갈무리했던 과거의 농부들은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1억 매출이네, 2억 매출이네 하는 소란스러운 이야기들이 간간히 들려오지만, 오늘날의 농부들은 종자를 잃어버리고 거대기업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종자와 갖가지 화학약품에 의존하는 소비자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식량을 통제하는 생산체계 사슬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스런 공정을 담당하는 단순노동공급자로 전락되어가고 있습니다.
요즘의 농부들은 진달래가 피어도 볍씨를 담그지 않습니다. ‘종자소독’이라는 온갖 화학약품을 들씌우는 살균처리와 살충처리를 하지요. 병충해에 약한 교잡종자들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과정입니다. 토지에 대한 소유의 완성이 그 땅으로부터 배제된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박탈했듯이, 종자에 대한 독점적 소유는 농부들뿐 아니라 식량을 소비하는 모든 사람들의 삶과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하고 박탈할 것입니다.
종자는 땅과 물과 공기와 같은 공동의 자산이자 선조들로부터 전승되어온 공동의 유산입니다. 이 좋은 봄날에 이제 곧 흙 속에 묻혀 새로운 생명을 키워낼 씨앗들을 바라보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온전히 지켜내겠나 하는 우울한 생각에 잠깁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선조들이 전해준 종자를 다음 세대로 이어주지 못하고 끝내 단절시키고 마는 끔찍한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주재배 농부들은 모두다 가망없다 해도 우리의 종자를 가꾸고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응원이 멈추지 않는 한….
2012년 4월 개마고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