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원수에 대한 자세
말씀 : 롬 12:17-21
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서론>
그리스도인은 원수에 대한 태도와 자세가 어떠해야 합니까?
요한복음 8장 성경에 이 세상에 마귀의 자식들이 있다고 하였으며, 그것은 마귀와 꼭 같이 끝까지 행동할 자들을 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 마귀는 어디까지든지 진실한 신자를 대적하는 존재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택함을 받은 자녀들 중에도 일시 동안 어두워져서 참 신자를 대적하는 일이 있다고 박윤선은 성경주석 로마서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들 원수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은 첫째, 복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둘째, 원수와 화목하기를 힘쓰라고 하십니다. 셋째,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싶지 않은 행동강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잠언 25장 21절로 22절에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여호와께서 네게 상을 주시리라”고 하시면서 복수하지 말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잠언 25장 26절에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으 흐리어짐과 샘의 더러워짐 같으니“라고 하심으로 원수와 화목하기를 힘쓰라는 당부를 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 잠언 24장 17절에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라고 하심으로 원수에 대한 응징은 하나님 손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원수에 대해서 우리가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까?
이 시간 이후로부터 모든 원수들은 하나님께 맡기시고, 부담없으신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본론>
=====12:17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이는 인간이 가진 본성을 제한시키는 가르침이다. 일반적으로 악행하는 자에게 보다 큰 악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심리인데, 이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 욕구를 제재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눈은 눈으로...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출 21:24, 25)는 공식적인 형벌을 말한 것이며 이런 규정을 세운 것도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들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잠 20:22; 24:29). 바울은 인간의 어두워진 마음(1:21)을 잘 알았으므로 인간에게 이런 교훈이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또한 본문과 살전 5:15; 벧전 3:9은 서로 유사한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마5:38ff.)을 따라 일정한 교리가 형성되어 전승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본절 전반부의 소극적인 권면에서 발전하여 이제 적극적인 권면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은 '아무에게도'에 대칭되는 말로 신자나 불신자 모두를 가리킨다. '모든 사람 앞에서'는 또한 '주님 앞에서'(고후8:21)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는다. 왜냐하면 주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사람들과의 현상적인 관계와 별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본절에서는 '선한'이라는 말을 7:12에 나오는 헬라어 '아가도스' 대신에 '칼로스'를 사용했다. 이는 일반적인 아름다움, 즉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선한 일'을 나타낸다(Dunn). '도모하다'의 헬라어 '프로노에오'가 본문에서는 분사형 '프로노우메노이'로 쓰여 명령을 나타낸다. '프로노에오'는 '미리 생각하다', '간구하다', '몰두하다'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어떤 일에 반응하여 선을 행하라는 소극적인 명령이 아니고, 미리 솔선 수범하여 선을 행하라는 적극적인 명령이다. 그러므로 이는 '선한 일'에 너희 자신을 몰두하라는 뜻이 된다.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이는 모든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절은 신자들이 가능한한 모든 사람과 평화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을 교훈한다. '할 수 있거든'이란 표현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화합(和合)을 향한 욕구가 아무리 강력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있음을 시사한다(Harrison). 진정한 평화는 인간의 애씀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평화를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으며(눅 2:14),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을 화목케 하시려고(골 1:20, 22)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평화를 이루셨다. 이는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면서 평화를 이루어야하는 궁극적인 근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죄악된 인간과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처럼 신자들도 평화를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골 3:15). 그러므로 신자들은 화평케하는 자들이다(마 5:9).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 이에 대해 1절을 보라(1:7; 16:5, 9, 12; 고전 4:14, 17; 고후 7:1; 엡 5:1). 이는 1절의 '형제들아'와 비슷한 애정이 담긴 호칭이며, 이런 호칭들이 여러 곳에 나온다(고전 10:14; 고후 7:1; 빌 2:12).
진노하심에 맡기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도테 토폰 테 오르게'를 직역하면 '진노의 자리를 주라'이다. 신약성경에서 '진노'가 수식어 없이 나올 때는 대개 '하나님의 진노'로 본다. 본문에서도 수식어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진노임이 분명하다(3:5; 5:9; 9:22; 13:5; 엡 2:3; 살전 5:9). 하나님의 진노는 절대 공정하게 나타나는 것이므로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치나치게 냉혹하지 않다. 또한 심판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주권은 하나님께만 속한다. 따라서 사람이 원수를 개인적으로 보복하는 것은 공정성(公正性)면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하나님의 주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된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 바울이 자주 그러했듯이 본 구절에서도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4:7; 8:36; 9:33; 10:19; 11:26). 구약성경의 본문 신32:35에는 "보수는 내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로 되어 있다. 신명기의 문맥에 비추어 보면, 적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능욕하며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개입하실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복수는 자신의 적들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에게까지도 미친다(Harrison). 이처럼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이다(마 12:18, 요 5:30; 9:39; 살후 1:5; 히 9:27). 예수께서는 이 권한과 권위를 확실히 인식함으로써 많은 수욕(受辱)과 고난(苦難)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보복하지 않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다(벧전 2:23). 우리에게 대한 진노를 그리스도로 인해 거둬가심(8:1)을 생각하며 우리의 억울함에 대한 보복은 포기되어야하는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시느니라 - 앞에서 언급한 내용의 절대적 권위와 확실성을 언급한 것이다.
=====12:20
본절은 70인역(LXX) 잠 25:21, 22을 거의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다. 이는 17절의 진술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서술하는 것이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 원수가 궁핍하며 곤경에 처했을 때 선행과 친절을 베풀라는 것이다. 실제로 원수를 먹이고 마시우는 것은 생명과 관계되는 행위이며 궁극적인 마시움과 먹임은 생수의 근원,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요 6:35).
숯불 - 해석이 다양한데, '숯불'은 '회개의 표'(Klassen), '마음의 불'(Liddon), '회개와 부끄러움의 가책으로 타는 듯한 고통'(Cranfiedl, Hendriksen, Harrison), '은혜', 즉 궁극적으로 은혜를 가져오는 '후회와 부끄러움에서 오는 고통'(Godet) 등으로 해석한다. 대체로 숯불을 쌓는 것은 은혜를 베푸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것만이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허락하신 유일한 복수 방법이다. 은혜를 베풀므로써 원수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부끄러움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악에서 돌이키게 되어 서로에게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12:21
이는 17절에서부터 계속 진행되어 온 내용의 요약이며 결론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 '악에게 진다'는 것은 원수의 악한 행위로 번민하거나 원수에 대해 악으로 갚으려고 악한 행위를 계획하는 것이다. 즉 원수의 악한 행위로 인해 선한 상태를 떠난 것을 의미한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 이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삶으로 곧 선행 구절에서 말한 겸손(3, 16절), 봉사(6-8절), 평화를 유지하는 것(18절)을 가리킨다. 또한 20절의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삶에서 승리하는 생활을 말한다. 이 승리는 자신의 노력, 열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는 믿음과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의 힘으로 이뤄진다(본 주적은 기독링크넷에서 퍼와 정리한 것임).
결론>
그동안 우리의 대적들에 대한 불만과 반응에 대응하느라 그동안 얼마나 심령이 힘들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심령의 부담을 상당부분 내려놓게 됨으로써 앞으로 가벼워진 스트레스 짐을 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데 자신감을 얻게 되었을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믿음의 줄을 굳건히 잡으시고, 날마다의 삶속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