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복림떡볶이> 신당동 떡볶이
추억의 음식이 아직도 현재형이다. 대학 때부터 가고 싶던 오랜 숙원을 이제야 이루면서 아직도 현재형인 것을 고마워한다. 현재형일 뿐만 아니라 무한증식해서 식재료, 음식종류, 조리법이 다양해지고 식당들이 생겨나 거리를 이루었다. 그 가운데 큰 변화는 간식에서 끼니로 신분상승한 것이 아닐까. 끼니로 맛있는 떡볶이를 먹는다. 확실한 한국인표 음식을.
1. 식당얼개
상호 : 마복림떡볶이
주소 : 서울 중구 다산로35길 5 1층
전화 : 02-2232-8930
주요음식 : 떡볶이
2. 먹은날 : 2022.12.13.점심
먹은음식 : 1인 8,000원
3. 맛보기
마복림(1920~2011)은 짐작대로 이 떡볶이를 개발한 할머니 성함이다. 지금은 돌아가셨다.
: 추억의 음식
다행히 1인도 구박하지 않고 친절하게 절반 가격에 먹도록 해준다. 메뉴판에도 없는 주문형식이다. 그런데 1인이 먹기에는 너무 많다. 나중 볶아먹는 볶음밥이 별미라는데 거기까지는 도저히 못 가고 중도하차한다.
다른 곳에서는 모두 떡에 오뎅 정도만 추가할 때, 이곳에서는 라면을 넣었고, 이처럼 즉석 조리하는 즉석떡볶이를 개발하여 인기를 모았다. 어묵도 맛있지만 라면사리 넣은 떡볶이는 환상의 음식인데, 거기다 즉석이었다. 신당동에 와야만 만날 수 있었다.'떡볶이에 라면도 넣는대', 희한한 소문을 듣고 집에서 흉내내 만들어 먹어보곤 했었다.
마음으로 오랫동안 염원하던 떡볶이, 그 원조를 이제야 만난다.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더 맛있게 먹으면서 오래오래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탄수화물이 부담스러워져서 조금 아쉽다.
소스에서 검은빛이 난다. 춘장이 더해진 소스다. 맛에서도 느껴진다.
어묵은 생각보다 빨리 퍼진다. 생선살보다 밀가루가 더 많아서가 아닌가 한다. 라면-어묵-가래떡 순서로 먹는 것이 좋을 거 같다. 가래떡은 끝까지 쫀득거린다.
춘장이 들어간 검은색 고추장은 떡볶이도 라면도 검은 빛이 돌게 만든다. 고추장의 날카로운 맛을 순화시키고 풍부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맛은 있지만 떡볶이 소스의 표준이라기에는 좀 특별하다. 이미 신당동 떡볶이의 상표가 된 고유 소스다. 서울지방 향토음식이 된 것이다.
사진은 순차적으로 떡볶이 조리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두 속에도 당면이어서 탄수화물 일색의 식재료이다. 1953년도부터 시작했다니 그야말로 빈곤기의 음식이어서 당시에는 적절한 식재료였을 것이나, 지금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터이다. 하지만 손님이 여전히 많은 것은 역으로 탄수화물이 가진 힘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고기 먹고 싶다보다 라면 먹고 싶다가 일반적으로 더 자주 당하는 유혹이 아닌가. 50년대는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지만, 지금은 영양과 유혹이 선택 변수다. 탄수화물의 유혹을 누가 거부하겠는가.
도구는 젓가락 대신 포크를 준다는 것, 라면은 젓가락으로 먹어야 할 거 같은데, 포크만 준다. 그렇게 먹다보니 밥이 아닌 간식을 먹는 기분도 든다. 이태리 스파게티를 먹는 거 같기도 하다.
단무지를 이렇게 준다. 친절하게 단무지 국물을 따르는 컵을 따로 내온다. 단무지는 참 맛있다. 적당히 달고 사각거리고, 너무 짜지 않고. 이보다 더 사각거리고 맛있는 단무지 찾기 힘들 거 같다.
4. 먹은후
1) 탄수화물 파티
젊은이들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활동량 덕분에 다 분해될 테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쉽지 않고 심리적으로도 부담스럽다. 중고 시절을 이 동네서 보낸 친구들은 선린상고- 덕수상고 야구 보고 나서는 이겼다고 졌다고 이곳에 와서 떡볶이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추억의 떡볶이를 계속 찾는데 아직도 이런 탄수화물 일색이 문제없을까. 젊은이들 역시 이렇게 탄수화물만 먹어도 될까.
어묵와 만두가 위로가 될까 해도 만두 또한 속이 또 당면이다. 어묵도 사실 태반은 밀가루다. 요즘 수제어묵이라 하여 생선살 비중이 높은 어묵이 인기지만 값이 매우 비싸서 이렇게 저렴한 음식에 넣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또 밥을 볶는다면 그것도 탄수화물, 한끼 식사로서 그리 적합한 식재료 배합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야채도 그리 많지 않아 탄수화물 변주곡같은 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야 한다. 맛있어도 식재료 성분이 동일하니 질려서 다 먹기 힘들다. 살짝살짝 옆자리를 곁눈질해보니 나가는 사람들 상당수가 상당량을 남겨놓고 간다.
2) 떡볶이집 영업 방식
간식에서 식사로 신분상승했다지만 밥상에 올라오는 것은 떡볶이 외에 단무지 하나뿐이고 식탁도 매우 협소한데,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음식, 조리를 직접한다해도 금방 끓어서 조리 속도도 먹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여러 반찬 골고루 먹을 일도 없으니 먹는 속도도 빠를 수밖에 없다. 빨리빨리 주문하고, 조리하고, 먹어내고, 일어서고, 그러면 종업원은 재빨리 치운다.
식사라지만 한 식탁에서 한 끼에 적어도 다섯 번은 손님이 들고날 거 같다. 밥의 역할이지만 간식의 면모처럼 식탁의 전환은 빠르다. 여전히 식사 아닌 간식으로 찾는 사람들도 많으니 식간에도 손님은 계속 밀려든다. 앞집 '아이러브 떡볶이' 집이 24시간 운영하는 것도 떡볶이의 이런 이중성 때문이다.
저렴한 음식이 그야말로 박리다매로 영업수익을 보장한다. 박리는 모르겠지만, 다매는 확실하니 이런 식당이 번성하고, 먹는 사람들은 일단 저렴한 가격에 포만감 드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서로 배짱이 맞아 떡볶이 식당의 번성은 가속화되어, 떡볶이 거리도 만들어지고 떡볶이 DJ도 만들어 내었다.
'아이러브떡볶이'가 바로 이런 회고의 음식문화를 재현하여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제 떡볶이는 인기 한식의 반열에 올라서는 대역사를 써왔지만, 여기서 출세가 끝나지 않고 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서 세계화를 위한 떡볶이연구소(2009.3.11, 용인 시 기흥구)까지 세워지는 등 공공의 영역으로도 진출했다.
하지만 별로 신통한 뉴스는 들려오지 않는다. 민의 일에 관이 나서면 원래 그렇다. 일방적인 연구로 될 일이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문화가 아니고, 음식문화는 민중이 함께 수평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중이 유행시킨 것이 궁궐에서 먹었다는 '궁중떡볶이'가 아닌 '고추장 떡볶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금방 공감이 될 것이다. 대중이 만들어내고 도태되고 선택되고 하면서 커나가는 거지, 개발했다고 내밀면 다들 감격하며 먹고 유행시키기는 어렵다. 결국 떡볶이 정책은 이명박 시절 한식세계화 사업의 실패 항목 중 하나가 된 거 같다.
관은 실패했어도 어쩌지 못하고 냅둔 민은 번성과 발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마복림도 첨엔 빨간 떡볶이만 팔았는데, 학생들이 집에서 라면을 가져와 넣어 먹더란다. 떡볶이로만 양이 안 찼던 거다. 그래서 아예 메뉴로 개발한 것이 라면떡볶이다. 손님이 선생이다. 음식은 이렇게 손님을 재산으로 창작의 산실로 하여 발전해간다.
이제 떡볶이는 국제적인 음식이 되었다. 중국의 한국식당 중 메뉴가 다양한 곳에서는 대부분 떡볶이를 판다. 중국 젊은이들이 매우 좋아하는 매뉴다. 서양에서도 먹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미국식으로 변형한 떡볶이를 먹어봤다. 캐나다 벤쿠버 중국집에서도 먹어봤다. 순전히 민의 성과다. 특히 음식문화는 민중이 알아서 잘 해나간다. 이 떡볶이 거리가 대표적인 증거다.
마복림할머니 일가는 모두 떡볶이집 사장님인 거 같다. '마복림할머니 막네아들네' 식당도 있고, 지금 이 식당은 할머니 돌아가시고 며느리들이 하는 집이다. 이제는 밀키트도 개발하여 인터넷으로도 판매한다. 가히 떡볶이 일가다. 관의 주문으로 그리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이들이 또 대중에 선택되어 번영하는 것이다. 관의 역할은 하나도 없다.
3) 떡볶이 서사
전라도 광주 출신의 할머니가 전쟁 후 미국부대 물자를 팔다가 창안하여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이 고추장떢볶이다. 중국집에서 춘장에 실수로 떨어뜨린 흰떡을 먹다가 느끼하여 만들어낸 것이다. 할머니가 출연한 해찬들고추장 광고를 보면 평생 전라도 방언 어조를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전라도 입맛의 예리함으로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 소스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의 떡볶이는 이곳과 다르다. 라면도 없고, 당면도 없이 어묵을 조금 넣거나 가끔은 삶은 계란을 추가하거나 등등 이곳과 조금 다른 떡볶이가 전국 여기저기 있어왔다. 다른 도시에서도 70년대 이후에는 자주 눈에 띄었다. 50년대 이후 전국 여기저기서 얼마되지 않아 곳곳에서 떡볶이를 판 것은 분명하다. 그냥 철판에 고추장 소스로 떡을 볶아 팔았다. 춘장은 없는 그냥 고추장이다. 이처럼 춘장이 더해진 소스에 손님이 즉석에서 요리하고 라면까지 넣어서서 먹는 것은 신당동표다.
떡볶이는 원래 궁중 고급음식이 있었는데, 일본식민 통치로 왕실이 몰락하여 궁중요리사들이 시중에 음식점을 차리고 궁중음식을 팔았는데, 궁중떡볶이도 그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혁명으로 귀족들이 몰락하자 일자리를 잃은 요리사들이 나와 식당을 차린 것이 초창기 식당을 만들어낸 것과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다른 점은 프랑스 귀족식당은 성공했는데 한국의 궁중떡볶이는 실패한 점이다.
할머니는 소스 비법을 내놓지 않고,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직접 소스를 만들다가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전수를 해줘서 사후에는 아들 며느리들이 함께 경영하게 되었다. 해찬들 고추장 광고의 멘트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는 그대로 마복림할머니의 이미지가 되었고, 지금도 간판의 광고문구로 쓰이고 있다. 이제는 며느리가 안다 하는데, 일설에는 소스는 춘장1에 고추장 15라 한다.
4) 떡볶이 거리
입구가 마복림떡볶이다.
막네아들네떡볶이 집이다.
2) 골목앞 대로
3) 신당역 사고 추모의 공간
사고 지점에 놓인 추모의 글과 꽃들. 일회적 사고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지적인 모습과 함께 인간 존중의 정신이 드러나 있다. 신당동 떡볶이를 서울음식으로 개발하여 대중음식의 메카가 된 것처럼 신당동이 인권의 메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함께 올린다.
화장실 앞 복도가 너무 길고 외져 보인다. 이런 건물 구조의 특성이 사고를 유발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사람들이 엄청 많이 다니지만 의외로 쉬운 사각지대같은 느낌이다. 지하철역에 이런 화장실 구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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