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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불이의 공전보
‘소설《신·인간혁명》과 함께 걷는다’
제1회 오키나와①
창가학회 ‘정신의 정사(正史)’인 소설 《신·인간혁명》은 2018년 9월 8일로 전 30권 연재를 완결하고, 11월 18일에 제30권(하)를 발간했다.
이번 호부터 ‘사제불이(師弟不二)의 공전보(共戰譜)-소설 《신ㆍ인간혁명》과 함께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소설의 배경이 된 무대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제1회는 영원한 ‘평화의 낙토(樂土)’ 건설을 목표로 하는 오키나와로, 불굴의 혼이 불타는 천지에 대한 광포 스승의 마음에 다가간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구제된다면
전 민중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증명이 될 것이다
첫 방문에서 다진 결의
소설《신·인간혁명》제2권 ‘선구’에는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오키나와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모습이 씌어 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이 장면을 쓰면서 오키나와를 이렇게 표현했다.
“슬픈 역사에 맞서 일어선 웅혼(雄渾)의 사람들이 있는 오키나와 천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쟁이 끝난 뒤에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를 언급하고 진심을 이렇게 썼다. “신이치는 그 ‘우루마섬’의 숙명을 전환하고 영원한 낙토(樂土)를 건설하기 위해 지부를 결성할 것을 깊고 강하게 결의하고 있었다.”
장면은 1960년 7월 16일, 신이치가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반이 지난 뒤다. 기이하게도 이 날은 니치렌(日蓮)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으로 국주간효(國主諫曉)를 하신 1260년 7월 16일로부터 정확히 7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인류 최초로 원폭실험에 성공한 날도 1945년 7월 16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핵미사일을 오키나와에 차례차례 배치하려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이치의 첫 방문이 이루어졌다. 신이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전쟁으로 괴로워하며 불행한 역사를 새겨 온 이 오키나와 사람들이 진정한 불법으로 구제된다면 그것은 전 일본 민중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증명으로 될 것이다.”(제2권 ‘선구’)
어떠한 숙명과 고난의 폭풍우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맞서 행복의 실증을 나타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전 세계에 희망의 빛을 보낸다. 그것은 광포의 스승이 오키나와에 거는 기대이자 오키나와의 깊은 사명이기도 했다.
“3일 동안 3년분의 활동을 하겠습니다”
당시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일본 본토에서 건너갈 때도 여권이 필요한 ‘외국’이었다.
신이치를 태운 비행기가 나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선구’에서 이 첫걸음을 내딛는 장면이 ‘세이쿄신문’에 실린 날은 기이하게도 1994년 7월 16일이었다.
특히 오키나와 초창기 벗은 이케다 선생님이 34년 전,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한 때를 떠올리며 깊은 감회에 젖어 읽었을 것이다.
신이치가 트랩에 모습을 나타내자 공항터미널에 모여 있던 동지 200여명은 환호성을 질렀다. 신이치가 로비에 도착하자 오키나와지구부장인 다카미 후쿠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키나와 광포의 한 톨의 씨앗인 다카미는 신심을 확신하고서 사랑하는 천지의 숙명전환을 위해 홍교에 매진했다.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조상신앙이 뿌리 깊은 데다 일본 본토에 대한 불신도 강했다.
‘야마톤추(일본 본토 사람)의 신 따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끈기 있게 거듭 대화해 동지는 점점 늘어났다.
신이치가 회장에 취임하자 다카미는 신이치의 오키나와 방문을 진지하게 기원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전역을 뛰어다니며 분기하자고 외쳤다. 그 결과 상반기 홍교에서 오키나와지구는 전국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파동 속에서 신이치를 맞이했다.
“신이치가 오키나와 땅을 밟는 순간의 다카미의 기쁨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어서 오십시오....’ 라고 말한 채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활동하겠습니다. 3일 동안 3년분의 활동을 하겠습니다.’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며 다카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제2권 ‘선구’)
이 대화에는 사제(師弟)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홀로 서는 정신을 불태우며 내 사명의 무대를 적광토(寂光土)로 만들기 위해 달리면서 승리한 모습으로 광포의 스승을 맞이한 제자들.
제자의 분투와 진심에 그 몇 배나 되는 격투와 성실함으로 답하는 스승.
신이치와 다카미가 나눈 대화는 짧았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사제의 유대가 있었다. 제자의 감사와 결의가 있고, 스승의 신뢰와 격려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오키나와 방문에서 새로운 세계광포의 흐름이 탄생했다.
은사의 전기를 담은 소설을 집필!
신이치는 이 오키나와 방문에서 오키나와지부 결성을 제안했다. 지부장에는 다카미, 지부부인부장에는 우에마 다마코를 임명하고 이튿날 17일에 오키나와지부 결성대회를 개최했다.
오키나와에 보낸 지도
낙토 건설을 위해 홀로 서라
진정한 번영과 평화를 쟁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최종적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념에 달려 있다. 인간이 절망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무기력해지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려고만 한다면 사회는 퇴폐하고 만다.
낙토 건설은 바로 주체인 인간 자신의 건설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낙토를 구축하려면 타인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홀로 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굴하지 않는 강한 신념과 희망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복잡한 현실의 미로를 개척할 총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천이야말로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佛法)인 것이다.(제13권 ‘낙토’)
빛나는 무대 오키나와 본부
1962년 7월에 낙성한 오키나와 본부는 이케다 선생님이 소설《인간혁명》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다. 소설《신·인간혁명》에는 오키나와 본부에서 펼쳐진 사제의 드라마가 씌어 있다.
낙성식 때 옥상으로 올라간 야마모토 신이치가 큰 독수리처럼 용장하게 지휘하여 다 함께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를 열창한 원점을 새기고, 소설 《인간혁명》을 집필한 1964년 12월 2일에는 새로운 시대의 리더인 대학부 멤버를 격려했다. 또 고등부 멤버들과 함께 근행한 뒤 기대를 담아 격려의 말을 보낸 일 그리고 옥상에서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그 자리에 모인 동지를 감싸 안듯이 격려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오키나와국제평화회관이 세워져 평화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18일, 신이치 일행은 현지의 동지 대표와 함께 오키나와전투라는 비극을 새긴 남부의 전적지(戰跡地)를 시찰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써 내려가면서 오키나와전투의 비참함을 상세히 써서 남겼다. 본토의 ‘총알받이’가 되어 막대한 희생을 강요당한 오키나와는 ‘온갖 지옥을 다 모아 놓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오키나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 바로 거기에 집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선구’에서는 오키나와전투의 비극을 통해 신이치가 은사의 투쟁을 생각하는 장면이 씌어 있다.
“은사 도다 조세이가 생전에 ‘이제 두 번 다시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맹세하고 나는 패전(敗戰)으로 불타 버린 들판에 홀로 선 거라네’라고 자주 이야기했던 기억을 신이치는 떠올리고 있었다.
실로 도다의 생애는 그 잔혹하기 짝이 없는 전쟁을 수행하려는 권력의 마성과 맞선 장절한 투쟁이었다.”
“도다가 일으킨 싸움은 인간의 생명에 있는 마성(魔性)의 손톱을 뽑아 버리고 한 사람 한사람의 흉중에 평화의 요새를 일으켜 세우는 싸움이었다.
그 파도는 일파가 만파를 일으키듯 도다의 만년에는 염원하던 75만 세대의 민중이라는 평화의 물결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으로 넓혀진 것이다.”
“지금 도다 조세이가 일으킨 평화의 대조류는 통곡의 섬 오키나와까지도 넓혀져 벗들의 환희는 금파(金波)가 되고 벗들의 희망은 은파(銀波)가 되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그 은사의 위업을 영원히 전해 남기기 위해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도다의 전기(傳記)라고 해야 할 소설을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이치는 도다의 6주기를 대승리로 장식하였고 이윽고 그 원고의 펜을 들기 위한 장소로 이 오키나와의 천지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이치는 오키나와의 사명을 강조했다.
“일찍이 쇼타이큐 왕은 류큐를 세계의 가교로 하여 ‘만국진량(萬國津粱)의 종’을 만들어 슈리성의 정전(正殿)에 달았다. 오키나와에는 평화의 혼이 있다. 그 평화의 혼으로 세계의 가교를 구축하는 선구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이다.”
“오키나와는 광선유포의 ‘요충지’이다. 이 아름다운 천지를 영원한 평화의 요새로 만들어 가자.
불법에는 삼변토전(三變土田)이라는 원리가 있네. 그 곳에 사는 사람의 경애가 바뀌면 국토도 바뀐다. 가장 비참한 전쟁터였던 이 오키나와를 가장 행복한 사회로 바꾸어 가는 것이 우리들의 싸움이다. 합시다, 힘을 합쳐.”
기고 - 오키나와를 ‘세계평화의 발신지’로
야스다 스스무 오키나와 총현장
오키나와는 가장 전쟁의 괴로움을 겪은 땅이다.
이케다 선생님은 소설《신·인간혁명》에서 여러 차례 그 점을 언급하셨다. 그리고 ‘오키나와에는 진정한 낙토를 건설할 깊은 사명이 있다’고 가르쳐주셨다.
또 입정안국(立正安國)의 실현은 ‘한 사람의 숙명전환에서 시작한다’ ‘한 사람의 인간혁명에서 시작한다’고 거듭 지도하셨다.
나는 선생님께서 써주신 내용을 읽고 배울 때마다 광포의 스승은 오키나와에 있는 우리에게 창가학회가 추구하는 철학의 기둥이라고 할 ‘숙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불법의 실천론(論)’, 나아가서는 ‘진정한 항구평화론’을 가르치고, 미래에 걸친 깊은 사명을 제시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오키나와여 세계평화의 발신지가 되어라’고 제자들에게 외치셨다고 생각한다.
제30권(하) ‘서원’에 인상적인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가 일찍이 미군의 메스B 기지였던 오키나와연수원 개원에 앞서 철거할 예정이던 미사일 발사대를 남기자고 제안하는 장면이다.
“인류가 어리석은 전쟁에 몰두한 역사적 증거로서 남겨두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 연수원을 세계평화의 상징으로 만듭시다!”
그리고 이 연수원을 정비하고 발사대 위에 청년상 6개를 설치했다.
이것은 유럽의 역사건축물 등을 참고하여 설치한 것으로, 태풍의 피해가 많은 오키나와에서 건물 위에 동상을 얹는 발상은 이를 테면 ‘기발’한 생각이었다.
일찍이 전쟁으로 고통 받은 오키나와에서 세계를 향해 평화의 마음을 발산하는 상징으로 생각된다.
‘서원’에는 이 연수원에서 개최한 아시아총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15개국·지역의 동지가 모인 이 총회에서 나는 현(縣) 남자부 서기장으로 전체 연출을 담당했다. 선생님의 행동과 지도를 옆에서 보고 느끼며 아시아 광포 그리고 세계 광포가 도래했다고 느낀 총회였다.
선생님은 이 총회를 이렇게 써주셨다. “오키나와에는 ‘목숨이야말로 보배’라는 생명존엄 정신과 ‘만나면 형제’라는 열린 우정의 기풍이 넘친다.”(제30권<하> ‘서원’)
오키나와에는 전 세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는 소양이 있고, 이체동심(異體同心)의 요체가 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믿음에서 오키나와에서 아시아총회를 개최했다고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키나와 정신은 학회정신에 통한다. 우리는 자각과 긍지 그리고 사명감을 안고 오키나와에서 세계평화로 이어지는 투쟁을 펼치는 지용보살(地涌菩薩)로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대화하겠다.
오키나와 본부 낙성
제3권 ‘불법서환’에서는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가 탄생해 동지들을 고무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제4권 ‘청엽’에서는 10개월 만에 오키나와를 방문해 오키나와총지부 결성 대회를 개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6권 ‘젊은 독수리’에서는 1962년 7월 17일부터 사흘간에 걸친 오키나와 지도가 씌어 있다. 세 번째 방문인 이때 오키나와 본부의 낙성식과 간부 임명식(18일)을 거행했다.
임명식이 끝나자 신이치는 오키나와 본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 설치한 연단에 올라가 바깥에 모여 있는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키나와는 저 태평양 전쟁 때,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 많은 분이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나 창가학회가 추진하는 광선유포의 싸움에는 어느 누구도, 또 한 사람도 희생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는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입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행복을 만끽하며 이 오키나와를 낙토로 바꾸어 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신이치의 지휘로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를 합창했다. 기쁨이 넘치는 벗의 노랫소리가 오키나와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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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