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1길 : 천등 고갯길(김포 아라 여객 터미널 – 풍무역)
김포시와 경기 문화재단에서 조선 시대 6대로의 하나인 강화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 노선을 바탕으로 강화길인 김포 엣길을 조성하였다.
옛길의 멸실과 각종 도로 개설로 인한 단절된 노선과 도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을 대체로를 개척하여 강화대로를 따르는 역사문화 도보 탐방로인데 총4구간, 총연장 52km이다.
첫 번째 코스는 강화길의 첫 관문 임금님의 효심이 깃든 어로御路인 천등 고갯길이다. 첫 출발지 김포 아라 여객 터미널에 이르고자 김포공항에서 전철(김포 골드라인)을 탔다.
고촌역에서 하차하여 마을버스(16번)로 환승하고 아라여객 터미널에 이르렀는데 개화역 환승센타에서 16번 마을버스를 타면 아라 여객 터미널에 이를 수 있었다. 매사가 모르면 사서 고생임을 실감하며 아라 물길을 바라다본다.
망망대해로 펼쳐졌고 물 위에는 아라뱃길 크루즈가 떠 있다. 주변에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 온 많은 사람이 서성이고 있다. 저들은 유람선을 타고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지내지만 우리는 효심이 깃든 어로길인 천등고개길을 걸으면서 한 주 동안 쌓인 찌던 때를 씻어내는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이다.
아라뱃길 문화 광장은 강화길의 출발지이자 경기 둘레길 57코스의 출발지였다. 아라 육로 270번 도로에 이르러 보도블록을 따라 아라 육로와 수도권 제1 순환 고속도로를 지나 어울림 다리를 건너 굴포천 둑길을 걸어간다.
굴포천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만월산에서 발원하여 계양구, 부천시, 서울특별시 강서구를 거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국가하천인데 堀浦(파서 만든 개울)란 지명에서 인공하천인을 알 수있다.
천변에서 다시 도로인 은행영사 정로에 진입하여 도심을 걷다가 신곡로에 이르러 고촌 중학교 버스 정류장과 시골 향기 간판을 보면서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니 동산이 솟아 있다.
조그마한 동산 입구에 이르러 김 총무가 준비해 온 고구마를 먹고 계단에 진입하니 역사와 함께 걷는 우리 동네길을 소개하여 놓았는데 고촌읍의 얼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명품 둘레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제 강점기 고촌에서 시작된 독립운동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당산미 산길, 도로변의 웅장한 가로수를 따라 걷다 별마루 밤나무 농장의 소문난 우물물을 맛볼 수 있는 하늘 높이 가로수길, 고촌의 유래를 알아보러 걸어가는 김문취 묘갈 길, 학문에만 전념한 다섯 형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다섯 용이 낫다는 학문 성지길”이다..
이 땅의 구석구석을 발목이 시리도록 걷고 싶은 욕망이 충천 되어 있는데 어찌 걷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겠는가? 우리가 걷는 길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조성한 길을 위주로 걷고 있지만 향토의 주민이 가꾸고 다듬어 놓은 그 길을 진정으로 걷고 싶다.
그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고향을 지키고자 흘린 땀과 눈물을 만날 수가 있고 그 마을에 전해지는 설화의 향기가 서린 그 지역 사람들의 고귀한 숨결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흥분된 마음으로 계단을 따라 고촌 배수지를 지나 당산정에 이른다. 예부터 당산이라는 곳은 한 고을, 한 마을의 지킴이인 신을 모신 성역으로 여겨져 오고 있다. 이 산은 당집이 있어 堂山尾라고 불렸다는 설과 당살뫼(堂薩山)라 불렸다는 설이 있는데, 현재는 당산미라 부른다. 한약초의 일종인 아가위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이곳에서 1919년 3월 25일 고촌 면민들이 3,1 독립 만세 운동을 벌였고 그 후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인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달맞이하던 곳이라고 하였다. 비록 100m가 되지 않는 작은 산이었지만 북한산, 계양산을 조망할 수 가 있었고 강 건너 고양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
당산미를 내려서니 풍곡로였다. 부드러운 흙길에서 시멘트 도로로 바뀌었다. 풍무역 7.2km를 알린다. 버스는 다니지 않고 1톤 트럭만이 농기구를 싣고 지나가고 야외의 식당으로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아직은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적한 길을 걸어 도로에 이르렀다.
차량통행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48번 국도인데 서울에서 김포로 오는데 반드시 넘어야 하는 천둥고개였다. 천둥고개는 고개를 넘으면 또 한 고개가 있어서 ‘덧고개’라고 불렀는데 산적들이 많아 마음대로 넘어갈 수가 없어 상대편 마을(신곡리 ↔ 천등마을)을 방문하려면 천명이 모여야 산적들의 피해 없이 안심하고 고개를 넘을 수가 있었다 하여 천등고개가 되었다고 하였다.
또다른 설화로는 강화도령 이원범(철종)이 왕위에 오르려고 상경하는 길에 이 고개를 넘어가는데 행차가 늦다고 호령하는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고 하여 천둥고개로도 불린다고 강화길은 들려준다.
아닐 것이다. 아니다. 천둥고개는 조선조 15대 왕이신 광해 임금께서 폐주가 되어 소달구지에 실려 강화도로 귀양 갈 때 이 고개에 이르자 마을 사람들의 원통해하고 애통해하는 곡성이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다 하여 천등고개로 불렀을 것이다.
또다시 아직은 개발이 되지 않은 도시의 외곽지역을 걸어간다. 김포대로 451번 길이다. 소맷자락 스쳐감도 백겁의 인연이라고 하였는데 오가는 사람도 어쩌다 만날 수있고 자동차가 없으면 올 수 없는 생면 부지의 곳을 두발로 걷고 있는 것은 숙겁의 인연이 맺어진 땅이 아니면 가능할 수 있겠는가 ?
그러지 않고서 주로 화물차만이 어쩌다가 지나가는 도시의 외딴 지역을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갈 수 있을까? 소망기도원에 이르니 강화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였고 공터가 있어 간식을 먹었다.
사방 어느 한 곳이 가려지지 않은 드넓은 평원의 한 모서리에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음식을 먹는 것은 어떤 진수성찬의 밥상보다 더 맛이 나는 꿀맛임을 길을 걷는 사람은 알 것이다.
산자락을 벗어나니 아파트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 서 있다. 종착지 풍무동의 아파트였다. 천변을 따라 이화교에 이르니 이화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 새겨진 한 편의 시가 마음을 울린다.
이화 梨花마을 詩
땅을 메운 여염집 즐비한데
이화 촌의 봄빛이 집집마다 가득하다
닭울고 개 짖는 소리 마을에 가득한데
볏가리 모양이 노적봉 같구나!
부족함이 조금도 없는 풍족한 마을을 지나가노라니 내 마음도 풍족해진다. 이제 종착지까지 2.3km 남았다. 수문에 이르러 인천가는 도로와 만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좌측길은 경기 둘레길 가는 길이고 강화길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데크길로 진입하여 계양천 산책로를 걸어간다.
계양천은 “인천광역시의 계양구 계양산 약수터를 발원지로 하여 계양구 목상동을 경유하여 한강으로 유입하는 하천이다. 계양구 목상동 일대가 상류에 해당하고 김포시 사우동과 풍무동 일대가 중류에 해당한다.
상류 일대는 아파트단지와 단독주택 및 공장, 축산농가,· 각종 사업장 등이 혼재한 난개발 지역이고 중류 이하를 지나는 구간에는 광활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계양산에서 발원한 하천이기 때문에 이 지명이 부여된 것으로 전한다.[네이버 지식백과]
계양천에서 예전에 동네 아낙네들이 김장하고자 무, 배추를 씻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는 지나간 이야기되고 새로운 도시 풍무동 주민들의 산책로가 되어 그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계양천을 걸으며 풍무 3교에 이른다.
”풍무동은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인 ‘풀무’ 마을이라 하여 풀무골이라 불렸습니다. 이를 한자로는 야동(冶洞)이라고 했었는데, 조선조에는 풍무리(豊舞里)로 써 왔습니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풍무리 전체의 형국을 보고 풀무골이라 했는데, 풀무질할 때의 불꽃처럼 마을의 생활 형편도 흥했다 꺼졌다" 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 (경기 엣길 홈페이지)
김포 배수로에 이를 때 뒤를 돌아보니 당산미에서 바라본 계양산이 우뚝 서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도시로 진입하여 풍무역 2번 출구에 이르러 강화길 제1길 천둥 고갯길 걷기를 마치었다. 점심을 먹고자 이곳저곳을 다녔지만 브레이크 타임이 되어 한참을 헤매다 점심을 먹을 수가 있었다.
● 일 시 : 2022년 11월 4일 금요일 맑음
● 행선지
- 10시23분 : 김포 아라 여객 터미널
- 11시40분 : 고촌 당산미
- 12시40분 : 천등 고개
- 13시40분 : 이화교
- 14시45분 : 풍무역 2번 출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3.2km
- 소요시간 : 4시간22분
● 동 행 : 조용원 회장님. 김헌용 총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