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기에 글을 쓴다. 수집을 계속해왔으면서도 뭐하러 여기에 글을 쓰나 하는 회의가 들어서 거의 1년 가까이 글 쓰는 것을 중지하였다. 그런데 수집해놓고 정리를 하지 않으니 자료들이 헷갈려서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어서 다시 쓰기 시작한다. 또 시간이 나기도 하고...
오래 전에 구입해둔 임천조씨 시고와 간찰 3점이다. 근수헌 조석형의 시고와 아들 조경창의 시고 각 한 점, 그리고 조시형의 아들이자 졸수재 조성기의 동생인 조형기의 간찰 1점이다. 하나의 족자에 장첩된 간찰과 시고이다. 제일 위에 조형기의 간찰, 다음이 조석형의 시고, 조경창의 시고이다.
* 조석형이 덕윤에게 보낸 시고
客中押號述懷奉/德胤兄
自憐詩酒好生涯
萍梗西南跡更悲
堪恨向來行樂地
異鄕多少摠新知
丁卯天中初吉 趙錫馨子服
別來已久/ 兄尙當不記憶此身耶 何/無一言之/見示也
정묘년(1627, 인조5) 천중(단오, 천중가절의 준말) 초길에 조석형이 덕윤이라는 이에게 올린 시이다. 말미에 "헤어진지 이미 오래네요. 형은 아직 이 몸을 기억하지 못하나요? 왜 한마디 말씀이 없네요."라는 추기가 재미있다.
조석형(趙錫馨, 1598~1656)은 자가 자복(子服), 호는 근수헌(近水軒)이다. 아버지는 예조참판 조희일(趙希逸)이며, 어머니는 정흠(鄭欽)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조원(趙瑗)으로 조원, 조희일, 조석형 삼대가 장원을 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당시(唐詩)와 진체(晉體)에 뛰어났다. 성대중의 [연경재집(硏經齋集)] 일민전(逸民傳)에 민업(閔嶪), 이정환(李廷煥), 김연(金沇) 등과 함께 입전(立傳)되어 있다. "趙錫馨 字子服 號近水軒 林川人 祖瑗 號雲江 官承旨 父希逸 號竹陰 官禮曹參判 並以文學著名"
* 조경창(趙景昌)의 시고
復用前韻錄奉
四海聲名獨有君 不隨流輩今爲羣
筆鋒競許今松雪 詞賦爭稱後子雲
杜曲偶成詩社會 秦城頗耐路岐分
竹林舊習猶難脫 秋日離亭隱半醺
乙丑(1685, 숙종11)中秋 上澣趙文老
을축년(1685, 숙종11) 가을에 쓴 시이다. 글씨는 송설체이고 문장은 양자운에 비길 만하다고 상대방을 칭양하였다. 조경창(趙景昌, ?~1694)은 자가 문로(文老)이고 창계(滄溪) 임영의 외조부인 조석형(趙錫馨)의 셋째 아들이다. 현령(縣令)을 지냈으며, 1755년(영조31) 좌찬성(左贊成)에 추증되었다
* 조형기의 간찰
續承/手滋 如得一晤 忻慰?/萬 永平/兄主(之)永窆之期漸/迫 此猶悲歎難堪 況/左右之情乎 路遇沈/郞父子與喪行 柩前/一哭 尤可惟怛 糶穀求/者如雲 處難徧應於斗/太 不副所/示可恨 卄間欲入城 可以/相叙 姑不宣 伏惟/照在 謹謝狀上/
甲戌(1694, 숙종19)五月望日 服人 亨期
조형기(趙亨期, 1641~1699)의 자는 장경(長卿), 호는 신재(新齋). 조원(趙瑗)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희진(趙希進)이고, 아버지는 마전군수 조시형(趙時馨)이며, 어머니는 심정양(沈廷揚)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