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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 가로되, 처음에는 지자(智者)의 이야기라고 말씀함은 결국(結局) 후세(後世)의 일이 의심(疑心)스러운 고(故)로 선악(善惡)을 말씀드려 배청(拜聽)하기 위함이니라.
해설
아까 선도화상이나 호넨상인이 방법이라고 이야기 한 것은 나중에 나라가 저리 될 것을 염려하여 말한것인가
그 의(義)들은 무서운 일이로소이다. 일문불통(一文不通)인 우리들과 같은 자(者)가 어떻게 해서 법화경(法華經)에 믿음을 취해야 하며 또 심지(心志)는 어떻게 생각하여 정(定)하리까. 답(答)하여 가로되, 이 몸이 말한 것도 일정(一定)이라고 생각치 않아야 하지 않겠느뇨. 그 까닭은 그와 같이 말함도 천마파순(天魔波旬)·악귀(惡鬼) 등(等)이 몸에 들어가 사람의 좋은 법문(法門)을 파(破)하려 함이라고 생각하심이니라. 일체(一切)는 현명(賢明)함이 지자(智者)일 것이로다.
해설
지금 말한 것들은 무서운 일이다.(불법을 파하는 것의 예) 그러면 우리같은 어리석은 자들은 어떻게 법화경을 믿어야 하며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답하되 내 말을 기준삼지 말라. 나도 어리석은 자이다. 현명한 지자의 말을 들어라.
*일문불통(一文不通) - 경문,논석등 한구절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사람
* 일정(一定) - 하나로 정해지는 것
물어 가로되, 만약(萬若) 그와 같이 의심(疑心)한다면 이 몸은 우자(愚者)로소이다. 모든 지자(智者)의 말씀을 의심(疑心)하여 또한 믿을 길도 없어 헛되게 일기(一期)를 보내야 하겠느뇨.
해설
나도 우자다. 모든 지자의 말을 의심하여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답(答)하여 가로되, 부처의 유언(遺言)에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라고 설(說)하셨으므로 경(經)과 같이 설(說)하지 않음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신용(信用)하지 말지어다. 또 의요의경불의불료의경(依了義經不依不了義經)이라 설(說)하셨으므로 우치(愚癡)의 몸으로서 일대성교(一代聖敎)의 전후(前後)와 천심(淺深)을 분별(分別)하지 못하는 분수라면 요의경(了義經)에 따르실지어다. 요의경불료의경(了義經不了經)도 많으니라.
해설
답하되, 부처의 유언에 법을 믿어야 하지 사람을 믿지 말라고 얘기 하셨다. 경과 같이 설하는 사람을 믿어라. 요의경(불법의 핵심을 설한 법화경)을 믿지 불료의경(이전경)을 믿지 말라. 어리석은 자들은 부처의 일대성교를 잘 알지 못하기에 그걸 분별하지 못한다면 법화경을 믿어라.
아함(阿含) 소승경(小乘經)은 불료의경(不了義經)·화엄(華嚴)·방등(方等)·반야(般若)·정토(淨土)의 관경(觀經) 등(等)은 요의경(了義經)이며 또 四十여년(餘年)의 제경(諸經)을 법화경(法華經)에 대(對)하면 불료의경(不了義經)·법화경(法華經)은 요의경(了義經)이며, 열반경(涅槃經)을 법화경(法華經)에 대하면 법화경(法華經)은 요의경(了義經)·열반경(涅槃經)은 불료의경(不了義經)이며, 대일경(大日經)을 법화경(法華經)에 대(對)하면 대일경(大日經)은 불료의경(不了義經)·법화경(法華經)은 요의경(了義經)이니라. 그러므로 四十여년(餘年)의 제경(諸經)및 열반경(涅槃經)을 버리시고 법화경(法華經)을 사장(師匠)으로 의빙(依憑)할지어다.
해설
경의 고저천심이 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법화경이 최고의 요의경이다.
법화경(法華經)을 국왕(國王)·부모(父母)·일월(日月)·대해(大海)·수미산(須彌山)·천지(天地)와 같이 생각하시라. 제경(諸經)은 관백(關白)·대신(大臣)·공경(恭敬)·내지(乃至) 만민(萬民)·중성(衆星)·강하(江河)·제산(諸山)·초목(草木) 등(等)과 같이 생각하실지어다.
해설
법화경을 최고로 치고 나머지 경들은 법화경을 도우는 경들로 생각하라.(참고서)
우리들의 몸은 말대조악(末代造惡)의 우자(愚者)·둔자(鈍者)·비법기(非法器)의 자(者)이고, 국왕(國王)은 신하(臣下)보다도 사람을 돋는 사람이며, 부모(父母)는 타인(他人)보다도 자식(子息)을 귀여워하는 자이고, 일월(日月)은 중성(衆星)보다도 암흑(暗黑)을 비추는 자(者)인데, 법화경(法華經)이 기근(機根)에 맞지 않는다면 하물며 여경(餘經)은 돕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라.
해설
우리는 말법에 어리석은 범부이다. 국왕은 원래 백성을 위해 있고, 부모는 자기 자식을 귀여한다. 하늘에 달이 있는 목적은 어둠을 비추기 위함이다. 법화경은 일체중생을 구하기 위함인데 법화경이 기근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경들로는 일체중생을 구할수 없다.
또 석가여래(釋迦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약사여래(藥師如來)·다보불(多寶佛)·관음(觀音)·세지(勢至)·보현(普賢)·문수(文殊) 등(等)의 일체(一切)의 제불(諸佛)·보살(菩薩)은 우리들의 자비(慈悲)의 부모(父母)이며, 이 불보살(佛菩薩)이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는 자비(慈悲)의 극리(極理)는 오직 법화경(法華經)에만이 유재(留在)한다고 생각하시라.
해설
오직 법화경으로 만이 중생을 교화할수 있다. 일체의 제불,보살도 법화경으로 중생을 구할수 있다.
제경(諸經)은 악인(惡人)·우자(愚者)·둔자(鈍者)·여인(女人)·근결(根缺) 등(等)의 자(者)를 구(救)하는 비술(秘術)을 아직 설(說)해 나타내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라. 법화경(法華經)이 일체경(一切經)보다 뛰어난 까닭은 오직 이 일에 있느니라. 그러한데 당세(當世)의 학자(學者)는 법화경(法華經)을 일체경(一切經)보다 뛰어났다고 찬탄(讚歎)하고 게다가 말대(末代)의 기근(機根)에 맞지 않는다고 말함을 모두 믿는 것은 어찌 방법(謗法)의 사람이 아니겠느뇨.
해설
다른 경들은 모든 일체중생을 구할수 없다. 법화경이 뛰어난 이유는 일체중생을 구할수 있다.
그런데 현세의 학자들은 법화경을 찬탄하면서 기근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니 그게 방법이다.
* 근결(根缺) - 성불의 기근이 결여되어 있는것
오직 한마디로 결단(決斷)을 내리시라. 결국(結局) 법화경(法華經)의 문자(文字)를 깨고 찢는 등 해서는 법화경(法華經)의 심(心)을 깨지 못하느니라. 또 세간(世間)의 악업(惡業)에 의(依)해서 싫다고 말하더라도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느니라. 다만 비슷한 권경(權經)의 의리(義理)를 가지고 나쁘다고 말해야만 사람은 속는다고 생각할지어다.
해설
결단을 내려라. (법화겨에 귀의할지) 법화경의 심은 쉽게 깨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다른 경전을 비유하여 이야기 하여야 속는다.
물어 가로되, 어느 지자(智者)가 말씀하시기를 四十여년(餘年)의 제경(諸經)과 八개년(箇年)의 법화경(法華經)과는 성불(成佛)에 있어서만은 이전(爾前)은 난행도(難行道)·법화경(法華經)은 이행도(易行道)이니라.
해설
중생이 성불함에 있어 이전경은 난행도, 법화경은 이행도 이다.
* 난행도(難行道) - 실천이 곤란한 수행법 . 장기간이 필요. 정토삼부경(무량수경,관무량수경,아미타경) 외의 나머지 경전
* 이행도(易行道) - 실천할수 있는 수행법.
왕생(往生)에 있어서는 동사(同事)로서 이행도(易行道)로다.
해설
성불함에 있어서도 이행도가 맞다.
법화경(法華經)을 쓰고 읽어도 시방(十方)의 정토(淨土)·아미타불(阿彌陀佛)의 나라에도 태어나리라. 관경(觀經) 등(等)의 제경(諸經)에 따라서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사람도 왕생(往生)을 이룩하리라.
해설
법화경을 쓰고 읽어도 성불한다. 아미타불을 부르는 사람도 성불할수 있을 것이다.
* 관경(觀經) - 智에 의해서 관해지는 대경(본존)
오직 기연(機緣)의 유무(有無)에 따를 것이지 어느 것이라도 다투지 말지어다.
해설
기근과 인연에 의해 따라야 하는 것이지 법화경이경 이전경이건 따지지 말라.
* 기연(機緣)- 기근과 인연
단(但) 미타(彌陀)의 명호(名號)는 사람마다 행(行)하기 쉽다고 생각하여 일본국중(日本國中)에서 행(行)하여 지고 있는 일이므로 법화경(法華經) 등(等)의 여행(餘行)보다도 쉽다고 말씀하심은 어떠하뇨.
해설
그런데 아미타불은 수행이 쉽기에 일본에서 행 해지고 있는데 법화경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답(答)하여 가로되, 말씀하신 법문(法門)은 참으로 그러할 것이라. 또 세간(世間)의 사람도 대개는 도리(道理)라고 생각한 듯하니라.
해설
그말은 그럴듯하다. 세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단(但) 이 몸은 그 의(義)에 불심(不審)이 있노라. 그 까닭은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말대(末代)의 범부(凡夫)는 지자(智者)라 해도 미덥지 못하고 세상(世上)은 모두 상대(上代)의 지자(智者)에게는 미칠 수 없기 때문에 우자(愚者)라 하더라도 천시(賤視)하지 말지어다.
해설
하지만 나는 그말에 동의할수 없다. 이유는 말법의 지자는 미덥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이 최고의 지자라 되지는 못하기에 우자라도 무시하지 마라
경론(經論)의 증문(證文)이 현연(顯然)함이니 무릇 무량의경(無量義經)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기 위(爲)한 서분(序分)이니라. 그런데 시초(始初)에 적멸도량(寂滅道場)에서 지금의 상재영산(常在靈山)의 무량의경(無量義經)에 이르기까지 그 연월일수(年月日數)를 상세히 셈을 하여 보면 四十여년(餘年)이니라. 그간(間)의 소설(所說)의 경(經)을 열거(列擧)하면 화엄(華嚴)·아함(阿含)·방등(方等)·반야(般若)이며, 소담(所談)의 법문(法門)은 삼승(三乘)·오승(五乘)·소습(所習)의 법문(法門)이라.
해설
문증이 있으니
무량의경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서분이다. 무량의경부터 열반경까진 40년의 설법이다. 그간의 법은 이전경이며, 그 이전경을 수행하는 사람의 기근은 삼승과 오승을 위한 법문이다.
삼승(三乘) - 성문,연각,보살
오승(五乘) - 인계,천계,성문,연각,보살
수행(修行)의 시절(時節)을 정(定)함에 선설보살(宣說菩薩) 역겁수행(歷劫修行)이라 말하고, 수자의(隨自意) 수타의(隨他意)로 나눔에는 이를 수타의(隨他意)라 말씀하고, 四十여년(餘年)의 제경(諸經)과 八개년(箇年)의 소설(所說)과는 말은 동일(同一)하고 의(義)는 다르다는 것을 정(定)함에는, 문사(文辭)는 일(一)이라 할지라도 의(義)는 각각(各各) 다르다고 설(說)했느니라.
해석
수행을 구분함에 이전경에서는 역겁수행을 설하고 수타의(타인의 기근에 따라 법을 설함)라고 말하고 8년간의 법화경은 수자의라 뜻이 틀리다. 같은 설법이지만 그 뜻은 다르다.
* 선설보살(宣說菩薩) 역겁수행(歷劫修行) - 보살의 역겁수행을 선설함. 무량의경설법품제2의 문. 이전경에서는 역겁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뜻.
성불(成佛)의 쪽은 별도(別途)로 하고 왕생(往生) 쪽은 같다라고는 생각되지 않노라.
화엄(華嚴)·방등(方等)·반야(般若)·구경최상(究竟最上)의 대승경(大乘經)·돈오(頓悟)·점오(漸悟)의 법문(法門)은 모두 미현진실(未顯眞實)이라고 설(說)해졌느니라,
해설
법화경을 제외한 이전경들은 전부 부처의 진의를 설하지 않았다.
* 돈오(頓悟) - 빠르게 깨닳음을 얻는 것(역겁수행을 거치지 않는다)
* 점오(漸悟) - 역겁수행을 거치는 것
이 대부(大部)의 제경(諸經)조차 미현진실(未顯眞實)이니 어찌 하물며 정토(淨土)의 삼부경(三部經) 등(等)의 왕생극락(往生極樂)만이 미현진실(未顯眞實) 내(內)에서 빠질손가,
해설
부처의 40년 설법도 진실이 아닌데 이전경이 전부 미현진실이니 정토삼부경도 미현진실일 것이다.
* 정토삼부경 – 정토종, 진언종이 의경으로 하고 있는 무량수경2권과 관무량수경.아미타경
게다가 경(經)들만을 내어놓을 뿐만 아니라 이미 연월일수(年月日數)를 내어 놓음에 있어서랴,
해설
그 經 들을 42년이나 설했고 42년 미현진실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면 화엄(華嚴)·방등(方等)·반야(般若) 등(等)의 미타왕생(彌陀往生)은 이미 미현진실(未顯眞實)로 되는 것은 의심(疑心)이 없다. 관경(觀經)의 미타왕생(彌陀往生)에 한(限)해서 어찌 다류난고(多留難故)의 내(內)에 들지 않을손가.
해설
그렇다면 화엄,방등,반야경의 왕생은 어차피 부처가 진실이라고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니 진실이 아니다. 그 경들에 설해져 있는 왕생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만약(萬若) 수자의(隨自意)인 법화경(法華經)의 왕생극락(往生極樂)을 수타의(隨他意)인 관경(觀經)의 왕생극락(往生極樂)과 동일시(同一視)하여 이행도(易行道)라 정(定)하고 게다가 이행중(易行中)에서도, 더욱 관경(觀經)의 염불왕생(念佛往生)은 이행(易行)이라고 이것을 세운다면,
권실잡란(權實雜亂)의 죄과(罪過)는 대방법(大謗法)인데다 일적(一滴)의 물이 점점(漸漸) 흘러 대해(大海)가 되고, 일진(一塵)이 쌓여서 수미산(須彌山)이 되듯이 점차로 권경(權經)의 사람도 실경(實經)으로 나아가지 않고, 실경(實經)의 사람도 권경(權經)에 떨어져 권경(權經)의 사람이 점차(漸次)로 국중(國中)에 충만(充滿)하면, 법화경(法華經) 수희(隨喜)의 마음도 멈추어 국중(國中)에 왕(王)이 없는 것과 같고, 사람이 혼을 잃은 것과 같이 법화(法華)·진언(眞言)의 모든 산사(山寺)는 황폐(荒廢)하여 제천선신(諸天善神)·용신(龍神) 등(等)·일체(一切)의 성인(聖人)은 나라를 버리고 떠나면, 악귀(惡鬼)가 기회를 얻어 난입(亂入)하니 악풍(惡風)이 불고 오곡(五穀)도 여물지 않고 역병(疫病)이 유행(流行)하여 인민(人民)을 멸망(滅亡)케 하리라.
해설
만약 법화경과 이전경을 동일시 하여 실천할수 있는 수행이라고 정하고 이전경이 더 수행하기 쉽다고 세운다면 권교와 실교의 구분이 없어지고 방법이 될 것이다. 한방울의 물이 흘러 바다가 되고, 먼지가 쌓여 큰 산이 되듯이 점차 법화경을 배우려 하지 않고 법화경을 배운 사람도 이전경이 수행하기 쉽다고 떨어져 점점 나라에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나라에 왕이 없는것과 같고 사람이 혼을 잃은 것과 같다. 제천과 성인은 나라를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악귀가 그 틈을 타 태풍이 오고, 흉년, 전염병들이 돌아 사람을 망친다.
이 칠팔년전(七八年前)까지는 제행(諸行)은 오래도록 왕생(往生)치 못한다고, 선도화상(善導和尙)이 천중무일(千中無一)이라 정(定)하신데다 선택(選擇)에는 제행(諸行)을 내던져라, 행(行)하는 자(者)는 군적(群賊)이라고 쓰였다는 등(等) 방어(放語)를 말하였지만, 또 이 사(四) 오년후(五年後)에는 선택집(選擇集)과 같이 사람에게 권(勸)하는 자(者)는, 방법(謗法)의 죄(罪)에 의해 사단(師檀) 함께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경(經)에 쓰였다고 말하는 법문(法門)이 출래(出來)한 듯하였는데, 처음에는 염불자(念佛者) 모두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한데다 염불(念佛)을 말하는 자(者)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악인(惡人) 외도(外道)가 있다는 등(等)의 욕설을 하였으나, 염불자(念佛者)·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진다고 하는 말에 지혜(智慧)가 생겨서 각기(各己) 선택집(選擇集)을 자세히 피견(披見)하건대 참으로 방법(謗法)의 서(書)라고 인정(認定)하였는지, 천중무일(千中無一)의 악의(惡義)를 멈추고 제행왕생(諸行往生)의 뜻을 염불자(念佛者)마다 이것을 세웠다.
해설
7,8년 전에 선도화상은 선택집에 법화경을 왕생할수 없는 경이고, 성불이 어렵다고 하였고 내던지라고 하였다. 법화경을 행하는 자는 역적과 같다고 이야기 했지만, 4-5년 전쯤 에는 선택집에서 말하였듯이 법화경을 사람에게 권하는 자는 방법이 되고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법문이 나온거 같았는데 염불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염불을 말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고 욕을 하였으나 자세히 선택집을 공부해보니 선택집이 잘못된 것을 알았는지 다시 법화경을 올바른 경 이라고 염불자들이 이야기 하였었다.
그렇기는 하나 다만 입으로만 허용(許容)하고 심중(心中)에는 역시 본래의 천중무일(千中無一)을 생각했는데, 재가(在家)의 우인(愚人)은 내심(內心)의 방법(謗法)임을 모르고서 제행왕생(諸行往生)의 말에 속아 염불자(念佛者)는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하지 않았는데,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한다는 것을 성도문(聖道門)의 사람이 말함은 벽사(僻事)라고 생각했을 것이로다.
해설
하지만 말로만 그러했지 마음에는 법화경은 성불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고 법화경을 말로 비방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모르는 재가의 사람들은 염불자의 말을 따랐다. 성도문의 사람이 법화경을 비방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 성도문(聖道門) - 자력에 의해 이 현실세계에서 성불할 수가 있다고 설하는 법문. 정토삼부경 이외의 경교
오로지 제행(諸行)은 천중무일(千中無一)이라 말하는 사람보다도 방법(謗法)의 마음은 더한 것이니라. 죄과(罪過)가 없다는 것을 남에게 알리고 게다가 염불(念佛)만을 또 홍법(弘法)하려고 궁리하니, 이는 오로지 천마(天魔)의 계책(計策)이니라.
해설
염불외 다른 경전은 성불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겉과속이 다른 것이 더 방법이다. 나는 죄가 없다고 이야기하고(겉으로 법화경 비방을 하지 않으니) 한편으론 염불을 홍교 하려고 생각하니 이것은 마의 계책일 것이다.
물어 가로되, 천태종중(天台宗中)의 사람이 세우는 일이 있는데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이전(爾前)과 법화(法華)를 상대해서 이전(爾前)을 타박함에 이의(二義)가 있느니라.
해설
묻되, 천태대사는 이전경과 법화경을 비교하여 이전경을 타박함에 2가지 경우가 있다.
一에는 약부(約部) 四十여년(餘年)의 부(部)와 법화경(法華經)의 부(部)와 상대(相對)해서 이전(爾前)은 추()이며 법화(法華)는 묘(妙)이니라고 이를 세우고, 이(二)에는 약교(約敎)·교(敎)에 추묘(駝妙)를 세워 화엄(華嚴)·방등(方等)·반야(般若) 등(等)의 원돈속질(圓頓速疾)의 법문(法門)을 묘(妙)라고 찬탄(讚歎)하고 화엄(華嚴)·방등(方等)·반야(般若) 등(等)의 삼승역별(三乘歷別)의 수행(修行)의 법문(法門)을 전삼교(前三敎)라 이름하여 추(駝)라고 타박했노라.
해석
약부 – 법화시와 상대해서 화엄,아함,방등시는 가르침의 수준이 떨어진다.
약교 – 중생을 성불시키는 가르침이 화엄,방등,반야는 뛰어나나 중생을 성불시키는데에는 원교보다 떨어진다.
* 약부(約部) - 일체경을 오시로 나눈 것(화엄시,아함시,방등시,법화시,열반시)
* 약교(約敎) - 가르침에 의하는 것.
* 원돈속질(圓頓速疾) - 원만하고 빠르게 중생을 성불시키는 교법과 속질돈성(즉신성불)을 말한다.
* 삼승역별(三乘歷別) - 중생에 근성(기근) 에 따라 법이 설해진것
* 전삼교(前三敎) - 화법의 사교(장,통,별,원) 중 원교를 제외한 것
원돈속질(圓頓速疾)의 쪽을 타박하지 않고 법화경(法華經)과 동일시(同一視)하여 일미(一味)의 법문(法門)으로 했다고 함은 어떠하오.
해설
이전경은 중생을 성불시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이야기 하지 않고 법화경이나 이전경이나 같다고 이야기 하는 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 원돈속질(圓頓速疾) - 원돈이란 원만하고 치우침없이 일체중생을 빠르게 성불시키는 교법. 속질은 속질돈성(즉신성불)
답(答)하여 가로되, 이 일은 미심(未審)적다고 하는 일도 있으리라. 그러하리라고 생각됨은 천태(天台) 묘락(妙樂) 이후(以後)부터 지금까지 논(論)이 있었느니라.
해설
답하되, 이 일은 미심스럽게 생각도 되겠지만 그것도 이해가 가는 것이 천태,묘락대사 이후부터 이야기가 많았던 부분이었다.
천태(天台)의 삼대부(三大部) 六十권(券) 통틀어 오대부(五大部)의 장소중(章疏中)에도 약교(約敎)의 시(時)는 이전(爾前)의 원(圓)을 타박하는 문(文)이 없고, 오직 약부(約部)의 시(時)만이 이전(爾前)의 원(圓)을 하나로 묶어서 타박했느니라.
해설
천태의 삼대부 60권이나 오대부의 주석에도 중생을 가르치는데 이전경도 중생을 교화하는데 불가능하다는 말은 없었지만 오시(화엄,아함,방등,반야,법화)로 나눌때만 법화경 이전의 경은 중생의 기근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고만 이야기 하였다.
*천태(天台)삼대부(三大部) 六十권(券) - 천태삼대부와 묘락삼대부.
천태의 법화현의 10권.법화문구10권.마하지관10권
묘락의 법화현의석첨10권, 법화문구기10권, 지관보행전홍결10권
*오대부(五大部) - 반야부,보적부,대집부,화엄부,열반부
장소중(章疏中) - 주석서(해석서)
일본(日本)에 이의(二義)가 있으니 온조사(園城寺)에는 지쇼대사(智證大師)의 석(釋)에서 생겨 이전(爾前)의 원(圓)을 타박한다고 말하고, 산문(山門)에서는 타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서로의 문석(文釋)이 있어서 모두 소견(所見)이 있었다.
해설
일본에도 그러한 예가 있었는데 온조사의 지쇼대사가 말한것에서 시작하여 이전경을 방편이라고 말하였으나 온조사의 절에는 그렇지 않다고 서로 대립되는 말을 하였다.
* 온조사(園城寺) -시가현오쓰시온죠지쵸에 있는 천태종사문파의 총본산
* 지쇼대사(智證大師) - 히에이산엔랴쿠사 제5대좌주 엔친
* 산문(山門)-사찰의문 이나 사찰전체를 이야기 함
그렇지만 아직껏 결정(決定)치 못했노라. 단(但) 나의 유(流)의 의(義)에는 불심(不審)이 풀렸다고 생각함이라.
해설
어쨋건 이런저런 이야기 들이 있지만 나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다. 단 조금의 의심이 풀렸다
그 까닭은 천태대사(天台大師)가 사교(四敎)를 세우심에 사(四)의 도리(道理)가 있는데, 一에는 이전(爾前)의 경(經)에 사교(四敎)를 세우고 이(二)에는 법화경(法華經)과 이전(爾前)을 상대(相對)하여 이전(爾前)의 원(圓)을 법화(法華)의 원(圓)과 동일시(同一視)하여 전삼교(前三敎)를 타박하는 일이 있다. 삼(三)에는 이전(爾前)의 원(圓)을 별교(別敎)에 섭(攝)하여 전삼교(前三敎)라 타박하고 법화(法華)의 원(圓)을 순원(純圓)이라 세움이라. 사(四)에는 이전(爾前)의 원(圓)을 법화(法華)와 동일시(同一視)할지라도 단(但) 법화경(法華經)의 이묘중(二妙中)의 상대묘(相待妙)와 동일시(同一視)하되 절대묘(絶待妙)와 동일시(同一視)하지 않느니라. 이 四의 도리(道理)를 상대(相對)해서 육십권(六十券)을 생각하면 호의(狐疑)의 얼음은 풀렸다.
해설
천태대사의 四敎에 의해서 의심이 사라졌다.
이전경에 사교 (장교)
이전경과 법화경을 비교한 사교 (통교)
이전경과 법화경을 순원으로 비교하여 (별교)
이전경과 법화경을 같다고 하여도 절대묘와는 같지 않다. (원교)
이 사교를 천태의 삼대부 60권을 풀이하면 의심은 풀렸다.
* 사교(四敎)
화법의 사교
장교 – 삼장교(소승교) -
통교 – 대승의 초문. 삼승(성문,연각,보살)의 가르침
별교 – 보살을 위한 가르침.중도의를 가르침
원교 – 법화경. 중도를 가르침
화의의 사교
돈교 – 화엄경.부처님의 진의를 설함
점교 – 방등,반야시. 점차로 기근을 높여가는 설법
비밀교 – 화엄시부터 방등시까지 듣는 이들 서로 간에 알지 못하게 근기에 따라 다르게 설하여 각자 다른 이익을 얻게 하는 가르침
부정교 - 같은 내용을 설하지만 듣는 이들이 근기에 따라 이해하여 각자 다른 이익을 얻게 하는 가르침
* 이묘(二妙)
상대묘 – 법화경과 제경을 비교하여 제경은 추, 법화경은 妙라고 비교상대 한것
절대묘 – 일체의 비교상대를 초월한 妙
* 호의(狐疑) - 매사에 지나치게 의심이 많다는 것
일일의 증문(證文)은 또한 숨기고 또는 번다(繁多)한 고(故)로 이것을 기재(記載)하지 않았고, 또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에서는 이전(爾前)의 원(圓)과 적문(迹門)의 원(圓)과를 타박함은 불심(不審)없는 것이니라.
해설
일일의 증거는 숨기고 또는 번잡하므로 이것을 기재하지 않았고, 법화경 본문에 와서는 이전경이나 법화경의 적문이나 소용없는 것이다.
이전(爾前)의 원(圓)을 별교(別敎)에 섭(攝)하여 약교(約敎)의 시(時)는 전삼위추후일위묘(前三爲駝後一爲妙)라 하느니라.
해설
이전경은 사교중 별교에 포함되며 가르침의 位(위)는 장,통,별보다 원교가 뛰어나다.
* 이전(爾前)의 원(圓) - 이전경의 圓融圓滿(원융원만).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 전삼위추후일위묘(前三爲駝後一爲妙) - 화법의 4교(장,통,별,원)중 전삼교(장,통,별)를 추(조잡하다고)라 하고 원교를 妙로 한다.
이 때는 이전(爾前)의 원(圓)은 무량의경(無量義經)의 역겁수행(歷劫修行) 내(內)에 들어가느니라.
해설
이전경은 역겁수행에 들어간다.
또 전교대사(傳敎大師)의 주석(註釋) 속에 이전(爾前)의 팔교(八敎)를 들어 사십여년(四十餘年) 미현진실(未顯眞實) 속에 넣고 혹(或)은 전삼교(前三敎)를 우회(迂廻)라 세우고 이전(爾前)의 원(圓)을 직도(直道)라 말하며 무량의경(無量義經)을 대직도(大直道)라고 말하니 자세히 볼지어다.
해설
전교대사는 이전경을 40여년 미현진실이라 하고 법화경에 대해서, 이전권교는 역겁수행을 설한 고로, 돌아가는 가름침이라고 하였다.
* 팔교(八敎) - 화법의 사교와 화의의 사교
물어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본존(本尊)과 행의(行儀) 그리고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어떻게 해야 하느뇨.
해설
법화경을 믿는 사람의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答)하여 가로되, 제일(第一)에 본존(本尊)은 법화경(法華經) 팔권일권일품(八卷一卷一品) 혹(或)은 제목(題目)을 써서 본존(本尊)으로 정(定)할지어다라고 법사품(法師品) 및 신력품(神力品)에 쓰였느니라. 또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석가여래(釋迦如來)·다보불(多寶佛)을 쓰거나 만들어서 법화경(法華經)의 좌우(左右)에 이것을 세워 모실지어다. 또 감당(堪當)할 수 있다면 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현보살(普賢菩薩) 등(等)도 만들고 써서 받들지어다. 행의(行儀)는 본존(本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좌립행(坐立行) 할지어다. 도량(道場)을 나와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제목(題目)을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일게(一偈)·일구(一句)라도 봉독(奉讀)할지어다. 조연(助緣)에는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다보불(多寶佛)·시방제불(十方諸佛)·일체(一切)의 제보살(諸菩薩)·이승(二乘)·천인(天人)·용신(龍神)·팔부(八部) 등(等) 마음에 따를지어다, 우자(愚者)가 많은 세상(世上)이 되면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관(觀)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며 그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습학(習學)하여 이를 관(觀)할지어다.
해설
1. 본존- 법화경 8권 ,일권 ,일품이나 또는 제목을 써서 본존으로 정할지어다.(법사품,신력품에 쓰여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석가여래,다보불을 쓰거나 만들어서 법화경 좌,우에 이것을 세워 모시고 또 감당이 되면 시방의 제불,보현보살,등도 만들고 써서 받들지어다.
2. 행의 – 좌립행 한다.
3. 제목을 부르지 않는 시간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제목을 부른다.
우자가 많은 세상이 되면 일념삼천의 관념법을 수행으로 하지 않는다. 천태의 관법을 공부하여 이를 판별하여야 한다.
물어 가로되, 오직 제목(題目)만을 부르는 공덕(功德)은 어떠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석가여래(釋迦如來)는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려고 생각하시어 출세(出世)하셨지만, 사십여년(四十餘年) 동안 법화경(法華經)의 명호(名號)를 숨겨두려고 생각하시어, 성수(聖壽) 三十때부터 칠십여(七十餘)에 이르기까지 법화경(法華經)의 방편(方便)을 만들어 七十二가 되어 비로소 제목(題目)을 불러 내어놓으셨으니, 제경(諸經)의 제목(題目)에다 이를 비교(比較)하지 말지어다.
해설
석가여래는 법화경을 설하려고 40년동안 이전경을 설하여 기근을 높였고 30세부터 70세까지 방편을 만들어 72세때 비로소 제목을 내놓았다. 다른 제목들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냥 경의 제목이 아니다.
게다가 법화경(法華經)의 간심(肝心)인 방편(方便)·수량(壽量)의 일념삼천(一念三千)·구원실성(久遠實成)의 법문(法門)은 묘법(妙法)의 이자(二字)에 포함(包含)되었느니라.
해설
거기다가 법화경의 제일 중요한 핵심인 방편품에 일념삼천, 수량품에 구원실성의 법문을 묘법의 이자에 포함되어 있다.
천태대사(天台大師)는 현의(玄義) 십권(十卷)을 만드시고 제일(第一)의 권(卷)에는 약(略)해서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의 의(意)를 말씀하셨으며, 제이(第二)의 권(卷)부터 七의 권(卷)에 이르기까지는 또 널리 묘(妙)의 일자(一字)를 설(說)하셨으며 八의 권(卷)부터 구(九)의 권(卷)에 이르기까지는 법연화(法蓮華)의 삼자(三字)를 석(釋)하고 제십(第十)의 권(卷)에는 경(經)의 일자(一字)를 설(說)하셨느니라.
해설
천태대사는 법화현의 10권을 만들어 1권에서 묘법연화경의 의의를 말하였고, 2권부터-7권에 妙의 일자를 설했다. 8권-9권에는 법연화 3자를 해설하고 10권에 經의 1자를 설하였다.
경(經)의 일자(一字)에 화엄(華嚴)·아함(阿含)·방등(方等)·반야(般若)·열반경(涅槃經)을 포함(包含)하셨느니라,
해석
經의 일자에 이전경과,열반경이 포함되어 있다.
묘법(妙法)의 이자(二字)는 현의(玄義)의 심(心)은 백계천여(百界千如)·심불중생(心佛衆生)의 법문(法門)이로다.
해설
묘법(妙法)의 이자(二字)를 법화현의 에서는 백계천여(百界千如), 심불중생(心佛衆生) 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즉 성불의 한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일체중생(정,비정 포함) 이 아니라 유정계에 한한다. 삼세간(오음세간,중생세간,국토세간)
*백계천여(百界千如) -법화현의권 2권 上 에 설해져 있다. 십계호구에 각각 십여시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 이전경에서는 십계를 각각 따로 설하였으나 법화경에 와서 십계가 각각 따로가 아니라 서로 호구(互具) 하고 있다는 것을 설한다. 법화경 적문에서는 백계천여까지가 설해지고 (유정계에 한함. 살아서 움직이는 것) 본문에 와서 삼세간이 설해져 일념삼천이 완성되며 정,비정 함께 미친다
* 심불중생(心佛衆生) - 心과 佛과 衆生의 셋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이며 一心,一念의 나타남이다.
지관(止觀) 십권(十卷)의 심(心)은 일념삼천(一念三千)·백계천여(百界千如)·삼천세간(三千世間)·심불중생(心佛衆生)·삼무차별(三無差別)이라고 세우셨으며, 일체(一切)의 제불보살(諸佛菩薩), 십계(十界)의 인과(因果)·시방(十方)의 초목(草木)·와력(瓦礫) 등(等)은 묘법(妙法)의 이자(二字)가 아니라 하는 일은 없느니라.
해설
마하지관 10권에서는 중생도 부처도, 차별이 없고 정(情),비정(非情) 함께 묘법(妙法)의 이자(二字)에 들어간다.
화엄(華嚴)·아함(阿含) 등(等)의 四十여년(餘年)의 경(經)들은 소승경(小乘經)의 제목(題目)에는 대승경(大乘經)의 공덕(功德)을 포함(包含)하지 않으며 또 대승경(大乘經)에도 왕생(往生)을 설(說)하는 경(經)의 제목(題目)에는 성불(成佛)의 공덕(功德)을 포함(包含)하지 않았고,
해설
이전경의 제목에는 대승경의 공덕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승경에도 생사출리를 설하는 경의 공덕이 들어 있지 않다.
또 왕(王)이기는 하지만 왕중(王中)의 왕(王)이 아닌 경(經)도 있으며, 부처도 또 경(經)에 따라 타불(他佛)의 공덕(功德)을 포함(包含)하지 않는다.
해설
경(經)에도 차별이 있기 때문에 대왕(大王) 과 왕(王) 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부처도 설한 경(經)에 따라 공덕(功德)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평등의취(平等意趣)를 가지고 타불(他佛)과 자불(自佛)과를 같다고 말하고 혹(或)은 법신평등(法身平等)을 가지고 자불(自佛)·타불(他佛)이 같다고 말함이라.
해설
부처가 평등한 견해를 가지고 설법하는 것을 곡해하여 타방의 부처와 현세의 부처와 같다고 말하고 법신평등을 가지고 다르게 해석한다. 즉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 평등의취(平等意趣) - 부처가 평등한 견해에 서서 일체중생에게 설법하는 것.
* 법신평등(法身平等) - 진리를 설하는 법신은 어떠한 모습일지라도 평등하다는 것
실(實)은 일불(一佛)에 일체불(一切佛)의 공덕(功德)을 갖추지 않으며,
해설
결론은 일불(一佛)에 일체불(一切佛)의 공덕(功德)을 갖추지 않고 있다.
이제 법화경(法華經)은 사십여년(四十餘年)의 제경(諸經)을 일경(一經)에 담고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삼신원만(三身圓滿)의 제불(諸佛)을 모아서 석가일불(釋迦一佛)의 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이라 말하는 고(故)로, 일불(一佛)은 일체불(一切佛)로서 묘법(妙法)의 이자(二字)에 제불(諸佛)이 모두 들어 있느니라.
해설
법화경에는 이전경의 제경(諸經)이 포함되어 있다. 시방세계의 부처도 석존의 분신이 되므로 석존 일불에 일체불이 포함된다. 고로 법화경의 묘법의 이자 에는 일체불이 들어 있는게 된다.
그러므로 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부르는 공덕(功德)은 막대(莫大)하며, 제불(諸佛)·제경(諸經)의 제목(題目)은 법화경(法華經)의 소개(所開)이며 묘법(妙法)은 능개(能開)라고 알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부를지어다.
해설
그렇기에 법화경의 묘법연화경을 부르는 공덕은 실로 엄청나다. 법화경의 제목과 다른 경전의 제목은 법화경의 제목에 포함된다.
*소개(所開) - 능개(能開) 의 대어. 작용을 받는것
물어 가로되, 이 법문(法門)을 배청(拜聽)하고 또 지자(智者)에게 물어 말씀드려 보니 법화경(法華經)의 훌륭함은 이러니 저러니 할 것이 없느니라. 단(但) 기량(器量)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自身)만은 그래야 할지니라. 말대(末代)의 범부(凡夫)를 향(向)해 곧바로 기(機)도 모르고 이전(爾前)의 교(敎)를 타박하여 말하며, 법화경(法華經)을 행(行)하라고 말함은 연래(年來)의 염불(念佛) 등(等)을 버리고, 또 법화경(法華經)에는 아직 공(功)도 들이지 않으니 유(有)에도 무(無)에도 붙지 않는 것 같이 되리라.
해설
들어보니 법화경의 훌륭함은 말할것이 없다. 하지만 그정도 그릇이 되는 사람에 해당되는 것 같다. 말법의 어리석은 범부들에게 이전경을 타박하고 법화경의 공덕을 말하는 것은 기존의 염불과 자신들의 종교를 버리라고 하는 것은 반발도 살것이고 법화경도 믿지 않을거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이 될 거 같다.
또 기(機)도 모르고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신다면 믿는 자(者)는 이러니 저리니 할 것 없고 만약(萬若) 비방(誹謗)하는 자(者)가 있다면 반드시 지옥(地獄)에 떨어지리라.
해설
그 사람의 기근도 모르고 법화경을 설하면 비방하여 상대방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부처도 사십여년간(四十餘年間)·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지 않으신 것은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이기 때문이라고, 재세(在世)의 기(機)조차 역시 그러하니 어찌 하물며 말대(末代)의 범부(凡夫)에 있어서랴,
해설
부처조차도 40년 동안 이전경을 설하였다. 그것은 기근이 맞지 않기 때문이었는데 말법의 기근은 더 좋지 않을 것이다.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중생몰재고(衆生沒在苦) - 불승(佛乘)만 찬탄한다면 중생이 고(苦) 에 빠진다는 뜻. 즉 기근에 맞지 않는 설법을 이야기 함.
그러므로 비유품(譬喩品)에는 「부처가 사리불(舍利弗)에게 고(告)하여 가로되, 무지(無智)의 사람 중에서 이 경(經)을 설(說)하지 말지어다」 운운(云云).
이러한 도리(道理)를 말함은 어떠하뇨.
해설
그래서 비유품에서는 무지한 사람에게는 이 법화경을 설하지 말라고 하였다.
답(答)하여 가로되, 지자(智者)의 이야기라고 말씀하심을 들으니 결국(結局) 말대(末代)의 범부(凡夫)에게는 기(機)를 감안하여 설(說)할 것이되 분별(分別)없이 설(說)하여 사람이 비방(誹謗)케 하는 일이 없을지어다라고 함이로다.
해설
말법의 범부에게는 그 사람의 기근에 따라 설해야 하며 기근을 가리지 않고 설하여 상대방이 비방케 하지 말라는 이야기 인거 같은데..
그 사람이 그와 같이 말하신다면 답변(答辯)하는 방법(方法)은 대저 약단찬불승(若但讚佛乘)·내지(乃至) 무지인중(無智人中) 등(等)의 문(文)을 내신다면 또 일경(一經) 내(內)에 범유소견(凡有所見)·아심경여등(我深敬汝等) 등(等)이라 설(說)하여 불경보살(不輕菩薩)이 장목와석(杖木瓦石)으로써 맞고 추방당하심을 돌이켜보지 않으심은 어떠한가라고 말씀하시라.
해설
그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 하시라. 부처의 본론을 기근이 안되는 무지한 사람에게 설하면 안된다면 불경보살이 그 사람의 불성에 예배하여 장목와석을 맞았듯이 그 불성에게 법화경을 설하라.
* 범유소견(凡有所見)·아심경여등(我深敬汝等) - 당신의 불성을 깊이 공경한다는 뜻
물어 가로되, 일경(一經) 내(內)에 상위(相違)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이해(理解)하기 어려우므로 상세(詳細)히 듣고자 하나이다.
해설
법화경을 설하는데 기근에 따라 설하지 말라니..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답(答)하여 가로되, 방편품(方便品) 등(等)에는 기(機)를 감안하여 이 경(經)을 설(說)할지어다라고 쓰였고, 불경품(不輕品)에는 비방(誹謗)하더라도 오직 억지로 이를 설(說)할지어다라고 쓰여 있어서 일경(一經)의 전후(前後)가 수화(水火)와 같으므로 천태대사(天台大師)가 회석(會釋)하여 가로되
해설
방편품에는 기근에 따라 설 하라고 하였고 불경품에는 비방하더라고 설하라고 하였는데 같은 법화경에 어떻게 이렇게 다른 설법의 방식이 있는 것인가 천태대사가 해석하되
「본이유선(本已有善)에게는 석가(釋迦)가 소(小)를 가지고 이를 장호(將護)하고 본미유선(本未有善)에게는 불경(不輕)이 대(大)를 가지고 이를 강독(强毒)함이라」 문(文).
해설
석존과 인연이 있는 중생에게는 석가가 소승경을 가지고 설법을 하고 말법의 석존과 인연이 없는 중생에게는 불경보살이 대승경을 가지고 독고의 연을 만들라고 하엿다.
장호(將護) - 돕고 지키는 것
* 본이유선(本已有善) - 본래 선근이 있다. 석존과 인연이 있는 중생
* 본미유선(本未有善 ) - 본래 선근이 없다. 석존과 인연이 없는 중생
문(文)의 심(心)은 본래 선근(善根)이 있어 금생내(今生內)에 득해(得解)할 자(者)를 위해서는 바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할지어다.
해설
본래 선 이 있어 현세에 성불할수 있는 자는 바로 법화경을 설하라.
그런데 그 중(中)에 역시 듣고 비방(誹謗)할 기(機)가 있으면 잠시 권경(權經)을 가지고 인도(引導)하여 후(後)에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할지어다.
해설
하지만 그 설법을 듣는 사람중에 비방하는 사람들은 잠시 이전경을 가지고 인도한 후 법화경을 설해라.
본시(本是) 대(大)의 선근(善根)도 없고 지금(至今)도 법화경(法華經)을 믿지 않으니 별일이 없더라도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므로 오직 강제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서 이것을 비방(誹謗)케 하여 역연(逆緣)이라도 되게 하라고 회석(會釋)하는 문(文)이니라.
해설
본래 대승경과 인연도 없고 현재도 법화경을 믿지 않으니 어차피 악도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강제로라도 법화경을 설하여 비방케 하여 연을 만들게 하라는 문이다.
이 석(釋)과 같음은 말대(末代)에는 선(善)이 없는 자(者)는 많고 선(善)이 있는 자(者)는 적은 고(故)로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음이라.
이왕이면 법화경(法華經)을 굳이 설(說)해 들려 주어 독고(毒鼓)의 연(緣)으로 할지어다.
해설
그 말과 같다면 말법에는 선이 없는 자가 더 맣아 악도에 떨어질 사람은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법화경을 설하여 독고의 연으로 되게 하라.
그러니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여 방연(謗緣)을 맺을 시절(時節)이란 것은 논쟁(論諍)의 여지가 없는 것이로다.
해설
방법의 연을 맺게 하는게 맞을 것이다.
또 법화경(法華經)의 방편품(方便品)에 五千의 상만(上慢)이 있어 약개삼현일(略開三顯一)을 듣고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의 때 부처의 어력(御力)으로써 자리를 뜨게 하신 후(後)에 열반경(涅槃經)과 사의(四依)의 변(邊)에서 금생(今生)에 깨달음을 득(得)하게 하신 것과,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에 희근보살(喜根菩薩)이 승의비구(勝意比丘)를 향(向)하여 대승(大乘)의 법문(法門)을 굳이 설(說)해 들려주어 비방(誹謗)케 하신 것과, 이 두 가지의 상위(相違)를 천태대사(天台大師)가 회석(會釋)하여 가로되
해설
오천의 상만이 자리를 떴고 그것이 방법의 인연이 되었지만 열반경과 요의경을 설하여 금생에 깨닳음을 득하게 한 것과, 희근보살이 굳이 승의비구에게 대승의 법문을 설하게 한 것을 천태대사가 이야기 하길
* 五千의 상만(上慢) - 방편품제 2 광개삼현일을 설하려 하자 오천의 증상만의 사중이 그 자리를 박차고 퇴장했다.
* 약개삼현일(略開三顯一) - 성문,연각,보살의 삼승을 열어 일불승을 나타냄. 방편품제2 제법실상 내지 본말구경등
* 광개삼현일(廣開三顯一) - 이승작불
*사의(四依)의 변(邊) -
의법불의인 – 법에 의하되 사람에 의하지 말라
의의불의어 – 가르침의 의의에 따르되, 표현의 문장에 의하지 말라
의지불의식 – 참된 지혜에 의하되, 범부의 해석에 의하지 말라
의요의경불의불요의경 – 요의경(법화경)에 의하되, 불료의경에 의하지 말라
*제법무행경(諸法無行經) - 구마라습의 역. 2권 . 반야의 공(空)의 사상의 입장에서 대승정신을 강조하고, 제법(諸法)의 중도실상을 설해 밝히기에 이른 것. 희근보살이 衆生性卽是佛性(중생성즉시불성)을 설할 때 승의비구라고 하는 지계의 법사가 비방하여 지옥으로 떨어졌다.
「여래(如來)는 비(悲)를 가지는 고(故)로 발견(發遣)하고 희근(喜根)은 자(慈)를 가지는 고(故)로 강설(强說)함」 문(文)
·문(文)의 심(心)은 부처는 비(悲)인 고(故)로 후(後)의 즐거움을 제쳐놓고 당시(當時)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하여 지옥(地獄)에 떨어져 고(苦)를 당하게 될 것을 슬퍼하시어 좌(座)를 뜨게 하셨노라. 비유(譬喩)컨대 모(母)가 자식(子息)에게 병(病)이 있음을 알더라도 당시(當時)의 고(苦)를 슬퍼하여 무조건 뜸을 뜨지 않는 것과 같다.
해설
부처는 悲(비)를 가지는 고로(중생을 가엾게 여기는 고로) 당장 설법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오천의 상만이 자리를 떴다. 방법을 저지를까봐. 부모가 자식의 병이 있음을 알아도 당장의 고통이 불쌍하여 뜸을 뜨지 않는 것과 같다.
희근보살(喜根菩薩)은 자(慈)인 고(故)로 당시(當時)의 고(苦)를 돌보지 않고 후(後)의 낙(樂)을 생각하여 굳이 이를 설(說)하여 듣게 하였다. 비유(譬喩)컨대 부(父)는 자(慈)인 고(故)로 자식(子息)에게 병(病)이 있음을 보고 당시(當時)의 고(苦)를 돌보지 않고 후(後)를 생각하는 고(故)로 뜸을 뜨는 것과 같다.
해설
희근보살은 慈(자)인 고로(중생을 사랑하는 마음) 당장은 아파도 후를 위하여 굳이 독고의 연을 맺게 했다.
또 불재세(佛在世)에는 부처가 법화경(法華經)을 숨기셨으므로 사십여년(四十餘年)간은 등각(等覺) 불퇴(不退)의 보살(菩薩)도 이름을 몰랐었다. 게다가 수량품(壽量品)은 법화경(法華經) 팔개년내(八箇年內)에도 이름을 숨기시고 최후(最後)에 들려주셨는데, 말대(末代)의 범부(凡夫)에게는 구별(區別)없이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하고 생각하는 바를 묘락대사(妙樂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해설
40년 이전경에서는 법화경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이름을 몰랐고, 수량품은 법화경을 설하면서도 마지막에 들려줬는데, 그럼 말법에는 어떻게 구별없이 들려줘야 하는 것을 묘락대사가 말하되,
「불세(佛世)는 당기(當機)인 고(故)로 간택(簡擇)하고 말대(末代)는 결연(結緣)인 고(故)로 들려줌이라」라고 해석(解釋)하시었느니라. 문(文)의 심(心)은 불재세(佛在世)에는 부처의 일기(一期)동안에 많은 사람을 불퇴(不退)의 위(位)에 올려야 하므로 법화경(法華經)의 명의(名義)를 내어 비방(誹謗)케 하지 않고, 기(機)를 조숙(調熟)하여 이것을 설(說)하고, 불멸후(佛滅後)에는 당기(當機)의 중(衆)은 적고 결연(結緣)의 중(衆)이 많으므로 다수(多數)에 따라 구별(區別)없이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할지어다라고 하는 석(釋)이니라.
해설
부처의 재세에는 많은 중생을 불퇴의 위에 올려야 하므로 기를 올려서 설법하여 법화경을 비방케 하지 않았지만,(시간이 있었기에), 하지만 불멸후엔 부처와 인연이 없는 중생이 많기 때문에 구별없이 법화경을 설해야 한다는 뜻
이와 같은 많은 품(品)이 있느니라. 또 말대(末代)의 사장(師匠)은 대개 기(機)를 모르는데, 기(機)를 모른다면 다만 억지로 실교(實敎)를 설(說)할지어다. 그러므로 천태대사(天台大師)는 해석(解釋)에 가로되 「동등(同等)하게 이를 보지 못하면 오직 대(大)를 설(說)함에 허물이 없음」 문(文). 문(文)의 심(心)은 기(機)도 모른다면 대(大)를 설(說)함에 죄과(罪過)가 없다고 하는 문(文)이니라.
해설
말법에 스승들도 기를 모르는데 그렇다면 억지로 법화경을 설해라. 천태대사왈, 기를 모른다면 대승교를 설하는 데 문제가 없다.
또 당시(當時)의 기(機)를 보고 설법(說法)하는 방법(謗法)도 있으니 모두 국중(國中)의 제인(諸人)이 권경(權經)을 믿고 실경(實經)을 비방(誹謗)하여 굳이 쓰지 않으면 탄가(彈呵)의 마음으로서 설(說)할지어다.
해설
하지만 당시의 기를 보고 설하는 방법도 있는데, 이전경을 믿고 법화을 비방하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법화경을 설할지어다.
시(時)에 의(依)해 용부(用否)가 있을지니라.
해설
때에 따라 적절히 써라.
물어 가로되, 당토(唐土)의 인사중(人師中)에 일부분(一部分)은 오로지 권대승(權大乘)에 머물고 실경(實經)에 들어오지 않는 자(者)는 어떠한 연고(緣故)이뇨.
해설
일본의 고승들도 권대승에 머물고 법화경에 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먼가(고승들은 다 알지 않나 법화경이 훌륭하다는 것을)
* 권대승(權大乘) - 화엄.방등,반야
답(答)하여 가로되, 부처는 출세(出世)하시어 우선 四十여년(餘年)의 권대승(權大乘)과 소승(小乘)의 경(經)을 설(說)하고 후(後)에는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여 말씀하시되 「약이소승화(若以小乘化)·내지어일인(乃至於一人)·아즉타간탐(我則墮貪)·차사위불가(此事爲不可)」 문(文). 문(文)의 심(心)은 부처가 오직 이전(爾前)의 경(經)만을 설(說)하고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시지 않는다면 부처는 간탐( 貪)의 죄과(罪過)가 있다고 설(說)하셨느니라.
해설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지 않으면 간탐의 죄가 생기다.
* 간탐 –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것. 간탐의 죄는 아귀도에 떨어진다고 함.
후(後)에 촉루품(囑累品)에 이르러 부처는 오른쪽 손을 내밀어 세번이나 훈계(訓戒)하시고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에 팔방(八方)·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豹)의 국토(國土)의 모든 보살(菩薩)의 정상(頂上)을 쓰다듬고 미래(未來)에는 반드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할지어다. 만약(萬若) 기(機)가 감당(堪當)치 못한다면 여타(餘他)의 심법(深法)인 四十여년(餘年)의 경(經)을 설(說)하여 기(機)를 조숙(調熟)해서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할지어다라고 쓰였느니라.
해설
법화경 촉루품에서 모든 보살들에게 신신당부 하며 말법에 법화경을 설하라고 함. 기가 감당하지 못하면 이전경을 설해서 기를 높여 법화경을 설해라
후(後)에 열반경(涅槃經)에 거듭 이것을 설(說)하여 불멸후(佛滅後)에 사의(四依)의 보살(菩薩)이 있어 법(法)을 설(說)함에 또 법(法)의 사의(四依)가 있으니, 실경(實經)을 끝끝내 홍통(弘通)하지 않으면 천마(天魔)로 알아야 한다는 것을 설(說)하셨느니라.
해설
법화경을 홍통하지 않으면 천마와 같다.
고(故)로 여래(如來)의 멸후(滅後) 후(後)의 오백년(五百年)·구백년간(九百年間)에 나오신 용수보살(龍樹菩薩)·천친보살(天親菩薩) 등(等)은 널리 여래(如來)의 성교(聖敎)를 홍통(弘通)하심에, 천친보살(天親菩薩)은 먼저 소승(小乘)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사람으로서 구사론(俱舍論)을 만들어 아함십이년(阿含十二年)의 경(經)의 심(心)을 말씀하되 전혀 대승(大乘)의 의리(義理)를 밝히지 않았고, 다음에 십지론(十地論)·섭대승론(攝大乘論)·석론(釋論) 등(等)을 만들어 사십여년(四十餘年)의 권대승(權大乘)의 심(心)을 설(說)하고, 후(後)에 불성론(佛性論)·법화론(法華論) 등(等)을 만들어 대강 실대승(實大乘)의 의(義)를 설(說)했느니라. 용수보살(龍樹菩薩) 또한 이와 같으며,
해설
* 용수보살(龍樹菩薩) - https://blog.naver.com/hwaq708/90038719398
* 천친보살(天親菩薩) - http://blog.daum.net/lee9243q/10990319
천태대사(天台大師)는 당토(唐土)의 인사(人師)로서 일대(一代)를 구분(區分)함에 대소(大小)·권실(權實) 현연(顯然)하니라.
나머지의 인사(人師)는 조금 의리(義理)를 설(說)했지만 분명(分明)하지 않고, 또 증문(證文)이 확실하지 않다.
해설
천태대사는 부처의 일대사를 구분함에 대,소,권,실이 명확하였다.
나머지 고승들은 이렇게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았고 증문또한 확실하지 않았다.
단(但) 말(末)의 논사(論師) 및 역자(譯者)·당토(唐土)의 인사중(人師中)에 대소(大小)는 구분(區分)하였으나 대(大)에 있어서 권실(權實)을 구분(區分)치 않고, 혹(或)은 말로는 구분(區分)한다고 해도 마음은 권대승(權大乘)의 취지(趣旨)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것들은 불퇴제보살(不退諸菩薩)·기수여항사(其數如恒沙)·역부불능지(亦復不能知)라 생각되느니라.
해설
그러나 고승들중 대승경,소승경은 구분하였으나, 대승경에 있어 권경과 실경을 구분치 않고, 혹은 말로는 구분하였다고 하여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으니 부처의 지혜를 알 수 가 없다.
* 불퇴제보살(不退諸菩薩)·기수여항사(其數如恒沙)·역부불능지(亦復不能知) - 불퇴전에 오른 보살들이 겐지스의 항하의 강의 모래처럼 많아도 부처의 지혜는 알 수 가 없다.
의심(疑心)하여 가로되, 당토(唐土)의 인사(人師) 중(中)에 자은대사(慈恩大師)는 십일면(十一面) 관음(觀音)의 화신(化身)이라 치아(齒牙)에서 빛을 발(發)하고, 선도화상(善導和尙)은 미타(彌陀)의 화신(化身)으로 입에서 부처를 냈으며 이 외(外)의 인사(人師)는 통력(通力)을 나타내고 덕(德)을 베풀어 삼매(三昧)를 발득(發得)하는 사람이 세상(世上)에 많은데, 어찌 권실이경(權實二經)을 분별(分別)하여 법화경(法華經)을 근본(根本)으로 하지 않았느뇨.
해설
의심스럽다. 자은대사,선도화상 같은 고승들은 신통력을 보여주는 대단한 사람들인데 이러한 사람들이 어찌 권교,실교를 구분하지 못하여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지 않는 것인가
자은대사(慈恩大師) - https://studybuddha.tistory.com/104
선도화상(善導和尙) - https://blog.naver.com/af60500/221097470406
답(答)하여 가로되, 아갈다선인(阿竭多仙人) 외도(外道)는 십이년간(十二年間) 귀 속에 항하(恒河)의 물을 담고, 바수선인(婆 仙人)은 자재천(自在天)으로 되어 삼목(三目)을 나타냈느니라.
해설
아갈다선인(阿竭多仙人) - 아카타선인. 열반경에 의하면, 외도의 선인으로서 12년간, 항하의 물을 귀속에 넣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당토(唐土)의 도사(道士) 중(中)에도 장계(張階)는 안개를 내고 난파(鸞巴)는 구름을 토(吐)하고,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은 불멸후(佛滅後)에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아라한(阿羅漢)·벽지불( 支佛)의 모습을 나타내어 사십여년(四十餘年)의 경(經)을 설(說)하리라고 쓰여 있다.
해설
장계,난파가 신통력을 나타내고 제육천의 마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40년의 경을 설한다고 되어있다.
통력(通力)으로써는 지자(智者)와 우자(愚者)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직 부처의 유언(遺言)과 같이 오로지 권경(權經)을 홍통(弘通)하고 실경(實經)을 끝내 홍통(弘通)하지 않는 인사(人師)와 권경(權經)에 숙습(宿習)이 있어서 실경(實經)에 들어가지 않는 자(者)는 혹(或)은 마(魔)에 속아서 통력(通力)을 나타냄이로다. 다만 법문(法門)을 가지고 사정(邪正)을 밝혀야 하느니라, 이근(利根)과 통력(通力)에는 의하지 말지어다.
해설
먼가 신비한 힘으로 지자와 우자를 구별하면 안된다. 통력을 나타낼수 있는 것은 권경(이전경이나 다른경)에 의한 숙습에 의함이다. 법화경(실경)에 들어가지 않는 자는 마에 속아 그렇게 통력을 나타낼수 있다.
법문을 가지고 정사를 밝혀야 한다. 재능이 있거나 똑똑하거나, 먼가 신통력을 나타낸다고 하여 불법의 정사를 구분할 수는 없다. 오직 경문에 의하여 법의 정사를 밝혀야 한다.
* 이근(利根) - 재능이 있는 것. 총명한것
* 통력(通力) - 신통력
문응(文應) 원년(元年) 태세(太歲) 경신(庚申) 오월(五月) 이십팔일(二十八日)
니치렌(日蓮) 화압(花押)
가마쿠라(鎌倉) 나고에(名越)에서 씀
(요약)
下
(염불자)
70. 선도화상,호넨상인이 방법을 말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나중에 나라가 망할수 있다는 것이 염려스러워 그러는 것인가
(법화경행자)
71. 내 이야기를 기준삼지 말고 현명함을 가지고 판단하여야 한다.
(염불자)
72. 나도 우자다.모든 지자의 말을 의심하여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가
(법화경행자)
73. 사람의 말을 믿지 말고 경을 믿고, 요의경인 버화경을 믿어라.
74. 법화경의 최고의 요의경이다.
75. 나머지 경들은 법화경을 도우는 경들이다.
76. 법화경이 최고의 요의경인데 법화경이 기근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경들로는 일체중생을 구할수 없다.
77. 오직 법화경만이 일체중생을 구제할수 있다.
78. 법화경을 찬탄하면서 기근에 맞지 않다고 말하니 그게 방법이다.
79. 결단을 내려라(염불자에게 이야기 함), 당신이 속은 것은 다른 권경으로 비유하여 속은 것이다 .법화경은 쉽게 깨지 못한다.
(염불자)
80. 어느 지자가 말하길 중생이 성불함에 이전경은 수행이 어렵고(역겁수행)을 필요로 함. 법화경은 실천할수 있는 수행법이라고 했다.
81. 성불함에 있어서도 이행도가 맞다.
82. 법화경을 읽고 써도 성불하며, 아미타불을 불러도 성불한다.
또 이상한 말을 시작하고 있다.
83. 기근과 인연에 따르는 것이지 법화경이건 ,이전경이건 따지지 말라
기근에 따라 성불이 결정되어 진다. 경은 중요하지 않다 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84. 아미타불은 부르기만 하면 되니 쉬운데 어떻게 생각하오
(법화경행자)
85. 그럴듯한 말이다.
86.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 믿을수 있는 지자도 없고 모두 지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87. 문증이 있다. 40년 설법중 이전경은 삼승,오승을 위한 설법이다.
88. 이전경은 수타의, 법화경은 수자의 이다.
89. 40여년 미현진실이다.
90. 정토삼부경도 미현진실이다. 어차피
91. 화엄,방등,반야경도 마찬가지 이다.
92. 권실잡란의 대과는 대방법이며 그렇게 되면 나라가 망하고 역병이 돈다.
93. 선도화상의 선택집에 법화경으로 성불하는 사람은 천명중 한명이라고 이야기 하였으나,선택집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94. 하지만 마음에는 인정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기에 염불자의 말을 재가의 사람들은 따랐다.
95. 겉으로 드러내놓고 비방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니 교활하며 천마의 계책일 것이다.
96. 천태대사는 내외상대를 이야기 함에 2가지 경우를 든다.
97. 약부, 약교이다.
(염불자)
98. 이전경은 역겁수행을 해야 하는데 법화경이나 이전경이나 중생을 성불시키는 것은 같다라고 하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
(법화경행자)
99.천태,묘락대사때부터 이야기가 많았던 부분이다.
100. 중생을 교화하는데 이전경도 문제가 없는데 오시로 나눌때에만 이전경은 중생의 기근을 높이기 위한 방편이라고 얘기했다.
101. 일본의 온조사에서도 지쇼대사가 말한것과 온조사에서 말한 것이 틀리다는 예가 있었다.
(염불자)
102. 아직 법화경을 공부하겠다고 결정하진 못하였지만 여러 가지 의문이 풀렸다.
103. 천태대사의 사교에 의해 의심이 풀렸다.
(법화경행자)
104. 다른 증거도 있지만 번거로워 기재하지 않았고, 법화경 본문에 오면은 적문도,이전경도 소용없다.
105. 이전경은 사교중 별교의 位(위)다.
106. 이전경은 역겁수행을 하기에 우회하는 (돌아가는) 가르침이다
(염불자)
107.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어떤 수행을 해야 하나
(법화경행자)
108. 본존을 정하는 법과 행의, 또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제목을 부른다
109. 법화경의 제목은 일반적인 經(경)의 제목이 아니다.
110. 묘법의 이자에 일념삼천과,구원실성이 포함되어 있다.
111. 천태의 법화현의10권에서는 묘법연화경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다.
112. 經(경)의 일자에 이전경과 열반경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13. 묘법의 이자를 법화현의 에서는 유정계에 한한다.
114. 마하지관에서는 정,비정 함께 묘법의 이자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115. 제목에 그 경의 공덕이 포함되어 있다.
116. 설한 경에 따라 공덕의 차별이 있는 것이다.
117. 부처의 설법을 곡해하는 해설이 많다.
118. 일불에 일체불의 공덕이 들어 있진 않다.
119. 법화경에 이전경이 포함되어 있고, 법화경의 묘법의 이자 에는 일체불이 들어있다.
120. 묘법연화경의 제목에는 다른경전의 제목이 포함되며, 공덕이 뛰어나다.
(염불자)
121. 법화경이 훌륭하지만 그정도 기근의 자에게 해당되는거 같다. 말법의 어리석은 범부에겐 해당되지 않는거 같다.
122. 상대방의 기근도 모르고 무턱대고 법화경을 설한다면 상대방은 비방하여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23. 부처도 40년을 기근을 높이기 위해 법화경을 설하지 않았는데 말법에 갑자기 법화경을 설하면 어떻게 되는가
124. 비유품에 무지한 사람에게 법화경을 설하지 말라 하였다.
(법화경행자)
125. 다른 지자가 그렇게 이야기 하였다는 것이죠? 결국 기를 감안하여 사람을 분별하여 법화경을 설하여 상대방이 비방하지 않게 하라는 말이렸다.
126.그렇다면 상대방의 불성에 대고 법화경을 설하라.
(염불자)
127.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듣고자 한다.
(법화경행자)
128. 방편품에는 기근에 따라 설하고 불경품에는 비방하더라도 설하라고 한 것을 천태대사가 말하되
129. 본이유선의 중생은 소승경을 가지고 섭수하고 본미유선의 중생은 대승경을 가지고 절복
130. 선근이 있는 중생에게는 바로 법화경을 설하라.
131. 하지만 그중 비방하는 사람에겐 이전경을 가지고 인도후 법화경을 설하라.
132. 어차피 악도에 떨어질 것 같으면 억지로 법화경을 설하여 독고의 연을 만들어라.
133. 오천의 상만을 깨닳게 한것과 희근보살이 대승의 법문을 설하게한걸 천태대사가 말하길
134. 부처는 일부러 오천의 상만이 방법을 저지르지 않게 자리를 뜨게 했다.
135. 희근보살은 慈(자)를 가지는 고로 독고의 연으로 인연을 맺게 했다.
136. 말법에는 어떻게 법화경을 들려줘야 하는지 묘락대사 왈
137. 부처와 인연이 없는 말법에는 구별없이 법화경을 설하여 인연을 맺게 하라
138. 기를 모른다면 법화경을 설해라. 설하여도 죄과가 없다.
139. 이전경을 믿고 법화경을 비방하더라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법화경을 설해라
140. 때에 따라 적절히 써라
(염불자)
141. 일본의 고승들은 법화경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텐데 왜 믿지 않는가
(법화경행자)
142. 부처가 법화경을 설하지 않았다면 간탐의 죄가 생긴다.
143. 촉루품에서 모든 보살들에게 말법에 법화경을 설하라고 신신당부함
144. 법화경을 설하지 않으면 천마와 같다
145. 부처멸후 용수,천친이 나왔는데 정확히 설하지 않았으며
146. 천태대사는 대소,권실이 정확하게 설하였다.
147. 말법의 고승들도 정확하게 권경과 실경을 구분하지 못했다. 말로는 해도 마음은 몰랐다.
이는 부처의 진의를 알기가 어렵다는 뜻
(염불자)
148. 자은대사나 선도화상은 대단한 신통력을 가진 고승들인데 어찌 법화경을 근본으로 하지 않는가
(법화경행자)
149. 아갈다선인,바수선인도 신통력을 지녔었다.
150. 신통력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많았다.
151. 법의 정사는 경문을 우선으로 밝혀야 한다. 재능과 신통력으로 정사를 밝히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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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생한 덕분에 창법화제목초를 더 쉽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자료를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덕 많이 받으시고 성불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