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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주도 여행,정착 길라잡이 원문보기 글쓴이: 블루오션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론 자기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쉽고 마음에 와 닿겠지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거나 어딘가에 비친 세상을
보는 것도 소중한 기억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으로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도 있는데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미술관으로 가는 것이 좋겠죠?
제주에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기당미술관, 이중섭미술관, 제주문예회관 전시실 등
여러 미술관들이 있습니다.
제주문예회관 전시실은 제주시 구도심에 있으며,
제주도립미술관은 한라수목원 위 도깨비도로로 불리는 길옆에 있습니다.
제주현대미술관은 저지리에 있으며,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은 서귀포 구도심에 있습니다.
미술관은 시민들 가까이에 지어져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만
지자체에서 짓는 커다란 미술관들은 구도심의 높은 땅값을 견딜 수가 없어
시 외곽의 땅 값 싼 곳에 짓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그렇고, 서울의 예술의 전당이 그렇듯이 제주도립미술관도
시 외곽에 위치해서 아쉬움은 있지만 좋은 그림을 보고 싶은 욕심에 시간만 나면 달려가는 곳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 가면 늘 드는 생각은 참 좋은 곳에 미술관을 지었구나 하는 것입니다.
미술관의 옆으로는 멀리 한라산이 보이며, 입구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면 시야가 탁 트여
마음의 정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미술관 전면에 수공간을 만들어 미술관도 비치고, 한라산도 비치니 건축물이 자연 안에 있는 건지,
한라산이 미술관 안에 있는 건지 모를 정도입니다.
아니, 생명의 근원인 물 속에 미술관이며 한라산이며 혹은 자연이 들어가 앉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사진이 나오면서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최근의 광고 문구를 보면 원본보다 더 선명한 복사본이라고 하면서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가 모호해지고,
원본에 대한 의미가 퇴색해져 가고 있습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 오면 나르키소스가 사랑에 빠져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연못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처럼 미술관의 물에 비친 풍경과 건축물이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치명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다른 아름다움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걸음을 옮겨 봅니다.
제주도립미술관 전면에는 콘크리트로 수직적 분할을 만든 구조물이 있습니다.
미술관 설계가 건축가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는 건축물에 자신의 건축철학을 투영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으로 땅 위에 낮게 깔려있는 미술관이 지나치게 펼쳐져서 어지럽게 보이지 않기를 바랐을까요?
전면의 구조물은 풍경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깥에서 미술관을 바라보면 건물이 분할이 되고, 미술관 입구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풍경이 분할됩니다.
또한 건축물 자체의 창을 이용해서 건축물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분할된 창문을 통해 분할된 풍경이 보이니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풍경과 건축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주도립미술관은 미술관 내부의 보석 같은 예술품이 아니더라도 건축물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볼 만한 곳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은 아름다운 건축물일까요?
미술관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콘크리트와 유리 밖에 보이지 않으며, 콘크리트도 페인트를 칠하거나
다른 재료를 덧붙이지 않고 콘크리트가 가진 재료적인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건축물은 아름다운 건축물인가요?
물론 이런 질문에 정답을 내놓을 수 있는 미학자나 예술가, 건축가는 없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인정하는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그리스는 황금비율을 만드는 등
비례, 조화, 반복 등 다양한 미학적 요소들을 만들고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정의를 내림으로서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미 그리스 시대에 모두 나왔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제주도립미술관은 아름다운가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름답습니다.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외부를 보면 내부에 어떤 공간이 있을지 알게 되는 솔직함도 좋고,
장식이 없는 깔끔한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기교 넘치는 조각상이나 화려한 그리스시대의 조각상들과는 다른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요?
큰 미술관에서 제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꼽으라 하면 야외 전시장의 조형물들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도 많은 야외 조형물들이 있는데 감동도 있고, 기발함도 있고, 경외로움도 있습니다.
제주의 미술관답게 제주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제주의 돌을 머금은 물고기하며,
유리로 만든 상어 등이 마치 공기 중을 헤엄쳐가는 듯 합니다.
그런데 아쉬움도 있습니다.
미술관 전면에는 작품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관람을 할 수 있었지만 천천히 산책하며 미술관 뒤로 가니
왠지 텅 빈 듯한 느낌에 이 아름다운 공간에 아름다운 조형물이 가득하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물론 지금의 비어 있는 정원도 산책하기에는 충분하니 꼭 미술관 뒤쪽도 가보시기 바랍니다.
건축물이 커지다보면 내부 공간이 넓어져 깊숙한 곳에는 햇빛이 비치지 않아 창백한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인공적인 조명을 하게 되지만 인공조명을 햇살과 비교할 수가 있을까요?
결국 햇살을 건축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정을 두게 됩니다.
제주도립미술관도 중정을 통해 따스한 햇살이 이곳저곳을 밝혀주고 따뜻하게 만들어줍니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미국의 캠벨미술관 등은 전시장 안에도 자연스러운 빛을 끌어들여
작품을 감상하는데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작품을 손상할 수 있는 직사광선은 안 되고 간접광선이 내리도록 조치를 하게 됩니다.
미술관 내부를 돌아다니다보니 굉장한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자연 속 깊숙한 계곡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드는 계단입니다.
제주 곳곳에는 이런 계곡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의 안덕계곡이나 돈내코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을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삐죽삐죽 솟아 있는 돌 사이를 빠져나가다 보면 하늘은 무성한 나뭇가지들로 덮여 파란 하늘이 부분 부분만 보이고,
간간이 고인 물 위로 위대한 자연이 비치는 모습은 계곡이 가지는 위대함입니다.
그러한 위대함을 제주도립미술관에서도 슬쩍 엿볼 수가 있습니다.
계곡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하늘을 수평으로 나눈 모습과 난간을 벽 속에 집어넣은 모습은 경이로운 자연에
대한 메타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안내 데스크의 제주적 표현입니다.
제주석을 돌담처럼 쌓아올리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로 받침을 만든 모습은 제주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근래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의 요소를 건축적으로 산업디자인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참 많습니다만 잘 어울리지 않거나
제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부속으로만 보이게 하는 우를 범하곤 하는데
이 데스크는 제주석의 투박함을 솔직하게 보여주면서 현대적인 재료인 유리와 철선을 이용하여
돌담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최고 수준의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유리판 위에 정돈되지 않은 모습과 바로 옆의 전시 안내물들은
디자인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가치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지키려는 시도와 함께 합니다.
특히 미술관이라면 더욱더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입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오니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게 과하거나 아름다운 장면을 가리고 있다면 그것은 자랑거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미술관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아름답지 않은 것으로 아름다움을 가리는 어울리지 않은 행위는 불필요해 보입니다.
제주는 이미 아름답고, 제주도립미술관도 아름답고, 미술관 안의 예술작품들도 아름답습니다.
그 장소에는 아름다움만 존재하길 바랍니다.
건축에 대한 아쉬움을 하나 이야기하자면 2층 전시실에 올라가는 주요 동선에 있는 계단이
구조적인 이유로 보가 지나면서 시야가 막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보가 지나지 않았다면 저 끝까지 공간이 줄어드는 모습이 마치 투시도의 소실점처럼 보이면서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거꾸로 이층에서 내려다보면 좁은 계단이 길게 펼쳐져 있는 멋있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에서는 이렇게 조금의 배려가 감동을 크게 만들 수도 있고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찾아다니고 느끼는 것이 건축 기행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세계미술거장전의 일환으로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라는 전시가 진행 중입니다.
2013년 3월 19일부터 시작해서 7월 14일까지 진행되는 이 전시는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화가의 그림을
보여줌으로서 제주도립미술관의 위상을 높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미술관에서 전 세계의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긴 하지만
개성 있는 지역예술가들의 작품을 항상 볼 수 있게 해주고, 지역예술가의 작품들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지역의 중심 미술관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제주도립미술관이 멋진 그림도 볼 수 있고,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하는 지역 예술의 중심공간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글/사진 이승택 이세환건축사사무소 소장, 문화도시공동체 쿠키 대표, 제주대 건축학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