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향하던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며, 사명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17-21절 예루살렘까지 곧장 가려던 바울은 밀레도에 배가 정박한 틈을 타 에베소 장로들을 만납니다. 데살로니가에서처럼, 바울이 떠난 후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해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살전 2:9-12). 그는 자신을 모함하는 모든 사안에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 에베소 성도들이 목격한 자기 삶을 증거로 내세워 변호합니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가장 힘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눈물로 인내해온 시간이 있다면, 오해와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이 칼보다 예리할 때가 있지만, 삶으로 보여준 것은 백마디 말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불식시킬 삶의 근거,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내게 있습니까?
22-24절 바울은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분도,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알려주는 분도 성령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소 상반된 듯 보이는 성령의 지시와 가르침에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결박과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도리어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고난을 향해 담대히 나아갑니다. 그것이 은혜의 복을 증언하는 사명의 길인 줄 알고 기꺼이 달려갑니다. 복음의 길은 평탄 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배척하는 세상에서 고난 없이 복음을 증언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의 진실성을 발견합니다.
25-27절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간 후에 로마를 지나 서바나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참조. 롬 15:23-29). 그러니 에베소에 다시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부족함이 없도록 있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기에, 이제 누군가 심판을 받더라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엄숙히 선언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애써서 복음을 전했기에 아쉬움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하는 우리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매일성경, 2024.05/06, p.134-135, 생명도 아끼지 않는 사명자, 사도행전 20:17-27에서 인용).
① 예루살렘을 향하던 바울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며, 사명을 이루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예루살렘까지 곧장 가려던 바울은 밀레도에 배가 정박한 틈을 타 에베소 장로들을 만납니다. 데살로니가에서처럼, 바울이 떠난 후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었기 때문에 해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살전 2:9-12). 그는 자신을 모함하는 모든 사안에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 에베소 성도들이 목격한 자기 삶을 증거로 내세워 변호합니다. 진실한 삶이야말로 가장 힘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겸손과 눈물로 인내해온 시간이 있다면, 오해와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이 칼보다 예리할 때가 있지만, 삶으로 보여준 것은 백마디 말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불식시킬 삶의 근거,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내게 있습니까?
② 바울은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이끄시는 분도,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알려주는 분도 성령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소 상반된 듯 보이는 성령의 지시와 가르침에 전혀 모순을 느끼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결박과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도리어 고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이끄시는 고난을 향해 담대히 나아갑니다. 그것이 은혜의 복을 증언하는 사명의 길인 줄 알고 기꺼이 달려갑니다. 복음의 길은 평탄 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배척하는 세상에서 고난 없이 복음을 증언할 방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사람을 통해 복음의 진실성을 발견합니다.
③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간 후에 로마를 지나 서바나까지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참조. 롬 15:23-29). 그러니 에베소에 다시 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부족함이 없도록 있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파했기에, 이제 누군가 심판을 받더라도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엄숙히 선언합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만큼 애써서 복음을 전했기에 아쉬움도,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일하는 우리 고백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