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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일/집결장소 : 2014. 11.30(일) / 2,4호선 사당역4번출구(10시)
▣ 참석자 : 5명 (정남, 양주, 창수, 삼환, 정한)
▣ 산행코스 : 사당역-둘레길-낙성대-뒤풀이(식당)
▣ 동반시 : "첫사랑" / 이양우
▣ 뒤풀이 : 낙지초무침, 연포탕, 생굴에 막걸리 / "낙지집"
오랜 습관이라 새벽에 일어나 밖을 보니 계절다운 겨울을 부르는 비가 조금씩 내린다. 마나님은 볼멘소리로 "오늘 같은 날도 산에 가요? 이런 날 나와 놀아주면 안 돼요? 애들도 없이 나 혼자인데. 점심 먹고 영화 보러 가요. 좋은 영화 많다는데. 올해는 한 번도 안 빠지고 참석하는 이유가 뭐에요?"
허참, 지인들의 부인은 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죽치냐고 한다는데. 이게 복인지, 굴레인지! 나름대로 작정한 계획이 있어서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도착하면 비가 그칠 수도 있고, 계속 내리면 점심 먹고 일찍 들어올게요.' "비가 많이 내려 산에 오르지 못하면 일찍 와요. 좋아하는 떡국에 빈대떡 안주로 막걸리 마셔요." '알았어요.'
정시에 도착하니 기자인 나와 2014년 동반 개근의 삼환 총장, 관악의 지리에 밝은 양주, 오랜 친구 나 원장, 입담 즐거운 정한이와 반갑게 해후하고 코스를 정했다. 임 총장은 불참 통보자기 11명이었으니 최소 15명은 나오리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중간 행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를 떠올리고 있었다.
약간의 안개비가 내리니 둘레길로. 그래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는 산객이 많다. 막걸리 두 병을 지고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오르며 역시 조용하며 부드러운 대화들. 나는 곧 상념에 빠져든다.
시 창작 교실에서 강의 후에 재능기부하시는 시인 선생님을 모시고 거르지 않고 모이는 점심의 자리에서 소고기 등심 샤브 요리를 먹으며, 여러 가지의 화제를 넘나들다가 막걸리 한 잔 들어가니 문학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직설화법이 나왔다. 상당히 트인 성격을 가진 분이 나에게 묻는다.
"도봉 선생님은 왜 뒷담화를 하는 사람을 그리 싫어하십니까?"
'할 말이 있으면 앞에서 해야지 뒤에서 하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모르시는 말씀, 그것은 역사 이래로 우리 한민족의 고유문화인데 용감과 비겁 사이에서 무엇을 찾으십니까? 이 더럽게 풍진 세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방법도 있고 마주 대고 얘기하면 싸움도 생기니 하느님이 보이지 않으면 그 분 욕도 하며 비웃는 게 인간세상을 사는 즐거움인데 고유문화까지 대놓고 뭐라고 하십니까? 도봉 선생님은 뒷담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까?"
'듣고 보니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저도 부지런히 뒷담화도 치고 살겠습니다.'
"하, 하, 하(모두 웃었다)"
안개비도 멈추고 바람도 잦아들어 나 원장의 사과를 내놓고 한 잔. 날머리를 정했다. 정한이 추천한 맛집에서 뒤풀이 후 영화를 보자는 의견과 나 원장이 좋아하는 사우나까지. 한 병이 남았으니 정자에 들러 싸온 음식들을 마저 먹자고 정하고 정자를 찾는데 모두 사람들이 차 있다.
날머리가 가까워지는데 정자는 우리들 차지가 되지 않아 배드민턴 코트의 휴게소에서 한과를 안주로 마지막 병을 비웠다. 강감찬 장군의 낙성대 사당에 들러 시산회 일당들의 인증샷을 하고 나오면서 나온 질문과 답. 강감찬 장군이 문관이었는가, 무관이었는가? 답은 문관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무관 경시 경향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가 별로 다르지 않았으리라.
조선 초기 백두산 부근의 사군육진의 개척자 김종서는? 역시 문관 출신이다. 울돌목을 장군의 바다로 불리게 했던 충무공 이순신은 무관이면서 문관 못지않은 무관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문무겸전의 장군들이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스페셜리스트보다 제너럴리스트가 환영 받는 세상이다. 요즘은 이공계열이 취직하기도 쉽고 최고경영자 중에 압도적으로 수가 많다는 것은 시대의 한 흐름일 터.
날머리가 가까워지면서 들어온 상념 하나. 역시 시 창작 교실의 시우들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다음에 시인 선생님에게 드린 시산회 문집을 두고 본의와 관계없이 화제가 오고가다가 매우 신중한 성격의 늙은 시우(詩友)가 점잖게 묻는다.
"도봉 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뜸을 들인다. 밥은 당연하지만 대화는 답답하다.)"
'예, 말씀하십시오.'
"갑자기 말 수가 줄어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예, 요즘 바람 부니 내 마음 속 감나무가 흔들립니다.'
"바람이 흔들립니까, 감나무가 흔들립니까?"
'바람도, 감나무도, 마음도 흔들립니다.'
"다 내려놓으소."
'무엇을 말입니까?'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내려놓으소. 마음을 내려놓으면 바람도 감나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알았습니다. 제 마음을 어찌 그리 잘 아십니까?'
"전에 그런 말을 잠간 비쳤으니 알죠."
나는 기억이 없다. 시우들끼리 시 이론을 공부하고 시평을 해주며 격려와 채찍질을 숨김없이 해주는 사이지만 그런 얘기를 할 리 없다. 내게 감나무는 시산회일까? 바람은 10년의 세월일까? 아니면 시산회는 내게 무엇이었을까, 지금은 무엇인가?
"도봉 님은 마음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단점과 동시에 장점이죠. 세상의 모든 것에서 나타나는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이라고, 약은 독이 될 수 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 정작 본인은 그걸 모르시다니요."
선불교의 창시자 대선사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 속에 담긴 화두다. 의구심과 괘심의 사이에서 내 마음이 뜬금없이 흔들리고 있다. 시평을 해줄 때 이 분은 내 시가 어렵고 현학적이라 했으니 그의 순수한 의도와 달리 조금 알지만 많이 아는 체를 한다는 것으로 들렸으나 칭찬과 모독이 혼재한 상태를 넘어가야 했다.
내심 ‘내 임자구나’라는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으며, 동시에 ‘스승이구나’라는 생각이 히말라야의 사진에서 보는 만년설처럼 사라지지 않았었다. 이 분에게 내게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고 물으려다 마음을 돌렸다. 어차피 대답해줄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알아서 해야지.
나이 들면 주름과 남이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 잔소리, 자기만의 우물에 빠져 나오려 하지 않는 고집의 세 가지가 는다고 했지, 아집(我執)이라 했던가. 그래! ‘나’가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아집이야말로 모든 죄와 악의 근원이라 했지. 불교는 말한다. 자아는 자기중심주의의 감옥이다.
정한이 추천한 맛집 근처에 이르면서 상념은 그쳤다. 정한의 맛집은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았고 옆에 붙은 조 회장님의 낙지집으로 들어섰다. 예의 연변 아줌마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양 반갑게 맞는다. 크기는 적지만 팁의 효력은 경우에 따라 매우 오래 간다. 뒤풀이가 끝날 때까지 이어졌으니.
산은 어디를 오르냐보다 누구와 오르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히말라야의 모퉁이 산의 입구에 써있는 말이다. ‘삶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고난과 직면하라.’ 정치적 격동과 폭력의 시대가 낳은 '축의 시대'의 고난은 2,500년~3,000년이 지났어도 나아진 것이 없어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류는 아직도 소크라테스와 붓다, 공자, 노자, 장자 등 인류 최고의 현자들이 활동했던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고난의 강도는 더 심해졌으며 폭력은 더 극악해졌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지는데.
늙은 시인은 말한다. 괴로우냐? 그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의 삶이 가엾다면 너는 주변에 아름다운 것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류 시인이 말했다. ‘매우 구체적이고 좁은 의미로 九足, 아홉 가지의 만족만 가지고도 우리의 삶은 행복할 수 있다. 골라라. 무엇을 더 욕심내느냐.’ 관악산 둘레길을 걸으면서 내내 생각하고 걸었다.
산우들과의 대화는 건성으로 주고받는다. 많은 것 중 세끼의 식사와 해, 달, 바람 그리고 산과 술과 시를 생각해냈다. 가족과 산우들, 형제가 빠졌지만 서운할 것은 없다. 주변에 사람이란 귀찮은 존재일 수 있다. 왜냐하면 주고받아야 하고, 감정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수동의 시기를 지나 능동적으로 살아야 할 때가 왔다. 시쳇말로 ‘갑질'하고 살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이 젊은 시절에 ‘고래사냥’과 ‘날이 갈수록’을 부르며 항상 말해왔던 우리들의 시대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다. 언감생심(焉敢生心), 내가 공자의 종심(從心)을 말하랴.
어떤 사람이 밤중에 서재에서 등불을 밝혀 편지를 쓴 다음, 등불을 끄는 경우와 같다. 이 경우 등불은 꺼져도 편지는 없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혜는 사라지지만 지혜에 의하여 성취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열반적정 사법인(四法印)의 깨침은 없어지지 않는다.
모든 지역에서 창조된 종교와 윤리 전통은 모두 공포와 고통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이런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고난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깨달음의 전제 조건이었다.
낙지초무침으로 시작한 뒤풀이는 연포탕도 부족해 배낭 속의 생굴을 꺼내게 할 정도로 거나해지고 있었다. 낙지 반 마리라는 먹통들이 상을 채웠고 생굴 두 봉지도 깨끗하게 차려졌다. 앞에 말한 겸손한 팁의 효과였다. 땀을 흘리지 않았으니 나 원장의 사우나는 잦아들었고 취기에 젖은 눈으로는 영화에게 모독이다. 5명의 일당은 다음을 기약하고 조용히 헤어졌다.
히말라야는 말한다. 산은 오르는 곳이 아니라 다만 보는 대상일 뿐이라고. 히말라야의 산과 우리의 산은 다르다. 우리에게 생활의 일부요 내 몸의 일부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신이 사는 곳이다. 히말라야가 신이다. 히말라야처럼 높은 곳에 오르지 않았다면 감히 신을 말하지 마라. 신은 없으니까.
2014. 12. 05일 김정남 씀.
< 동반시 >
"첫사랑" / 이양우
떠나가지 않아도 좋은 바람이었다
초록별에 버금가는 그 꽃은 한 밤중에도
환하게 피어 웃었지
혼(魂)채로 빛나는 행복의 추(錘)
나는 그렇게 비유하고 싶을 정도로
나를 행복의 저울대 눈금자로 지켜주었던
그녀는 잠시 머물다가 떠나간 날로부터
마침내 그는 종적을 감추었다
나는 눈을 하늘에 올려놓고
여기저기 내려다보았다
그는 보이지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불이 꺼진 별 하나를 잃어버린 채
그런 기분으로
캄캄한 어둠속에 갈증
그 탐조등은 허공 아래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녀의 미소에 나는 순진해져서
마침내 마녀의 손에 잡힌 듯이
꼼작도 못하다가 만 날개로
한층 내 심장은 공허의 무게로 떠서
주소를 잃고 방황하는 존재
아직도 삶의 무게를 잃은 채로
지쳐서 헐떡이다가 시들어버리는 추억의 끝자락
쓰라린 기억만 꺾인 나무 끝에 앉아서 바람에 펄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