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기어 다니는 키가 작은 동물이나 곤충, 높이가 낮은 나무나 꽃의 시선으로 보여 지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이 늘 보듯이 서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닌 불편하고 남 보기에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낮은 자세로 쪼그려 앉거나, 엎드리거나, 혹은 누워서 올려다보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사진가들이 얘기하는 피사체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이라 한다. 익숙하고 편안한 앵글로 대상을 바라보면 사진에서 어떤 변화도 발전 가능성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과 대상에 대해 관점을 바꾸는 시도를 해야 한다. "이 장면을 이런 각도에서 보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의도한대로 대상을 부각시킬 수 있을까?"
인도의 일상은 신앙심 깊은 힌두신자들의 기도에서 시작되고, 매일 아침 뛰어다니는 동네 아이들의 크리켓게임에서도, 잠에서 덜 깬 개들과 소들의 어슬렁거림에서도, 또한 등굣길 학생들을 잔뜩 태운 오토 릭샤에서도 시작된다. 이 모든 것이 평범한 일상이고 어제도 있었고, 그전에도 있었던 일이었고, 앞으로도 똑 같이 반복될 일일지도 모른다.
카주라호(Khajuraho)의 하루도 그런 평범함으로 시작된다. 찬드라 굽타(Chandragupta) 왕조의 찬란하면서도 외설스러운 정교한 부조를 새겨 넣은 대리석 건축물과 사원유적들이 이슬람세력에 의해 와해되고 파괴되기 전까지는 화려한 힌두 문명을 꽃 피웠다고 한다.
카주라호 역시 푸시카르처럼 작은 시골마을 이지만 찬드라쿱타 왕조의 유산 덕에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런 덕에 이 작은 시골마을은 과거도 현재도 앞으로도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거리를 나서면 사람들의 적극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상대의 생김새에 따라 간단한 그들의 언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혹은 영어 인사를 시작으로 좋은 곳에 안내해 주겠고도 하고, 또한 맛있는 한국식당을 소개해 주겠다고도 하며, 자기네 상점의 상품의 품질이 우수하고 값이 저렴하다고 말을 걸어온다. 여행객이 거절하면 또한 쉽게 포기하고 그렇게 먼 거리까지 따라오지는 않지만, 한두 발짝 지나면 또 다른 인디언이 똑 같은 방식으로 접근해 온다.
특히, 젊은 여자의 경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막무가내 식으로, "누나, 사랑해요. 첫 눈에 반했어요."
상대방의 수용여부와 상관없이 끈질긴 애정공세를 펼치기 때문에 여자 혼자 밤늦게 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카주라호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2년 전에 왔을 때도 똑 같은 상황이다.
식당에서는 음식을 주문하고 식사까지 마칠 때까지 두 시간은 족히 예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메뉴를 주문해도 조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어떤 경우, 음식이 늦어 종업원을 불러서 물어보면, 미안한데 깜빡하고 주문이 안 들어갔다고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주방의 가스가 떨어져 새로 주문해서 가져오고 있으니 쫌 기다려 달라고 한다.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표정은 전혀 진지하지 않거나, "No, problem! What’s the matter?"이라는 식이다. 무슨 문제냐? 쫌 늦으면 어떠냐? 하는 식이다. 만약 한국의 상황이었다면 어떡했을까? 아마도 상상을 하기도 싫은 엄청난 비난과 함께 SNS에 그 식당의 이름이 오르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식당의 예는 2년 전의 일이었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여 진다. 음식주문에도, ‘그 메뉴는 재료가 신선하지 않기 때문에 훌륭하지 않다. 추천할 만한 것이 아니다. 그 음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소 40분 정도 걸린다.’ 카주라호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응대는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작지만 놀라운 변화를 보는 것 같다. 인도의 무더운 날씨라는 지역적 특성과 현세의 삶보다는 자신의 업보에 따라 내세의 삶이 결정지어 진다는 윤회사상에 얽매여 있는 힌두교라는 종교적 관습에 변화가 이는 것인가? 늘 자신의 입장과 눈높이에서 보다가 생존을 위해 삶의 앵글을 바꾸려는 것인 가.
실제로 여기 카주라호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의 주인 할아버지는 직원들에게 엄격하다. 이른 아침부터 할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되어서 인지 비록 낡고 오래된 시설이지만 깨끗하고 쓰레기 하나 없이 항상 여행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기존에 느꼈던 게으르고 낙천적인 인도인의 모습과는 다른 변화를 향한 모습으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카주라호 최대 유적사원인 서부사원을 방문하여 구경하던 중, 화려하고 아름다운 전통 복을 입은 소녀들이 마치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야외촬영을 하는 것처럼 백인여자 사진가에게서 사진을 찍고 있다. 소녀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사진가의 지시에 따라 얼굴표정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예사의 장면이 아닌 것 같아 머물러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 앉아있던 한 노인이 나에게 묻는다. "Where are you from?" 이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 시간정도 사원입구에 대리석 재단 앞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었다.
사진촬영은 고등학생인 자신의 막내딸과 그 친구들이 전통 축제를 위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나에게 자신을 'Dr. Ashok
Kumar Dubey'라고 소개하면서 명함을 건내 준다. 다음에 인도에 오게 되면 꼭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자고 한다. 사진을 찍는 백인여성은 벨기에 사람으로 다섯 달 동안 카주라호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포토그래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대화는 끊이다가 다시 이어지고 했지만 서로의 카메라로 기념촬영을 했다.
여행의 묘미는 그곳에서 발생하는 우연한 마주침이 아닌지 싶다.
첫댓글 맨발...ㅋㅋ
인도여행은 깨달음도 얻고 신기한 것도 보고 좋은데 사진들을 보니 여행을 다닐 때 많이 불편하고 힘들 것같네요...
네 배낭여행이니까, 좀 힘들긴해도 현지인들과의 마주침과 잘 통하진 않지만 소통과 그들 문화에 대한 이해측면에서는 패키지 여행보다는 나은 것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선생님 덕분에 우리 카페가 글로벌 카페가 되었네요.^^
나마스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