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주일설교
배신당한 사람의 기도
(시편 41:1~13)
(도입)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당하는데 그 중에 가장 어려운 문제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이 아파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일이 힘들어도 헤쳐나가려고 노력하지만, 배신을 당하면 살 의욕이 꺾여버립니다.
저는 종종 성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곤 합니다. 성도들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동안에는 목사를 영적인 아버지로 여기다가도 교회를 떠날 때는 사람이 돌변합니다. 떠날 때 감사 인사도 하고 축복을 받고 가시는 분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분도 많습니다. 매일 기도해 드렸고 잘 지내던 성도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버리고 떠날 때 목사는 많이 아픕니다.
사람이란 죄인인지라 세상을 살다 보면 배신당하는 일이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도 살면서 크게 혹은 작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으시죠? 그때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배신당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 성도는 어떤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까요? 시편 41편, 다윗의 기도 속에서 그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전개)
이 시는 다윗의 기도입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다윗은 그들을 원수로 규정합니다. 다윗은 그들에게 보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10절).
그런데 여러분, 성도가 원수에게 보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 괜찮을까요? 보통 사람도 아닌 다윗이 그런 기도를 해도 될까요? 이런 기도가 어떻게 모범적 기도문이 되며 더군다나 시편에 기록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마음에 품고 설교를 들으면서 정답을 찾아보기로 하죠. 일단은 다윗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성도는
첫째, 긍휼의 사람입니다(1절)
1~3절에서 다윗은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복되다고 한 후 여호와께서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병을 고쳐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4절부터 주어를 1인칭으로 바꾸어 기도를 시작합니다. 4절을 보면 다윗은 어려운 병에 걸려있습니다. 8절을 보면 그 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고쳐 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3절에서 말한,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다윗 자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 이야기를 왜 남의 이야기처럼 표현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기도할 근거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4절에서 다윗은 자기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10절에서는 자기를 일으켜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는 근거가 바로 1절입니다.
다윗은 다른 사람이 병들고 약할 때 보살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하고 병든 자를 보살피는 사람을 지켜주시고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을 다윗은 믿었습니다.
이 말은 행위 구원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행함은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팔복에서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7).
또 마태복음 25장에서는 더 자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사람을 양과 염소로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 들어가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마 25:40)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야고보의 말처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
긍휼의 사람 다윗은, 남에게 긍휼을 베푸는 사람에게 하나님도 긍휼을 베푸시는 것을 믿고 고백했습니다. 바로 그런 용기와 믿음으로 자기에게 긍휼과 은혜를 베풀어 병을 낫게 해 주시고 일으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려울 때 하나님의 도와주시기를 원한다면 긍휼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당당하게 기도하기 위해서 연약한 자를 보살피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비를 베푸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성도는 첫째, 긍휼의 사람이고
둘째, 겸손의 사람입니다(4절)
사람들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하나님이 왜 도와주지 않는지 의심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겨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원망하며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큰일 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병에 걸렸을 때 의심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자기 죄를 고백했습니다(4절).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였습니다.
질병이 모두 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자연 현상으로 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욥처럼, 연단을 위하여 병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지 질병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복된 태도입니다.
『나니아 연대기』 등 많은 문학작품을 쓴 C.S. Lewis는 남달리 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입니다. Lewis가 10살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자기 형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Lewis 자신도 대학생 시절에 믿음을 잃어버렸다가 오랜 방황 후에 다시 믿음을 되찾았습니다.
노년에도 Lewis는 큰 고통을 당했습니다. Lewis는 59세에 한 여인과 결혼하여 큰 행복을 느꼈지만, 3년 반 만에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고통을 겪은 Lewis는 고통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통이란 죽어 있는 세계를 깨우치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
Lewis의 말처럼 질병이나 고통의 때는 자신을 돌아보며 죄의 찌꺼기까지 회개하기에 가장 좋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막상 고통을 당하면 이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질병과 사람들의 배신으로 괴로울 때 다윗은 하나님께 원망하며 불평하는 대신 자기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사람은 첫째 긍휼의 사람이고
둘째 겸손한 사람이고
셋째, 신뢰의 사람입니다
5절에서 원수들은 다윗이 속히 죽기를 바라며 악담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문병을 오는 척하며 언제 죽을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나가서는 이제 곧 다윗이 병으로 죽을 것이라고 수군거립니다(6-8절).
그 배신자 중에는 전에 다윗의 음식을 같이 먹던 친구도 있습니다(9절). 그들에게 빵을 먹이면서 다윗은 그들이 자기편이고 자기가 어려울 때 도와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의지할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46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 146: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친구가 배신하여 원수가 되었는데 다윗에게는 잘못은 없을까요?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요한복음 13장으로 가봅시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 빵을 나눠 주셨습니다. 그 빵을 받아먹은 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여 팔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시편 41:9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3:18)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처럼, 다윗의 기도는 메시아 예언이 되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잘못을 저지르고 친구 탓을 했다고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말을 인용해서 메시아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에게도 무슨 잘못이 있어서 가룟 유다가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에게는 어떤 잘못이 없고 배신한 사람이 악한 것입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신뢰할 분은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뿐임을 깨달은 다윗은 여호와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합니다(10절). 이처럼 전적으로 하나님만 신뢰하는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마무리)
세상에서 가장 많이 배신당한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배신했고, 셋의 후손들도 배신했고, 노아의 후손들도 배신했습니다. 출애굽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신했고 다윗 이후에는 솔로몬과 그 후손들이 배신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신을 당했고 그 이후에도 신자들이 예수님을 배신했고 우리도 종종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배신을 당하시고도 예수님은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내 주 예수 여전히 날 부르사
그 참되신 사랑을 베푸시나니 내 형제여 주님을 곧 따르라
사람들은 그렇게 주님을 배신했으면서도 자기가 배신당하면 못 살겠다고 소리칩니다. 그럴 때 가장 많이 배신당하신 주님은 배신당했다며 슬퍼하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고쳐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할렐루야.
이제 서두에 했던 질문을 생각해 봅시다. 다윗의 기도는 어떻게 모범적인 기도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을까요?
정답은요, 이 기도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겸손하게 하나님만 신뢰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특히 10절에서 배신자에게 보응하게 해 달라는 말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이 말은 원수를 갚게 해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보응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샬람(שָׁלַם)인데 완전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샬롬(שלום)은 샬람(שָׁלַם)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과 관계를 회복하고 샬롬을 만들려면 우리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자가 평화를 하자는 말은 굴종하겠다는 것이지만, 강자가 손을 내미는 것은 억압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럴 때 약자는 그 손을 잡으며 고마워할 것입니다.
관계를 완전하게 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내게 힘이 있을 때 배신자를 짓밟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관계를 완전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다윗의 기도였고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자기를 병에서 일으켜 주심으로 배신한 친구들과 관계가 완전하게 회복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관계가 완전하게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이고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그래서 배신당한 다윗의 기도는 메시아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병들고 아플 때, 부도나서 힘들 때, 배신당해 슬플 때 우리가 할 기도는 바로 이것입니다.
주여, 나를 낫게 하시고 나를 회복시켜 주소서
주여, 내게 새 힘을 주시고 나를 일으켜 주소서.
그래서, 저 배신자들과의 관계가 샬롬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다 함께 주 하나님을 송축하게 하소서. 아멘 아멘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찬송합니다.
찬송/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찬양/ 누군가 널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