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께서 나의 참근원이시다.
나는 성부를 떠나서는 볼 수 없다.
1.
지각은 신의 속성이 아니다.
신의 속성은 참앎의 영역이다.
그러나 성부께서는 지각과 참앎 사이의 참중재자로서 성령을 창조하셨다.
이 신과의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그대 마음 안에서 지각이 참앎을 영원히 대체하였을 것이다.
이 신과의 연결고리 때문에 지각은 너무도 변화되고 정화되어 참앎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성령이 보는 지각의 기능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리 안에서의 지각의 기능이다.
2.
신 안에서는 볼 수 없다.
신 안에서 지각은 아무런 기능도 없으며,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없었던 것을 벗겨내는 구원 안에서 지각은 막강한 목적을 갖는다.
거룩하지 않은 목적을 위해 신의 아들이 만든 지각은, 이제 그가 자신의 거룩함을 다시 의식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지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성령은 지각에게 신의 것에 버금가는 의미를 부여한다.
치유된 지각은 신의 아들이 형제를 용서함으로써 자신을 용서하는 수단이 된다.
3.
그대는 신을 떠나서는 볼 수 없으니, 신과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든 그대는 성부 안에서 하니, 무엇을 생각하든 성부의 참마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전이 실재라면, 그리고 비전이 성령의 목적을 공유하기에 실재라면 신을 떠나서는 볼 수 없다.
4.
오늘 5분의 연습을 3회 하되 하나는 가능한 한 일찍, 또 하나는 가능한 한 늦게 하라.
나머지는 상황과 준비성이 허락하는 가장 편하고 적절한 시간에 하라.
연습을 시작할 때 눈을 뜨고 속으로 아이디어를 반복하라.
이어서 잠깐 동안 주위를 돌아보면서, 특히 눈에 뜨이는 것에 오늘의 아이디어를 적용하라.
이 단계의 연습에서는 너덧 개의 대상이면 충분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신께서 나의 참근원이시다.
나는 성부를 떠나서는 이 책상을 볼 수 없다.”
“신께서 나의 참근원이시다.
나는 성부를 떠나서는 저 그림을 볼 수 없다.”
5.
이 부분은 상대적으로 짧게 해야 하지만, 특정 대상을 포함시키거나 제외시키는 스스로의 기준을 두지 말고 대상을 차별 없이 선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어서 길게 할 연습의 둘째 부분에서는 눈을 감고 오늘의 아이디어를 다시 한 번 반복한 다음, 어떤 관련되는 생각이 떠오르든 그대 자신의 개인적인 방법으로 그 생각을 오늘의 아이디어에 덧붙여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용서의 눈을 통하여 본다.”
“나는 세상이 축복받았다고 본다.”
“세상은 내게 내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
“신의 참생각을 닮은 내 자신의 생각을 본다.”
다소 직접적으로 오늘의 아이디어와 관련된 생각이라면 적절한 대상이다.
오늘의 아이디어와 분명한 관계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반대되는 생각은 안 된다.
6.
마음이 방황하거나, 오늘의 아이디어와 명백하게 벗어나는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거나, 도대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눈을 뜨고 연습의 첫 부분을 반복한 다음 둘째 부분을 다시 시도하라.
관계없는 생각들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길어지게 내버려두지 마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자주 연습의 첫 부분으로 돌아가라.
7.
짧은 연습 시간에 오늘의 아이디어를 적용할 때, 그 날 그대가 처한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그 형식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라면, 그에게 속으로 이렇게 말하기를 잊지 마라.
“신께서 나의 참근원이시다.
나는 성부를 떠나서는 당신을 볼 수 없다.”
이 형식은 모르는 사람이든 잘 아는 사람이든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구분일랑 아예 하지 않도록 하라.
8.
하루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과 사건들에도 이 아이디어를 적용해야 한다.
특히 어떤 방법으로든 그대를 괴롭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럴 경우 다음의 형식을 사용하라.
“신께서 나의 참근원이시다.
나는 성부를 떠나서는 이것을 볼 수 없다.”
어떤 특별한 대상도 떠오르지 않을 경우, 단지 원래의 형식으로 아이디어를 반복하라.
9.
오늘의 아이디어를 기억하지 못하는, 따라서 그대의 기능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라.
...
[예수의 추가 설명]
신이 그대의 근원임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신은 기적적인 생명을 주는 에너지요 힘이며, 그대에게 이 생명력을 주는 이로운 에너지요 힘이다.
그대는 우주에서 우연하게 생긴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특별히 설계되고 창조된 것이다.
지금 그대는 분리 안으로 내려왔으며,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망각하였으니 그것이 이 레슨을 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대의 신성함을 일깨우고, 신의 마음 안에 그대가 점한 독특한 위치를 일깨우기 위함이다.
그대는 어느 누구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신의 마음의 독특한 현시이다.
그대는 마음에서 거짓된 생각과 혼란을 제거함에 따라 더 명백해질 특정한 자질을 부여받았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그대는 자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대는 삶을 성취할 수 있는 더 나은 직업이나 어떤 영감 있는 경력을 갖추길 원한다.
이것은 마음에서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청소하면서 점점 더 분명해질 터인데, 아주 이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만약 너무 많은 잘못된 생각, 즉 마음 속 오염물을 가지고 있다면 그대는 명확한 수신자가 될 수 없으리라.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안내를 받을 수 없으리라.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운 삶이나, 건강하지 못한 몸을 가지고 있거나, 왜곡되고 역기능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혼란스럽게 하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사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실인 양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이 몸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는 몸이 죽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대는 몸이 아니다.
그대가 몸을 살아있게 만든다.
그대는 그대 없이 몸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몸의 창조자이다.
그러나 그대는 몸이 필요하지 않다.
이 레슨들을 통하여 안내를 받은 대로 실천하면서, 그대는 몸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다 편안한 믿음이요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그대는 신의 마음 안의 아름다운 아이디어이다.
그대는 늘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몸은 오고 간다.
몸은 그대가 아니다.
몸이 그대라고 생각하지 마라.
지구에 육화했을 때, 나는 제자들이 나라고 생각했던 몸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나는 몸이 아님을 아는 지점까지 진화하였으며, 내 마음 안에는 고통을 일으킬 어떤 오염도 없었다.
내 마음 안에는 성부로부터의 연결을 떼어놓을 어떤 오염도 없었다.
내 마음 안에는 두려움을 일으킬 어떤 아이디어도 없었으며, 그래서 나는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육체적/물질적 세상을 이기는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세상을 넘어서는 것이 우리가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대가 진화하면서 명료해지고 사랑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내가 한 것을 그대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대가 온 마음으로 그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그대는 과연 나와 같음을 상기시키려 한다.
나는 단지 사랑으로 향하는 길을 좀 더 멀리, 좀 더 오래 간 그대의 형일 뿐이다.
나는 그 길을 함께 가자고 그대를 부르고 있으니, 거기엔 아무런 고통도 없기 때문이다.
...
[알렌의 설명]
우리가 “봄(seeing)”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지각입니다.
이것은 앎이 아닙니다.
지각은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지각은 진리의 분명한 상징을 보여줍니다.
기적수업에서 “앎”은 완전함, 천국의 영역에 속하는 어떤 것입니다.
앎을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실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적수업의 전체 목적은 우리를 거짓된 지각에서 참된 지각으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각이 완전히 정화됐을 때, 우리는 앎으로 이전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성령 없이는 지각은 거짓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이 당신과의 연결고리를 모든 마음들에 두셨기 때문에 지각은 정화될 수 있으며, 그 정화된 지각이 우리를 앎으로 이끕니다.
천국에는, 또는 신 안에서는 지각과 같은 것은 없으며 오직 앎만 있습니다.
지각은 둘, 즉 지각자와 지각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이원성이며, 진리 안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우리의 경험에서는 지각은 막강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거룩하지 않은 목적, 즉 우리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환상을 만들기 위해 지각을 만들었지만, 성령은 우리 의식에 거룩함을 회복시키기 위해 지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과, “내가 보는 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를 기억하세요.
그 이유는 지각은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각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지각에게 신의 의미에 버금가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보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뒤로 물러나, 성령이 그것들 위에 신의 의미를 쓰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보면 모든 것은 우리에게 신을 드러내 줍니다.
우리는 신 없이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뭔가(something)로 보이는 무(nothing)를 보고 그것들에 우리의 의미들, 우리를 속이는 의미들을 갖다 붙입니다.
“나는 신과 떨어져서는 볼 수 없다.”
나는 본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내가 보고 있다고 해서 보이는 것은 봄이 아닙니다.
그것은 환각 작용입니다.
신과 함께 나는 진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과 함께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 진리의 분명한 반영을 지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형제를 용서할 수 있는 수단인 진리에 대한 지각입니다.
내가 요청한다면 나는 그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신과 떨어져서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복잡한 일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신과 떨어질 수 없다면, 나는 신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마치, “내 손은 내 몸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아무 것도 못합니다.
내 손은 내 몸과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 당신은 신 안에서 합니다.
나는 진정한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 신의 일부가 되거나 신과 결합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과 분리된 조건에서 결합된 조건으로의 일종의 전이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고는 내가 이미 신과 하나임을
인정, 또는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이러한 진리를 받아들일 때,
비전은 이미 나의 것입니다.
비전은 나의 천부적 조건 안에 내재합니다.
내가 신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때, 보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닐 수밖에 없습니다.
신과 떨어져 있다는 것은 환상이며, 그러므로 “봄” 또한 환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신과 떨어져서는 이 책상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레슨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관련된 생각들이
마음 안에 떠오르게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기적수업은 분명히 우리가 수업의 아이디어를 자신만의 말로 표현하고, 그것들을 확장하고 개인적 용도에 맞게 변형하도록 권장합니다.
때로 오늘 레슨의 “변형된” 형태가 원래 형태보다 더욱 당신의 실습에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워크북 레슨을 자유로이 이렇게 자신에게 맞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레슨을 보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도록 권하기 위해 의도된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