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아침,
르꼬르뷔지에의 도시이자 인도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알려진 찬디갈(Chandigarh) 시내를 구경하지 못하고 바로 떠나는 게 아쉬웠지만 애초 계획했듯 이 곳은 단순한 경유지일 뿐이었다.
어젯밤 호텔에다 부탁했던 아침 도시락이 부도가 났는데, 또한 어제 오기로 약속한 택시도 부도를 냈다. 많은 짐으로 인해 우버 택시 두 대를 불러 나눠 타고 공항으로 왔다.
미리 와서 공항 내에서 기다리는데, 티켓박스가 오픈 해야 할 시간이 한참을 지나가는데도 창구가 열리지 않는다. K가 그쪽으로 다가가 물었더니, 아차, 오늘 쿨루행 비행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어떻게든 마날리까지 가지 못하면 우리의 여행의 주요계획인 마날리~레 투어는 물거품이 된다.
고민할 것도 없이 우버택시를 불렀다. 쿨루 공항까지 만 오천 루피가 찍혔다.
예상치 못한 변칙이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배불뚝이 시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하늘 대신 육로로의 여행이 예상보다 이르게 시작되었다.
계획도시다운, 인도답지 않게 넓고 직선으로 잘 뻗은 길을 한참을 달리다, 현지인 가게에 들러 아침식사를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리니, 어느덧 평지는 사라지고 높은 산이 나타났다. 높은 산의 계속에는 근래에 비가 내렸는지 뿌연 물줄기가 세차게 굽이치고 있었다.
시크가 멈춰 세운 가게에 들러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뒤에는 깊은 계속이 자리한 경치가 좋은 식당이었지만 위생상태가 그리 깔끔하지 못했다. 식탁을 닦아달라 했더니 더러운 수건(걸레)으로 대충 움치고는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그 수건 그대로 다른 식탁을 훔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또 달렸다. 앞 쪽에서 공사를 하는지 차가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동안 내린 비로 인해 도로가 유실되어서 복구 중이라 했다.
구글맵을 켰다. 지금 있는 위치가 아까 본 구글맵에서 추천했던 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맵은 지금이라도 돌아서 다른 길로 갈 것을 권했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시크 운전사에게 얘기했더니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다고 주장한다. 나를 못 믿게 만든 것은 그 시크가 방향이 반대로 놓인 지도를 보여주면서 정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지도가 잘못되었다고 다시 보라고 하니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낸다.
상황을 가라 앉히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확인해 보았더니 구글 맵에서 알려주는 도로는 작은 도로이며 또한 현재 이 길보다 도로 유실 가능성이 훨씬 크니 그냥 이 길을 이용할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그래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 싶어 ‘시크’에게 ‘만일 다시 돌아와야 된다면 돈을 더 줄 테니 돌아가 보자’고 K와 L도 설득 했지만 그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시크 고집은 알아줄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길은 열렸지만 이래저래 시크 운전사와의 신뢰는 깨지고, 이 택시로 마날리까지 가기로 생각했던 것을 당초 우버앱으로 청약한 대로 쿨루까지 가서 정산하고 다시 생각키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쿨루에 도착해서 서로간 계산법이 다른 것을 확인했다.
그는 계산된 택시비에서 세금 6백루피정도를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우리는 ‘우버는 절대 고객에게 직접 돈을 요구하지 않는데 그럴리가 없다’고 부인했다.
결국은 다같이 쿨루의 작은 경찰서로 갔다.
안으로 들어간 우리 일행은 한참의 시간을 허비한 뒤, 별 하나를 단 경찰에게, 우버앱에 뜬 요금표와 우버가 개인적으로 추가 징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든 웹페이지를 보여주고 추가 징구의 부당함을 설득했다.
결국 그 경찰은 우리의 손을 들어줬고 억울해하던 시크는 경찰의 말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시크는 결국 우버 정책(약관)을 찾아내어서 L에게 보냈고, 검토 끝에 L은 그에게 그가 요구한 추가된 세금을 보내주었다. )
경찰서를 나와서 그에게 돈을 정산해 주고, 쿨루까지 태워주면 천5백 루피를 지급할 테니 가자고 했다. 그는 통행료와 세금 등 3백루피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동의했으나 출발 전에 먼저 돈을 줄 것을 요구했다. 이미 마음에 금이 간 우리는 선금을 지불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고 일단 쿨루 시내에 내려 그를 보냈다.
짐을 길 한 켠으로 쌓아 놓고, 우리 옆에 있는 택시기사 (그는 이미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에게 차를 좀 불러줄 것을 부탁했다. 그가 알았다 끄덕이며 어딘가 전화하는 듯 했지만 그릴 믿고 기다릴 수 만은 없다는 것은 인도에서 얻은 경험을 통해 배웠던 터라, 맞은 편에 보이는 상점으로 가서 택시를 구해줄 수 있느냐고 다시 부탁했다.
이 정도의 상점을 운영하는 이라면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수준있고, 네트웤을 갖추고 있는 인물일거라는 짐작에서였다.
그는 천팔백 루피를 제안했고 그 시크와 같은 금액이라 오케이 사인을 했다. 20분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30분이 될런지도 몰랐다. 아니 30분이면 다행이리라.
하지만 거의 정확히 20분 뒤에 짚 택시가 도착했다. 기사는 영어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말은 정말 시원시원하게 해댔다. 창 밖으로 보이는 휴양지 특유의 야경을 바라보며, 오는 길에 예약한 숙소인 마날리 피카딜리 호텔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