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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주(罰酒)를 마시다.
월왕과 양승상은 낙유원의 잔치가 즐겁고 아직 흥이 남았으나, 날이 저물었기에 잔치를 파하고 각기 금은과 채단으로 상금을 주고서 왕과 승상이 달빛을 받으며 돌아와 성문으로 들어가는데 종소리가 들리는지라, 두 집 기악이 길을 다투어 앞을 서려 하니 패물소리가 요란하며 형기가 거리에 가득하며, 흐르는 비녀와 떨어지는 구슬이 모두 말굽 아리 밟히여 소낙비 같은 소리가 티끌 밖으로 들려오더라. 장안의 백성들이 다같이 둘러싸며 구경하는데, 백살 먹은 늙은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각기 하는 말이,
“우리가 어렸을 적에 현종 황제가 화청궁에 거동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그 위의(威儀)가 바로 이 같더니 오래 살아 남아 다시 태평성세의 기상을 보는도다.” 하더라.
이 무렵 두 공주는 진씨와 가씨 두 낭자들과 더불어 대부인을 모시고서 두 공주께 뵙게 하니, 두 사람이 섬돌 아래 나아가 뵈이므로 영양공주가 이르되,
“승상께서 매양 말씀 하시기를, 두 낭자의 힘을 입어 수천 리 땅을 회복하는 공을 이루었다 하시기로 나도 매양 보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거늘, 두 낭자의 찾아옴이 어찌 이다지도 늦었느뇨?”
요연과 능파가 한가지로 대답하기를,
“첩들은 먼 시골의 천한 몸이오라, 비록 성상의 돌아보심을 입었으나 오직 두 부인께서 한자리를 비어 주지 아니하실까 염려되기로 빨리 문전에 이르지 못하였사온데 듣사온즉, 사람드이 일컫기를 두 공주마마의 관저 (關雎)와 규목(樛木)의 덕이 첩들에게 이르고 상하에 고루 미친다 하옵기로 외람되이 나아가 뵙고자 생각할 즈음에, 마침 승상께서 낙유원에 사냥하실 때 만나 성대한 놀이에 참석 하였거늘 다시 이리로 오사 부인의 가르치심을 받잡게 되오니 첩들은 천만 다행으로 아뢰나이다.”
공주가 웃으며 승상께 아뢰기를,
“오늘은 공중에 꽃빛이 가득하니 승상께서는 필연 오늘의 풍류를 자랑하실 터이오나, 그러나 이는 다 우리 형제들이 세운 공이온즉 상공께서는 이를 가히 알고 계시나이까?”
승상이 크게 웃으며,
“저 두 사람이 새로이 궁중에 들어와 첩이 한 말로써 월왕궁편으로 하여금 놀라 자빠지게 하였으니, 이는 제[갈공명(諸葛孔明 )이 조그만 배 한 척으로 강동(江東)으로 들어가 세 치 혀를 들어 이해를 들어 말한즉, 주공근(周公瑾) · 노자경(魯子敬)의 무리가 다만 입을 벌리고 의기가 눌리어 감히 한 말도 토하지 못함과 같사오며, 또 평원군(平原君)이 초나라에 들어가 합종(合從)을 협상할새 따라간 십구 인은 모두 보잘 것이 없었으되, 능히 조(趙) 나라로 하여금 태산과 반석같이 편안케한 자는 모수(毛遂) 한 사람의 공이온즉, 첩의 마음이 큰고로 또한 말이 큰지라, 이 큰 말은 반드시 실속이 있는지라, 계랑께 물으시오면 첩의 말이 허망치 않음을 족히 아시게 되오리이다.”
섬월이 이에 다짐을 놓되,
“적랑의 활쏘기와 말달리는 재주가 참으로 신묘하다 일컫겠으되, 풍류마당에서는 칭찬을 받으려니와 화살과 돌이 비오듯 하는 싸움터에 내어놓으면 어찌 능히 한 걸음 달리며 한 살을 쏠 수 있으리오? 월왕궁편에서 기세를 잃었음은 새로 들어선 두 낭자의 신선같은 모습과 천신같은 재주를 탄복한 바인데 어찌 적랑의 공이 되리요?····· 첩의 한 말이 생각나니 마땅히 적랑을 향하여 털어놓으리라! 춘추시대(春秋時代)에 가대부(賈大夫)의 외모가 매우 누추하니 장가든 지 삼 년이 되어도 그 아내가 한 번도 웃지 아니하더라. 그가 아내와 더불어 들에 나아갈새 마침 꿩 한 마리를 쏘아 떨어뜨리매 아내가 비로소 웃었다 하니, 오늘 놀이에서 적랑이 꿩을 쏘아 얻음이 또한 이와 같을지니라.”
경홍이 이에 대꾸하기를,
“가대부는 누추한 외모로도 활과 말을 재주로 말미암아 그 아내의 웃음을 자아냈거늘, 만약에 그의 용모가 수려하고 능히 활로 꿩을 쏘아 얻었던들 어찌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사랑하여 공경케 하지 않았으리오?”
섬월이 비웃고 하는 말이,
“적랑의 자랑이 갈수록 불어나니 이는 오로지 승상께서 너무 총애 하시매 그 마음이 교만한 탓이렸다!”
승상이 웃으며 이르기를,
“계랑의 재주가 많음은 익히 알고 있으나 경서에 능통한 줄은 전혀 몰랐으되, 이제 들으니 춘추(春秋 )의 고사(故事)를 즐겨 말하는 버릇이 있음을 가히 알겠노라.”
섬월이 승상께 여쭙기를,
“한가할 적에 혹은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흝어 보오나 어찌 능통타 할 수 있사오리까?”
이튿날 승상이 예궐하여 황상게 조회하니, 태후가 월왕께 이르시기를,
“월왕이 어제 승상과 더불어 봄빛을 서로 겨루더니 뉘 이기고 뉘 졌느뇨?”
월왕이 대답하였다.
“양승상의 온전한 복은 사람이 다루지 못할 바이오나, 그 복이 여자에게도 복이 될는지 의아하오니 태후마마께옵서 승상께 하문하여 보소서.”
승상이 아뢰기를,
“월왕이 신보다 낫지 못하다 함은 이태백이 최호(당나라의 진사)의 글을 보고 놀라 기세가 꺾기었다 함은 같사온지라, 공주에게 복되고 아니됨은 신이 공주가 아니오니 어찌 능히 아뢸 수 있사오리까? 직접 공주에게 하문하소서.”
태후가 웃으며 두 공주를 돌아보시니, 난양공주가 대답하기를,
“부부가 한 몸이라 하오니 영욕(榮辱)과 고락(苦樂)에 어찌 같고 다름이 있사오리까? 장부에게 복이 있은즉 여자 또한 복이 있삽고, 장부에게 복이 없으면 여자 또한 복이 없을 터이오니 승상이 즐기는 바를 소녀가 다못 즐길 따름이옵니다.”
월왕이 다시 태후께 여쭙기를,
“공주 누이의 말은 사실이 아니옵니다! 예로부터 부마가 된 사람 중에 승상같이 방탕한 자가 있지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한 탓이온즉 바라옵건대 마마께서는 소유를 법사(法司)에 내리사 조종을 업신여기고 국법을 멸시하는 죄를 다스리소서.”
태후는 이 말에 크게 웃으며 이르시기를,
“양부마는 진실로 죄가 있도다! 만일 이를 법으로 다스리고자 하면 이 늙은 몸과 딸아이들에게 근심이 되는 고로, 부득이 국법을 굽히고 사사로운 정을 따르겠노라.”
월왕이 다시 아뢰되,
“비록 정상은 그러하오나 승상의 죄를 가벼이 풀어주시지는 못하올지니, 청하옵건대 어전에서 문죄(問罪)하사 그 공술하는 바에 따라서 처결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나이다.”
태후께서는 크게 웃으실 뿐인데, 월왕이 태후를 대신하여 하나하나 조목을 들어 죄를 묻는 글을 황상께 바치니 그 글에 쓰여 있기를,
<예로부터 부마된 자는 희첩(姬妾)을 기르지 못함은 풍류(風流)를 몰라서가 아니요, 먹을 것이 넉넉지 못함이 아니라, 모두가 인군(人君)을 공경하고 나라를 높이는 바이라, 하물며 영양과 난양 두 공주는 지위인즉 과인의 딸이요, 행실인즉 임사(妊姒:태임은 주문왕, 모 태사는 주문왕 비)의 덕이 있거늘, 양소유는 이를 공경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미색을 몰아들임이 목마른 자보다 심하니, 누에는 연조(燕趙)의 미색이 오히려 부족하고, 귀에는 정위(鄭衛)의 소리만이 들려서 저저의 전각 댓돌의 개미같이, 방마루에 벌떼같이 지껄이니 공주가 비록 규목(樛木)의 덕으로 질투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나, 소유의 공경하고 삼가는 도리가 어찌 감히 이러하리요? 교만하고 방자한 죄를 불가분 경계할지니 숨김없이, 사실 바른대로 아뢰어 그로써 처분을 기다리라.>
승상은 전각에서 내려와 땅에 엎드려 관을 벗고 대죄하니, 월와이 난간 밖으로 나서서 소리를 높여 문초하는 것을 다 들은 후에 승상이 공사(供辭)에 말하였으되,
<소신 양소유가 외람되이 두 전궁(殿宮)의 성은을 입사와 뛰어 넘어 승상이라는 높은 벼슬을 차지하여 왔은즉 영광이 극진하옵고 공주가 또한 사려 깊고 실속 있는 덕을 베풀어 금슬(琴瑟)의 즐거움이 무궁하온즉 소원이 이미 족하였거늘, 어리석은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어 사치스러운 기세가 줄지 아니하와 가무(笳舞)를 많이 모았사오니, 이는 소신이 적이 부귀(富貴)에 눌리고 성상 폐하의 은덕이 넘치와 스스로 단속함을 깨닫지 못한 죄이나이다. 신이 그ᅟᅮᆨ법을 살펴보건대 부마된 자가 설혹 비첩을 가졌을지라도 혼인전에 얻은 것은 분간의 도리가 있사온지라, 소신이 비록 시첩을 가졌사오나 숙인 진씨(淑人秦彩鳳)는 황상게서 명을 내리신 바이니 의당 손꼽아 논난할 바 아니옵고, 소첩 가씨(賈春雲)로 말하자면 신이 일찍이 정사도집 화원 별당에 머물 무렵에 수종들던 자이옵고, 소첩 계씨(桂蟾月), 적씨(秋驚鴻), 심씨, 백씨(白凌波) 등 네 계집은 혹은 선비시절에 혹은 외국 사신으로 갔을 적에, 혹은 출전하였을 적에 따라온 자들이니 이 모두가 역시성례 전이온데, 부중(丞相府中)에 한가지로 있게 하옴은 대체로 공주의 명을 따름이옵고 소신이 감히 독단으로 하였음이 없사온즉, 나라의 체례(體例)에 무엇이 손상되오며 신자(臣子)의 도리에 그 무엇이 죄가 되겠나이까? 그러하옵거늘 전교(傳敎)를 내리심이 이렇듯 엄하시니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태후가 승상의 공사(供辭)를 다 읽고는 크게 웃으며 말하되,
“희첩(姬妾)를 많이 기르는 것은 장부된 풍도(風度)에 해로움이 없겠기로 가히 용서 하려니와, 술을 과음하는 것은 아무래도 염려되는 바라, 차후로 삼감이 가하렸다!”
월왕이 다시 태후를 향하여 아뢰기를,
“부마의 부중(府中)에서 희첩을 기르는 것을 소유가 공주한테 미루오나, 그 조처하는 도리에 매우 가당치 아니한 바 있사온즉, 다시 한 번 문초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나이다.”
이 말에 겁이 난 양승상이 머리를 두드려 사죄하니, 태후가 다시 웃으며 이르기를,
“양공은 진실로 사직(社稷)을 지키는 중신이니 내 어찌 사위로만 대접하리오?” 하고 이에 명을 내리시어,
“관을 정제하고 전상에 오르라.” 하시는데
월왕이 다시 아뢰기를,
“소유가 큰 공이 있으므로 죄 주기는 어렵사오나 국법이 또한 엄하와 그대로 놓아 줄 수는 없사오니, 마땅히 술로써 벌을 주려 하나이다.”
태후가 웃고 허락하시니 궁녀가 백옥잔을 내오기에 월왕이 말하기를,
“승상의 주량이 고래같고 죄면 또한 무겁거늘 어찌 작은 잔을 쓰리오.”하면서
월왕이 친히 한 말들이 금굴치(金屈巵:수라상에 쓰이는 술잔)에다 진한 술을 가득히 부어주니 승상이 비록 주량이 적이 크나 잇따라 두어 잔을 마시매 어찌 취하지 아니하리오! 이에 숭상이 머리를 두드리며 아뢰되,
“경우(牽牛)가 직녀(織女)를 지나치게 사랑하다가 장인에게서 꾸지람을 들었다 하더니, 이제 소유가 집에서 희첩을 기르므로써 장모로부터 벌주를 받아먹으니, 인군의 사위 되기는 진실로 어려운 노릇이옵니다. 신이 이제는 대취하였으니 물러감을 소청하겠나이다.”하고
이어서 일어나려 하다 고꾸라지자 태후가 크게 웃으며, 궁녀를 시켜 전문 밖으로 내어 보내며 공주에게 이르시기를,
“승상이 대취하여 신기(神氣)가 불편할 터이니, 너희들은 뒤따라가도록 하라.”
두 공주가 분부를 받잡고 곧 승상을 따라 나서더라.
이즈음 유부인은 촛불을 켜 놓고서 승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승상이 대취함을 보고 묻되,
“전일에는 술을 내릴실지라도 취하는 일이 없더니, 오늘은 어찌 이토록 과취했느뇨?”
승상이 대답하기를,
“소자의 잘못이옵나이다.”하고,
이어서 취한 눈에 노기를 띠고 공주를 바라보며 모친을 향하여 하는 말이,
“공중의 오라비 월왕이 태후께 침소하여 소유의 죄를 억지로 만들어 내매, 소유가 비록 말을 잘하여 벌은 모면하기는 하였사오나, 월왕이 기어이 죄를 씌우고자 태후께 터무니없는 말을 사뢰어 독주로써 벌을 내렸사오니, 만일 주량이 적었던들 거의 죽었겠나이다. 이는 필시 월왕이 어제 낙유원 놀이에서 진 것을 분하게 여겨 보복코자 함이요, 난양공주가 나에게 희첩이 많음을 시기하여 그 오라비와 더불어 계교를 꾸며 나를 괴롭히게 함이오니, 평일에 인자한 말이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기로, 엎드려 바라오니 모친께서는 난양공주에게 벌주 한 잔을 내리사 소자를 위하여 설분하여 주소서.”
유부인이 타이르기를,
“난양의 죄목이 분명치 아니하며 또 능히 한 잔술을 마시지 못하매, 네가 나를 시켜 벌을 주고자 할진대는 차(茶)로써 술을 대신함이 옳으리라.”
승상이 다시 아뢰되,
“소자는 기어이 술로써 벌하려 하나이다.”
유부인이 웃으며 마지 못해 이르기를,
“공주가 만일 술을 마시지 아나하면 취객의 마음이 풀리지 아니하리라.”하고,
시녀를 불러 난양공주에게 벌주를 보내니라.
공주가 이를 받아 마시려 할 즈음 승상이 문득 의심내어 그 잔을 빼앗아 맛보고자 하기에, 난양이 급히 빈 잔을 자리 위에 던지니라.
승상이 손가락으로 잔 밑에 남은 것을 맛보니 이는 꿀물이니, 승상이 말하되,
“태후마마께서 만일 꿀물로써 소유를 벌하였던들 모친이 또한 꿀물로 벌하심이 마땅하오나, 소자가 마신 바는 술이거늘 난양이 어찌 홀로 꿀물을 마실 수 있겠나이까?”하며,
다시 시녀를 불러 술잔을 가져오게 하여 스스로 술 한 잔을 가득히 부어 주므로, 난양공주가 이를 다 마시니 승상이 다시 유부인께 아뢰기를,
“태후께 권하여 벌한 자가 바로 난양공주이기는 하오나, 영양공주 즉 정경패 또한 계책에 참여한 연고로 태후 앞에 앉아서 소자의 괴로워함을 보고 난양께 눈짓하며 서로 웃었으니, 소자는 그 속 마음을 도저히 헤아리지 못하겠나이다. 그러하매 다시 바라오니 모친께서는 정씨를 또한 벌하여 주소서.”
이 말에 유부인은 소리내어 웃고 잔을 보내니 정씨가 자리를 옮겨 이를 다 마시는지라 부인이 말하기를,
“태후마마께서 소유를 벌하심은 그 희첩들을 벌하심으로, 이제 두 공주가 다 벌주를 마셨으니 희첩들이 어찌 안연할 수 있으랴?”
승상이 이에 덧붙이되,
“월왕의 낙유원 모임은 대체로 미색을 다툼이었거늘, 경홍, 섬월,요원,능파 드이 소(小 )로써 대(大)를 맞아 한 싸움에 먼저 승리를 아뢰매, 월왕이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소자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하였은즉, 이 네 사람은 마땅히 벌을 주셔야 하겠나이다.”
부인이 묻기를,
“싸움에 이긴자에게 벌을 주다니, 취객의 말이 가히 우습도다.”하고,
곧 네 희첩을 불러 각각 한 잔 술로 벌을 내리니라.
네 사람이 마시기를 마치매, 경홍과 섬월 두 사람이 꿇어앉으며 부인께 사뢰기를,
“태후마마께서 승상을 벌하심이 희첩이 많음을 나무람이요, 결코 낙유원에서 이긴 때문이 아닌즉, 심요원과 백능파의 두 사람은 아직도 승상의 금침을 받들지 아니하였는데 첩들과 한가지로 벌주를 마시니 억울치 아니하겠나이까? 또한 가유인으로 말씀드리오면, 승상을 모심이 오래고 승상의 사랑을 받음이 편벽되온데 낙유원 모임에 참여치 아니하와 홀로 이 벌을 면하오니, 저희들 마음에 분함을 참기 어렵겠나이다?”
부인이 대꾸하기를,
“너희 말이 가장 옳도다.”하고
큰 잔으로 춘운을 벌하니,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마시는지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다 벌주를 마시니 좌중이 부산하며 어지러운 가운데, 난양공주는 술이 위하여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되, 오직 진숙인은 한낰으로 단정히 앉아 말도 아니하며 웃지도 아니하거늘, 승상이 말하되,
“진씨가 홀로 취하지 아니하여 취객들이 미친 모양으로 비웃으니, 다시 한 번 벌하지 아니치 못하렸다!”하고
한 잔을 가득 부어 전하니, 전씨는 오히려 웃으며 이를 마시는지라, 유부인이 공주에게 묻기를,
“본디 마시지 못하는 술을 이제 마셨으니 신기(神氣)가 어떠하뇨?”
하자 공주가 대답하되,
“매우 괴롭소이다.”하기에,
유부인은 전씨를 시켜 공주를 부축하여 침방에 가게하고, 이어서 춘운을 시켜 술을 가져오게 하여 잔을 잡으며 하는 말이,
“우리 두 자부(子婦)는 여자 가운데 성인(聖人)이라, 내가 매양 혹시 복을 해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소유가 주정이 심하여 공주로 하여금 편치 못하게 하니, 태후마마께서 들으시면 몹시 염려하실지라, 내가 올바로 아들 교육을 못하여 이런 망거(妄擧)를 빚어 냈기로 내 또한 죄없다 못할지니 이 잔을 들어 스스로 벌을 받겠노라.”하고
잔을 비우시니 승상이 황송하여 꿇어앉아 아뢰되,
“모친께서 소자의 못된 소행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벌하시니, 소자의 허물이 어찌 종아리쯤으로 마땅하겠나이까?”하고는,
경홍을 시켜 술을 큰 잔에 가득 붓게 하고, 꿇어앉아 다시 아뢰되,
“소자가 모친의 교훈을 받들어 따르지 못하옵고, 도리어 모친께 근심 걱정만 끼치오니 사죄할 도리가 없사와 삼가 이 벌주를 받겠나이다.”하고 다 마시매,
승상이 대취하여 능히 기동을 못하고 응향각(凝香閣)을 손으로 가리키기에, 유부인이 ㄴ춘운을 시켜 부축하고 가게 하자, 춘운이 아뢰기를,
“천첩은 감히 모시지 가지 못하겠나이다. 계낭자가 소첩에게 승상의 총(龍)이 있음을 질투하는 것 같나이다.”하기에,
유부인은 다시 섬월에게도 당부하여 두 낭자가 부축하도록 명하니, 섬월이 뇌이기를,
“춘운이 내 말을 트집잡아 가지 아니하니 첩은 더욱 마음에 거리끼도다.”하니
이에 경홍이 웃고 일어나며 승상을 부축하여 응향각으로 가매 모든 사람이 흩어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