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필연으로 / 임정자
여행을 가면 골칫거리들이 사라져서 좋다.
2년 전, 장애인시설에서 사회복지사로 1년 일했다. 아픈 사람(나와 다른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내는 일이었다. 내게 희생하는 봉사와 까닭 모를 연민이 있을 줄 알았다. 밝은 표정으로 붙임성있게 대한다고 했지만 사소한 일을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 몹시 피로했다. 인간성이 황폐해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땡처리 닷컴에서 검색했다. 가장 빠르고 눈에 띄는 상품은 라오스 4박 6일 단체 여행이었다. 바로 예약했다. 가끔 혼자 다닌 경험이 있어 두렵지 않았다.
23년 10월, 무안공항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다음 날 새벽 비엔티안공항에 도착했다. 전용 운전기사와 차량으로 전 일정을 담당 가이드가 인솔해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관광할 수 있었다. 현지 인솔자가 내 이름과 000 외 5명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모자를 썼기에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이 자유로웠다. 가이드에게 다가가 밝게 인사했다. 여행 기간 라오스 날씨 이야기를 하면서 일행을 기다렸다.
나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넌 붙임성이 좋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처음 만난 사람하고도 곧잘 이야기한다. 어릴 때부터 대가족의 환경에서 특히 할머니 손에 자라서인지 자연스럽고 따뜻하게 말하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다. 혼자 여행하더라도 늘 낯선 친구가 있었다. 우연히 발생한 작은 만남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오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30분이 지났을까. 우리가 있는 곳으로 50대 중년 남자가 걸어온다. 그 옆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 2명과 성인 여자 3명이 함께. 그 모습을 보고 내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막 아우성쳤다. 아이들 다섯 명 다 저 남자 자식들은 아니겠지. 여자 사이에 끼어 있는 중학생일듯한 아이가 제일 어려 보이는데, 사내아이를 낳으려고 줄줄이 딸들을 낳았을까. 키 크고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사람이 엄마인가. 음, 아내가 좀 젊어 보이는데 혹시 재혼인가. 여자들이 화장실 가고 가방에서 옷을 넣었다 꺼냈다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쓸데없이 답을 찾으려 했다.
가족의 대표 격인 남자가 가이드에게 다가가 가족의 인원을 확인하고 승합차에 탔다. 인솔자는 자기를 소개하고 여행 일정을 설명했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향해 아이들을 소개한다. 뜬금없었다. 중학생인 아들과 대학생 딸은 그의 자식이지만 여자 세 명은 자기 친누나 자식들이라며 조카들이라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생글생글 웃는다. 동남아시아 여행을 자주 다닌다는 둥 라오스도 두 번째 왔다는 둥, 쉴 틈 없이 재잘재잘 수다스러웠다. 그의 말본에서 언뜻 옛 기억이 스쳤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디서 만났던 사람이다. 낯설지 않았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첫댓글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얼른 올려 주세요.
나는 워낙 붙임성이 없어 그런 사람이 부럽답니다.
혼자 여행을 잘 하시네요. 그런데 붙임성이 좋아서 만난분?
저는 필연을 우연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데 정말 부럽습니다,. 그런데 묘한 기분은 뭘까요?
필연을 우연으로 만드는 재주 궁금합니다.
혼자 가는 여행, 저도 꼭 해 보고 싶은데. 선생님 진짜 용감하세요. 아, 붙임성이 좋아서 가능하신 건가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