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당산과 해목령

게눈바위
신라의 통치이념에는 민주주의가 바탕에 깔려있다. 만장일치제도를 채택했던 화백회의가 그것이다. 화백회의는 신라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열렸는데 그 결정을 도당산에서 하면 잘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도당산은 남산의 북쪽 끝이다. 남산을 황금색 자라, 또는 거북이라 표현할 때 도당산은 그 머리에 해당한다. 도로공사로 단절되었던 목 부분을 최근 터널공사로 연결했다. 지금은 월정교에서 출발해 도당산을 지나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개설돼 많은 탐방객들이 이용하고 있다.
도당산에서 금오봉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남산신성이 지금도 남아 있다. 창고터도 발견된다. 경주시가지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시가지에서도 조망되는 툭 불거진 대게의 눈을 닮은 해목령. 해목령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을 따라 절터가 발견되었다. 그곳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의 석조여래의상 삼존불이 발견됐다. 해목령에는 많은 바위가 다양한 모양을 하고 엎드려 있다. 저마다 특별한 무엇을 웅변하는 듯하다. 역사를 되새기거나 느낌이 오는 대로 바위 이름을 붙여가며 남산을 오르는 것도 힐링 산행의 별미가 될 것이다.
◆도당산의 화백회의

경주 남산은 고위산과 금오산, 도당산으로 크게 구분된다. 고위산은 남쪽, 금오봉은 가운데, 도당산은 가장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도당산 주변에는 인왕사와 천관사 등의 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지금도 석재들이 남아 있다. 도당산의 기운은 상당히 영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가 처음 생성되기 이전 육부촌장들이 이곳에서 모여 회의를 열어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정한 이후 신라의 중요 회의들이 열렸던 곳이다. 김유신 장군이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한 곳도 도당산이다. 그러고 보면 도당산은 왕이 난 자리가 된다. 왕을 추대하기 위한 회의, 백제와의 전쟁을 앞두고도 긴 회의가 열렸을지 모른다.
도당산은 신라 천년 궁궐터 월성과 바로 연접해 있다. 남천을 건너면 코앞이 도당이다. 최근 복원된 월정교를 지나 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만 건너면 바로 도당산으로 드는 등산로가 시작된다. 마을 뒷동산을 오르듯 편안하게 시작하는 도당산 산행길은 입구에 모포를 깔고, 데크를 설치해 공원길 같다. 경주IC에서 포항으로 이어지는 산업도로가 남산 자라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경주시가 최근 터널로 자라목을 이어 남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새롭게 개설됐다. 경주 남산의 역사문화 탐방을 안내하는 해설사들도 월정교와 도당산을 기점으로 하는 남산탐방코스를 새롭게 추가하고 있다.
일정이 바쁘다면 도당산에서 남산을 오르지 않고 남산 입구의 상서장을 둘러보고 돌아와도 산책로로 좋은 코스다. 상서장은 신라말 신동으로 알려진 최치원이 왕에게 올리는 글을 작성한 곳이라 하여 이름지어진 집이다.
도당산이 명당이라는 말은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분묘들이 입증한다. 3월 접어든 도당산은 숲이 얕고 볕이 잘 들어 진달래가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듯하다. 도당산에 오르면 옛날 화백회의를 연상하게 하는 정자가 먼저 반긴다. 화백정이라는 현판이 신라를 새삼 먼저 떠올리게 한다. 화백정에 앉으면 월성을 돌아 흐르는 남천의 물소리가 도란도란 들린다. 한참 발굴중인 월성 내부까지 훤하게 건너 보여 전망도 좋다. 이른 봄인데도 벌써 정자에 둘러 앉아 컵라면과 김밥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 보인다. 경주시민들의 새로운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해목령

해목령 고개길
월정교에서 도당산을 지나 해목령에 올랐다 금오정을 돌아오는 등산길은 왕복 약 8㎞ 거리다. 가파르지 않고 편안한 산길이어서 등산 초보들도 쉬운 코스다. 도당산을 지나 금오정으로 오르는 길에 해목령(蟹目嶺)이 있다. 개구리를 닮은 큰 바위 두 개가 대게 눈알처럼 솟아 있어 게눈바위로 불린다. 게눈바위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 트이고 월성은 바로 턱밑으로 보인다. 멀리 신라 땅 구석구석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외적이 쳐들어온다면 그 동향을 샅샅이 살필 수 있는 곳이다. 게눈바위라는 이름은 아주 적절하게 붙여진 것 같다. 게눈바위에서 서라벌 곳곳을 살펴볼 수도 있지만 시가지에서 게눈바위를 올려다봐도 또렷하게 보이는 곳이다.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월성과 수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해목령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많다. 수달을 닮은 수달바위, 의자바위, 사자바위, 물개바위, 메기바위... 이름은 다르지만 게눈바위와 함께 진득하니 남산을 지키고 있다.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 문무대왕이 이곳에 창고를 설치해서 무기와 쌀을 저장했다고 한다. 창고의 규모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창고는 길이가 50m에 이르고 중간의 창고 길이는 100m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창고 터에는 지금도 검게 탄 쌀이 발견되고 있다. 문무왕때 창고를 지었고 혜공왕 2년 767년에 불에 타버렸다. 건물지 축대에는 긴 돌못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당시 건축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남산신성

남산신성터

도당산 쪽에서 남산을 오르다보면 곳곳에 성을 쌓았던 흔적이 보인다. 아름드리 돌들이 얼기설기 짜이거나 촘촘하게 축을 이루고 있다. 삼국사기는 진평왕이 남산성을 쌓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문무왕이 남산성을 보수하고 추가로 쌓아 남산신성으로 부르고 있다. 남산신성에 대한 기록은 성을 쌓을 당시의 내용을 화강암에 글씨로 새긴 비편이 발견돼 제작연대가 확실하게 드러난다. 남산신성비에는 성을 쌓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직명과 출신지, 인명, 관등과 축성거리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비문을 보면 성을 쌓을 때 부락에서 구역을 나누어 쌓은 것으로 드러난다. 성벽의 높이와 지세에 따라 성벽을 쌓기 어려운 곳은 길이를 짧게 하고, 쉬운 곳은 길게 담당하도록 공평하게 작업구간을 나누었다. 비문에는 축성거리를 대개 6보에서 21보로 정하고 있다. 또 산성비에는 성을 쌓은 책임자들이 담당구역의 성벽이 3년 안에 무너지면 하늘이 내리는 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비석에 새겨 서약했다. 지금까지 남산신성비는 10편이 발견돼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제9비는 발견 당시 완형으로 본래의 위치에 놓여 있었는데 글이 새겨진 전면이 성 안으로 향하도록 세워져 있었다.
남산신성은 사적 제22호로 1963년에 지정됐다. 남산의 북쪽 해목령을 중심으로 축성됐다. 기록으로 남산신성의 거리는 2천850보로 나타나지만 조사에서 성의 전체 둘레는 4천850m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남산신성에 오르면 북쪽으로 경주 시내와 월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 명활산과 낭산, 서쪽으로는 단석산과 서악동, 모량리까지 훤하게 보인다. 남산신성은 월성과 신라의 수도 서라벌을 지키는 도성수비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애기부처

애기부처 출토지

남산 애기부처
도당산에서 해목령으로 오르는 중턱쯤 마을사람들이 맨드리고개라 부르는 곳에 세 개의 돌기둥이 서 있다. 지금은 흙이 묻혀 있지만 기둥 안에 석실이 있었고, 석실에서 희귀한 자세의 불상이 발견됐다. 맨드리고개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장창곡이라 부른다. 문무왕이 건축했던 긴 창고가 있는 계곡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장창곡에서 발견된 불상이라 하여 장창곡 석조여래의상 삼존불이라 부른다.
삼존불은 의자에 앉은 자세의 석조여래의상과 양쪽에 협시한 협시보살과 함께 발견돼 지금은 경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의자에 걸터앉은 자세의 여래상은 하나의 돌로 다듬었다. 동글동글하게 생긴 얼굴과 도톰한 입술, 미소가 흐르는 눈매, 둥근 어깨선, 전체 몸체가 부드럽게 다듬어져 어린아이처럼 보여 애기부처로 불린다. 협시보살들도 머리와 몸체 비례가 갓난아기들과 같이 4등신이다. 삼존불은 모두 코만 살짝 훼손되었을 뿐 전체 몸이 그대로 보존돼 국보급의 문화재이지만 아직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 박물관에서 관리하고는 있지만 학자들과 경주시민들은 문화재로 지정관리해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신라시대 왕이 교통했을 월정교를 지나 화백회의가 열렸던 도당산 화백정에 올라 머리를 식히고 다시 해목령을 오르면 서라벌 시가지에서도 훤히 보였을 엄청난 규모의 무기창고와 곡식창고의 터. 천년을 썩지 않고 까맣게 건너온 불에 탄 쌀알을 손으로 만져보며 신라인의 체취를 더듬어 보는 것 또한 힐링의 백미일 듯하다.
첫댓글 해목령은 바다의 게눈처럼 툭 불거진 바위가 있는 고개다.
그 고개마루에 게눈바위가 혹불바위처럼 불거져, 그 위에 서면 경주 서라벌이 훤하게 조망된다.
경주 시가지에서도 게눈바위는 한 눈에 들어온다.
서로 마주보고 손이라도 흔들면 확인이 될.... 그래서 서로 살피기 좋은 위치에 있다.
백성들을 굽어 살피고, 백성들은 쌀이 가득 들어있는 창고 지붕이 바라보여 저절로 배가 부른 남산의 해목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