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의 자랑
경주 불국사는 신라천년을 지키면서 발전시켜온 정신문화의 꽃이다. 신라의 불교문화를 한마디로 농축해 웅변하는 표상이라 말할 수 있다. 1천300여년을 건너온 지금 신라를 이해하기 위한 근간이 되기도 한다. 통일신라의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우던 날들을 상징하는 문화유적인 것이다.
이제 불국사는 국내는 물론 세계인들이 지키고 가꾸어나가야 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세계의 자랑이기도 한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 국가적인 보물로 자랑스런 문화자산인 것이다.
불국사는 80여동의 건물이 순수 한옥 2천여칸에 이르는 대가람이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고 모두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수차례 중수되고 개축되면서 가까스로 당시의 흔적을 찾아가고 있다. 1969년부터 1973년 사이 불국사 경내에 있던 불국사호텔을 헐어버리고 김교각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는 무설전과 비로전, 관음전 등의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현재의 위용을 갖추어 화려했던 신라시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불국사는 신라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세계를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법화경을 근거로하는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뿌리를 둔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전과 비로전으로 구성해 종합적인 불교의 세계를 한 자리에 표현한 것이다.
경주 불국사에 숨겨진 이야기에 이어 보물 10가지를 소개했다. 이번 기행에서는 국보나 보물 등의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아니지만 불국사를 더욱 불국사답게 하며 불국사의 자랑이라 할 수 있는 무설전과 나한전, 관음전 등을 짚어보면서 역사기행을 떠나본다.
◆중국에서 지장왕보살이 된 신라의 왕자
경주 불국사의 우람한 대웅전 뒤편에 무설전이 있다. 대웅전의 그늘에 가려 있듯 무설전의 주인공에 대한 화려한 이야기도 그늘에 묻혀져 있다. 죽은 지 3년이 지나도 시체가 썩지 않아 그대로 등신불이 된 신라의 왕자로 중국에서 지장보살이 된 김교각의 동상이 세워져 불교의 또 다른 세계 이야기가 은은하게 피어나고 있다.
무설전은 불국사 건물 중에서도 제일 먼저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무왕이 의상과 그의 제자들을 비롯한 선각자들이 화엄경을 강론하게 했던 강당이다. 진리의 본질, 불교의 깊은 뜻은 말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해 ‘무설전’ 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말 없이 진리를 표현한다는 뜻과 달리 불법을 말로 강론했던 강당의 이름이 무설전이라니 아이러니하다.
무설전의 동쪽에 김교각 지장보살의 동상이 있다. 1997년 중국 안후이성 불교협회와 안후이인민대외우호협회가 김교각 입적 1천300년을 기념해 불국사에 기증한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중국에서 4대 불성으로 손꼽히는 김교각 지장왕보살상이 무설전을 지키고 있다.
김교각은 신라 성덕왕의 맏아들이다. 18세에 성덕왕이 중국으로 보내 공부해 중국에서도 이름을 떨쳤다. 김교각은 한학에 대한 수양이 깊어 그의 시는 전당시에 실릴 정도였다.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국했지만 동생이 태자로 책봉되어 있고 어머니는 폐위된 상황이었다. 그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구화산으로 들어가 불법에 매진했다. 24세때 출가해 구화산의 구화사에서 행각승으로 지내다 화성사에 거주했다는 기록이다.
그의 교화로 화성사는 신도 수가 늘기 시작했고 구화산의 개산조사가 되었다고 전한다. 뒤에 육신공양을 하여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게 되었다. 제자들 앞에서 홀연히 입적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몸이 썩지 않아 그대로 등신불로 만들어 삼층석탑에 모셨다. 그후 구화산은 지장보살의 성지로 알려지게 됐다. 보현보살의 성지인 아미산, 문수보살의 성지인 오대산, 관세음보살의 성지인 보타산과 더불어 중국 4대 보살 성지 중 하나가 되었다. 조국인 신라에서보다 그는 중국에서 큰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김교각을 매개로 하는 중국과의 문화교류 활성화의 물꼬를 트는 전략을 추진해야 된다는 학계의 주장이 진작부터 제기되고 있다불국사 대웅전 그늘에 가린 무설전에서 뿌리깊은 역사기행에 나서볼 일이다.
◆불국사의 천수관음
무설전에서 다시 북쪽으로 돌아서면 까마득한 계단이 구름사다리처럼 하늘 방향으로 가파르게 이어져 있다.
관음전으로 드는 통로인 것이다.
무설전 보다 한층 높은 언덕에 위치한 것은 관세음보살이 보타산에 계신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란다.
관음전은 751년 지어졌지만 임진왜란에 불타고, 1604년과 1694년. 1718년에 중창돼 관세음보살이 안치됐다.
불국사 관음전의 관음상은 중생사의 관세음상과 함께 영험이 크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관음상이 1674년과 1701년, 1769년 등 세차례에 걸처 개금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관음상은 없어졌다.
현재 1973년 복원하면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
◆칠보동산
불국사를 처음 지을 때 토함산 일대에는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한다. 토함산에 금과 은, 진주 등의 칠보 이름을 붙였던 일곱 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하고 있지만 그 터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
불국사 북쪽 탑동에 김대성이 창건했던 몽성암과 임진왜란 때 잿더미가 된 암자들을 통합해 지었다는 심적암, 1653년 승려 지원이 치술령 서쪽 기슭에 세웠던 보덕굴, 중굴, 상굴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청련암과 백련암, 운수암, 천건암, 운창암, 신도암, 임방암 등의 일곱 암자가 있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문닫은 문
백운교와 청운교를 올라 대웅전으로 드는 자하문의 문은 닫힌 지 오래다. 칠보교와 연화교를 지나 극락전으로 드는 안양문 또한 문으로의 구실을 잃은지 오래다. 드높은 곳에서 활짝 문을 열고 있지만 백운교와 청운교, 칠보교와 연화교가 국보로 지정되고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출입이 제한되면서 자연스레 자하문과 안양문은 문닫은 문이 되어버렸다.
자하문은 붉은 안개가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자하문을 통과하면 세속의 무지와 속박을 떠나서 부처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세속의 번뇌를 자금색 광명으로 씻고 들어서는 관문인 것이다. 자하문을 오르면서 동서로 길게 회랑이 구축돼 있다.
이 회랑이 대웅전의 옆문과 통하게 되어 있다. 회랑의 구조는 궁중의 것과 비슷하다. 국왕은 세간의 왕이라 여겨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회랑을 건립했던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고금역대기
불국사의 역사적 배경과 유물, 유적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불국사고금역대기는 불국사고금창기라고도 불리는 책으로 1권의 책이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본은 동경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영조대에 승려 동은이 경주 불국사의 사적을 기록한 책이다. 1740년 5월 대암의 문인이었던 동은이 지은 것을 그의 제자 만연 등이 다시 교정한 것이다.
불국사고금창기는 불국사의 창건연대를 법흥왕 때로 기록하고 있어 삼국유사 등의 기록과 다르다. 불국사의 가람구조에 대해 상세하게 기록해 불국사를 복원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17개의 건물, 회랑과 극락전을 중심으로 11개의 건물, 비로전 일대에 3개의 건물, 관음전을 중심으로 7개의 문루와 건물, 지장전 등을 기록하고 있다.
불국사가 임진왜란 때 완전히 기둥 하나 남기지 않고 타버렸기 때문에 이를 다시 복원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람배치와 건물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불국사고금역대기가 지침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불국사의 본말사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를 그대로 표현한 종합예술체로 이야기 되고 있다. 불국사 자체로만 우리나라 불교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불국사의 말사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불국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불국사의 말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첫 번째가 석굴암이다. 불국사와는 실과 바늘처럼 붙어다니는 이름인 것이다. 신라 황실 옆에서 이름 높았던 분황사는 천년의 불법을 이어 지금까지 향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경주 남산의 보리사, 부흥사, 상선암 등은 대단한 설화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원효, 자장 등의 고승들이 공부했던 기림사, 보덕사, 천룡사도 불국사의 말사로 등록이 되어 있다. 최근 선무도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있는 골굴암 또한 불국사의 말사다.
경주뿐 아니라 포항의 죽림사, 관음사, 운흥사, 무학사, 오어사도 불국사의 말사다. 문수사 등과 17개의 말사가 포항에 있다. 영덕에도 숭덕사, 덕흥사, 장육사, 유금사, 관음사, 용운사, 청련사 등의 13개 말사가 있다. 울진의 불영사와 보광사, 광흥사 그리고 울릉의 대원사, 부산의 보문사와 옥정사, 청도의 청석암, 진해 대광사, 양산 증산사 등 스스로 불교의 대단한 역사를 자랑할 만한 70여개의 말사들이 불국사의 이름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경주 불국사는 과거의 뛰어난 불교문화재 뿐만 아니라 현재도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중심적인 수행처 이기도 하다. 또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전시관으로 세계에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2천년 불교문화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불국사에서 뿌리 깊은 역사기행을 해볼 일이다. 부족한 지면으로 세세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신라의 달밤을 밝혔던 불국사의 종소리, 지금도 우람한 자태를 자랑하는 쇠북, 곳곳에 산재해 역사를 몸으로 말하는 석재들을 세세히 들여다볼 것을 권하며 불국사에 대한 역사기행을 아쉽게 접는다.
첫댓글 김교각 지장보살에 대한 연구는 할수록 덕이다
중국에서 4대 성인의 반열에 드는 인물로 성장하기 까지 겪은 일들은...
신라 성덕왕의 큰 아들이었다는 학설이 있다
잘보고 갑니다
불국사는 이미 세계적인 역사문화자원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더하여 스토리텔링으로 홍보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사업으로 알린다면 세계적인 유명 역사문화관광명소가 되어
찾는 발길이 문전을 가득 메울텐데............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