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 이우일
올해 필즈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에 큰 경사를 안겨 준 허준이 교수는 학부생 시절 물리학을 전공했다. 그러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수강하면서 수학에 대한 적성을 발견하고 그의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히로나카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고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던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게는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이끌어낸 위대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대전환과 과학기술 중심 국가를 꿈꾸는 지금, 차세대 과학기술 인재만큼이나 그들을 이끌어줄 스승이 필요하다. 지금의 고경력 시니어 과학기술자들은 과학기술력을 통해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킨 주역이다. 지식으로나 경험으로나 새 시대가 요구하는 스승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더욱이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국가의 주권과 힘이 과학기술에서 비롯되는 지금, 시니어 과학기술인들이 연구에 평생을 바쳐 쌓은 지식과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이를 잃지 않으려면 시니어 과학기술인이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스승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최근 10년간 노벨상 수상자 평균 연령은 69.1세이고 수상 계기가 된 논문을 연구한 기간은 평균 19.1년이다.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슈쿠로 마나베 교수는 당시 만 90세였다. 65세에 정년퇴임하는 한국 대학에서는 장기 연구가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능력을 갖춘 시니어 과학기술인들이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결국 활용의 길을 찾지 못한다면, 노벨상 수상과 과학기술 강국이라는 외침은 공허해질 뿐이다.
초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대한민국을 압도하는 현재, 과학기술계에 건강한 ‘실버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도 선배 과학기술인들의 역할이 절실하다. 한국시니어과학기술인협회는 2016년 창립 이후 정책 이슈 포럼, 연구 활동, 청소년 육성 사업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왔다.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액티브 시니어’ 단체로서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축적된 전문지식과 경륜을 통해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후배 과학기술자와 연구 현장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협회의 이러한 활동은 우리 사회가 시니어 과학기술인의 역할과 필요성을 발견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시니어 과학기술인들의 역동적인 모습은 차세대 과학기술인에게 더 없는 자극과 통찰을 제공해준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청년들에게는 믿고 의지하며 따를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필요하다. 단, 그들이 걷는 길을 함께 걷고 있어야 한다. 훌륭한 스승과 제자는 어미 닭과 병아리가 알의 안팎에서 함께 껍질을 쪼는 줄탁동시의 마음으로 합심하여 깨우침의 길을 연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병아리와 어미 닭을 모두 품을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더욱 성숙한 풍토를 가꾸어 주기 바란다.
필자소개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 Ph. D.
前 서울대학교 부총장
前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과실연) 상임대표
現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