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배추
이 재영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출발한 한 청년이 고향에서 첫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농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영농에 대해서는 공무원 교육 4주간 받은 지식이 전부였다. 농민들 중에는 상당한 수준의 영농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지도자라고 하지만 앞선 기술을 소개해 주고, 품종개량, 시비 법, 농약 사용법 등 일반적 지식과 생활개선 계몽을 하는 일이었다.
그 해 가을 그는 낙동강 길섶에 있는 100평 남짓한 밭에 김장용 배추를 심었다. 밑거름으로 퇴비와 복합 비료를 듬뿍 넣고. 중앙종묘사 신품종 씨앗을 한 구덩이에 3개씩 흩어 심었다. 씨앗을 정성들여 심었지만 발아한 씨앗은 가뭄에 콩 난 듯 드물게 났다. 그 것마저도 깨치지 않고 한 구덩이씩 죽어갔다. 그곳에 두 포기 이상 자란 것을 비오느날 속아서 모종을 했더니 겨우 빈 곳을 채웠으나, 병 깊은 아기처럼 배추가 좀처럼 깨치지 않았다.
옆 밭은 그의 초등학교 동창생네 것인데 그의 아버지도 흥농종묘사에서 구입한 신품종을 심었다. 씨앗을 많이 넣어 발아율이 좋아 고뿔 한 번 하지 않고 잘 자라 포기를 크게 안고 속이 차기 시작했다. 아들의 친구요 처갓집 집안이건만 그 분은 지나가는 장꾼들을 대상으로 사정없이 지도공무원을 비판했다. 저 배추가 농촌지도원 아무개 밭인데, 이 들에서 가장 못하다고 소문을 내면서 자기 배추가 최고라는 것을 과시했다.
그는 친구의 아버지가 야속했지만 말 한 마디 못했다. 정말 창피하여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순식간에 그 소문은 면내로 퍼져갔다. 마침내 그 소문은 그의 아버지의 귀에까지 퍼져 갔다. 하루는 아들을 불러놓고 “네가 농과대학을 나와서 농촌 지도 공무원으로 왔으나 경험으로 농사짓는 나보다도 못하니, 오늘 당장 사표 쓰고 오너라, 네 말 듣다가는 모두 폐농(廢農)하겠다.” 하고 호되게 질책했다. 그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금년 결과가 나쁘면 사표를 쓰겠습니다. 그 때까지만 참아주십시오.” 하고 부친을 진정시켰다.
이제 배추농사로 농촌지도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첫 시련이었다. 이것을 타개하는 길은 어떻게 하더라도 저 꼴등으로 소문난 배추를 최고로 기르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청년도 깨달았다. 그는 “이 시련이 나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리라.” 하고, 며칠을 곰곰히 생각하며 고민했다. 궁하면 통한다 하더니, 식물 생리 시간에 배운 요소 옆면 시비 법을 성공시킨다면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리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배추가 속이 찰는지.....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천운에 사활을 걸고 이튿날부터 공무를 끝내고 일찍 돌아왔다. 약통에 물 한 말을 채우고 요소 양을 정확히 계산하여 넣고, 완전히 녹였다. 요소가 0.3% 녹아있는 인공 빗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한 치의 오차라도 있다면 일시에 배추가 하얗게 말라죽는 위험한 방법이다. 한없이 망설이고 조심스러웠지만 분무기로 숨구멍이 많은 배춧잎 뒷면부터 위까지 흠뻑 적셔주었다. 한 주일에 두 번씩 실시했더니, 놀랍게도 성과가 나타났다. 연약하여 병치레를 못 면하던 배추에 윤기가 좌르르 흐르고, 활기를 띄며 쑥쑥 자라더니, 속이 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면내 최고의 대형 슈퍼배추로 자라 사람이 올라서도 부서지지 않았다. 비로소 그는 어려움을 참고 노력한 대가로 온 큰 보람에 환호했다.
면민들도 깜작 놀랐고, 특히 친구의 아버지는 감탄하며 그때부터 역선전을 했다. 마치 자기 배추를 품평회에서 선전하듯 수많은 장꾼들을 상대로 신나게 설명했다. 농촌 지도원이 키운 이 배추는 우리면내에서 가장 모질던 배추였지만 순식간에 일등품이 되었다고 선전했다. 자기 배추가 중반기까지도 최고였는데 기술의 승리였다고 찬사를 하며, 가혹하게 자식친구를 꼬집었던 잘못을 크게 뉘우쳤다. 그러나 그 분의 배추는 애석하게도 끝내 속이 반 밖에 차지 않았다. 상품으로 가치를 완전히 잃어 지도공무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는 처음에는 친구의 아버지가 야속했지만 그 분이 자신의 성공을 도운 고마운 분이란 것을 깨달았다.
지도공무원의 배추에 대한 소문은 날개를 달고 온 면내로 퍼져 갔다. 배추는 껍질이 얇고 달콤한 맛에, 노란 속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배추 적을 굽고 김치를 담아도 별미였다. 100평에 천포기를 심었는데 사려는 사람의 주문이 쇄도하여 반을 팔았다. 별 금을 받아 벼농사의 세배의 수확을 올렸다. 이 소문으로 이듬해부터 씨앗주문이 줄을 섰다. 그는 겨우 1년 짧은 기간 동안 뽕밭의 기적, 물동이 없는 마을, 땅콩 밭의 황금알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주민들은 그를 평생 반려자로 믿고 있었건만 능력 있는 지도자가 본인의 사정으로 이직하여 농촌을 떠났다는 소식은 주민들 가슴에 오래도록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