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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니라
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8:3)
*징조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아직까지 잘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님은 때를 잘 읽게 해주신 것입니다.
정부는 한 명의 환자가 생겼을 때에 펜데믹을 읽은 것입니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죽고 말 것입니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1-3)
불과 일 이 주일 그 때를 놓쳤더라면 감당 못하고 있는 서구의 꼴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교회는 시대의 징조를 읽어내야 합니다.
이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이 코로나19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이 파괴적인 현상을 두고 말세의 징조라고 말들 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전에서 죽음을 보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세를 다른 측면에서 지적합니다.
바울이 주목하고 있는 말세의 징조는 이런 물리적인 현상이 아닙니다.
바울의 말은 말세가 되니 사람다운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딤후3:1-7)
아내는 설거지를 하면서 혼자 이 말을 중얼거립니다.
“출애굽 때처럼 물이 오염이 되었더라면 더 큰 난리가 났을 거야.......”
밥을 하려고 수도를 틀었는데 거기에서 쫙 바이러스가 쏟아져 나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마스크를 써서 될 일입니까?
2m 거리를 둔다고 될 일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이런 치명적인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두고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행위를 결정하는 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세의 현실의 근원적 뿌리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현실입니다.
즉 사람들은 코로나19의 말세 현실을 보면서 공포에 떨고 있는데 바울은 중요한 지적을 합니다.
다른 곳을 보라는 것입니다.
말세적인 인간 존재의 타락이 말세 현실의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어제도 어떤 불교신자를 만났는데 저에게 “목사님, 코로나도 인간의 죄 때문이지요?” 했습니다.
바로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를 멸하시지 않을 한 명의 실존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이런 말을 두고 무슨 황당한 동문서답이냐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심과 그 분이 친히 이 역사를 섭리하심을 찰떡 같이 믿습니다.
또 세상이야 이 말을 믿든지 말든지 이 역사는 사람을 구원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글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n방 사건으로 18세의 미성년자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었습니다.
그 뉴스를 접했을 때 나는 분노했고 그런 작자들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포토라인에 서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며 서 있었습니다.
나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나는 대학 2학년 때 비로소 교회에 첫발을 디뎠고 그 얼마 후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아, 이것이 죄였구나!’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이 사실을 왜 몰랐을까?’
그것은 엄청난 지적인 능력을 갖아야 도달할 수 있는 그런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아주 작고 사소했지만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결정적 문제였던 것입니다.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전당포집 주인 할머니를 죽인 일 말입니다.
사람 죽이는 일이 죄라는 사실을 세상 만천하가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이 바보 같은 지성인이 몰랐다는 것 아닙니까!
이 대학생이 사람을 죽이고 나서 그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하지만 결정적인 깨달음을 교회가 저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최고학부의 성인인 나에게 윤리의식이 제대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 동안 받았던 학교 교육은 나에게 최고의 기술자를 요구했습니다.
학교는 나에게 바른 사람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이 도덕점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 잘 외우는 사람이 도덕 점수가 좋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 목사 장로들도 제 자식이 고등학생이 되면 어서 학교 공부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요즈음 아이들은 그 때의 나보다도 더한 혼란을 경험하고 있을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드르륵 사람을 재미로 죽이다가 컴퓨터의 스위치를 내리는 순간 오프라인으로 똑 같은 일을 할 경우 여지없이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set up 증후군이 아닙니다.
한 자리에 앉아서 완전히 다른 윤리를 적용하는 두 공간을 오락가락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 한 명이 포트라인에 서서 그 곳이 오프라인인지 온라인인지를 헷갈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의 소원이 그런 게임 개발로 돈 많이 벌고 집 사겠다는 프로그래머였다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런 사람을 두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이 사회에는 이 아이를 더 헷갈리게 하는 일이 수두룩합니다.
같은 오프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어떤 고위 검사는 성행위의 동영상에 자신이 등장해도 저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검사는 과거에 공부를 정말 잘 했을 것입니다.
판사도 그런 것 같다고 그 사람을 옥에서 풀어주었습니다.
그 판사는 과거에 공부를 정말 잘 했을 것입니다.
어떤 고위 검사 출신은 나랏돈을 가지고 파쇄기를 사다가 청와대의 문서를 갈아 없애버렸습니다.
그 높은 사람에게 그런 노골적인 증거인멸행위도 문제가 안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공부하면 아주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들었습니다.
자신도 그런 행위를 해도 되는 줄로 알고 있던 아이는 포토라인에 서서 이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증거인멸의 소지가 있다며 수갑에 채워져 옥에 보내지는 것일까?
아마 나에게는 빽이 없어서 그럴거야........
길거리에 널려있는 선정적인 간판을 보면서 성적 문제는 쾌락을 위한 기능적 문제라고 습득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인격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고 팔 수 있는 문제라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어디까지가 경제행위며 어디까지가 인격적 살인한 행위였는지 구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혼돈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회 문화 속에서 혼돈하다가 옥에 가게 된 것입니다.
이런 사회 속에 교회가 서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는 변함없는 말씀이 있습니다.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코로나19조차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 일은 교회가 말씀대로 사람을 교육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말세의 결과물인 것입니다.
교회가 말씀의 가르침을 통해 사람을 바꾸어 놓았다면 코로나19의 말세의 징조가 사람을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격리
우리는 코로나 19를 통해 어이없는 일들을 보았습니다.
마스크를 쓰면 전염을 상당히 막을 수 있을 텐데 그 일을 안 하고 사람을 다 죽이는 일 말입니다.
그들도 이제야 쑥스러워하며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별것도 아닌 마스크 문화를 고집하다가 당한 일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파괴적인 두 문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목매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왔던 애급의 문화와 그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땅 가나안의 문화가 그것입니다.
물론 레위기 18장은 性(성)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길은 확진자(애급의 문화와 가나안의 문화)를 격리하는 것입니다.
3.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레18:3)
a, 애급의 풍습
우리 한국 기독교가 격리시켜야할 애급문화는 바로 샤머니즘입니다.
1st, 현실주의(샤머니즘의 내용)
우리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과 샤머니즘의 하느님은 다릅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변할 수 없는 절대 존재입니다.
그 분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며 그를 따르는 우리는 그 분의 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믿습니다라는 뜻은 나를 통해서 전능자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이릅니다.
내 뜻이 부인되는 것입니다.
그 믿습니다란 내가 암으로 죽을 찌라도 제대로 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실존적 문제를 두고 하는 고백입니다.
이 땅에서의 내 사업이 망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는 것을 이릅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입니다.
샤머니즘의 하느님은 사람들의 현실보장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샤머니즘의 하느님의 굿을 하면 이 땅의 세상 GNP가 보장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암이 떨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돈을 더 많이 내면 사람이 원하는 그 일이 더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더 잘 헌신하면 이 세상이 비로소 썩을 것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법인데 말입니다.
그렇게 샤머니즘의 하느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일을 혼돈하면 아주 치명적입니다.
예를 들자면 답답한 일본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들은 당장 올해에 세상 올림픽을 치러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진단을 멈추며 환자의 수를 줄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이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세상 것을 챙기려다가 고스라니 생명을 잃을 처지가 된 것입니다.
백성의 생명을 걸고 올림픽이라는 경제행위를 했던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은 현실 보장이 아닙니다.
현실보장을 위해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잘못 알고 부르다가 다 죽는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우리들에게 기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2nd, 카리스마(샤먼적인 리더쉽)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를 통해 많은 리더쉽을 보고 있습니다.
근거도 없이 감정으로 일종의 쑈를 하는 리더쉽이 있습니다.
아니면 몽둥이를 들고 폭력을 동원하는 리더쉽도 있었습니다.
제 국민을 향해 탱크와 물대포를 동원하는 리더쉽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인정한 현재의 우리나라 리더쉽을 봅니다.
그 녀는 몽둥이를 들고 나온 적도 없고 감정을 충동하는 말을 한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 녀의 재미없는 말투의 말을 그대로 인정하며 신뢰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혀 다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샤머니즘의 리더쉽은 강압적이며 아주 감정적입니다.
샤먼들은 반말하다가 춤추며 감정을 흥분시킵니다.
하지만 그런 리더쉽은 이성적 동의를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의지적인 협조를 끌어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설교 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27.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7,28)
한 여인이 예수님의 진지하신 설교의 말씀을 감히 끊은 것입니다.
그리고 엉뚱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녀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답을 하신 것입니다.
부흥사의 목이 쉬어가지고 폭언을 일삼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설교의 도중에 주제와 상관도 없는 말로 여인이 끼어들 수도 있는 인격적인 대화였습니다.
드럼 쳐대고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감성에 이성을 묻어버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며 조는 사람은 깨워서 이성적으로 동의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독립적인 판단과 결단을 내리며 그들로 하여금 책임적 존재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의지적으로 그 십자가의 실천에 자신을 내어놓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 지도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리더쉽을 회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대제사장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에서 리더는 샤먼처럼 자신만이 대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의 리더쉽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리더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16:18,19)
주님은 베드로를 대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3rd, 신비주의(신앙의 내용과 형식)
퉁구스 말인 샤먼의 샴은 흥분하며 춤을 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속에 있어서 이런 황홀경은 신앙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어느 제자들 중에 누구도 이런 접신행위를 유도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드럼을 두들겨대면서 몸을 흔들고 소리를 질러대며 이런 샤먼의 방식으로 설교를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결정하는 요소는 소리 지르는 곳에 있는 곳이 아닙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사59:1-3)
그 의의 실존이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정하는 것입니다.
샤머니즘에는 정경이 없습니다.
그들은 신비주의적인 그리고 직통계시의 탈성경을 지향합니다.
그들은 원고 없이 흥분하며 설교하는 것을 신령하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샤머니즘은 운명론의 안일한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그들의 신비주의란 현실 도피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들이 예언을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결정론에 안일하게 의존해 보자는 속셈입니다.
그들은 책임적인 이성적 의지적인 작업을 피하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26:54-56)
비이성적이며 비의지적인 운명적인 삶을 조장하는 신비주의는 샤머니즘의 특징입니다.
샤머니즘은 강신체험과 같이 엑스타시가 요청되는 신비체험과 엑스타시가 강조되는 경향이 다분합니다.
비복음적인 신비 체험이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것과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b,가나안의 풍습
우리는 100여 년 전 새로운 문화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서구 기독교 문화입니다.
하지만 그 문화의 정체를 우리는 지금 확인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교회는 이제 술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이 붙으면 다 기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구의 기독교 문화를 검증 없이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 그 문화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1st, 황금만능주의(신앙의 가치)
그것은 애급이나 가나안이나 동일한 바알신입니다.
경제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사람을 경제의 도구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성까지 경제적인 도구화하는 것입니다.
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13:16-18)
말세의 나타날 666 괴물은 경제의 신이었습니다.
2nd, 합리주의
서당 선생님 앞에서 하늘천따지 철학공부를 하던 우리 민족에게 서구합리주의에 얼마나 매력적이겠습니까?
화학 실험도 하고, 물리 실험도 하고, 피타고라스 정리도 외우고 계산하고.......
동양의 유교의 경우 관계를 중시한 것 같습니다.
대가족을 고려하다보니 장유유서의 질서가 중요하고 부부를 전제하다보니 남녀유별이 미덕이지만 서양은 개인주의가 발달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등장한 모양입니다.
그러더니 노골적인 비윤리 행위도 개인들이 원하면 그것이 윤리입니다.
현대 기독교적 서양 문물의 성적 타락들은 차라리 전통의 유교보다 더 비성경적입니다.
제가 알기로 성경의 성의 문제는 지금 서구의 문화와 같지 않습니다.
아주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연과학적인 합리주의는 제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서 성경을 판단하려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성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이 이성이 합해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다른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18:22)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탁월한 생리학을 통해 성을 결정하는 또 다른 유전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제 3의 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또 억지 과학 같습니다.
그런데 의학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3rd, 메스미디어
코로나19가 가장 위협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것의 전파력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일 초에 지구를 몇 바퀴를 돌고 남을 정보의 전파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문을 걸어 잠거도 깊은 곳에 파고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작위로 아무거나 전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온라인상과 오프라인 상의 윤리 의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온 라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되는데 오프라인에서 그런 행위는 살인이며 강간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것을 다루기는 데에 윤리적으로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청소년들은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공동체가 원치 않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돈을 끌어 모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교육기관인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장래의 보장인 아이들에게 열린 학교입니다.
이것이 이 사회를 구성하는 공기처럼 퍼져있어 그 전파력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신앙은 인간의 불가능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불가능의 현실에 말씀을 가진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치료
a,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샤머니즘의 하느님은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즉 기복적인 동기로 찾아가는 신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신 분입니다.
그 분은 자신의 충족을 채우신 것이 아니라 사람의 결정적 충족을 채워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은 희생하신 이타적인 존재이십니다.
바로 이 분이 곧 말씀이십니다.
이 말씀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보장하시는 능력이신 것입니다.
백부장의 고백과 같이 그의 말씀은 충분히 이 시대를 낫게 할 것입니다.
7.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7:7)
아무리 탁월한 의학 기술이라도 그 한계가 있습니다.
백부장은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말씀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믿고 있던 그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정한 복이란 어떤 상황과 여건에도 말씀을 떠나지 않는 것을 이릅니다.
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119:110)
110 The wicked have set a snare for me,
but I have not strayed from your precepts.
본문을 살펴보면 악인들은 사람들이 그 덫에 걸리도록 덫을 놓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법도를 떠나도록 덫을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악인들의 교활한 그 의도를 잘 알고 속지 않습니다.
그들은 덫을 잘 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덫이 흩어진 상황에 놓여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4.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5. 너희는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18:3)
누구나 개인적인 종말의 경험들이 있을 텐데 저에게는 이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교회차를 타고 가다가 차가 다리 난간을 넘어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나는 엎어진 차에 거꾸로 매달려있었습니다.
안전벨트가 나를 살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벨트라는 사실입니다.
1st, 말씀은 능력
인간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동원한 이 시대의 첨단의 무기가 핵 항공모함일 것입니다.
이 항공모함은 원만한 한 국가의 항공력을 싣고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서 정말 희한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의 핵 항공모함이 빈 배가 되고 만 것입니다.
아주 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곧 이어서 프랑스의 핵 항공모함에서 똑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군인들이 모조리 거기에서 내렸습니다.
그 일은 탱크를 녹여서 호미자루를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4.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2:4)
사람들이 아주 잘난 척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지고 말 것입니다.
2nd, 자기희생의 십자가 방식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생각도 못하는 방식입니다.
언제나 예수님께서 보이셨던 십자가의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 보기에 패배의 방식입니다.
교회는 이 사회에서 세력집단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기독교 정당의 당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폭력 앞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승리를 이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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