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시리즈 ①]
한반도 비핵화 30년, 왜 악순환은 반복되었나?
정일영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새해에도 북핵문제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전세계 핵비확산 레짐의 관점에서도 가장 뜨거운 이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관련국 간 협상이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단된 상황에서도 정치권과 학계의 논의는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핵무장론이 강화되며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한국의 핵무장을 통한 공포의 균형을 모색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관련하여 필자는 지난 30년간 진행된 한반도 비핵화 노력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기획하였다. 먼저 ① 한반도 비핵화의 악순환이 거듭된 원인을 찾아보고, ② 최근 대두되고 있는 핵보유론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③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안을 모색해 보도록 하겠다.
이번 칼럼은 한반도 비핵화 시리즈의 첫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노력이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시사점은 무엇인지 분석하려 한다.
한반도의 불안정은 왜 지속되는가?
1980년대 말 미소냉전이 종언을 선언하며 해체됐다. 한반도는 독일과 함께 냉전의 최전선이었다는 점에서 냉전의 종식은 한반도에서 평화의 시대를 기대케 했다. 한반도에서 냉전의 구조는 북한과 소련, 중국의 북방 삼각과 한국과 미국, 일본의 남방 삼각의 대결을 의미했다. 당시 노태우 정부의 적극적인 북방정책을 통해 한소, 한중 수교를 맺음으로써 한반도 냉전의 한 축인 허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탈냉전의 훈풍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발효되는 성과가 있었으나 또 다른 냉전의 한 축인 북한과 미국,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북한은 고립되었고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식량난이 발생하며 국가 생존의 위기를 맞게 된다.
1990년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 나타난 복합적 국가 위기는 북한이 머지않아 붕괴할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미국은 1994년 10월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에 합의했지만, 북미 수교는 진전되지 못했고 일본 또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미온적이었다. 결국 1990년대 중반 국가적 생존위기를 극복한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스스로의 안보와 체제 보장을 추구하게 된다.
미소냉전이 해체되며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 과정에서 북한은 비대칭 전략으로 핵무장을 선택했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북한의 핵무장을 비난해왔다. 분명 북한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의 핵무장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규범을 위반하고 한반도, 특히 한국을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에서 해체되지 못한, 냉전의 잔재로부터 기원함을 부정할 수 없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 없이 한반도 비핵화는 요원하다. 지난 30년의 비핵화 노력이 악순환을 거듭한 근본 원인 또한 여기에 있다.
한반도 비핵화 노력, 악순환은 왜 반복되었나?
좀 더 구체적으로 지난 30년간 진행된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를 돌아보자. 한반도 비핵화는 왜 성공하지 못했나? 그 수많았던 노력은 왜 악순환을 거듭하며 실패했나?
첫 번째로, 앞서 언급한 한반도 냉전체제를 해소하는데 실패했다. 북한은 1990년대, 길게보면 2000년대까지 체제안보를 보장받기 위해 핵무장과 북미관계 개선을 함께 추구했다. 북한은 미국만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수많은 비핵화 협상에서 이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북미관계 개선에 미온적이었고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을수록 북한은 핵무장을 통해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받는데로 나아갔다.
두 번째로,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 내구력을 보여주며 제재를 견디고 있다.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거의 완벽하게 이행된 상황을 연출했지만, 북한은 이 또한 견뎌내고 있다. 아니 북한은 대북제재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더 강한 사회통제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강력한 경제제재를 활용해 시리아와 이란의 비핵화를 이끌어낸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들 국가와 달리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운용하고 있으며 지도체제에 대한 저항 또한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세 번째로, 지난 30년간의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양자 및 다자의 형태로 진행된 비핵화 협상은 너무 낮은 상호신뢰 속에, 너무 높은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실질적인 비핵화를 진전시키는데 실패했다. 2008년, 검증문제를 합의하지 못해 종결된 6자회담과 2019년, 영변의 핵시설 폐기를 눈앞에 두고 결렬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그랬다.
추가적으로, 미국과 한국은 일관된 한반도 비핵화 전략을 추구하지 못했다.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장 노력에 반해, 미국과 한국은 정권교체에 따라 단절된 비핵화 전략을 추진하며 북한에게 시간과 합의 파기의 명분을 제공했다.
한반도 비핵화 여정의 역사적 교훈
한반도 비핵화의 실패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역사적 교훈을 제공한다. 이 값비싼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비핵화의 역사적 교훈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북한은 체제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단기적인 협상에 임한다 해도 결국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은 미국만이 할 수 있다. 북미수교가 완료되지 않는 이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해체가 북한 비핵화의 열쇠임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 국제사회는 대북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북한의 내구력은 강고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주적으로 준전시체제를 유지해온 북한을 가까운 미래에 굴복시킬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중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제재 또한 요원하다.
세 번째로, 일관된 한반도 비핵화 전략이 없다면 북한은 이를 역이용할 것이다. 한국과 미국, 두 국가의 여당과 야당이 지속가능한 대북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은 핵무장의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시간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주어진 현실이다. 과거를 한탄하기보다는 역사적 교훈으로부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핵무장론이 정치권은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핵무장은 우리에게 불가피한 대안인가? 다음 칼럼에서 이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