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마가복음 6장 41-44절『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며,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시고, 열두해 혈루병으로 고통을 받던 여인이 병에서 벗어나며,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손마른 자, 중풍병자, 나병환자를 고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가르치다가 저녁이 된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날이 저무는데, 저들에게 뭣이라도 먹게 해야되지 않느냐면서 여쭐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제자 중 하나(빌립)가『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라고 반응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6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분이었는데, 빌립은 인간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백 데나리온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일 수 있느냐 라고 생각한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만, 그 믿음이 자신과 하나되지 못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곳에 왔던 사람들에게 인식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백성들이 생각하기에 저 분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표면적인 사건으로서 제자들의 믿음 약한 것과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었다는 데서 끝나면 그 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6장 38절에서『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그런데, 요한복음 6장 9절에서는『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이와 보리떡 다섯개, 물고기 두마리가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이는 율법에 갇혀 있어서, 천국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를 상징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개는 모세오경의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에 갇혀있으므로 하나님께 대하여는 죽어야 할 죄인이라는 말이다. 물고기 두마리는 그리스도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죄의 몸을 가지고 세상에 온 첫사람 아담, 그리고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할 마지막 사람 예수님이신 것이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는 율법이라는 아이로부터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께로 넘어오게 된다. 이 말은 율법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모습이다.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복음이 되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죄인이 대속의 어린양의 죽음으로 죄에서 벗어나는 상황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은 장차 오실 여인의 후손인 약속의 씨(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다.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죄인들은 죄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게 약속의 씨에 대한 열매맺는 것이다. 씨로 있으면, 열매가 맺히지 않지만, 씨가 죽으면(십자가의 죽음) 생명의 열매(부활)를 맺는 것이다.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복으로 내려온다. 죽어야 할 육을 일시적으로 살리는 떡 대신에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떡(부활)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4장 3-4절에서『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돌들은 율법의 조항들을 의미한다. 율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명의 말씀인양 찾는 것이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율법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떡(율법에 따른 말씀)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복음)으로 살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을 말하는 자들이 있다. 율법에 따른 말씀은 결국 죄인은 죽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복음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복음은 다름아닌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그리스도의 부활인 것이다.
아이로부터 받은 오병이어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의 복(생명의 부활)로 다가올 것이라는 메시지다. 마가복음 6장 43-44절에서『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떡을 먹은 남자는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를 상징한다. 천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천년왕국이라고 했을 때 완전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오(5)는 하나님 나라를 완전히 이루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 분을 따랐으나, 믿음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의미다.
또한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거두었다고 한다. 계속 열두 제자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져야 함을 말해준다. 열두 제자이지만, 이는 상징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적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을 전하여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4장 1-4절에서『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에피스튜산 ἐπίστευσαν)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에피스튜산은 자기가 믿는 믿음(believe)이다. 믿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belive in)이 되어야 한다.
믿음은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기가 믿는 믿음(believe)이다. 예수님께서 병을 치료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등의 기적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장면을 목격하고, 베드로가 말하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을 자기가 믿는 믿음이라고 한다. 이것은 완전히 의에 이르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음의 믿음(believe in)은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성령세례)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23절에서『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πίστ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하늘로부터 믿음이 오기 전에는 모두가 율법 아래 갇혀있는 자의 믿음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은 바로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라는 말이다. 이것을 우리 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번역했는데, 마치 신도가 믿는 그런 믿음으로 오인하게 잘못 번역된 것이다. 제대로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하실 때, 내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성부께서 부활시켜준다는 믿음이다. 이 부활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영생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몸(혼:그리스도의 옷)인 것이다. 그래서 성도도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믿음 속으로 들어가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믿음으로 이미 성도는 육으로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영으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은 성령의 능력(성령세례)으로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이 인정하는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 있는 믿음이 된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믿음인지 잘 검증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