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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걸으며
내 생활 동선 중 가장 어려운 것이 등산이다. 부실한 심장과 부족한 폐활량으로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정말 힘든 고행이다. 그런데도 산으로 향하는 마음을 막을 수가 없다. 한 번씩 다녀올 때마다 뒤따르는 고통이 컸다. 그렇게 힘든 일이기에 더욱 성취감이 큰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야트막한 야산부터 시작해서 점점 범위가 넓어졌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을 완주하고 나니 더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 백두대간 등산이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다녀왔던 길을 짚어보니 대부분 백두대간 길에 포함되는 길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 나머지 길을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백두대간만이라도 종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백두대간 길이다. 나로서는 정말 어려운 여정이었기에 여기에 그 기록을 남겨 두고자 한다. (시기에 따라 적당한 곳을 다녀야 했기에 차례대로 이어진 것이 아니고 여기저기 순서 없이 다녔다.)
* 지리산 북부 능선 (성삼재휴게소 ~ 만복대 ~ 정령치휴게소) - 예전에 천왕봉에서 성삼재까지 걸으면서 지리산 종주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지리산 남부란다. 나머지 북부까지 걸어야만 지리산 종주를 했다고 하는데 나는 반쪽만 하고는 지리산 종주를 했다고 생각했다. <만복대 탐방로>는 총 7키로 정도의 길이다. 만복대 높이는 1433.4미터, 많은 사람이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자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억새가 흐드러지게 핀 가을과 설화가 만발하는 겨울에 인기가 좋은 등산로이다. 지리산 종주에 마침표를 찍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흐뭇하다. 힘들 수밖에 없는 신체적 요건이었기에 성취감이 남달랐다. 다음은 어느 곳으로 갈까.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 덕유산 능선 (향적봉 ~ 무룡산 ~ 삿갓재 ~ 황점마을) - 매년 7월이면 원추리가 보고 싶어진다. 보고 보아도 또 보고 싶은 원추리. 덕유산 종주를 하면서 실컷 보리라 마음먹고 2박 3일의 일정을 계획했다. 향적봉에서 영각사까지로 잡았다. 산행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로 향적봉대피소에 숙박했다. 아침 일찍 향적봉대피소를 나서니 안개가 자욱해서 발밑도 살펴 걸어야 할 것 같다. 야생화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이런 날은 이런 날대로 운치가 있어 좋다. 동업령에 도착하니 하늘이 많이 맑아졌다. 앞뒤를 둘러보니 탁 트인 풍경에 속이 후련하다. 야생화에 어우러진 평전이 참으로 아름답다. 걷고 또 걷는다. 바로 앞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칙칙한 숲도 있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지기도 한다. 무룡산, 그곳에 자리한 원추리 군락지를 찾아가는 것이 산행의 목적이다. 힘들게 힘들게 걸어서 드디어 무룡산에 도착하고 나니 그동안 힘들어서 처져있던 몸의 피로가 싹 풀린 듯 마음이 가볍다. 이정표 뒤로 보이는 삿갓봉과 남덕유산이 더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다시 원추리 군락지를 행해 간다.
높아도 높아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 삥 둘러보니 눈 가는 곳마다 원추리다. 원 없이 보고 또 본다. 이렇듯 높은 곳에 넓은 평원이 있다니…. 저 가녀린 줄기로 산등성을 넘나드는 거친 바람을 어찌 견딜까.
원추리와 원 없이 놀다가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하니 한 방울씩 오락가락하던 비가 무섭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저녁을 먹을 즈음부터는 천둥번개가 요란하다. 샘터를 가야 하는데 멀어서 이런 비를 뚫고는 갈 수 없단다. 산에서는 제일 귀한 것이 물이다. 그래서 양치질이나 비누를 사용할 수 없다. 계곡의 상류인 만큼 오염시켜서는 안 된다는 산사람들의 규칙이다. 그래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천둥번개가 치든 말든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조금 갠 하늘과 풍경이 산뜻하다. 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구름이 참으로 아름답고 공기가 신선해서 모처럼 마음껏 들여 마셨다. 그런데 폭우로 모든 산에 입산금지령이 내렸단다. 별수 없이 나머지 구간의 산행을 다음으로 미루고 황점마을로 내려왔다. 덕분에 여유를 누리며 즐겼다. 특히 야생화에 눈길이 머문다. 밤새 내린 비로 개울물 소리가 우렁차다. 무사히 잘 도착했다고 생각할 즈음 만난 폭우는 복병이었다. 비옷을 입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여분의 비닐을 아예 뒤집어썼다. 그런 내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생각하며 내가 쿡쿡거리며 웃었다. 다행히 얼굴로 쏟아지는 비는 막아낼 수 있었지만 더워서 땀이 비 오듯 하다 보니 결국 온통 젖어 버렸다. 그래도 마음은 흡족했다.
* 덕유산 능선 (황점마을 ~ 삿갓재 ~ 남덕 산 ~ 영각사) - 덕유산 종주를 나섰다가 비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니 입산금지가 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도중하차하고 말았었다. 그때 원추리는 원 없이 봤지만 나머지 구간을 못해 내내 아쉬웠는데 청명한 날씨가 자꾸만 손짓을 한다. 서늘해진 바람이며 한들거리는 들풀들이 내뿜는 가을 냄새를 이기지 못하고 배낭을 짊어졌다. 지난번에 내려왔던 황점마을에서 다시 삿갓재대피소로 향했다. 하룻밤을 지내고 남덕유산을 향하여 출발이다. 삿갓봉에서 사방팔방으로 들러보는 풍경들. 뒤쪽은 지난번에 들렀던 무룡산, 앞쪽은 앞으로 가야 할 남덕유산, 그 옆으로 서봉 등 덕유산을 상징하는 봉우리들이 정말 장관이다. 시시각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 때문에 잠시 사진 찍을 기회를 놓치곤 했다. 아니, 구름이 있기에 더욱 봉우리들이 신비하게 느껴져 셔터 누르는 속도를 늦추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남덕유산에 도착해서 영각사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정말 멋진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뚝 솟은 바위, 그 위를 올라갈 수 있는 계단들이 멀리서도 보인다. 그 계단을 올라갈 일이 설레기까지 한다. 한발 한발 가까이 가면서 내려다보는 주위 풍경이 아찔하다. 계단의 경사가 급해서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것 같다. 철계단을 내려가면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스틱 하나가 손에서 쑥 빠져나가면서 철계단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그 스틱을 잡으려다 하마터면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경사가 위험해서 계단 옆 손잡이를 잡고 가려는데 스틱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꼭 그 말을 들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듣는 귀가, 느끼는 귀가 있구나 싶다. 그러니 어느 사람한테든, 아니 세상 어떤 사실 앞에서도 결코 헛된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할 일이다.
* 덕유산 능선(육십령휴게소->할미봉->서봉->남덕유산->월성재->황점마을) - 언젠가는 한 번 꼭 해보고 싶은 코스였다. 매우 힘든 구간이기는 하지만 경치가 빼어나다는 곳이라 해서다. 하지만 하루 걸어야 할 길이 나에게는 너무 벅차서 문제였다. 이리저리 연구한 끝에 가장 해가 긴 6월 20일쯤으로 잡았으나 장마가 일찍 시작했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는 폭염이 연속, 심장이 부실한 나로서는 선뜻 나설 수 없는 기후였다. 그러다 보니 9월이 넘어 버렸다. 참 많이도 조바심내며 기다린 등산이다. 긴 코스이기도 하지만 좀 힘든 구역이라서 시간이 많이 걸릴 듯하여 새벽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육십령 휴게소 근방에서 전날 민박을 했다. 오전 5시 육십령고개 들머리 출발, 깊은 산속에서는 산 짐승이 나타날까 두렵다. 짐승들이 쇳소리를 싫어하여 쇳소리를 들으면 미리 피한다고 하기에 풍경을 달고 걸었다. 발걸음 뗄 때마다 울리는 풍경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했다. 잔잔히 들리는 풍경소리 또한 우릴 자연 속에 묻히게 했다. 더러 발 디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비가 되어있지 않은 구간도 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않은 곳은 정비가 되지 않는단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나라 지형의 뼈대인데 그렇게 홀대할 수가 있을까 싶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오후 2시 서봉에 도착, 정상에서 휘둘러보는 풍경이 과연 절경이다. 새벽부터 걸어온 아스라한 능선을 바라보는 마음도 흐뭇하고 가야 할 남덕유산 경관도 멋지다. 정상에서 맛보는 청명한 날씨에 살랑거리는 바람, 산뜻한 햇볕이 얼마나 좋던지 일어서기가 싫었다. 늦은 점심을 허겁지겁 먹고 나니 나른해서 일어설 기력이 없다. 마음 같아 한소끔 자고 싶다. 하지만 하산 시간을 맞춰야 하기에 서둘러 출발한다. 오후 5시, 월성재에 도착. 이제 황점마을로 하산 길이다. 월성재에서 황점마을까지의 산길이 잘 닦아져 있어 어두워도 걷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다. 걷는데 불편함이 없으니 마음 놓고 얘기를 나누며 하산했다.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오후 7시 30분, 황점마을 날머리에 도착했다. 총 15시간 정도, 아침, 점심 두 번의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등 2시간 정도를 빼면 13시간을 걸었다. 13여 키로이니 1시간에 1키로를 걸은 샘이다. 평소 내 속도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단지 어깨가 다른 때보다 좀 더 아프긴 했다. 아마도 늑막수술 후의 후유증인 듯싶다. 그래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내 건강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꼭 하고 싶은 구간들이 대충 끝났다. 이제 그 나머지 구간들을 차례로 다닌 구간이다. 구간구간을 다 기록할 수는 없어 간단히 거친 곳들만 적어보기로 한다.
* 덕유산 능선(정령치휴게소 ~ 큰고리봉 ~ 고기리 ~ 노치마을 ~ 여원재 ~ 매요마을 ~ 복성이재) - 위의 구간은 4번에 나누어 조금씩 걸었다. 급히 다투어 걸을 일도 없거니와 무조건 통과하기 위해 의미 없이 걷고 싶지는 않았다. 천천히 바람과 구름과 벗하며 야생화에 취하고 나물을 뜯으며 걸었다. 놀며 가며 걷는 길, 산길을 걷는 날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어느 구간에선 이정표가 전혀 없었다. 산꾼들이 매달아 논 리본을 보며 찾아가긴 했지만 이런 대간 길에서는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잠시 헤매다가 보니 누군가 손글씨로 써서 비닐을 입혀 나무둥치 옆에 세워 놓았다.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손길이었다. 그런데 그 임시 이정표를 써 논 사람은 멀리 타지에서 온 산악회원들이었다. 내 고장, 전북지역 대간에서 타지역 사람들이 쓴 이정표를 보니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고장에 이런 대간이 이어졌다는 사실만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정비하는 마음들은 너무 허술한 듯싶다.
* 덕유산 능선(복성이재 ~ 봉화산 ~ 월경산 ~ 중재) 초봄이어서 겨울과 봄을 같이 느끼는 시기였다. 눈길을 걷기도 하고 벙긋거리는 꽃봉오리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봉화산 부근의 바위, 사방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주 좋다. 그동안 먹먹했던 가슴이 툭 터지는 순간, 아! 이 맛에 산행을 하는 것 아니던가.
봉화산은 철쭉꽃과 억새 군락지다. 봄이면 온통 붉은 꽃으로 물드는 봄 산 대표이기도 하고 가을이면 억새가 만발한 가을 산 대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두대간 길이라서 찾기보다는 철마다 다른 분위기를 맛보러 많은 사람이 오르는 산이다. 언제가 다시 오르고픈 산. 이 길은 다시 점을 찍어 놓은 코스다.
* 덕유산 능선(중재 ~ 백운산 ~ 영취산) - 지지터널 근방에 있는 계곡에 들머리가 있다. 승용차를 영취산 아래, 무령고개에 있는 주차장에 놓고 택시로 지지계곡 들머리로 갔다. 중재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자그마한 계곡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물이 많지는 않지만 신발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아직 차가울 텐데 싶어 망설이는데 떠나려던 택시 기사님이 돌멩이를 날라다 디딜 자리를 만들어 준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참 훈훈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하마터면 미끄러져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한 날이기도 했다. 무엇 때문에 이리 미끄러울까 싶어서 낙엽을 걷어내 보니 아뿔싸! 그 밑에는 아직 동장군이 머물러 있었다. 아직 녹지 않은 얼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더듬거리며 걷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지도를 보며 은근히 걱정했던 구간인데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이 구간은 특히 신우대가 많아서 아늑한 길이었다. 구간구간마다 다 다른 특징이 있긴 했지만 공통점이라면 그리 험한 길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전엔 백두대간 길이 무척 험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걸어보니 참 아늑하고 편안한 길이 더 많았다. 아마도 능선길이라서 그런가 보다. 그 능선까지 이어주는 접속구간만 오르고 내리기가 좀 힘들기는 해도 백두대간을 이어지는 길은 대체로 아주 편안한 길들이었다.
* 덕유산 능선(영취산 ~ 덕운봉 ~ 육십령고개) - 무령고개 주차장에서 영취산으로 올라가는 이번 코스는 접속구간이 짧아서 좋다. 어느 코스든 올라갔다 내려가는 접속구간이 힘든데 이런 곳을 잘 골라 계획을 짜면 쉽게 등산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코스가 무난하니 좋았던 것 같다. 연신 ‘길이 참 좋다.’라는 말을 하며 걷게 된 길이다. 이 길을 걸었던 때가 5월 중순이라서 한참 나물이 많은 때였다. 각가지 나물들을 뜯느라 유난히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사람의 욕심이 이런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무거워지는 나물 보따리가 부담되었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을 그대로 두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보다 더 좋았던 것은 이 구간은 유난히 야생화가 많았다. 한창 풍성한 철쭉꽃도 예뻤지만 곳곳에 핀 야생화가 많아 눈이 호강했다. 특히 은방울꽃은 아주 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참 귀한 꽃이어서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끝없이 이어진 군락지였다. 그 외에도 참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는 구간이어서 그 길은 ‘야생화’의 길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다.
* 덕유산 능선 (백암봉 ~ 횡재삼거리~ 신풍령) - 그동안 계획했던 길의 마지막 구간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여기까지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백두대간. 드디어 그 구간을 다 걷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곡절이 많아 미루고 미뤄졌던 그날이 왔다. 날을 잡는 것부터 힘들더니 끝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간 긴 산길을 걸으면서 무던히도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향적봉을 출발해서 중봉에 도착할 무렵 기어이 심장이 조금 이상이 오고 말았다. 앞으로 나가기도 두렵고 뒤로 돌아서기도 아쉬웠다. 한 시간 정도 심장을 진정시키며 정말 어려운 고민을 했다. 어찌해야 할까. ‘나는 독종이다.’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면서 진행하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그렇듯 다음 일은 신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친구 역시 자신의 신과 나를 굳게 믿는다며 앞장서 걸었다. 묵묵히 내 뜻을 따라 주는 친구의 마음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나는 먹는 것을 삼갔다. 심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평소의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식사 대신 소화에 무리가 가지 않는 사탕과 물로 근근이 에너지를 보충했다. 그렇게 15시간을 걸었다. 무척 힘이 들었다. 무엇을 바라고 이리 힘든 고행을 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시킨 일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힘을 빼고 땀을 흘리고 나면 홀가분해질 것 같은 마음이 도로 제자리이면서도 자꾸 이런 길을 택하곤 한다. 그렇게나마 마음의 통증을 삭이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함께 해준 친구가 있었기에 이 어려운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불안한 부담감을 안고도 마음 자락을 펴 준 친구에게 감사하다.
* 민주지산 능선 (신풍령 – 삼봉산 – 초점산 – 대덕산 – 덕산재 – 백수리산 – 백석산 – 삼도봉) 여름 한더위를 피하고 선선해진 바람이 불자 나머지 30여킬로를 걸을 긴 계획을 세웠다. 내 속도로 나누다 보니 4번의 산행을 하게 됐다. 어느 날은 안개 자욱한 산속만을 걷기도 했고 햇볕 좋은 날 버섯을 따면서 걷기도 했다. 물들기 시작한 산세 속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다 어두운 밤길을 걷기도 했고 물집 잡힌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돌아오는 길 운전하기가 몹시 힘들기도 했다. 하마터면 길을 잘못 들어 온 밤을 헤맬 수도 있었겠다 싶은 아찔한 경험도 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아슬아슬한 일이었다. 그래도 무사히 목적을 달성했다. 그 뿌듯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삼도봉에 종지부를 찍은 날은 햇볕도 함께 웃어 주었다.
전라북도에 걸쳐있는 백두대간 (지리산 천왕봉에서 민주지산 삼도봉까지 약 160여 키로)
지리산과 덕유산에 주로 피는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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