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교류기행> ⑵ 단군신화의 고고한 위상
단군신화, 보편의 씨줄에
빛나는 겨레의 날줄
우리의 기행은 ‘세계 속의 한국’임을 알아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세계 속의 한국’은 오늘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아득히 먼 옛날부터 있어온 사실 그대로다. 우리 겨레는 태초부터 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방일각에서 인류 문명 5천년사를 함께 엮어왔다. 그 엮음의 단초는 우리의 개국신화인 ‘단군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래 신화란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정한 역사적 경험의 상징이거나 반영이다. ‘단군신화’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이 신화는 우리 겨레의 개국이나 국조와 관련된 신화이기 때문에 그 위상과 의미가 각별하다.
‘단군신화’의 문명교류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당대의 여타 문명과 신화소(神話素), 즉 신화를 꾸미는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신화에 북방 시베리아의 초원문명에서 인간과 특별한 친연관계를 지닌 토템적 천연물인 곰을 등장시킨다거나, 고대 오리엔트문명에서 일반화한 천신(天神)과 인간의 결합에 의한 창조설이 그대로 나타난다든가 하는 것은 이러한 공유성을 말해 준다. 문제는 이러한 공유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로가 교류한 결과인지, 아니면 문명의 보편성이란 특성에 의해 나타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문명의 보편성이란 같은 환경이나 여건 아래서는 물론, 때로는 다른 환경이나 여건 속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내용과 형태에서 유사한 문명이 창조된다는 것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이러한 공유성이나 보편성도 하나의 만남이기 때문에 교류라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나타난 신화소의 공유성은 이러한 문명의 보편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바로 여기에 ‘단군신화’의 세계성이 있다.
우리는 ‘단군신화’의 문명교류사적 의미와 세계성을 당대의 다른 신화들과 비교해봄으로써 좀더 뚜렷하게 간파할 수 있다. 그 한 신화로 고대 서방신화들의 모태라고 하는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를 꼽을 수 있다. 문명사에서 보면, 약간 차이가 있는 두 신화의 비교는 시사하는 바가 있어 퍽 흥미롭다. 일부에서는 우리의 고대 신화가 수메르를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연유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천자인 환인은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서자 환웅에게 천부인 세 개(칼, 거울, 방울)와 갖가지 일을 주관하는 무리 삼천 명을 주어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란 신시로 내려보낸다. 환웅은 쑥 한 심지와 마늘 스무 개를 먹고 사람으로 변한 웅녀과 결혼해 마침내 아들 단군을 얻는다.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한 뒤 아사달에 천도해 도합 1500년 동안을 통치하다가 주나라 무왕이 보낸 기자에게 밀려 장당경에 피신했다가 아사달에 다시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1908살이다.
길가메시신화와 비교하면 곰·범과 황소·뱀이란 설정 비슷
신의 힘으로 이상실현도 유사
| △ 고대수메르신화에서 반인반수의 영웅으로 등장하는 길가메시의 부조상. 코르사바드에 있는 사르곤 2세의 궁전터에서 발견된 조상으로 품에 사자를 안고 서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소장. <대세계의 역사1>(삼성출판사 펴냄, 1990)에서 발췌 |
이것이 ‘단군신화’라면, 이에 대응되는 길가메시 신화로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유명한 ‘길가메시 서사시’다. 이 서사시는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 경이 1851년 이라크의 니네베에 있는 아슈르바니팔 궁전 지하서고에서 발견하였는데, 모두 12개의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씌어 있는 134행의 이야기다.
여신과 인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반인반신의 길가메시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첫 도시국가인 우룩(에레크)의 초인간적 힘을 가진 폭군이다. 신 아루루는 사람들의 청을 받고 점토로 털복숭이 장사 엔키두를 만들어 길가메시와 대결시킨다. 대결에서 엔키두가 패배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영원한 우정이 싹터 갖가지 시기와 음모를 함께 이겨낸다. 길가메시에게 구애를 거절당한 이쉬타르가 하늘의 황소를 빌어 지상을 파괴하려 했으나 황소는 두 사람에게 처치된다. 이에 격분한 주신 엔릴은 엔키두를 병에 걸려 죽게만든다.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신 길가메시는 영원한 생명을 찾아 대초원을 방황한다. 마침내 죽음의 바다 건너편에서 신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났으나, 그는 ‘홍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역설한다. 실의에 빠진 길가메시는 마지막 희망으로 깊은 바다에서 ‘불사의 풀’을 구해가지고 우룩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을 자다가 그만 뱀에게 그 풀마저 빼앗기게 된다. 절망 속에 운명한 그는 ‘지하세계’로 추락하고 만다.
| △ 강화도 마니산 꼭대기에 있는 참성단(사적 136호). 상고시대 단군이 둘레에 삼랑성을 쌓은 뒤 이곳에 제단을 올려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내력이 전해지는 민족의 성지다. 대원사의 ‘빛깔있는 책들’ 시리즈 가운데 <강화도>(이형구 글·사진, 1994)에서 발췌 |
두 신화의 간단한 줄거리다. 전혀 다른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배경 속에 나온 신화들로서 얼핏 보면 아무런 상관성이나 공통성이 없는 성싶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서로의 차이와 더불어 상통하는 점도 발견하게 된다. 두 신화가 모두 다양한 신화소를 통해 당대의 역사적 실상이나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단군신화’는 조선의 건국과 천도, 기자에 의한 멸망 등 역사적 사실을 시사하고, ‘길가메시 서사시’는 초기 도시문명의 갈등상을 보여주고 기원전 2350년께 남부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대홍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리고 신화의 주인공들은 신력을 빌어 자기 욕망이나 이상을 실현하려고 한다. 환웅은 천신 환인의 아들로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천부인으로 세상을 다스리며, 단군은 산신으로 세상을 떠난다. 마찬가지로 길가메시도 반인반신으로서 선지자인 우트나피쉬팀을 찾아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청하고 ‘불사의 풀’에 매달려 영생을 꿈꾼다. 그런가 하면, 은유나 상징을 동원해 신화소를 삼은 것도 두 신화의 공통점이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범은 토템 신앙의 대상이고 쑥과 마늘은 주술적 효과를 노린 상징물이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하늘의 황소’는 힘의 상징이고 뱀은 길가메시의 망상을 응징하는 영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상생의 단군신화는 상극의 길가메시보다 한수위
기승전결의 구성도 더 탄탄
이렇듯 두 신화 사이에는 문명의 보편성에서 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편, 그 자생성에서 발생하는 차이점도 분명히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하여 ‘단군신화’는 한결 돋보인다. 우선, 신화소의 짜임새에서 확연한 대조를 보인다. 보다시피 ‘길가메시 서사시’는 다양한 구조는 있은나 논리적 체계성은 마냥 약하다. 반면에 ‘단군신화’는 첫 머리를 여는 기(起)와 그 뜻을 이어받아 전개하는 승(承), 그리고 뜻을 한번 멋지게 돌리는 전(轉), 마지막으로 전체를 거둬 맺는 결(結), 이른바 ‘기승전결’ 격식이 그토록 정연할 수가 없다. 즉 환웅의 하강(기)으로 웅녀와의 혼인이 이루어지고 단군이 탄생(승)하며, 고조선의 건국에서 그 뜻이 일대 전기를 맞으며(전), 마침내 단군의 산신화로 ‘단군신화’는 유의미하게 매듭지어진다.
다음으로, 두 신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념적 지향점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매사에 갈등과 상극, 분열로 탈출구를 찾고 있으나, ‘단군신화’는 조화와 상생, 합일에 지향점을 맞추고 있다.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다’(弘益人間)라는 건국이념에서 시작하여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안다’(父知子意), 즉 천신인 환인이 아들 환웅의 웅지를 알아서 지상에 내려보내고, 환웅은 곰의 청을 받아들여 혼인하면서도 약속을 어긴 범에게는 관대했다. 단군 왕검은 아버지 환웅의 뜻을 받들어 천년 넘게 나라를 다스리다가 조용히 산에 숨어 산신이 된다. 천상세계와 지상세계의 흔쾌한 조화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서방 신화에서 흔히 보는 부자상극이나 천지간 대립 모습과는 사뭇 다른 ‘단군신화’만의 특징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단군신화’는 신화 특유의 공유성이나 보편성을 갖고 있지만, 투철한 동양사상에 바탕하고 우리 겨레의 건국이념에 충실한 신화다. 그래서 세계 신화 속에서 고고한 위상을 누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