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휘필드(George Whitefield)는 1770년 미국 뉴베리포트에서 별세했으며, 그의 영향력이 워낙 컸기에 미국과 영국 양국에서 전례 없는 규모로 장례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한 달의 시차가 발생한 이유는 당시 대서양을 건너는 통신 속도 때문입니다.
1. 미국 장례식 (1770년 10월 2일)
장소: 매사추세츠주 뉴베리포트, 제일장로교회(Old South Church)
특징: 별세 이틀 후 바로 진행되었습니다. 생전 그의 요청에 따라 해당 교회 강단 아래 지하실(Crypt)에 안치되었습니다.
분위기: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마을 전체가 마비될 정도였으며, 조종(弔鐘)이 울리고 조기가 게양되었습니다. 당시 식민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2. 영국 장례식 (1770년 11월 18일)
장소: 런던 토트넘 코트 로드 채플(Tottenham Court Road Chapel)
특징: 시신이 없는 추도 예배(Memorial Service)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설교자: 놀랍게도 그의 신학적 라이벌이었던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설교를 맡았습니다. 이는 두 사람의 화해와 신앙적 결속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이 되었습니다.
분위기: 수만 명의 인파가 모였고, 런던 전체가 슬픔에 빠졌습니다. 국왕의 서거에 준하는 예우가 갖춰졌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한 달'의 차이가 발생한 이유
통신 기술의 한계: 1770년 당시에는 전신이 없었으므로, 휘필드의 별세 소식은 범선(Sailing Ship)을 통해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전달 과정: 9월 30일 사망 소식이 담긴 편지가 미국 항구를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런던에 도착하는 데 약 5~6주가 소요되었습니다.
도착 시점: 11월 초순에야 런던에 소식이 닿았고, 이후 대대적인 추도식을 준비하여 11월 18일에 거행하게 된 것입니다.
초국가적 영향력: 한 인물의 죽음이 대서양 양쪽 대륙을 동시에 슬픔에 빠뜨린 드문 사례.
화해의 장: 신학적 견해 차이가 있었던 웨슬리가 추도 설교를 하며 기독교적 연합을 보여줌.
시대적 배경: '한 달의 시차'는 역설적으로 당시 복음 전파가 얼마나 물리적인 한계를 뚫고 열정적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증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