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의발과 법을 전해 받음.
次日祖께서 潛至 坊하시어 見能腰石 米하시고 語曰하되
求道之人이 爲法忘軀가 當如是乎하시고 卽問曰하시되
米熟也未한가 能曰하되 米熟久矣이나 猶欠篩在이니다
祖께서 以杖擊 -三下而去하시니라 能이 卽會祖意하고 三鼓入室하니
祖以袈裟로 遮圍하여 不令人見하시고 爲說金剛經이신데
至應無所住-而生其心하여 能言下에 大悟-一切萬法이 不離自性하고
遂啓祖言하되 何期自性-本自淸淨이며
何期自性-本不生滅이며 何期自性-本自具足이며
何期自性-本無動搖며 何期自性-能生萬法이리까
祖께서 知悟本性하시고 卽名丈夫 天人師佛하시고
三更受法하니 人盡不知노라 便傳頓敎 及衣鉢云하시되
汝爲第六代祖하니 善自護念하여 廣度有情하고
流布將來하여 無令斷絶하라 聽吾偈曰하시되
有情來下種하니 因地果還生하도다
無情旣無種이니 無性亦無生이노라
다음날 조사께서 가만히 방앗간에 오셔서
혜능이 허리에 돌을 지고 쌀을 찧는것을 보시고
말씀해 이르시기를
'도를 구하는 사람이
법을 위해 몸을 잊음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하니라'하시고
곧 일러 물으시기를
'쌀이 익지 않았느냐?'
하시기에
혜능이 이르기를
'쌀은 익은 지 오래였사오나
오히려 키질을 아직 못하였나이다'하니
조사께서 지팡이로써
방아를 세번 내려 치고 돌아가셨느니라.
혜능이
곧 조사의 뜻을 알고
三경에 조실에 들어 가니
조사께서 가사로 둘레를 막아 가리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시고
금강경을 설하시는데
'마땅히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지니라'하는데 이르러
능이 그 말씀 아래
일체 만법이 자기 성품
(자성)을 여의지 않음을
크게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조사께 말씀드리기를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바랐(알았)을 것이며
어찌 자성이 나지도 멸하지도 않음을 알았겠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구족했음을 알았겠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움직임(動搖)이 없음을 알았겠으며
어찌 자성이 능히 만법(온갖 만유)을
냄을 알았겠나이까? 하니
조사께서 본성을 깨달았음을 아시고
곧 '장부 천인사(하늘과 땅의 스승)인
불(부처님)'이라 이름하시고
삼경에 법을 받으니
모든 사람들이 알지 못하였노라.
즉시 돈교(인가)와
가사와 바리때를 전하시며
이르시기를
'네가 제六대조가 되었노라.
스스로 잘 지키고 보호하여(護念)
널리 중생(有情)을 제도하고
앞으로 널리 펴서 끊어짐이 없게 하라,
내 게송을 들으라'하시고
이르시기를
※
유정이 와 씨를 뿌리니
인의 땅(본성지)에서 과가 도리어 나도다
무정은 이미 씨가 없으니
자성이 없어 또한 남도 없노라.
강설:
능행자가 돌을 짊어 지고
쌀을 찧는 것을 보신
五조께서
피동적인 작업이 아니라
도를 구하기 위해 몸의 괴로움을 잊고
몸무게를 더하여 인고를 낙으로 하여
수행하는 능동적 자세를 칭찬하시었다.
五조께서
"쌀은 다 익었느냐?"하신 물음은
깨달았는가(도가 익었는가)? 함이고
"쌀은 다 익은지 오래이나
아직 키질을 못했습니다"하는 것은
도가 익었으나(깨달았으나)
아직 큰스님의 점검을 받아
인가(印可)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인가(印可)는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해 주는 것을 말한다.
방아고를 세번 치신 것은
삼경(三更)인 깊은 밤중을 뜻하며
五조께서 뒷짐을 지고 가신 뜻은
남몰래 오라는 뜻임을 노행자가
이심전심으로 알아 한밤중에
五조의 방(조실)을 몰래 찾아든 것이다.
노행자의 견처가 體인 자성의 공함을 증오
(진여인 실상체의 진제(理)를 스스로 깨달음)
했으나
금강경을 설해 주심을 듣고
속제(事)의 작용을 확연히 깨우침으로써
온갖 법이 모두 자성을 여읜 것이 아니요,
청정한 가운데 일체를 구족했으며,
부동하나 능히 만유가 이로부터
나툰 것임을 요달하게 된것이니,
見性이란
본다는 것에 국집하는 것으로써
공부를 삼는다면 그릇된 소견에
빠짐을 알아야 한다.
견성이란
곧 깨우침(覺)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비록 드러난 現狀(事)이 자성의 나툼이요
작용인 그림자와 같아 거짓된 허망한 것이라
하나 그 쓰임이 있음을 또한 알아야 한다.
말을 하면 어긋남을 안다면,
말하지 않음을 국집함으로써
그르침도 알아야한다.
五조로부터 부촉받은 法印은
형상없는 것으로써 주고 받음이요,
전법의 증표는
전법게송과 가사와 발우로
형상 있음으로써 주고 받음이다.
이 금강경
설법으로 인하여
혜능대사 이후
금강경이 소의(所依)경전으로 삼게 되었고,
달마대사로부터 전해진
능가경은
신수대사에 부쳐져 북종의 소의경전이 되었다.
五조께서
법을 부촉하시며 읊은 게송은
전법게로써 법을 印可,
법을 전할 때는 이러한 전법송을
함께 하는 것이 부처님 이래로
관행화된 바이다.
※
"유정이 와서 씨를 뿌리니
인지에 과가 난다"는 것은
인지(因地)인
마음 바탕은
인도 과도 없는 진공이나
유정인 정식이 있는 생물
(곧 일체중생)이 무기성인
돌, 철 등과 달라서
五온(색수상행식)인
거짓 나를 애착하고
상에 끄달려 집착하여
그것으로 업의 씨(因)를 만들어
(8식에 저장되어)
그 청정한 인지가 변전하여
도리어 맑아 깨끗하지 못하고
과(果)보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다.
"무정은
이미 씨가 없어 무자성이라
남도 없다" 는 것은
무정의 뜻에 두가지가 있으니
無記의 성품인 돌과 같은 것
(자체의 성품 즉 알 줄 아는
스스로의
정식인 성품이 없는 무기물들)은
짓는 것이 없으니
인(因)도 과(果)보도 없다는
뜻으로 식정이 상념을 내어
인과를 부르는 것을
대치한 뜻이 하나요.
바탕(因)인 본성은
과(果)보를 받을 씨(원因)가
공하여 맑아 깨끗한 것이라,
그러한 인을 본래 없으니
과보 또한 생길 것(남)이 없다
하는 뜻이 둘이다.
여기서
본성인 불성은 소소영령하여 밝게 아는 것이
빈 가운데 묘하게 있어 청정그대로는
인도 과도 본래 없으니
생멸이 없으나 자못 아는 것이 미혹으로 흐려
상념으로 업인을 짓게 되면 그 과보를 받아
6도 윤회를 받는 중생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정식)은 씨(업因)를 내려(지어)
본성은 맑아 깨끗하건 만
과(果)보를 받아 중생 노릇을 스스로 하며,
이것은 진아(眞我)가 아닌 자아(假我)인
업인의 가짜 나를 집착하게 됨으로써 인것이다.
형상없는 본체를
평등문으로 살피면
이미 因을 지음이 없으니
(인이니 과니 하는 것 조차 공한 가운데는 없음)
남(果)도 없는 것 이므로
아예 인이니 과니 하는 일체가 끊어진
적멸을 뜻하며,
무상, 무념으로
번뇌 망상이 끊어져 없는
본성 그대로는 부처도 중생도,
번뇌도 보리도,
생도 멸도
생사 일체가 가설한 이름일 뿐인 것이다.
차별문으로 살피면
업식 중생인 유정 즉 식정이
차별상에 끄달려 집착하는 것이
업因의 종자가 되어 果보를 받으며,
또는 초발심으로 깨닫겠다는 것
(발심)이 因이 되어 변정각
곧 불과(果)를 증득하고,
무정을 일체가 공함을 요달한
평등 진여문으로 살피면
본래 법성이 유정 무정이 달리 없고,
이름 붙이지도 못해 한 물건도 없어
깨달을 것도 미함도, 번뇌 망상도 없으니
유무를 초월한 성품은
성품이라는 것도 없는 공한 무성
(無記性)이므로
그것이 남이 없어 무생이요,
멸함이 또한 없어 원因도 없고
결果도 없음인 것이다.
따라서
因이 없으니 결국 果도 없는 것이니
공하고 공하다는 것도 공한 것이다.
그러나 항상하는 없이 있는 것이므로
眞空妙有라 하는 것이니,
반야가 없는 작용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도 부처도 참으로
허공 그대로 아무 것도 아닌 것임도 알아서
치우친 변견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理, 事가 아예 없다면
法이란것도 아예 없는 것인 것이다.
따라서
일체 공적한 평등문(진제: 理: 眞空)과
속세의 이치인 차별문인 속제(事)를
두루 깨우쳐 알아야 하는 것이다.
즉, 事理가 맞게 분명히 깨우쳐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처사의 책에 "깨달은 이는
因도 없어 지고 인이 없어짐으로
果도 없어진다" 했는데
이것은 무지의 소치인 것이니,
인이라는 것은 행업으로 생긴것이니
선인이든 악인이든 지은 업인은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깨달은 이(覺人)는
인과에 어둡지 않아 과보를 만들
조건(집착심)을 緣을 만나도 내지 않을 뿐이다.
지은 因은 언제까지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果 또한 없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님을 모르면
인과법을 모르는 것이며
불자라 할 수 없는 외도의 삿된 소견인 것이다.
또 그가 말하기를
"제8식인 아뢰야식(함장식)을
사람들이 자성의 성품으로 착각하며
그 8식을 감지한다"했으니
이 업행이 저장되는 것이 곧 아뢰야식이며
이 "아뢰야식을 감지하게 된다"는 말
안되는 소리를 서슴없이 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소견인 것이다.
因地라는 것은 본성의 바탕에
업因이 저장되는 것이 이 함장식이요,
이 성품이 없어지지 않고
일체의 행업의 因을 갈무리하고 있기 때문에
무몰식(無沒識)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8식은 자성의 성품으로
일체 행업의 因을 갈무리 하고 있어
없어지지 않는 성품이요,
따로이 자성을 떠나 존재하는 무엇이
아님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석가세존께서도
전생의 因으로 인한 果보를 받는 것임을
몸소 보여 주셨음을 상고하여
수행인들도
깨달으면 행업의 因이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말 것이며,
아울러 바른 행과 바른 닦음을
반드시 더불어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