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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랜드마크
[도시와 랜드마크]
매년 여름이 되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는 장소가 있으니, 그곳은 바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이다. 모래사장에는 파라솔이 줄지어 서 있고, 바다에는 물 반 사람 반이다. 모래사장과 바다를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산 이외의 지방에서 피서를 온 사람이다.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부산 사람들이 광안리나 해운대에서 해수욕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실은 사람들 가운데는 외국인 관광객도 더러 보인다. 이렇게 해운대 해수욕장이 유독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는 해운대가 부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landmark)’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나,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중국 북경의 천안문, 서울의 숭례문 등은 해당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의 대표적인 예이며, 일본의 후지 산이나 브라질의 아마존 강 등의 자연환경도 랜드마크적 역할을 수행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오래된 부산의 상징, 용두산 공원과 부산탑]
학창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사생 대회나 백일장은 주로 용두산 공원에서 열렸던 것 같다. 용두산 공원에는 부산 타워나 꽃시계,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충혼탑, 백산 안희제 선생 흉상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그림을 그리기에도 좋았고 충효나 애국애족 등을 주제로 글을 짓기에도 적합했다.
용두산 공원은 부산의 관광 명소나 수학여행지로도 유명했다. 1973년에 지상 120m, 해발 189m의 높이로 부산 타워가 건립된 이후에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항도 부산의 새 명물, 관광 부산의 긍지, 동양 최대의 관광 탑’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부산 타워를 올려다보면 그 아찔한 높이에 먼저 압도되고 만다. 그리고 고속 엘리베이터로 순식간에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면 발 아래로 부산항의 모습과 멀리 영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와, 부산이 가지는 지리적인 특징이나 매력을 시각적으로 체험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부산 타워 건립 초창기 3년 동안에는 해마다 약 80여 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말하자면 부산 타워는 용두산 공원이 부산 관광의 일번지로 군림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었던 것이다.
부산 타워는 건립 당시 아시아 최대의 관광용 탑으로, 1975년 7월 30일 서울의 남산 타워가 완공되기 전까지 아시아 최대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홍익대학교 나상기 교수의 설계로 4억 2000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도원관광주식회사가 건립하여, 부산시에 기증하였다. 2012년 6월 1일에 설치한 탑 정상의 등대는 국내 최고 높이의 등대이자 최초의 관광용 등대로 기록되었다. 전망대는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불국사 다보탑의 보개(寶蓋)를 본떠 만들어졌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부산 항만의 야경은 유명하다. 날씨가 좋은 날은 대마도까지 전망이 가능하다.
부산 타워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다. 부산 도시 철도 1호선 자갈치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도보로 약 10분이면 용두산 공원에 다다를 수 있다. 입구까지 에스컬레이터가 가동되어 오르기가 훨씬 편하다. 부산 타워,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팔각정, 이 세 가지가 전방에 보이면 틀림없이 용두산 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한 바퀴 산책하고 부산 타워 전망대 꼭대기에 올라 1층 하늘 정원 카페에 앉으면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덮인 옥상과 지붕이 오밀조밀 모인 주택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드문드문 고층 빌딩도 눈에 띤다. 복원된 영도 대교와 롯데백화점 광복점, 자갈치 시장, 국제 시장, 남항 대교, 대청 공원 등 바다 냄새 가득한 풍경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광안리나 해운대와는 사뭇 다른 바다 풍경 때문에 셔터 누르는 횟수가 점차 늘어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용두산 공원은 일본 관광객이나 중국 관광객들이 더 많이 찾는 장소가 되어 버렸다. 한때 부산의 정치, 경제, 문화, 소비, 관광의 중심지였던 중앙동과 남포동, 광복동은 1998년 부산시청의 이전으로 인하여 급격하게 상권이 쇠락하고 말았다. 게다가 서면이나 해운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상권이 조성되고 부산 시내의 관광 명소가 차례로 선을 보이면서 용두산 공원은 ‘구도심’, 혹은 ‘원도심’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인식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부산의 번영과 안정’을 상징하고 ‘도약의 심벌’인 부산 타워가 자리한 용두산 공원은 이제는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어르신과 비둘기들이 모이는, 말하자면 한물 지나간 분위기가 감도는 곳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공원 한쪽에는 배우 최지우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닮기도 하고 안 닮기도 한 이 동상은 벤치에 앉혀져 있는데 그 옆자리가 비어 있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최지우가 용두산 공원에 자리한 것은 그녀가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 연가」로 인기를 모아 ‘지우히메’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용두산 공원을 향수하는 사람들의 층위가 더욱 다양해지고 변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용두산 공원에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온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개장함에 따라 이 지역 상권이 부활하였고 자연스럽게 용두산 공원도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용두산 공원 내에 아트홀과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고 ‘사랑의 자물쇠 존’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자 프러포즈 장소로도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여전히 감돈다. 꽃시계 인근 벤치에서 바둑, 장기판을 펼치고 있는 할아버지들, 부산탑 주변에서 데이트하는 젊은 커플들, 그리고 가족 단위 관광객과 단체 버스로 찾은 외국인 관광객 등…. 자유로운 움직임이 느껴지면서도 각 그룹의 동선은 제한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용두산 공원만큼 부산의 역사를 대변하는 장소도 없을 것이다. 용두산 공원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신사(神社)를 조성하고 정비하면서 만들어졌다. 용두산 신사는 광복 이후 헐려 없어졌지만 6·25 전쟁으로 이 자리에는 피란민들의 판자촌이 형성되기도 했다. 6·25 전쟁 직후인 1954년 12월에는 큰 불이 나면서 용두산 주변 판자촌이 모두 불타고 민둥산이 되었다. 이후 재정비를 거치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호를 따 우남 공원이라 불렸고, 1960년 4·19 혁명 이후 공원의 명칭이 다시 용두산 공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1973년에는 용두산 공원에 그 유명한 부산 타워가 세워지게 된다. 이처럼 용두산 공원은 일제 강점기, 광복, 6·25 전쟁, 독재 권력, 산업화와 근대화, 민주화 운동에 이르는 부산의 경험과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편 용두산 공원에는 부산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만든 종각과 범종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12월 31일 ‘제야의 종’ 행사가 열린다. 지난해에 대한 아쉬움과 다가오는 새해를 맞는 기쁨이 교차하는 타종식에는 많은 부산 시민들이 모여든다. 말하자면 부산 시민은 용두산 공원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새로운 명소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가운데서도 용두산 공원이 변함없이 부산의 오래된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연유가 충분히 짐작되는 대목이다.
[부산 하면 바다, 바다 하면 부산]
1960~1970년대 부산 해운대는 신혼여행의 메카였다. 제주도가 신혼여행지로 부상하기 이전에는 충청남도 아산시의 온양 온천이나 경상북도 경주, 그리고 부산의 해운대가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각광을 받았다. 해운대가 국내 최대 규모의 해수욕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65년 해수욕장 입구 확장 등의 정비 사업을 거쳐 정식으로 개장하면서부터이다. 특히 1966년 11월 7일에 문을 연 극동 호텔의 유명세 때문에 해운대는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극동 호텔은 부산 최초의 특급 호텔로서 서울의 워커힐 호텔 다음으로 큰 호텔이었다. 지상 7층 규모에 객실 수는 115개로, 수영장과 같은 부대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특히 극동 호텔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산에 올 때나 여름휴가 때면 찾는 곳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후 조선 비치 호텔과 파라다이스 호텔 같은 특급 호텔들이 차례로 생겨나면서 극동 호텔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극동 호텔이 해운대를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1913년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휴게소를 설치하고 개발한 국내 최초의 공설 해수욕장으로 가장 먼저 개장한 송도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해운대 해수욕장[1965]이나, 광안리 해수욕장[1960], 송정 해수욕장[1965], 다대포 해수욕장[1970]은 모두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개장했다. 연이은 바닷가 정비와 해수욕장 개장으로 부산에는 많은 관광객과 피서객이 찾게 되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실천은 부산 시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도 ‘부산-바다-해수욕장’이라는 연쇄적인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해운대는 서울에서 몰려온 피서객들이 많아 ‘서울의 해운대’라고 불리기도 했다[『경향 신문』, 1970. 7. 27]. 1966년 8월 1일 자 『매일 경제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가 실려 있다.
바다라고 해서 다 같은 바다는 아닐 터. 부산의 바다, 해수욕장이 가지는 특징과 경관은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 제1호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송도 해수욕장은 개장 당시부터 긴 백사장과 해상 케이블카, 구름다리로 유명세를 떨쳤다. 반복되는 태풍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 여러 번 발생하여 이들 시설은 철거되었지만, 송도 복합 해양 휴양지 조성 사업에 의해 2016년에는 송도 해수욕장의 명물 시설들이 복원될 것이라 한다. 이미 2000년부터 5년여 간의 대대적인 연안 정비 사업으로 새롭게 태어난 송도 해수욕장은 2013년에 개장 1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송도 해수욕장의 노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1994년에 관광 특구로 지정된 해운대는 예로부터 팔경의 하나로 이름 난 곳이었다. 물이 맑고 차가우며 파도가 거센 바다도 물론이지만 해운대 온천이나 동백섬, 송정으로 이어지는 달맞이 고개는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달맞이 길을 따라 해월정과 벚꽃 단지를 지나다 보면 송정 해수욕장이 보인다. 송정 해수욕장은 특히 부산 시내 각 대학의 대학생 MT 장소로 유명하며, 결혼을 앞둔 신랑 신부들이 웨딩 사진을 촬영하는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또한 도심과 가깝고 주변 아파트 단지와도 가까운 광안리 해수욕장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또 바다 위에 펼쳐진 광안 대교가 색다른 경관을 선사한다. 다대포 해수욕장은 낙동강 하구 최남단에 위치하며 낙동강에서 흘러내려온 토사가 퇴적되어 생긴 해수욕장이다. 수온이 따뜻하고 수심이 얕아 특히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좋은 해수욕장이다.
이처럼 부산의 해수욕장은 각기 다른 특징과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매년 8월이 되면 ‘부산 바다’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 전시, 홍보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종합 관광 축제인 ‘부산 바다 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이 축제는 부산광역시와 부산축제문화진흥회가 1996년부터 해양 문화 도시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해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해변 무용제, 해상 퍼레이드, 해변 콘서트, 해양 스포츠 대회 등 바다를 주제로 한 다채로운 부대 행사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상상해 보자. 부산의 5개 해수욕장이 같은 시기에 일제히 축제를 여는 것을. 그야말로 부산의 바다는 열광과 낭만으로 가득 찬다. ‘부산 하면 바다, 바다 하면 부산’이 연상되는 연유를 바로 이런 점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부산 도시 철도 1호선 시청역을 지날 때면 안내 방송에서 국악 버전의 「부산 찬가」가 흘러나온다. 「부산 찬가」의 가사를 떠올려보니 짧은 가사 속에 수평선, 파도 소리, 그리고 갈매기 떼가 연이어 등장한다. “수평선 바라보며 푸른 꿈을 키우고, 파도 소리 들으며 가슴 설레이는, 여기는 부산 희망의 고향, 꿈 많은 사람들이 정답게 사는 곳, 갈매기 떼 나는 곳 동백꽃도 피는 곳, 아 너와 나의 부산 영원하리….” 부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서 5개의 해수욕장을 거느린 부산의 ‘바다’를 꼽는 데는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을 것이다.
[부산의 관문, 오륙도]
제주도에 올레길이 있다면 부산에는 갈맷길이 있다. 갈맷길은 부산시의 시조(市鳥) 갈매기와 길의 합성된 말로, 이 길은 해변 길, 갯벌 길, 숲길, 갈대밭길, 호수 길 등 모두 9개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모든 코스가 단절되어 있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소요 시간, 거리, 경사 등을 고려하여 상·중·하로 코스 등급을 나누어 두었기 때문에 체력이나 컨디션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9개 코스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제2 코스이다.
제2 코스는 해운대 문탠로드(moontan road)에서 시작하여 동백섬, 민락교, 광안리 해수욕장, 이기대 공원, 오륙도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어지는 길[약 6시간 소요, 난이도 하]로, 해안가 풍경을 만끽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문탠로드는 일광욕의 ‘선탠(suntan)’에서 따온 말로, 월출과 함께 달빛을 따라 달맞이 고개에서 출발하여 송정에 이르는 야경 특화 코스이다.
이 코스는 중구의 보수동 책방 골목과 함께 부산광역시가 슬로시티(slow city) 관광 명소로 지정한 곳이기도 하다. 부산광역시는 슬로시티 관계자 및 관광 전문가 회의를 통해 2009년 ‘슬로시티 협력 도시’에 처음 가입한 도시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슬로 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이들 두 곳을 슬로시티 관광 명소로 선정했다. 슬로시티 관광 명소를 선정할 때에는 부산만의 특성을 가진 자연·문화·예술을 담고 있거나 주변 관광 자원과의 연계성, 관광 명소로서의 접근성 등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갈맷길 제2 코스가 관광 명소로 지정된 것은 이 코스가 부산의 바다, 해안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자, 문탠로드, 동백섬, 해운대 해수욕장, 민락 회 타운 시장, 광안 대교, 광안리 해수욕장 등 여러 관광 자원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니 갈맷길 제2 코스는 부산의 랜드마크가 마치 줄줄이 사탕처럼 차례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갈맷길 제2 코스의 종점은 오륙도 선착장이다. 역시 갈맷길 제2코스는 오륙도를 포함하여 부산의 랜드마크를 만나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오륙도(五六島)는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밭섬]을 가리켜 부르는 말로, 방패섬과 솔섬이 썰물이면 하나로, 밀물이면 두 개로 분리되어 섬의 수가 5개 또는 6개가 되는 현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누가 섬의 이름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섬의 특징을 곧잘 포착한 것 같다.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방패섬은 바다의 세찬 바람을 방패같이 막아주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고, 솔섬은 소나무가 자생한다고 해서, 송곳섬은 마치 송곳과 같이 뾰족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수리섬의 이름은 갈매기를 사냥하기 위해 독수리가 많이 모여든 것에서 연유한 것이고, 오륙도 중에서 가장 큰 굴섬은 섬 가운데 커다란 굴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저 멀리 등대섬은 섬의 상부가 평평하여 원래 ‘밭섬’이라고 불리었으나, 등대가 만들어진 이후부터는 등대섬이라 불리게 되었다.
오륙도가 부산의 상징으로 군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다의 길목에서 부산을 맨 처음 알리는 상징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선박이든지 오륙도를 지나야만 부산항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가수 조용필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라는 가사가 등장하는 것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오륙도 앞이 항상 평온하고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밀수선을 적발하기 위해 오륙도 근처에서 잠복하던 경찰과 세관 직원이 밀수자들과 충돌하는 사건은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 밀수선이 들어올 즈음이면 상인들은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밀수선으로 쇄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때 부산은 최대의 밀수 항구로 인식되기도 했다. 아무튼 오륙도는 부산항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오륙도는 1972년 6월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었지만, 행정 구역상의 지번(地番)을 부여받은 것은 1977년 10월이며, 6개의 섬 이름이 밝혀진 것도 1996년 5월의 일이다. 말하자면 오륙도는 호적도, 이름도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내 온 것이다. 그런 채로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된 사정이 자못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는 오륙도가 가지는 상징성이나 의미가 매우 컸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91년 향토 주류 업체인 대선주조가 보리 소주인 ‘五六島(오륙도)’를 출시하여 시판하기도 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부산의 향토 기업이 당시의 신제품에 그 이름을 내 걸 정도로 오륙도는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각인되어 있었다.
최근 남구 용호동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지방 자치 단체가 오륙도 해맞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이곳은 유채꽃을 비롯하여, 아기범부채, 패랭이꽃 등의 야생화와 루드베키아, 해국, 해당화 등과 같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꽃들이 철마다 만발한다. 한여름에 성급하게 핀 코스모스도 사랑스럽다. 그리고 여기에 푸른 바다 빛과 흩어지는 파도, 그 사이에 조용하게 서 있는 오륙도의 광경이 더해지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주변에는 안내소와 카페, 전망대, 해안 산책로 등이 마련되어 있어 기암절벽을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오륙도를 일주하는 관광 유람선을 타면 더욱 가까이에서 오륙도를 느낄 수 있다. 등대섬에 잠시 기대 등대도 구경할 수 있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말끔하지도 않은 유람선이지만, 이마저도 거센 풍랑이 일면 탈 수 없다.
현재 오륙도 인근에는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스카이워크’가 벌써부터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국비 14억 여 원을 투입해 만든 이 시설은 해안에서 공중으로 9m가량 튀어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어 관광객들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을 받으면서 오륙도의 절경을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다. 환경 파괴와 훼손을 이유로 부산녹색연합 등 지역 환경 단체들이 설치 반대를 주장하였지만 지역 브랜드 개발과 장소 마케팅 등의 급물살을 저지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작은 낚싯배와 관광객, 방파제에 일렬로 늘어선 강태공, 그리고 배낭을 메고 건각을 자랑하는 길동무가 모두 오륙도와 함께 하는 가운데 서서히 해가 넘어간다.
[수평선과 포물선의 만남, 광안 대교]
광안 대교는 2013년 개통 10주년을 맞았다. 1994년에 착공하여 2003년에 개통하기 까지 약 9년의 세월을 보냈고, 이후 지금까지 10년이 지났다.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교량의 형식이나 공법의 타당성 등을 놓고 논란이 많았고, 또 담합 입찰과 시공사 부도 등과 같은 사업 비리, 경영 위기가 잇따르기도 했다.
미관상의 문제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같은 다리인데도 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온갖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고 부산의 광안 대교는 흉물스럽게 여겨지는 것일까. 돈의 문제가 아니라 다리를 짓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안목과 심미안이 문제인 것이다. 같은 돈을 들여서도 문화를 중시하며 사업을 전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경향 신문』, 1999. 4. 28]는 지적이 따갑고 아프게 느껴지던 시절을 거쳐 지금의 광안 대교는 탄생했다.
총 길이 52㎞에 이르는 해안 순환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변 경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의 해안을 잇는 부산 해안 순환 도로는 강서구 가덕도와 거제도를 잇는 거가 대교[8.2㎞]에서 시작되어, 강서구 신호동과 명지동을 잇는 신호 대교[840m], 강서구 명지동과 사하구 신평동을 잇는 을숙도 대교[5.2㎞],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잇는 남항 대교[1.9㎞], 2014년 4월 준공되어 영도구 청학동과 남구 감만동을 이어주게 될 북항 대교[3.3㎞], 그리고 광안 대교 등, 총 7개의 해상 교량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영구 남천동과 해운대구 우동을 잇는 광안 대교[7.4㎞]는 도심의 교통난 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산 해안 순환 도로의 백미’로 꼽히면서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부상했다. 해운대에서 남천동으로 향하는 상부의 풍경은 특히 빼어나다. 금련산 자락 끝에 부드럽고 완만하게 펼쳐진 광안리 해수욕장의 전경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하부를 달리면 멀리 푸른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요트와 햇빛에 반사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센텀 시티와 해운대 지역의 초고층 빌딩을 확인할 수 있다.
밤이 되면 광안 대교는 최첨단 조명 장치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현수교와 철골 트러스 구간[1,680m]에 설치된 LED 조명등은 10만 가지 이상의 다양한 색상으로 시간과 요일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화려한 야경을 만들어 낸다. 광안 대교의 또 다른 이름이 왜 ‘다이아몬드 브리지(Diamond Bridge)’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보석 같은 불빛들이 수평선과 폭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밤바다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모래사장과 인근의 카페, 레스토랑, 음식점 등에는 광안 대교가 뿜어내는 빛의 향연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마다 가을에 광안 대교에서 펼쳐지는 부산 불꽃 축제는 부산을 대표하는 가을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5년 11월 16일 APEC 경제 지도자 회의를 축하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해상 쇼가 펼쳐진 것을 계기로 다음 해인 2006년부터는 부산 불꽃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매년 특이한 모양의 불꽃과 대형 불꽃이 선보이는데, 특히 광안 대교에서 바다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길이 1.2㎞의 나이아가라 불꽃은 장관을 이룬다.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기도 하고, 1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운집한 광안리 바닷가에 남겨진 쓰레기와 교통 체증은 짜증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광안리의 가을밤을 물들일 불꽃들을 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곳을 찾는다.
광안 대교는 영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다. 최근 광안 대교에서 촬영한 영화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 「돌려 차기」, 「가발」, 「태풍」, 「가면」, 「마이 뉴 파트너」, 「마린 보이」, 「인사동 스캔들」, 「해운대」, 「무적자」, 「부산(父山)」, 「도쿄 택시」, 「푸른 소금」 등이 있다.
해운대 센텀 시티와 마린 시티, 광안리 해수욕장, 수영만, 용호만 일대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광안 대교는 ‘부산을 상징하는 건축물’ 1위에 꼽히며 부산 시민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도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광안 대교는 지역 브랜드에서 국가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안 대교는 2006년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건설교통부]에서 최우수 길로 선정된 것에 이어 2012년에는 미국 CNN이 발표한 ‘2012년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선’에 4위로 선정될 만큼 명성이 높아졌다. 광안 대교의 수평선과 곡선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는 더 이상 ‘흉물’이 아니며, 광안 대교를 소유한 부산 사람들의 ‘문화적 안목과 심미안’도 이제는 제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