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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실례와 설교
■ [3일 동안만 본다면] 이라는 책을 보면 헬렌 켈러의 이러한 글이 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 하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직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 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 모습을 내 손 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아리따운 몸매 등을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속 깊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친구들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 들에 피어 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엔 영화관에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짝 거리는 거리, 쇼 윈도우에 진열돼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하여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헬렌 켈러가 그렇게 원하였던 것을 우리는 매일 매일 경험하고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신 안에는 주어져 있는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내 손에 없는 것들만을 추구하며, 원망과 불평하며 사는 것이 나도 모르게 습관화되어 있다.
■ 크로스비 여사(1820-1915)는 앞을 못 보는 소경으로서 9,000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썼다.
크로스비는 선천적인 소경이 아니라 후천적인 소경으로서 식모의 불찰로 소경이 되었으나, 어려서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듣고 영의 눈이 열려서 기도하는 중에 신령한 노래를 많이 썼다. 그는 아홉 살 때에 이렇게 기도하였다.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우리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말하기를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그녀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깊은 느낌을 갖게 된다.
1868년 /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1868년 / 417장 주 예수 넓은 품에
1869년 / 31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1869년 / 439장 십자가로 가까이
1869년 / 498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1871년 / 255장 너희 죄 흉악하나
1873년 /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1873년 / 532장 주께로 한 걸음씩
1875년 / 380장 나의 생명 되신 주
1875년 / 384장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875년 / 540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1875년 / 615장 그 크신 일을 행하신
1880년 /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주께
1881년 / 531장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1885년 / 40장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1892년 / 608장 후일에 생명 그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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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249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 공저자인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거주하는 윤석언 선교사 / 그는 23살 때인 1991년, 청년들을 태우고 교회로 가던 중 대형 트럭과 충돌하여 뇌출혈과 중추신경 손상으로 혼수상태로 있다가 기적적으로 40일 만에 깨어났다. 그 후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어야만 생리현상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28년 동안 지냈다.
그는 지난 1989년 버지니아의 에버렛대학 종교학과에 입학했으나 1991년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 판정을 받고 학업을 중단했다. 그후 2011년 경희대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해 2015년 졸업했다. 이어 2015년 월드미션대학교 목회학 석사과정을 시작해 5년 만인 2020년 6월 6일 월드미션대학교 온라인 졸업식에서 총장 특별상을 받으며 목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어느 감사절 날 저녁에는 기도하기 전에 갑자기 이런 감사를 했다고 한다.
❶ 지난 1년 동안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음을 감사합니다.
❷ 부모님과 동생 식구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음을,
❸ 폐렴 없이 숨을 편히 쉴 수 있음을,
❹ 공부하는 동안 심한 욕창으로 고생하지 않음을,
❺ 입으로 먹고 마실 수 있음을,
❻ 신학공부를 통해 훌륭한 신앙의 친구들을 만나 교제할 수 있게 하심을,
❼ 이 큰 머리로 학업을 열심히 좇아갈 수 있는 열정을 유지시켜주심을,
❽ 부양해야 할 자식이 없고, 잔소리하는 아내가 없음을,
❾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수 있음을,
❿ 이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하나님의 천사들을 삶 속에 보내주심을 감사했다.
그의 가족들은 1991년 8월 23일 사고 후 2020년 8월 24일에 집에 돌아왔다. 29년하고 하루 만에 병원과 요양원이 아닌 집에 돌아와 2주간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9월 6일 새벽에 부모님 품에서 편안히 잠들었다.
그는 2001년 ‘마음은 푸른 창공을 날고’ 시집, 2018년에는 ‘꼼짝할 수 없는 내게 오셔서’라는 병상일기를 수필로 출간했다. 이 책에서 윤 선교사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나의 빈자리를 가득 채워 주시는 분, 나의 사랑 나의 힘이 되어주시는 주님, 오직 그분만의 뜻과 정성을 다해 찬양하며 한 걸음씩 주님께 다가가겠습니다.” 그는 책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이들과 일상 속에 경험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과 나눴다. 그는 이 책의 수익금 모두를 선교사들을 위해 사용키로 했다.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서는 그를 문서선교 선교사로 불렀다.
윤 선교사는 하나님께 ‘하루라도 빨리 나를 주님 곁으로 데려가 주세요. 죽고 싶어요. 그만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가 주세요’라고 할 만큼 저혈압으로 인한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매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데 그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중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된 추수감사절의 유래
16세기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얼마 지난 다음에 하나님 한 분만 바로 믿고 이 땅에서 순례자로 살면서 영원한 천국의 승리의 삶을 살겠다고 작정했던 청교도들이 당시 완전한 종교개혁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던 네덜란드로 가서 11년을 살았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저들이 바로 신앙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었는데 또 가톨릭의 박해를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에서도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해서 ‘스피드웰호’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기로 작정했다. 배가 항해를 하는 도중 고장이 난 배를 바꿔 탔는데 그것이 ‘메이플라워호’이다.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중 반 이상이 굶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게다가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해마다 겹치는 흉년으로 고통을 당했다. 도무지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금식기도를 선포하고 이들이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 이 상황을 돌보아 주십시오.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를 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또 한 번 대단히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자 그들은 다시 금식 기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식 기도를 놓고 의논하는 자리에서 어떤 농부 한사람이 이렇게 제의를 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금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달리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농사가 흉년이 들고 형제자매들이 병으로 쓰러지는 어려움을 겪지만 이 가운데서도 우리가 감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량이 풍족치 않고 여건이 우리가 살았던 유럽보다 편안하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던 신앙의 자유가 있고 정치적인 자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 앞에는 광대한 대지가 열려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금식 대신에 감사기간을 정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농부의 그 말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화를 주었다. 그래서 금식기도 주간을 선포하는 대신 감사주간을 선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한 것이 감사주일의 기본 동기가 된 것이다.
원래는 북 버지니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영국의 왕권이 거기까지 미쳐서 그곳에서도 바로 신앙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겠다는 것을 먼저 감지하여 허드슨 강 유역 - 오늘의 뉴저지 지역에 자리를 펴려고 했다.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선장이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니까 '여기가 허드슨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려섰다. 102명이 도착했는데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 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이들이 그 다음에 한 것이 있었다. 가장 처음 한 것이 예배당을 건축했다.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라고 해서 학교를 지었다. 오늘날 그 정신이 소위 미국의 명문대학이라는 IVY League 대학의 주춧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자기 집을 지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추수감사절에 청교도들에게 있었던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일 뿐이다.
사실은 그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셨다. 저들은 허드슨 강가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거기는 당시에 유럽 사람들이 신대륙을 찾는다고 탐험대를 조직해 그곳에 와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성이 난 원주민 인디언들이 백인이면 무조건 잡아 죽였는데 가장 극심하게 전쟁을 치렀던 장소가 바로 뉴저지 지역이었다. 만약 원래 가려고 의도했던 그곳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배를 정박했다면 전혀 무장하지 않은 이 청교도들이 십중팔구 인디언들에 의해 죽었을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사악한 사람의 거짓말까지 사용하셔서 그들을 살 수 있는 땅으로 인도하셨다. 그런가하면 북쪽의 플리머스, 뉴잉글랜드 지방은 페스트가 지나갔다. 95%의 사람이 비참하게 죽었다. 그랬기에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이 인디언들은 백인들이 들어오니까 백인들을 향해서 여러 마술사들을 동원해서 주술을 행하여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의 인디언이 이 백인 청교도들 마을에 와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라고 영어로 말을 하자 깜짝 놀랐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스칸토라는 사람인데, 그는 전에 영국 탐험가들에게 붙잡혀서 스페인의 노예로 팔렸다. 스페인에서 노예 생활하다가 간신히 탈출해서 영국으로 갔는데, 영국에서 숨어 지내는 동안 영어를 좀 배웠다. 거기서 마음 따뜻한 몇 사람들이 돈을 모아 주어서 6개월 전에 이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스칸토는 저들이 선량한 백인임을 알고 함께 지낼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는 뉴잉글랜드 지방, 메인 주, 그 주변 여러 지역들을 총괄하는 가장 큰 추장을 데리고 와서 함께 평화조약을 맺어 청교도들은 거기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하나님의 손길은 그 역사 배후에서 계속 준비하셨다. 애굽에 야곱의 식구들을 보내기 전에 요셉을 먼저 보내 준비시키신 하나님이셨다. 다른 사람 눈에는 우연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 눈에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다. 그랬기에 청교도들이 인디언 원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었고, 그들과 화친하면서 함께 살 수 있었다.
■ 발명왕 에디슨 / 어린 시절, 기차에서 신문팔이할 때의 일이다. 그는 발명을 위해 온 시간을 바치는 사람인지라, 기차 안에 자그마한 실험실을 만들어놓고 연구를 계속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차가 덜커덩거리는 바람에 약병 하나가 떨어지면서 연구실에 불이 났다. 그 불로 인해 그동안 연구해왔던 자료들이 몽땅 타버렸다. 그런데 자신이 그런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고 그곳에 머물러 있던 그를 차장이 달려와 차창 밖으로 내던져 목숨을 구해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때 귀를 심하게 다쳐 귀가 멀게 되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 발명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나는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지만, 아무리 주위가 시끄러워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연구에 몰두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바꿔 생각해보면, 깨닫지 못해 그렇지 감사할 것밖에 없다.
■ 김의신 박사 / 세계 최고의 암전문 병원인 미국 텍사스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 31년간 봉사하였다. 미국 최고의 의사로 2번이나 뽑혔다. 신앙이 암 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찬양대원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해보니 성가대원들의 면역세포(일명 'NK세포') 수가 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1000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고 한다. 감사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유익하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사람들의 직업 중의 하나가 음악 지휘자이다. 미국 미네소타 의과대학교 데일 앤더슨박사는 지휘봉을 흔드는 것이 심폐기능을 강화시키고 유연성을 길러주며 엔돌핀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5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89세, 카라얀은 81세, 아드리언 볼트는 93세를 누렸다. 어차피 교회 생활하는 것 매사 불평과 원망으로 하지 마시고 감사로 하시기 바란다.
■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감리교 교회의 한 사모님의 간증 /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려고 의사가 개복을 했다. 그런데 너무 암이 커져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크리스천 의사였던 주치의는 공책과 볼펜을 가져다주며 “사모님! 특별히 할 일도 없으시니까, 일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했던 일이 있으면 열심히 적어 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감사를 적으려고 하는데 처음에는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의사선생님이 하라고 하니까 하자고 감사를 적기 시작했다. ‘첫 번째, 예수 믿어 구원 받게 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두 번째, 못된 성격이지만 이렇게 목사 사모가 되어서 교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 번째, 우리 아이들이 믿음 안에 건강 안에 잘 자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만에 137개를 적었다. 그렇게 감사를 적었을 때 의사가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까 ‘사모님! 이제 복수에 물이 차면 와서 한 번씩 빼시면 될 것 같고 이제 집에 가서 쉬시는 게 낫겠습니다.’하며 퇴원시켰다. 그런데 퇴원한 후에도 매일 감사일기를 적었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감사한 것을 계속 적었다. 계속 감사를 적다 보니 은혜가 충만해졌다.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았는가에 감격하게 되고 기쁨이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모님이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아픈 몸을 이끌고 다니면서 교인들을 심방하고, 불신자에게 가서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해주고 이런 일을 반복했다. 교인들은 걱정했다. ‘사모님이 곧 돌아가신다는데 저러고 돌아다니시면 어쩌나?’ 그런데 사모님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기 시작했고, 미음이나 죽을 먹고 또 밥을 먹으면 소화도 못 시키는데 어떨 때는 그냥 밥을 먹는데도 소화가 잘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으로 식사를 하여 몇 달 후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았다. 검진을 한 의사는 "사모님!! 암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라고 놀랐다고 하였다.
■ 감사생활 /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한 후, 1993년부터 한국에서 사회부 기자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한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예기치 않은 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위 ‘뼈아픈 좌절’을 경험하였다.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정난, 하던 일의 실패, 회의와 절망 그리고 무능하다는 자책이 그를 짓눌렀다. 그렇게 벼랑 끝에 서 있던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감사를 습관화해 보라’는 권유를 했다. 처음에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며 왜 감사해야 하는지 몰랐지만, 2009년 11월 2일부터 노트 한 권에 100일 동안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매일 100번씩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감사할 제목이 전혀 보이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는데 감사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0년 4월 20일부터는 <감사 편지 쓰기 운동>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매일감사’라는 제목으로 감사일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돌아다보니 패배, 좌절, 무능이라는 점령군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적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가 기적을 만드는구나’ ‘행복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행복이 감사를 만드는구나’ ‘성공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가 성공을 만드는구나’ ‘기쁨 때문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가 기쁨을 만드는구나.’
2012년 2월에는 그동안 쓴 감사일기를 중심으로「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그는 일본에서 천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 의사가 말한 내용을 인용하였다. ‘사람들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목록’ 중의 첫 번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였다. 죽음을 앞에 둔 많은 사람들이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주위 사람들에게 하지 못한 것이 그토록 후회가 되더라는 말이다. (내 인생을 바꾸는 감사 레시피 / 정지환)
■ 독일의 전 재무장관이었던 마르티 바텐은 젊었을 때 생활이 가난하여 지방으로 출장을 가면, 최대한으로 여비를 아끼기 위해 값이 아주 싼 여관을 골라 투숙했다. 한번은 출장 중에 허름한 여관에 투숙하여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자신이 신고 왔던 구두가 없어졌다. 그는 허탈한 마음으로 ‘하필이면 왜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가게 하시나.’라고 중얼거리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마침 그 날이 주일이어서 교회에 가기 위해 여관 주인에게 헌 신발을 빌려 신고 교회에 갔다. 그런데 그는 교회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중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밝은 얼굴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이 넘치는 모습으로 예배드리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신발을 잃어버렸다고 하나님께 원망하고 투덜댔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좋고 비싼 신발이 있어도 그 신발을 신을 다리조차 없는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후로부터 그는 무조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자연히 좋은 인품에서 배어나오는 온화함으로 인해 날로 더욱 존경받는 장관이 되었다.
■ 알라바마주에 가면, 약 28,000명의 인구를 가진 엔터프라이즈라는 이름의 소도시가 있다. 이곳에 있는 재판소 앞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새겨진 돌비석이 서 있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은 벌레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그 벌레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번영의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 주었다.」 본래 엔터프라이즈는 목화 특산지였다. 그런데 1895년, 난데없이 벌레 떼가 몰려와 목화 생산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주민들이 경제적인 고통을 겪었고, 잠시 동안이지만 깊은 실의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목화 대신 땅콩을 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목화를 재배할 때보다 경제적으로 더 윤택한 삶을 살게 되었고, 국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곳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벌레 때문에 생긴 변화를 후대에 전하기 위해 재판소 앞에 ‘벌레에게 감사하는 비석’을 세운 것이다.
예기치 않은 재앙이 찾아왔지만 사람들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여 더 나은 삶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화 생산을 중단하게 만든 벌레 떼에게 오히려 감사한다는 표현까지 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평소 얼마나 감사생활을 하고 있는지? 누구에게 주로 감사하고 있는지? 하나님께는 얼마나 많이 감사하고 있는가?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말을 쏟아낸 적은 없는가? 하나님께 오히려 원망의 화살을 쏘아 보내지는 않았는지?
감사를 하면
SBS 스페샬에서 ‘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에 포천중문의대 이병욱 박사의 ‘JPT 건강법’을 소개하였다. 기쁨(Joy), 기도(Pray), 감사(Thank)건강법이다. 우리 몸은 기뻐할 때, 기도할 때, 감사할 때 세포가 즐거워하고 춤을 추고 좋아하여 운동성과 면역성이 강화되어 웬만한 암세포들도 이 JPT 앞에는 맥을 못 춘다고 한다.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병욱 교수는 ‘암은 면역질환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할 수 있으면서도 낯설어하는 면역증강법이 있다. 바로 죄를 참회하여 눈물을 흘리고, 감사하며 웃음을 짓고, 건강을 위해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창조질서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감사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오늘날도 감사를 표현하면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감사는 기적의 통로이다.
감사하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관계가 풀리는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시어머니 마음도 열리게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재료이다.
감사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는 기적을 일으킨다.
감사는 가정이나 직업에 대한 만족감과 기쁨을 증가시켜준다.
감사는 인간관계를 향상시키고 갈등을 해소하며 사랑이 넘치도록 만들어주는 기적의 힘이 있다.
감사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드는 기적을 일으킨다.
감사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감사는 시기하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감사는 막힌 담을 헐어 형통케 하는 기적을 일으켜 준다.
감사는 비판과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녹이는 기적의 힘이 있다.
감사는 고칠 수 없는 내 성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기적의 힘이 있다.
감사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 받는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란다.
절벽 앞에서도 감사하면 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는 믿음의 척도 /
기독교의 신앙은 ‘감사’에서 시작하여 ‘감사의 생활’을 하다가 천국에서도 ‘감사로 영광을 돌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사란 다름 아닌 ‘창조와 구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원동력이 되며, 믿음ㆍ소망ㆍ사랑을 늘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된다.
기독교인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알고 감사하는데 바로 이 감사가 예배의 동기이다.
히 11:4 / 아벨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인이 드린 것보다 훨씬 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을 드린 것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예물을 기꺼이 받아 들이셨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랜 옛날에 죽은 아벨에게서 우리는 지금도 많은 교훈을 배우는 것입니다.
아벨의 예배가 상달된 것은 믿음에 근거한 신앙생활과 그러한 마음에서 제물을 드렸기에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신 것이다.
영과 진리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린 예를 욥에게서 볼 수 있다.
욥 1:20-22 / 그 말을 듣자 욥은 자리에서 일어나 슬픔에 못 이겨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얼굴을 묻으며 21) 이렇게 말하였다. ‘어머니 뱃속에서 빈 몸으로 나온 이 몸 다시 빈 몸으로 돌아갈지라. 여호와께서 주셨으니 가져가지는 분도 여호와시라.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받으실지라.’ 22)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도 욥은 그릇된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구약성경에서 감사라는 말은 동사 [야다](감사를 드리다)와 명사[토데](감사를 드림)로 표현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쓰이고 있는 이 [야댜]와 [토데]는 ‘마음의 샘줄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마음에서 샘줄기가 흐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에게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곧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것이 그의 속에서 샘솟는 샘물이 되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할 것이다.’(요 4:13-14)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조금 더 말씀을 이어서 보자.
요 4:15-28 / 여자가 `선생님, 그 물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면 저는 다시 목마르지도 않고, 날마다 물을 길러 이 먼 길을 오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청하자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네 남편을 데려오라.' 17-18) 그러자 여자는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말이 옳다.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너와 같이 사는 남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한 것이다.'
실제로 이 여인은 남편과 사별을 했거나,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당했거나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와는 동거를 하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왜 그랬을까? 어떤 남자에게서도 행복 또는 만족이라는 것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실정에서 회당(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도 기쁨이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었다. 여인의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적지 않은 나이인 것은 사실이다. 오랫동안 실망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가 자기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요 4:19-20 / 여자가 말하였다. ‘선생님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는 예언자이십니다. 20) 그러니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조상들은 이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왜 유대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유일한 예배 장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까?’
오랜 동안 예배를 드린다고 드렸으나 만족이 없다보니 하나님께 대한 감사라든가 삶에 감사생활이란 것은 제대로 없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고쳐야 할 점을 지적해 주셨다.
요 4:21-24 /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여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온다. 예배는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드리느냐가 중요하다. 너희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 유대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예배를 드린다. 이는 구원이 유대 사람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버지께서 이런 예배를 우리에게 원하신다.’
그러자 여인은 메시야가 오시면 하나님께로부터 평안이 올 것이며, 감사한 마음도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했다.
요 4:25 / 여자가 말하였다.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야가 오시리라는 것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모든 일을 우리에게 다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 4:27)
그러자 여인은 어떻게 하였는가?
요 4:28-30 /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와서 보세요. 나의 지난날을 낱낱이 알아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와서 그분을 만나보세요.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30)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보려고 동네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 감사에 대한 말을 조금 더 이어간다.
신약성경에서는 [유카리스테오스](감사한 마음을 가지다. 감사를 드리다), [카리스](감사)라는 말이 명사로 쓰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감사라는 말은 또 영어로는 THANKS인데 이 말은 ‘생각한다’란 뜻을 지닌 THINK에서 나온 말이다. 다시 말해서 감사는 깊이 생각하는 것으로 인생을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 저절로 나오는 행동인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지를 보면 바로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의 감사는 모든 시편마다 언급되고 있으며, 주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주제가 되고 있다. 이처럼 ‘감사를 드림’은 예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민족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민족은 감사함으로 성전에 들어갔으며, 예배를 드릴 때에도 감사의 노래를 불렀으며, 서원을 드리는 제사를 올리면서도 감사를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다름 아닌 야훼의 이름에 감사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의 감사는 바로 신앙에서 온 것이었다.
▶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역설했다.
살전 5:18 / 어떤 처지에 있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뜻입니다.
바울이 감사생활을 강조한 것은 감사가 믿음을 온전케 하기 때문이다. 감사는 은혜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 은혜에 감사할 때에 성도들은 더욱 더 그 은혜 안에서 굳건한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다.
또한 감사는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며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해준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의 역사를 경험케 하며 이러한 계속적인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윤택하게 한다. 우리들이 가진 것 중에서 아무 것도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다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감사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 밖에도 일반적인 생활에서의 감사(살전 5:18)가 있는데 이 감사야말로 긍정적인 신앙생활의 원동력이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는 감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임재하심이 없을 뿐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영혼도 병이 들었거니와 복음도 널리 전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가성 여인처럼 성경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요,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도 아니며,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도 아닌 나름대로 열심을 했지만 왜 어두운 신앙생활만 한 것일까? 큰일에는 감사를 했지만 작은 일에는 감사를 하지 않았고, 큰일에는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겠지만 작은 일에는 매사에 불평불만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불평불만보다는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감사로 일관하여 그러한 모습을 이웃 사람들에게도 보이도록 하자.
롬 10:8-10 / 사실 믿음을 통해 얻는 구원은 먼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과 입에 있습니다. 9) 만일 여러분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 하고 고백하고 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굳게 믿으면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을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고 그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입으로 고백함으로써 확실하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1. 감사는 믿음을 온전하게 해 줌(골 2:6-7) / 믿음으로 받은 은혜 감사해야 함(살후 1:3, 2:13-14, 골 3;15) 감사는 더욱 은혜를 넘치게 함(고후 4:15, 9:8, 골 2:7) 감사는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까지 온전케 하심(엡 4:13, 15-16, 골 2:9-10, 고후 4:14-15).
2. 감사는 장래를 확실하게 해 줌(살전 5:18) / 소망가운데 감사해야 할 일(빌 4:6-7, 롬 12:12, 15:4, 살전 5:18) 소망으로 구원 얻음(롬 8:24, 살전 5:8, 히 7:19)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심(유 21, 딛 3:6-7, 골 1:27, 롬 8:24-25)
3. 감사는 삶을 윤택하게 해 줌(고후 9:8) /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해야 함(살전 5:18, 골 3:15-17, 4:2) 주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넘치면 우리 생활에 윤택함을 얻음(빌 4:4-7, 딤전 6:17-19, 고후 9:8, 10, 15) 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살전 5:18, 골 1:11-12, 3:15, 17)
히 13:1-3 /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제사] 진실한 형제애를 가지고 꾸준히 서로 사랑하십시오. 2) 잊지 말고 나그네에게 친절히 대하십시오. 늘 나그네를 잘 대접하던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일도 있었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자들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그 처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고 고난을 함께 나누십시오. 학대받는 사람들의 슬픔에 동참하십시오. 여러분은 그들이 당하는 슬픔이 어떤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히 13:15-16 / 예수의 보살핌 속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시다. 그리하여 언제나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립시다. 16) 착한 일을 하며 궁핍한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잊지 마십시오. 이러한 제물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영적 생활하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소망 가운데 윤택한 생활을 유지함과 동시에 이웃을 향한 배품의 손길을 내미는 성도가 되자.
♬ 날 구원하신 주 감사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 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도 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맺는 말 / 소록도에도 나병환자들의 교회가 있는데 그 입구에는 ‘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고 쓰여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신앙의 표시이다. 그들은 건강한 사람이 사는 동리에 교회를 개척하고 또 많은 선교비도 지원한다고 한다.
탈무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늘 배우려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만족하면서 항상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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