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심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실수가 완덕에 이른 사람들에게는 결점이 될 수 있겠지만, 이는 장차 그 사람이 진보할 수 있는 계기와 바탕이 될 것이므로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이제 막 죄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은 초심자들에게는 장려할 만한 심성이며 앞으로 깨끗한 양심을 지니게 될 징조입니다. 그러니 신심이 진보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장애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향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사랑이 자라게 하여 그 사랑으로 점차 죄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없애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
영적 지도를 처음 시작할 무렵, 베르나르도 성인은 영적 지도를 청하는 사람들에게 육신을 위하는 일을 그만두고 영혼에 유익한 일만 하라고 매우 엄격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때 작은 잘못도 몹시 나무랐으며, 완덕에 이르고자 하는 초심자에게도 완벽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들의 용기를 꺽고 좌절하게 만들어 덕을 계속 쌓으려는 의지마저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
필로테아 님, 이 위대한 성인이 그렇게 한 이유는 성덕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열정 역시 훌륭한 덕입니다. 그러나 그의 열정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시어 이를 꾸짖으시고 그의 영혼에 온유함과 자상한 마믕를 심어 주셨습니다. 그 뒤 베르나르도 성인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지나치게 엄격했던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고 모든 이에게 괸대하고 친절하게 대하여 바오로 사도처럼 '모든 이에게 모든것 omnibus omnia'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예로니모 성인은 그의 영적 딸인 바울라 성며의 전기를 쓰면서, 그녀가 고행에 너무 집착하여 에피파니오 성인의 충고도 무시했으며, 그녀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죽음을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건강마저 잃었다고 기록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녀를 칭찬하지 않고 비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나는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그녀와 내가 섬기는 예수님 앞에서 사실 그대로를 기록했다. 내 글은 그녀에 대한 전기일 뿐, 찬양의 글이 아니다. 내가 지적한 그녀의 결점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덕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로니모 성인의 이 말은 바울라 성녀의 결점 이 추심자에게는 미덕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완덕의 경지에 가까이 도달한 사람들의 결점이 아직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덕으로 여겨질 수 있는 법입니다. |
회복기에 있는 병자의 다리가 붓는 것은 병세가 호전되어 체내 노페물이 없어지는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으로 좋은 중세에 속합니다. 그러나 건강하던 사람이 다리가 갑자기 붓는 현상은 혈액 순환 장애와 체력 감소로 말미암은 나쁜 증세입니다. |
필로테아 님, 비록 결점이 다소 있다 해도 덕을 기르고자 노 력하는 사람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인들도 역시 그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결점이 있다 해도 충실하고 신중하게 덕을 기르는 데 힘쓰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며, 우리 자신의 지혜를 과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지도자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 |
많은 사람들이 덕이라고 믿는 것이 실제로는 덕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영성 서적 중에는 여러가지 신비 상태인 황홀경, 탈흔, 신비적 일치, 공중 부양, 모습 변화 등에 대해 기술한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책들은 영혼을 순진한 지적 관상으로 이끌어, 육체적인 생활에 거의 얽매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
필로테아 님, 이러한 신비 상태는 절대로 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덕에 대한 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느님께서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생의 기쁨을 사람들이 갈망하게 하시려고 잠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총을 얻으려는 원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
이러한 특수한 은총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 곧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은총이 우리의 노력이나 의지로 얻을 수 있는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현재 목적은 올바른 사람, 경건하고 신심 깊은 사람이 되는 데 있으므로 무엇보다도 이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
그러면 하느님께서 이를 기뻐하시어 우리에게 천사와도 같은 완전함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행하기를 명하시는 인내, 친절, 극기, 겸손, 복종, 청빈, 정결, 온유, 충실, 열성과 같은 덕을 쌓고자 겸손하게 그리고 헌신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
그대가 지닌 높은 지위를 기꺼이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십시오. 그렇게 높은 지위는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가치가 없습니다. 그분의 나라에서 접시 닦이, 짐꾼 등과 같은 하찮은 일꾼으로 일하는 것에 만족하십시오. 훗날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신하로 부르시지 않겠습니까? |
필로테아 님, 영광의 임금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종들에게 지위에 따라 상을 주시지 않고 그들이 행하는 사랑과 겸손을 보시고 상을 주십니다. 사울 임금은 자기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을 만나 겸손하게 조언을 청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었고(1사무 9장 참조), 레베카는 아브라함의 낙타에게 물을 마시게 해 줌으로써 . 이사악의 아내가 되었으며 (창세24장 참조), 보아즈의 하인들의 뒤를 따라 겸손하게 이삭을 줍던 룻은 보아즈의 눈에 띄어 그의 도움을 받다가 마침내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룻2-3장 참조). |
그런 특별한 은총을 받았다고 믿는 사람은 잘못된 생각과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선량하지도 않을뿐더러 생각과 행동은 그렇지 못하면서 말만 앞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절대로 비방하거나 경멸해서는 안 됩니다. |
그저 다른 사람이 받은 큰 은총에 대해 하느님을 찬미하는 동시에,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무력한 우리 자신에게 합당힌 길을 걸어가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이 이길을 충실하고 겸손하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