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ARO 12월
거리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 진다. 웅성웅성 목소리들이 메아리처럼 이어진다. "종려시아냐?" "앗, 종리사다!" "종려시야,종려시!" 배우로 데뷔한 지 9년때라지만 특별히 눈을 끄는 화제작이 없었던 탓에 오히려 그같은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더 놀라웠다. '어떻게 이렇게 단박에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얼마 전 가수 이수영의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보기에도 어쩐지 설득력이 붖고하다. 아무튼 부산 한복판에서 확인된 종려시의 인기는 가히 '백문이 불여일견'.
부산국제영화제에 자신의 영화가 두 편이나 초청된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상기된 듯했다.
개막일인 11월 9일 입국하자마자 곧바로 부산으로 직행,각종 행사에 함께 하느라 더욱 분주했던 그녀와의 3박 4일, 사전에 단독 동행 취재를 약속 받은터였으므로 더욱 가까이(심지어 호텔 방안까지 동행할 만큼)지켜보며 그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녀의 공식 일정은 <삼사라>의 상영관을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개막작으로 배창호 감독의 <흑수선>이 상영된 첫날에 이어 본격적으로 영화제가 시작된 토요일 남포동 거리는 여전히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 인파를 뚫고 아침내 영화관에 당도한 그녀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예정에 없던 관객과의 대화<부산영화제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게 된 가장 큰 힘. 관객과의 대화는 해외 영화인들에게도 이미 유명하다> 시간을 즉석에서 가지면서 사람들의 열정적인 반응과 활기찬 지지에 놀라워 했다.
이는 다음날 화제작 <잔다라>가 전회 매진의 호응속에 상영된 컨벤션 센터 무대에서나 사방을 사람들이 가득 메운 PIFF광장 야외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스 홍콩 출신 혹은 모델 종려시가 아닌, 배우 종려시를 비로소 맞이하게 된 국내 영화팬들의 기쁜 환영인사였다.
이번에 상영된 <잔다라> <삼사라> 두 편에서 만난 종려시의 모습은 분명 이전과 크게 달라 있었다.
가벼운 액션이나 멜로물 위주의 전작들과는 달리 관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는 예술 영화들이었으며, 종려시 또한 성숙한 연기로 영화의 완성도를 더했다. 보여지는 외모가 정부일 거라고 생각한 그녀에 대한 편견이 기분 좋게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나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진 상태였다고 생각한다. 마치 곧 분출할 준비가 되어 있는 휴화산 같은...이번의 두 영화는 나의 연기를 보여주는,종려시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임을 보여주는 첫 영화일 것이다."
티벳 고원지역인 라다크에서 2개월동안 제대로 씻지도 모샇고 씨 뿌리고 추수하느라 손도 다 부르트며 연기한 농사꾼 아낙의 역의 <삼사라>. 그리고 이 영화를 찍는 중에 흔쾌히 출연 제의를 받아들인 <잔다라>.사람들이 인정하길 꺼리는 그러나 엄연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어두운 면들을 그리는 원작소설과,<낭낙>으로 타이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부상한 논지 니미부트 감독을 신뢰하며 선택한 이 영화에서 종려시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란 열 일곱 살 어린 소년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아버지의 여자이자 서구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신비한 캐릭터로 나온다. 그녀로서는 처음 공개되는 과감한 러브 신이 또 다른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잔다라>는 12월 국내 개봉 될 예정이라 한다.
한편 이 두 편의 영화는 그녀의 또 다른 재능을 확인하게 해준다. 인도 영화인 <삼사라>는 티벳 말로,<잔다라>는 타이 말로 연기를 하고 있다. 물론 모두 영화를 위해 새롭게 배운 것이다. 중국과 베트남계 부모 아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랐으며 미스 홍콩이 된 이후 홍콩,지금의 중국으로 무대를 넓힌 그녀는 실제 5개 나라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 배경 못지 않게 그녀의 활동이 다국적인 면모를 갖게 된 저력중의 하나인셈이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은 건강한 웃음일 것이다. 하루에 열차례 가까운 인터뷰들과 공식 행사들의 참가로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강행군의 일정이었지만 전혀 피곤하거나 짜증스러워 하는 기색은 없다. 타고난 낙천주의자인 그녀를 더욱 달라지게 한 건 다름 아닌 딸 야스민. 스파 설계자였던 글렌로스와의 결혼 생활은 2년만에 끝났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야스민은 그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모성애는 여성으로서 나를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완성시켰으며, 삶에 대해 보다 큰 확신을 갖게 했다. 딸은 나에게 많은 인스피레이션과 힘을 주었으며 보다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끔 해주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녀는 누드 사진집을 낸 것 역시 이오아 무관하지 않다. 엄마가 된 여자도 여전히 예쁘고 매력적이며 건강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 사진집을 '딸에 대한 사랑과 엄마가 된 것에 대한 자부심, 2년간의 세심한 준비를 통해 만들어진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다. 그녀는 자신의 홍보대사로 있는 '마리프랑스 바디라인'에서의 관리와 식이요법(그녀는 <혈액형에 따른 식이요법>이라는 책의 지침들을 따르고 있다.)등의 다이어트로 출산 후 18Kg을 감량하며 특유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며칠 간 더 머문 그녀는 이제 자신을 기다리는 딸 야스민에게로 돌아갔다. 곧 이어 성룡과 함께 출연하는 새 영화 <하이바인더스>촬영에 들어갈 것이고, 평소 원하던 할리우드 진출도 목전에 두고 있다. 배우이자 아름다운 여성, 자신감 넘치는 엄마... 이제 남은건, 스스로 '이루지 못한 꿈 그래서 이루고 싶은 꿈'이라 말하는 가수 데뷔뿐인지도.....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 만난 배우 종려시와 일상속에의 그녀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자신을 분출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녔다는 점에서 서로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