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언을 하도록 돕는 방법
1. 성령은 이미 내 안에 오셨고 방언도 이미 내 안에 와있다. 은사도 이미 내 안에 와있다. 창세기1:26절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 하실 때
"우리의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다.
사람 에는 영, 혼, 육이 존재하는 것처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께서 존재하고 계신다. 삼위 일체의 하나님이 모두 계시기 때문에 진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 하신 것이다. 생령이란?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 인간의 몸안에 함께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미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신 것을 믿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믿는가?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왔다고 믿는가?
2.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것을 표출만 하면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입 밖으로 표출만 하면 방언을 말하게 된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저 성령님이 와 계신 것을 인정하고 그 성령님을 입 밖으로 표출 해라! 방언은 나의 의지적 행동과 표현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을 시작하라.
3. 방언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알고 있는 외국말도 없고 그렇다고 신령하게 기도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기도할 줄 몰라도 외국말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도 성령께서는 내 안에서 내가 모르는 언어를 통해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화하시려고 하신다. 방언은 성령께서 내 안에서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경험과 생각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4. 체험은 오히려 나를 제한하고 스스로 위축되도록 만드는 방해 요소이다. -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
ㄱ. 방언은 언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언어이며 심지어 하나님 보좌에서 사용하는 천국의 말을 사용하기도 할만큼 분명한 언어로 표현되지만 때로는 간단한 몇 가지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사도행전2:1-4절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의 방언은 말 그대로 외국어이다. 하지만 고린도전서14:2절에서, 방언은 천국의 언어라는 의미로 방언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전 14:1-2]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방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외국어와 천국의 언어이다.
ㄴ. 분명한 시작은 한국말을 멈추어야 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생각의 지배와 감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아주 자유스러운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듣게 됨으로 표현과 언어사용에 제한을 가져오게 된다. 내가 사용해오던 말을 멈추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며 한국말을 멈추고 성령의 언어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5. 이해를 해야지 방언을 할 수 있다.
어떤 느낌이나 몬가 생각 속에 들어오는 감으로 하려하지 말고 성령을 이해하고 의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언은 신비한 경험이 아니다. 비몽사몽간에 나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성령을 이해하고 그 분께서 내 안에서 나를 대신하여 기도를 시작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6. 스위치를 올려라.
ㄱ. 방안에 전기는 이미 스위치 바로 앞에까지 다가와 있다. 컴컴한 방안을 밝게 하려면 이미 스위치 앞에까지 와 있는 전기에 스위치만 간단하게 올려 주면 온 방안 가득히 밝은 빛으로 채울 수 있는 것처럼 아주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
ㄴ. 스위치를 올리는 방법은 한국말을 멈추기만 하면 된다. 방언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못한다고 단정 짖고 있는 것이다.
ㄷ. 베드로가 물위를 걸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 해보자.(마14:22-33) 제자들을 먼저 보내신 후 기도하시다가 늦게 풍랑이 이는 물위를 걸어 제자들을 향해 배 가까이 예수님이 다가가자 제자들은 그 분이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 할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인 것을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명하여 물위를 걷게 해 달라고 말 했다.
예수님은 지체없이 오라 하심으로 베드로는 즉시 그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을 향해 물위를 걸었다. 그러나 바람을 보고 무서워 주님의 말씀을 의심함으로 물 속에 빠져 들어가게 된다. 이 때 주님은 베드로가 바람을 무서워함으로 의심하는 것에 대하여 책망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베드로가 말씀을 믿고 한발을 내 딛어 물위를 걸었던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그는 의심이 들어와 물 속에 빠져 들어가긴 했지만 그가 한발을 물위로 내딛어 걸었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그대로실행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의 명령에 의심 없이 그 말씀대로 하라!
7. 익숙한 말을 멈추고 나의 혀를 성령께 맡겨라.(행2:1-13)
오순절 다락방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이 처음으로 임하자 그들은 성령의 말하게 하심(4절)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였다.
이미 성령께서 내 안에 와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도를 시작하기 전 기억해야 할 것은 처음 내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 단어, 생각에 그대로 나의 혀를 맡기고 나오는 데로 말을 내 뱉기 시작해야 한다.
8. 전통적인 방법 "할렐루야"를 말하기 시작하라. - "할렐루야"자체가 방언이다 -
그러나 이 방법은 한가지 예에 불과 할뿐 전적으로 이렇게 해야만 방언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방언에 대한 부담감으로 10년을 기도해도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그러므로 방언에 대한 부담감을 덜기 위해 "할렐루야"를 이용해 방언으로 인도하는 것 뿐이다.
경우에 따라 조용한 장소에서 방언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능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방언을 하도록 돕는 방법을 택하다 보니 이 같은 방법을 제시 한 것 뿐이다. 이 방법은 방언을 돕기 위한 적절한 방법은 아니다.
"할렐루야"를 하는 것이 싫으면 나의 말을 멈추고 성령이 인도하시는데로 입에서부터 말을 시작하면 된다.
ㄱ. 예를 들어 "할렐루야"를 말하기 시작하며 첫 번째 모음인 "할"을 떼어버리고 "렐루야"를 몇번 반복하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는 단어를 한 단어도 상관없고, 한 문장도 상관이 없다. 즉시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말하기 시작하라 생각하지 말고 즉시말하고 다음 말을 계속하여 입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하라 그 다음은 성령께서 당신의 입술을 주장하시며 방언으로 말이 나오기 시작 할 것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하루아루렐루야 아루할렐루야 룰룰루루알룰루.." 등 성령님의 움직임에 따라 입술에 열매를 맺는 권세를 사모하면서 나도 모르게 성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계속하여 내가 간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하여라. 내 심령을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 바란다.
분명한 것은 처음시작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가기 위하여 첫발을 내 딛어야만 했듯이 우리도 방언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스스로 첫발을 내 딛어야만 한다. 그러면 다음은 성령께서 당신을 도울 것이다.
ㄴ. 나의 경우 무늬만 목사안수를 받았지 일반 평신도들도 하는 방언을 할 줄 몰랐다는 것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다.
기도원 기도에 맹진? 하던 목사초년병 시절에 평택에 있는 모 기도원에 갔다. 그 기도원을 알게 된 사연도 철원에 있는 모 수도원에서 만난 선배목사님의 소개로 그 기도원에 간 것이다.
거기(평택)는 목사님들이 오셔서 기도하는 동안에 머룰 수 있는 목사관이 별도로 있어서 다른 선배목사님들을 뵐 수 있어 좋다.
연세가 지긋하신 목사님을 만났다. 그 목사님이 나를 보시고는 대뜸 방언받으로 오셨구만? 나는 애써 아니요 걍 기도하러 왔습니다. 라고 받아넘겼다. 그러나 내 대답을 무시하고 그분은 내게 목사가 방언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나는 좀 창피하였지만 이제 더 숨길 수 없어서 예 맞습니다. 오늘 제가 방언 받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요 하고 부탁을 드리고.......
그날 밤 집회에 참석하는 예배실에 들어가자마자 통성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온 몸에 땀이 나오도록.............
예배를 인도하시던 목사님(백 아무개목사님)께서 설교를 마치시는 무렵에 아직 방언은사를 받지 못하신 분들은 손을 들어보시오 하고 말씀하시는데 나를 바라보고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자신있게? 손을 들었다. -이하 나의 간증은 생략하고 계속하자-
9. 하나님의 역할만 기대하지 말고 시작은 본인에게 달렸다.
나의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성령께서 내 안에 벌써 오래 전부터 임재 하여 계신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당신이 방언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준비를 벌써 오래 전부터 즉시 시작 할 수 있도록 완벽한 준비를 끝내놓고 계셨다는 것을 느껴야 한다.
지금 성령께서 당신이 방언으로 말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을 간절하게 설득하고 계신다. 아무리 준비가 완벽하다해도 당신이 처음 말을 시작해야만 성령께서 당신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 할 것이다. 즉시 성령님 에게 설득 당하시고 한국말을 멈추고 시작하라!
10. 성령이 느껴지는가?
성령은 이미 와 계신다.그 믿음으로 한국말을 멈추고, 용기를 가지고, 말을 시작하라! 자! 기도합시다.
11. 방언이 시작되면 대상을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 "부모님과 친지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라" "친구와 이웃을 생각하고 기도하라" 대상이 분명하면 기도가 더욱 깊어지며 간절한 내용으로 하나님께 방언이 시작 될 것이다.
12. 말하듯이 하라.
만약 한가지 단어가 계속 반복되거든 입을 크게 하고, 소리를 더욱 크게 하고, 혀를 성령께 맡기고, 턱에 힘을 빼고 담대하게 말해야 한다. 의기소침하지 말고 주변을 의식하지 말고 성령께 집중하라.
13. 방언은 한번 시작되면 아무리 시간이 오랜시간 흘러도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방언이 잘못된 것이라면 아무리 다시 시작하려해도 자연스럽지 못한 억지 방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성령께서 내 안에서 시작하신 방언은 무릎꿇고 입을 열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이처럼 성령께서 내안에서 시작하신 방언은 언제든지 자연스럽고 정확하게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로 자신을 인도하실 것이다. 자신의 방언이 옳바른지 잘못된 것인지 점검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14. 방언은 나의 신앙의 성숙도에 의해서 신령함의 깊이에서 자신의 공로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방언은 성령의 임재 하심에 대하여 단순히 믿고 반응하면 되는 대단히 간단하고 쉬운 것이다.우리가 아무리 집중하고 기도해도 내가 알고 있는 언어적 표현은 한계가 있고 반복하여 기도하다보면 하나님께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연결을 의미하고 성령께서 대신하여 나의 기도를 방언으로 표현하시기 때문에 집중하여 편하게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다.
나의 사고와 의식적 표현들을 무시하고 자유스럽게 하나님께 말씀을 드릴 수 있으며 충분한 기도가 가능하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고 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안되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스스로 제한 하려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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