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59번째 수심결 7장
問- 汝言見性이 若眞見性인댄 卽是聖人이라
應現神通變化하야 與人有殊어늘
何故로 今時修心之輩는
無有一人도 發現神通變化耶이까
* 낱자공부
應:응할 응, 神:귀신 신, 通:통할 통, 與:줄 여, 더불 여, 殊다를 수, 輩 무리 배,
變변할 변, 耶어조사 야, 漏샐 루, 盡다할 진
* 단어 공부
☆ 神通 ~ 모든 것을 신기롭게 통달함
·기적[奇跡] ~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
·이적[異跡] ~ 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불가사의한 일, 기이한 행적
이적이나 기적은 놀라운 일(Wonder), 보통 인간이 할 수 없는 일,
또는 자연법칙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일(Miracle)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만일 세상을 떠나서 법을 구하며 인도를 여의고 신통만 바란다면
이는 곧 사도(邪道)니라. 수행 41
신통이 세상을 제도하는 데에 실다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해가 되는 까닭이니 수행 품 42
도통은 견성함이요 법통은 이치를 응하여 법도를 건설함이요
영통은 신령한 밝음을 얻음이니라.」
과학의 모든 문명이 모두 신통이니라 응기편 28
①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고(神足通) / 축지법
② 미래를 예지하거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으로 천안통(天眼通)
③ 보통 귀로는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식별하는 능력인 천이통(天耳通),
④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는 능력인 타심통(他心通),
⑤ 전생의 일을 자유자재로 아는 능력인 숙명통(宿命通)이 있다.
⑥ 번뇌를 멸하여 미혹된 삶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누진통(漏盡通)
누진통(漏盡通) -세상의 모든 고통을 알아서 번뇌를 끊고
생사의 속박을 벗어나 열반의 이치를 증득한 지혜 또는 그러한 경지를
·기적과 이적
과거 책속의 기적은 대부분 소설이고
현대판 기적은 알고보면 거의가 속임수다.
과거의 기적자는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지금의 기적자는 거의가 감옥에 가는 사람이 많다.
* 해설
신통이 초기 사람을 현혹하는 데는 아주 유용하다.
신통은 아무에게나 나타나지 않으며
한 방향으로만 수행하게 되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부처님의 법은 신통 묘술에 있지 않고 대도에 있다.
공부의 요도와 인생의 요도로 사람들을 제도해야지
신통 묘술로 사람을 제도하면 그 사람에게 인심이 집중은 되어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가는 데는 문제가 있다.
인도 정의의 바른 법으로 교화를 하여야 한다.
과학이 신통 묘술이다.
핸드폰이 신통이며 컴퓨터가 신통이다.
또한, 어느 한 가지를 10000번 이상하면 거기에 묘(妙)가 생긴다고 한다.
그 묘가 신통이다
김연아의 연기도 신통이요 서커스단도 신통이며 마술사도 신통이다.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해져서 일심을 모으기 어렵고
자연이 오염되어 맑지 못하다.
그리하여 영문이 열리기 어렵다.
취사하는데 신통으로 보아서 하는 경우와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바른길을 찾고 일반적으로 검증된 길이 있다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 견성(見性)
비록 견성은 하였다 할지라도
천만 번뇌와 모든 착심이 동시에 소멸되는 것이 아니요
또는 삼대력(三大力)을 얻어 성불을 하였다 할지라도
정업(定業)은 능히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참회문>
일원의 원리를 깨닫는 것은 견성(見性)이요,
일원의 체성을 지키는 것은 양성(養性)이요,
일원과 같이 원만한 실행을 하는 것은 솔성(率性)인 바, <교의품 5>
심전을 발견한 것을 견성(見性)이라 하고
심전을 계발하는 것을 양성(養性)과 솔성(率性)이라 하나니,
<수행품 60>
견성을 못 한 사람으로서 정식 법강항마위에 승급할 수 있나이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승급할 수 없나니라.] <변의품 34>
시해법(尸解法)을 행하는 경지가 있다 하오니
어느 위(位)에나 승급하여야 그리 되나이까.]
<변의품 36>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견성을 하려는 것은 성품의 본래 자리를 알아,
그와 같이 결함 없게 심신을 사용하여
원만한 부처를 이루는 데에 그 목적이 있나니<성리품 7>
견성(見性)이라 하는 것은
비하건대 거부 장자가 자기의 재산을 자기의 재산으로 알지 못하고 지내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과 같고 <성리품 7>
견성하는 것이 말에 있지도 아니하고 없지도 아니하나 <성리품 8>
수행하는 데 견성이 무슨 필요가 있나이까.]
국문(國文)에 본문을 아는 것과 같나니라.] <성리품 20>
우주 만물의 본래 이치를 알게 되고
목수가 잣대와 먹줄을 얻은 것 같이 되나니라.
<성리품 21>
견성만은 일찌기 가정에서 쉽게 마치고
성불을 하기 위하여 큰 스승을 찾아 다니며 공을 들이리라.]
<성리품 23>
※ 견성에 다섯 계단이 있나니,
첫째는 만법 귀일의 실체를 증거하는 것이요, 歸一
둘째는 진공의 소식을 아는 것이요, 眞空
세째는 묘유의 진리를 보는 것이요, 妙有
네째는 보림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요, 保任
다섯째는 대기 대용으로 이를 활용함이니라.] 活用
<원리편 9>
保護任止 (內保自性而不亂 外任境界而不惑)
안으로 자성을 보호하여 어지럽지 않고 (정신수양)
밖으로 경계를 당하여 끌림이 없어야 (마음공부)
漸修頓悟 - 수행을 쌓아가다가 점점 지혜의 발달을 따라서
문득 자성의 원리를 깨치는 것이니
頓悟漸修 - 지혜의 힘으로써 이미 견성은 하였으나
아직도 다생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 법력에 의하여 점점 옛 습관을 고쳐가는 것
頓悟頓修 - 지혜의 힘으로써 견성함과 동시에
수행의 힘이 또한 한결 같아 지행의 공부가 한 때에 다 성취
<경의련 47>
도통(道通) – 견성함이요
법통(法通)- 이치를 응하여 법도를 건설 함이요
영통(靈通) - 신령한 밝음을 얻음이니라
<응기편 28>
목적 반조(目的返照) - 小
자성 반조(自性返照) - 大
<무본편 27>
원기 109년 11월 19일
제목 : 치자나무와 애벌레
작은 정원을 꾸며서 매일 물을 주며 돌보고 있다. 처음에는 화분이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골고루 신경을 쓰고 하나하나 잎사귀를 어루만져 주고 어디 아프지는 않은지 살폈다. 하지만 화분 개수가 늘어나다 보니 전처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탓일까, 치자꽃이 다 떨어지고 풍성했던 잎사귀들이 뭔가 하나둘 좀 먹은 거처럼 상하기 시작했다. 혹시 내가 물 주는 걸 잊었나! 아니면 너무 과하게 줬나! 고민하던 중 가지에 매달려있는 초록 벌레를 보았다. 징그러웠다. 이 애벌레가 치자 잎사귀를 왕성하게도 먹어치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저걸 어떻게 치우지? 젓가락으로 집어서 밖으로 던져버릴까? 아니면 살충제를 뿌려야 하나 고민 중에도 정말 하루가 다르게 치자잎들은 먹힘을 당하고 있었다. 너무 왕성한 식욕이었다. 저걸 놔두면 잎들이 하나도 남지 않을 거 같아서 결국 젓가락을 들고 집어서 밖으로 던져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애벌레를 집으려던 순간, 그 애랑 눈이 마주친 기분이었다. 징그럽지만 그래, 이 애도 자기의 본능에 충실히 먹고 있는 건데 죽여야 하나! 경계가 생겼다. 치자 화분을 위해서는 잡아야겠고 애벌레를 생각하면 놔두고 싶고 굳이 죽여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일주일이 지나 버렸고 치자잎은 결국 앙상해졌다. 이쯤 되니 그냥 다 먹어버려라. 잎사귀는 새로 날 수도 있겠지 싶어 그냥 놔두기로 했다. 생각을 접고 나니 애벌레가 있다는 것까지 잊어버렸고 어느 날 생각이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애벌레가 사라진 상태이었다. 화분대 구석구석을 살펴보아도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혹시 나비 애벌레였나?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피식 웃어버렸다. 억지로 변명을 하자면 무서워서 못 치운 게 아니라 살생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리고 치자잎은 조금씩 새잎들이 올라오고 있으니 언젠가는 그전처럼 풍성하게 될 거로 생각하니 좀 더 열심히 돌봐야지 다짐하게 된다. 지난해 교무님의 적극적 추천으로 억지로 돌보게 된 화초들은 어느새 내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요즘은 화분들 돌보는 게 무척이나 즐겁다.
교무의 의견
글이 아주 좋습니다. 훌륭한 수필입니다. 틈나는 대로 써서 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의 경계는 치자나무를 갉아 먹는 애벌레네요. 치자나무를 애써서 키우는데 애벌레가 잎사귀를 갉아 먹으니 어떻게 하여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나지요? 애벌레를 밖으로 버려야 하나 살충제를 뿌릴까! 아니면 그대로 둘까!
애벌레를 생각하면 먹어야 사니 생존을 위하여 치자나무 잎을 갉아 먹는 것이니 당연한 일로 그대로 두어야 하고, 치자나무를 생각하면 애벌레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여야 하지요. 애벌레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면 잡아서 밖으로 버리든지, 살충제를 뿌려 죽여야 하지요.
자연계는 먹이사슬이 되어 있습니다.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서 생존하고 있지요. 먹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요 먹히는 게 잘못도 아닙니다. 단지 삶의 현장일 뿐이지요. 사람이 인위적으로 자연계에 끼어들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후문제도 사람들이 화석연료를 많이 태워 자연에 보내니 균형이 깨지고 폭우 폭설 가뭄 등 극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을 대령의 작용 따라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꽃을 감상하기 위해서 치자나무를 키우는데 애벌레가 잎을 다 갉아 먹으면 나무는 꽃을 못 피우고 볼품없이 되거나 죽고 말지요. 과수원이나 농사를 짓는 것도 살충제를 많이 뿌립니다. 약을 안 하면 수확을 못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방에 모기가 있으면 잠을 잘 때 괴롭게 하니 방에 모기가 있으면 죽여야 할까 공존하며 같이 살아야 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애벌레도 개령이 있습니다. 하나의 생명이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취미 삼아 무심코 죽이는 것은 살생이니 조심하여야 할 것 같고, 더 소중한 일을 위해서 애벌레를 죽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정산종사님은 과수원에 약을 쳐서 죽은 벌레들을 위하여 천도재를 지내 주라 하셨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앞길을 열어주는 것은 좋은 것 같습니다. 내생에는 진급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물론 공존하며 살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여 취사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원기 109년 11월 19일
제목 : 삼천동 원룸에 불
삼천동 원룸에 불이 났다. 원망심이 올라왔다.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고, 남의 것 탐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힘들어하는 남편도 너무 안타깝고, 어찌 이럴 수가 하는 마음만 가득하다.
남편이 원룸을 정리하면서 힘들어한다. 불이 나서 치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 불길로 4층 집 화장실 배관이 녹아 물이 흐른다고 한다. 복도에 나온 그을음도 만만치 않고, 아들이 그을음을 하루종일 닦아내고 왔다.
남편이 저녁에 와서 화재보험이 갱신이 안 되었으니 나에게 6천만 원 정도 준비해 주라고 한다. 난 밤새 머리가 아팠다. 도대체 돈을 어디서 구한단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세수를 하는데 허리가 절반으로 접혀버린다. 밤새 걱정으로 허리가 스트레스받았나 보다. 몸까지 말썽이니 더 짜증이 나고 힘들다.
내가 다행히 들어놓은 보험약관 대출과 조금 모아둔(내년에 큰딸 전세비 도와주려고) 2천만 원을 끌어모아 5천 정도는 해결되었다. 이렇게 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너무 아깝다.
불이 났다는 소식에 처음에 나온 원망심은 그래~~ 당연하지 원망심이 나올 수 있지 그 원망심안에는 편안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러나 일은 일어났으니 어떻게 해결을 해야 할까로 마음을 정하니 받아들여진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진다. 그런데 또 화재보험이 갱신이 안 되었다는 말을 듣자 요란하다. 4개 원룸 중 그 원룸만 갱신이 안 되어있단다. 금전적인 손해를 보게 된다는 말에 처음에 가졌던 원망심이 또 올라온다. 그리고 밤새 마음을 끓이니 몸이 상했다. 그때 내가 모아놓은 돈을 내놓기 싫어서 더 요란했다. 내가 어떻게 모아놓은 건데, 그리고 또 딸에게 주려는 그 목적까지 없어지니 더 암담하고 슬펐다.
그때, 바로 내 마음을 보았다면 그래~~~ 다행히 내게 약간의 목돈이 있으니 이걸로 하면 되 하고 마음을 먹었다면 밤새워 뒤척이지 않고 자서 허리도 아프지 않았을 텐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더니. 주기 싫은 내 마음에는 내가 하려는 것을 못 하는 것에 대한 속상함도 있었지만. 내가 어떻게 모았는데, 하는 내가 있었다. 그것을 보지 못하니 더 마음이 끌탕이었다.
일어난 일에 대한 시비를 따지기보다 일어난 일을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고, 해결하는 방법도 시비보다는 순서를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했다면 힘듦 속에서도 몸은 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모아놓은 돈도 원래는 남편이 벌어온 돈을 모아놓은 건데, 그 마음 안에는 언제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를 놓지 못하면 내가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없는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은 간섭하는 마음 없이 내가 없이 그저 그 일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구나!!
교무의 의견
삼천동 원룸에 화재가 있었네요. 많이 속상하고 당황스러웠겠습니다. 소중한 물건들이 불에 타 못 쓰게 되고 온 집안이 그을음으로 덮이고 매케한 냄새도 나고 위층에선 배관이 녹았다고 고쳐달라 하고, 돈도 들고 고생스럽고 힘든 경계입니다. 화재보험이라도 들어있으면 경제적인 문제는 좀 나을 텐데, 다른 원룸은 화재보험이 들어있는데 그 집만 제외되었네요.
왜 나에게 이런 재앙이 있나 하는 마음과 보험을 확인해 놓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마음과 돈을 끌어와 수리를 해야 하는데 돈 구할 방법이 난감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일어난 마음 하나하나를 점검해보니 원망심은 편안함을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고 이미 일어난 일에 원망하는 것보다 해결방법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드셨네요. 마음을 돌려 조금 편안해지다가도 또 생각하면 속상하고 원망심이 또 일어나지요.
대종사님께서 수행품 20장에 사람마다 각각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이 있는데 범부는 그 하고 싶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온전하고 참된 정신을 잃어버리고, 그 하기 싫은 일을 당하면 거기에 끌리어 인생의 본분을 잃어버려서 정당한 공도(公道)를 밟지 못하고 번민과 고통을 스스로 취하나니, 이러한 사람은 결코 정신의 안정과 혜광(慧光)을 얻지 못 하나니라. 내가 이러한 작은 일에 너를 경계하는 것은 너에게 정신이 끌리는 실상을 잡아 보이는 것이니, 너는 마땅히 그 하고 싶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하기 싫은 데에도 끌리지 말고, 항상 정당한 도리만 밟아 행하여 능히 천만 경계를 응용하는 사람은 될지언정 천만 경계에 끌려다니는 사람은 되지 말라. 하셨습니다.
화재는 하기 싫은 경계입니다. 대종사님 말씀처럼 당황하여 본분을 잃어버리고 번민과 고통 속에 넋 놓을 수 있는데 마음공부의 덕분으로 일어난 마음을 보면서 내려놓을 마음을 정리하고 가지고 갈 마음을 찾으며 그동안 안에 들어와 있던 내경을 발견하시기도 하셨네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독화살을 맞았데요. 그 사람은 이게 무슨 화살이지 누가 쏘았을까 얼마나 독이 들어있을까 얼마나 멀리서 쏘았을까 생각을 하더랍니다. 일단 화살을 맞았으면 그 독을 발리 제거하고 치료하는 것이 급한데 선후를 알지 못함이라 혀였습니다. 원망하고 탓하기 보다는 화재현장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원인을 밖에서 찾으며 원망을 하는데 공부인들은 나에게서 원인을 찾고 내가 주의할 것이 무엇인지 찾는다고 합니다. 비록 화재는 큰 재앙이기는 하지만 경계 속에서 마음을 찾는 공부를 하시는 계기가 되었네요
원기 109년 11월 20일
제목 : 친구 부인의 49재
고향 친구의 부인이 우연한 사고로 입원을 했고, 오랫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서 십여 년 동안 고생을 하다가 사망했다. 교무님과 함께 장례식장에 가서 조문했을 때 사십구재를 올리는 게 어떠냐고 하였는데 애들이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럼 기도라도 해 주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친구가 혼자라도 사십구재를 하겠다고 했다.
2재를 지낸 어느 날 식사라도 하자고 해서 만났는데, 교무님도 너도 격식을 말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면서 자기를 무시하냐고 한다. 그래서 설명을 해 주고 계좌번호를 보냈더니 약간의 경비를 보내왔다.
3재날 고향 친구들 모임이 있었는데 회장이 다들 연락이 없다고 모임을 취소하고 다음에 하자고 하였다. 나도 그날은 친구 부인의 49재라서 못 간다고 했더니, 회장이 요즈음 누가 49재를 지내느냐고, 친구가 어려운데 돈 쓰게 한다고 나를 종교 장사꾼 취급하는 말에 기분이 엄청나게 안 좋았다.
회장이 제주 친구에게도 전화해서 나한테 한소리와 똑같이 했나 보다. 재를 지내려고 교당에 왔더니 친구가 나한테 화를 내면서 다른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는데 알렸다고 원망을 한다. 아내가 아파서 10여 년 동안 친구들의 애경사에 참석을 못 했는데 갑자기 나타나 조문을 오라고 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투덜거린다. (내 생각엔 친구들이 참석해 줄 거라는 기대를 했는데, 친구들은 오지 않고 원망만 들었다) 천도재를 지낼 때 여러 사람이 함께 독경하고 기도를 해 주면 망자에게 좋을 거 같아서 얘기를 한 건데 주변의 친구들은 반응이 없다. 사람마다 생각들이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재를 지내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친구에게 원망을 듣고 사과를 하던 생각이 나서 교무님께 다 취소하고 원점으로 돌리자고 했더니 교무님께서는 찾아온 인연을 왜 스스로 끊느냐고 하시면서 물 흐르듯이 가보자고 하신다. 그 말을 들으면서 또다시 나의 마음을 챙겨본다. 그렇게 천도재를 지내 오다가 드디어 11월 21일 목요일이 종재날이다. 재가 끝나 가는데도 자녀들은 오지 않고 6재까지 교무님과 재주 그리고 나 그렇게 3명이 천도 독경을 하였다. 천도재를 지낼 때마다 영가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아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교무님께서는 두 사람이라도 평소에 법회 보는 것처럼 설법을 하신다. 재때마다 정성을 다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친구도 감동을 받고 너무나 감사하다고 한다.
3~4년 전부터 의사가 준비하라고 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내 생각에는 원불교로 안내를 하고, 49재를 지내면 자녀들이 올 거고 그때 교화를 하여야겠다고 기대를 했는데 나의 무리한 욕심이었는지 모른다. 천도재의 인연으로 친구가 원불교의 진실한 교도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천도법문에 의지해서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해 본다.
교무의 의견
오늘의 경계는 재주인 친구가 화를 낸 것이네요. 재주인 친구는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네요. 아내가 아파서 누워 있으니 친구들의 애경사에 못 갔는데 나의 애사에 알리는 것이 안 될 말이라고 하네요. 경타원님은 천도재를 많이 보고 법문을 통하여 여러 사람이 응원하여야 영가가 천도를 잘 받는다는 신념이 있어서 동창들에게 알리셨네요. 재주인 친구는 알렸다는 말을 듣고 화를 낸 것 같습니다.
친구가 화를 낼 때는 나의 변명보다 상대의 마음을 읽어주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너는 안 알리고 싶었구나. 네가 애경사를 못 챙겨서 미안하구나. 이렇게 마음을 읽고 나서 나의 마음을 전달하면 어떨까요? 대체로 상대가 잘못했다고 하면 나의 변명하기에 바쁘고 나의 뜻을 관철하려고 우기면 서로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친구는 아직 천도재에 대하여 모르니 여러 사람이 지내야 좋다는 것도 모르고 영로가 있는지도 모르며 내생에 대한 신념도 없는데 내 생각대로 친구에게 알린 것은 아닌가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의 입장은 잘 알지만,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마음을 읽지 않으니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