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여행 엿새째 날, 오늘부터 자유여행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국땅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설렌다. 화산과 낙양의 용문 석굴 여행으로 온몸이 뻐근하지만, 마음은 청춘이다.
정지되었던 은행 계좌가 정상화되어 알리페이나 위챗페이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꿈에 본 노사나불의 영험이 통했나 보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침대를 뒹굴며 오늘의 계획을 확인했다.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 시안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지난 수요일 야경을 보기 위해 갔던 대자은사와 대안탑에 들어가 문화탐방을 하고 대당불야성을 거쳐 대당부용원에 갈 예정이다. 계획에 동의한 세 명의 친구와 동행하기로 했다.
장채공원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대안탑 역에 내렸다. 개찰구를 나가려고 알리페이 바코드를 인식시켰으나 빨간불이 들어오고 개찰구는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역무원에게 스마트폰 번역기를 이용해 이유를 물었으나 의사소통이 힘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승차한 역이 어딘가?”라는 역무원의 말을 이해하고 승차한 역을 입력하니 바로 해결되었다. 왜 이런 에러가 났는지를 되짚어보니 장채공원 역에서 개찰구를 통과할 때, 바코드가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뒤를 따라 들어왔을 가능성이 컸다. 철저하게 준비해도 돌발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친구들과 한바탕 웃고 난 뒤 점심을 먹으러 갔다.
천하제일면 집에서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랐다. 방방면과 천하제일면을 놓고 고민하다 천하제일면을 주문했다. 폭이 넓은 한 가락 면발로 만든 국수 한 그릇, 육수와 양념이 세트로 나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보니 면발은 내 키보다 훨씬 길다. 육수에다 좋아하는 양념을 넣어 간을 맞추고 면 가락을 담가 가며 먹었다. 쫄깃하여 잘 끊어지지 않고 먹기 힘들지만 나름대로 먹는 재미가 있다. 담백한 맛이지만 양념을 맞추지 못하면 이 맛도 저 맛도 아니다. 다 먹지는 못할 정도로 양이 많고 먹는 즐거움을 생각하면 58위안 정도는 투자할 만하다.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걸어서 대자은사로 갔다. 대안탑이 서서히 위용을 드러내고 매표소 앞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대자은사는 당나라 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의 명복을 위해 창건한 사찰로 『서유기』의 주인공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과 불상 등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을 세웠다.
대자은사 입장료는 30위안이고 대안탑은 25위안이다. 대안탑 7층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주변이 온통 역사·문화 유적지와 상업단지이다. 남쪽 광장에는 육환장을 든 현장법사의 동상이 대당불아성을 바라보며 우뚝 서 있고 남동쪽으로는 대당부용원, 북쪽으로는 광장과 대안탑 역, 동쪽으로는 대자은사 유적 공원, 서북쪽으로는 산시역사박물관과 시안박물관이 보인다. 현장법사는 17년간 2만 5천km에 이르는 서역 구법 여행과 수많은 불경을 번역했다. 130여 개국의 지리와 역사, 문화와 종교, 풍속과 정치·경제를 기록한 『대당서역기』는 실크로드 연구의 핵심 자료가 되고 있다.
대자은사를 나와 남광장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지친 심신을 달랬다. 여행은 새로운 경험을 주지만 그 이상의 에너지를 요구하나보다. 휴식을 마치고 대당불야성(大唐不夜城) 보행자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밤의 열정과 몽환적 분위기 대신 차분하고 여유롭다. 불야성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을 정도로 번성했던 당나라 문화를 주제로 설계된 거리다. 쇼핑, 외식, 오락, 레저, 화려한 레이저 쇼를 원스톱으로 즐길 수 있고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국적인 풍경을 상상하는 여행객과 젊은 커플들이 좋아할 만한 곳이다.
20분가량 걸어 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에 도착했다. 대당부용원은 당나라 황실 정원이 있던 곳에 세워진 테마파크다. 당나라 시대의 화려한 건축물, 양귀비의 조형물, 호수, 다양한 공연, 야경이 볼만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데이트하며 노닐던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료 120위안에다 원내가 너무 넓어 40위안을 더 내고 전동차를 타고 둘러봤다. 전동차는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에 따라 타고 내릴 수 있다. 호수의 장랑(長廊)에 연결된 정자에 앉아 내용을 알 수 없는 공연을 관람하며 잠시 쉬었다. 양귀비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호수 주변을 산책하다 전동차를 타고 자운루에 갔다.
원내 중심에 있는 자운루(紫雲樓)는 4층으로 당나라 양식의 건축물이다. 전망대에 올라 하나둘 켜지는 조명등과 호수를 내려다본다. 석양과 함께 호수 자락을 어른거리는 양귀비와 멀리 보이는 대안탑의 어스레한 윤곽은 당나라 이야기에 깊숙히 빠져들게 한다. 분수 쇼가 끝나고 석양이 내려앉을 때, 대당부용원을 나와 불야성 앞에 있는 한식당에서 삼겹살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특유의 향이 나는 중국 음식에 비해 삼겹살 쌈밥은 꿀맛이다.
어둠이 내리고 형형색색의 조명이 켜지면 불야성에는 인파가 몰리기 시작한다. 당나라 전통 복장을 한 선남선녀들도 인파와 어울려 추억을 만들고 있다.
하루 종일 노닐던 당나라에서 다시 현실의 세계로 돌아와야겠다.
2025.4.12.(59)
첫댓글 ' 당나라 군대'도 있고,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시안'의 화제란 말인가요? 1,000년 넘게 과거로 돌아가 김유신과 김춘추도 못가본 시안을 갔었네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자유 여행입니다 여행도 젊은 시절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