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 돌아오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그 시절 농촌의 하루는
해가 뜨면서 시작되어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질 때쯤
비로소 하루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새벽부터 논밭으로 나가셨고,
어머니도 해가 뜨기가 무섭게
농사일을 찾아 들로 나가셨다.
집에는 어린 우리 형제들만 남았다.
나도 아직 어린아이였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더 이상 어린아이일 수 없었다.
책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동생들을 살펴야 했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동생에게
무엇이라도 먹일 것이 없는지
부엌과 곳간을 뒤져 보았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라
무엇을 찾아내는 일조차
어린 나에게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동생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나면
이번에는 염소 차례였다.
집에서 기르던 염소가 먹을
싱싱한 풀을 찾아 들판으로 나갔다.
낫을 들고 풀을 베어
한 아름씩 모았다.
풀 냄새가 손에 배고
저녁 바람이 땀 밴 얼굴을 스쳐 갔다.
어린 나는 그 풀을 안고 돌아와
염소가 저녁에 먹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두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일이 있었다.
집 뒤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이었다.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로 갔다.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물동이에 담고
조심조심 집으로 돌아왔다.
한 번, 두 번.
어린 몸으로 물을 길어
부엌의 큰 물동이가 가득 찰 때까지
몇 번이고 우물과 집을 오갔다.
물동이에 물이 출렁일 때마다
어린 어깨도 함께 흔들렸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시절에는
아이도 집안의 한 식구였고,
식구라는 이름에는
해야 할 몫이 따라붙었으니까.
해가 서산에 걸릴 무렵이면
들판에서 일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그때부터 집 안에는
저녁 준비가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큰 가마솥에
보리쌀과 고구마를 넣고
밥을 지을 준비를 하셨다.
쌀이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보리쌀 사이사이에 고구마가 들어갔다.
그것이 우리 가족의 저녁이었다.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았다.
장작을 밀어 넣고
불씨를 살폈다.
입으로 후후 불어
꺼져가는 불을 다시 살리고,
불길이 살아나면 가마솥 아래에서
붉은 불꽃이 춤을 추었다.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장작 냄새와 연기 냄새,
가마솥에서 익어가는
보리밥과 고구마의 구수한 냄새가
작은 부엌 안에 가득 찼다.
밖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하루 종일 논밭에서 일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는 피곤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가마솥에서 김이 오르면
우리 가족은 둘러앉았다.
그 소박한 밥 한 그릇이
그때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저녁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집에는
풍족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가마솥에서는
늘 밥이 끓었고,
아궁이에서는
불이 타올랐으며,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에는
하루 종일 흙과 땀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동생들을 돌보고
물을 길어오고
염소 풀을 베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어린 내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다.
겨울이 오면
우리들의 놀이터는 또 달라졌다.
연 배 미 논에 물이 얼어붙으면
그 얼음판이 우리에게는
천연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하지만 스케이트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5센티미터쯤 되는 폭에
17센티미터 정도의 판자를 준비하고,
그 아래에 철삿줄을 한 줄 곧게 연결했다.
작은 못으로 단단히 고정하고
앞쪽 고리에 연결줄을 걸었다.
그리고 그 줄을
발과 다리에 에스(S)자 모양으로
몇 번이고 감아 묶었다.
그것이 우리의 스케이트였다.
얼음 위에 발을 올려놓으면
처음에는 비틀거리고 넘어졌다.
그러나 몇 번 넘어지고 나면
조금씩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간다!"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면
얼음 위를 쭉 미끄러져 갔다.
넘어지고, 웃고,
다시 일어나 또 미끄러졌다.
손이 시리고
볼이 얼얼해도
집에 갈 생각은 나지 않았다.
겨울 해는 짧아서
어느새 산 너머로 기울고 있는데도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 얼음판 위에서 우리는 가난도 잊었다.
스케이트 한 켤레가 없다는 것도
슬퍼하지 않았다.
판자와 철삿줄 몇 가닥이면
우리에게는 충분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겨울은 놀이터를 만들어 주었다.
연 배 미 논의 얼음은
우리에게 빙상장이었고,
판자 하나는
멋진 스케이트가 되었으며,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겨울 들판을 가득 채우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렇게 육십 년이 흘렀다.
그 시절의 우물은 어디로 갔는지,
아궁이는 어디에 있었는지,
큰 가마솥은 어디에 남았는지,
연 배 미의 얼음판도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먼 길을 떠나셨고,
함께 물을 길어 나르던 동생들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육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날의 풍경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물동이를 채우던 내 모습,
배고프다고 보채던 동생들의 목소리,
염소에게 먹일 풀 냄새,
해 질 무렵 돌아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발걸음,
가마솥에서 올라오던 하얀 김,
아궁이 속에서 타오르던 붉은 불꽃,
그리고 겨울 연배미 논 위에서
판자 스케이트를 타며 웃고 떠들던 아이들.
그 모든것이
내 마음 한켠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월은 지나갔지만, 기억은 늙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어린 나는 물동이를 들고 우물에서 집으로 걸어오고,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고,
저녁이면 어머니가 지어주신 보리쌀 고구마밥 냄새를 맡으며
동생들과 함께 밥상을 기다린다.
그리고 겨울이면
다시 연 배 미 논으로 달려간다.
판자 스케이트를 발에 묶고 얼음 위를 미끄러진다.
넘어져도 웃고, 추워도 웃고,
해가 져도 집에 갈 줄 모르는 아이.
그 아이가 육십 년 전의 나다.
그때 나는 가진 것이 많지 않았지만,
하루를 살아낼 힘이 있었고,
함께 웃을 형제가 있었고, 흙과 바람과 물과 불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가난했던 날들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가난 속에서도
서로의 등을 기대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따뜻함이 그립다.
해 질 무렵
들판에서 돌아오시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립고,
아궁이 불빛 아래
가족의 얼굴이 하나둘 밝혀지던
그 저녁이 그립다.
아, 그때의 하루는 가난했지만 참 따뜻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육십 년의 세월을 건너와 지금도 내 가슴 한가운데
작은 아궁이의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