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번 말했지만 나는 전공(대학을 역사학과 졸업했다는 의미가 아님)이 역사여서 모든 사물이나 어떤 사안을 접할 때도 제일 먼저 그것의 역사를 본다. 역사부터 알아보고 그 외의 것을 더 알아볼 것인가 아닌가 결정한다. 역사를 보면 그것의 가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퍽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역사를 모르면서도 어떤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매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크리스챤들도 의외로 바이블이 기록되던 당시의 중동 역사에 무지하다. 공부할 생각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바이블이란 책의 기록에 자기 온 생과 사후의 생까지도 맡겨버린다. 나는 그 용기가 참 부럽다.
화두참선을 하는 스님들이 많지만 역시 선불교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는 화두를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공안이라는 개념이 언제 어느 절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수십년 동안 화두를 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깡다구는 경탄할만 하나, 그 단순함과 우매함에도 존경을 보낼 수밖에 없다.
선종의 종조는 달마이고 선종에서 날조한 유래까지 소급하면 1대조사는 마하가섭이 된다. 그러나 그건 지어낸 전설이고 1대조사는 달마다. 그런데 이 달마는 사실 판단이 곤란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가 내린 선의 종지, 즉 불립문자 교외별전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대명제와 혈맥론같은 이론서의 내용이 매칭이 안된다는 것이다. 혈맥론은 나중에 따로 소개를 하겠지만 선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불교이론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혈맥론'을 달마의 저작이라고 보지 않으며 달마와 관계없는 이론이라고 본다.
달마로부터 달마가 쓰던 밥그릇과 옷(의발이라고 한다)을 물려받은 2대조사가 혜가이고, 그 다음이 승찬, 도산, 흥인으로 이어진다. 이게 5대조까지이고, 제6대조가 문제의 혜능이다. 이 혜능이야말로 사실상의 중국선불교의 개산조이고 실제적인 선의 창시자이다. 불교가 불교아닌 것으로 변질된 것은 혜능의 무식 때문이다. 혜능이 선을 창시한 것은 그가 무식해서 불경을 읽거나 공부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식과 지체가 높은 고승들과 겨루어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해독할 수 없는 문자보다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래서 동원한 것이 마음이다. 글보다 마음이 우선이고 글을 보기보다 마음을 보아야 깨친다는 해괴한 주장의 힌트를 1대조사인 달마로부터 얻었다. 불립문자 교외별전이 그것이다. 혜능에게는 불립문자가 아니라 불가해독이었을 뿐이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선불교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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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 ( 1 ) 구름~~ 2004-12-18 09:55:53 984
육조단경의 기록에 의하면 혜능은 638년에 태어났다. 어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서부터 편모슬하에 나무꾼으로 일하며 성장했다. 이십대에 접어들 때까지는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었고 문자를 전혀 해독할 수 없는 문맹이었다.
여기서 1차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혜능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건지 전혀 모르는 불맹이었다.
그런 혜능이 어느날 나무를 판 돈을 받아 나오는데 어떤 경읽는 소리를 듣고 크게 느낀 바 있어서 경을 읽은 사람에게 노자돈까지 얻어 그 길로 출가를 하게 된다. 그때 혜능이 한번 듣고 크게 마음이 열렸단 구절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무는 곳 없이 마음을 낸다)'이라는 구절이었다고 전한다.
경읽던 사람이 알려준 황매산의 동선사라는 절을 찾아간 혜능은 달마의 5대째 후계자인 홍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혜능은 당시 중국사람들이 오랑캐가 사는 미개지역이라고 여기던 영남사람인데다가 일자무식의 나무꾼이었기 때문에 출가해서 승려가 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홍인이 비록 달마의 후계이긴 해도 당시의 신분사회를 파괴하는 파격적인 결정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홍인은 혜능을 부엌에 두고 밥짓는 일을 시켰다. 즉 승려가 된 것이 아니라 행자(절 심부름꾼)가 된 것이다.
홍인이 혜능을 행자로라도 받아들인 이유는 비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비범이라는 것은 학식과는 관계없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오다 노부나가가 시장통에서 처음 보았을때 노부나가는 히데요시가 비범한 인물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자기 신발을 간추리는 일을 맡겼다. 히데요시는 왕무식이라 병서를 읽은 적이 없었다. 손자병법은 고사하고 무라까미 전술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역사상 손꼽는 군사의 대가들에 비추어 손색이 없는 전쟁의 천재였다. 용병과 용인의 달인이었다. 또 하나 이런 비범의 예를 든다면 채키 찬이 있다. 성룡이 그 사람이다. 성룡은 글자를 배우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곡마단에서 컸다. 무술은 배웠지만 글은 배우지 못해서 까막눈이고 수표의 금액도 읽을 줄 몰랐다. 영화의 대본을 읽지 못해서 항상 대본 읽어주는 사람이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는 무술 뿐만이 아니라 영화의 천재이다. 그가 찍은 영화의 액션씬들은 모두 그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많은 영화의 줄거리와 소재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어떤 연극영화과 교수도 성룡 앞에서 큰소리 칠 수 없다
이와 같이 무식한 천재는 역사에 더러 있는 바이다. 그 중에서도 혜능은 탁월한 천재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배우지 못한 천재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기도 하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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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3 ( 1 ) 구름~~ 2004-12-18 11:31:20 921
혜능이 동선사에 와서 하루종일 한 일은 장작 패고, 방아찧고, 군불 때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혜능이 동선사에서 뭘 배웠을까? 만약에 혜능이 글을 알았다면 스님들 몰래 숨어서 불경을 읽으면서 공부했다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 행자가 그리 한가한 몸이라면 법당 뒤에 숨어서 법문을 엿듣고 깨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자는 절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다. 동선사에 와서 혜능이 한 일은 그야말로 종질 뿐이다. 공부는 무슨 개뿔이다.
여기서 두번째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혜능은 절에 들어오기 전에도 불교를 몰랐지만 절에 행자로 들어온 후에도 불교를 알 기회는 없었다.
그런데 그런 혜능이 어떻게 홍인의 눈에 들어 그의 의발을 전수받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야성을 보게 된다. 오다 노부나가의 신발담당이던 히데요시가 일약 사무라이로 인정받게 된 데는 유명한 일야성 사건이 있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웃한 미노국과 싸울 때 두 나라 사이에는 강이 하나 있었다. 이 강을 건느면 평야지대라서 군대가 의지할 방벽이 없었다. 지리적인 이점이 없다면 군사의 수가 많아야 하는데 노부나가가 모을 수 있는 군대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노부나가는 수하 장수들에게 그 강 건너편에 성을 쌓게 했다. 그런데 내노라하는 노부나가의 수하 부장들이 누구도 성을 쌓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노부나가군이 성를 쌓는 것을 미노군이 두고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이 되어갈만 하면 쳐들어와서 뭉개버렸다. 이때 이 성을 자기한테 맡겨주면 쌓아보이겠다고 손들고 나선 것이 히데요시다. 평소같으면 그런 건방진 수작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는 것이 관례이지만 그때는 노부나가가 워낙 다급할 때였고, 하나같이 실패한 막하 장수들은 히데요시에게 화를 낼 입장이 아니었다. 히데요시는 강의 상류에 인부들을 데리고 숨어들어가 무수한 나무를 벤 후에 뗏목으로 엮어서 어느날 밤에 거세게 비가 오는 것을 이용해서 성을 쌓아야 하는 지점까지 타고내려왔다. 그리고는 그 목재를 이용해서 하룻밤 사이에 목성을 쌓아버린 것이었다. 나무로 둘러친 방책이었는데 미노군은 이 목책을 공격했지만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나게 된다. 이 목성은 곧 견고한 돌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성이 미노 공략의 발판이 되어 마침내 노부나가는 사이또 도산이 세운 미노국을 병합하고 천하통일의 기초를 쌓게 된다.이때의 공로로 히데요시는 일약 아시가루에서 정식 사무라이로 승격하게 되는 것이다.
일자무식에 천한 신분의 사람이 완고한 신분사회, 학식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이와 같은 일대사건이 필요하다. 혜능에게도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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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4 ( 1 ) 구름~~ 2004-12-18 16:02:04 927
혜능은 한가지 사건으로 선종의 후계자로 떠오르게 된다.
그 일은 혜능이 동선사에 행자로 들어온 지 팔개월쯤 지났을 때 일어났다. 5대조사인 홍인이 갑자기 양위의 뜻을 밝힌 것이다. 조선의 3대임금인 태종은 심심하면 한번씩 양위쑈를 벌였다. 교단이던 조정이던 최고위자가 생전에 양위의 의사를 밝히는 것은 숨은 목적이 있는 행위이다. 태종의 경우 죽여야 될 놈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고, 홍인의 경우 땡중들을 긴장시키자는 목적이었다. 그것은 달마 이후 불과 5대째에 이미 불교가 얼마나 개판으로 변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동선사는 중국불교의 교조가 대빵으로 있는 절이다. 그런데 그 절의 분위기가 당췌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는 얘기다. 묵조선의 선풍에 물들면서 이미 절에는 공부하는 분위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전부 눈감고 탱자탱자하는 놈들만 득시글 거렸다. 이것을 보다 못한 홍인이 예의 양위쑈를 벌인 것이다. '누구던 각자 수행하여 느낀 바를 게송을 지어라. 그것을 보고 가장 뛰어난 게송을 지은 자에게 내 의발을 물려주리라'하고 공지문을 올렸다.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 아니라 법당 입구에 방을 써 붙였다.
중국불교의 제6대 제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숨막히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당연히 피말리는 경쟁체제로 돌입되어야 했다. 그러나 달마독에 물든 땡중들은 그 상황에서도 탱자탱자였다. 나한테는 인연없는 물건. 나는 해봐야 안되는 일. 이미 동선사의 중들은 경쟁의 의지조차 없는 죽은 넘들이었다. 그때 이미 중국불교는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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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5 ( 1 ) 구름~~ 2004-12-18 16:53:23 912
원효 생전의 신라에만 해도 중생들이 우러러 대사라고 부르는 스님들이 있었다. 그리고 손오공이 까불던 시절만 해도 삼장법사가 있었다. 율논소에 두루 능한 스님이 대사요 삼장법사다.
대사의 자격은 오늘날로 치면 학위와 별 다르지 않다. 학자들이 대학의 학장으로 총장으로 올라가서 학계를 관리하는 체제와 흡사했다. 당시만 해도 불교는 첨단의 우주물리학이었고 최고의 학문이었다. 대사나 법사는 그런 학문의 권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을 논문으로 증명했고. 자신의 이론과 학문을 강단에서 설법으로 세상에 폈다. 실력이 있어야 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이게 불교였다.
그런데 달마교에는 대사도 없고 법사도 없다. 논문이 없으니 학위도 없다. 실력을 검증할 벙법이 없어져 버렸다. 전부 눈감고 앉아 탱자탱자하면 공밥을 평생 먹을 수 있었다. 논과 소가 뚝 끊어져 버렸다. 그것을 대신하여 선문답과 게송이 등장했다. 논과 소를 하나 완성하려면 학위 논문을 쓰는 것과 다름없는 준비와 시간과 노력과 실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선문답과 게송이라는 것은 좋게보면 재치문답이요, 실상은 말장난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엄격하고 엄정한 학문이었던 불교가 달마 이후에 이런 말장난으로 타락해 버린 것이었다.
홍인은 자기 제자들에게 논이나 소를 요구할 수 없었다. 사바대중을 위한 수준높은 법문의 능력을 바랄 수도 없었다. 그런 것을 내놓으라 해봐야 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홍인이 중국선종의 법통인 의발을 걸고 제자들에게 요구한것은 고작 한줄의 게송이었다. 그런데 이에 응모한 놈이 딱 한놈 뿐이었다. 통재라. 불적들의 장난이 이토록 심하였다.
이때 게송을 지어 응모한 사람은 동선사 제일의 수재로 자타가 공인하던 신수라는 스님이었다. 공식적인 동선사의 제2인자로서 교수사(敎授師)의 직책에 있던 사람이었다. 훗날 측천무후에게 등용되어 출세간에 나갔다가 비참한 말로를 보게되는데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다.
아뭏든 이 신수가 그래도 동선사에서는 제일 잘 나가는 사람이라 모두들 보나마나 신수가 후계자가 될 것으로 생각했고. 신수와 경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기록에는 전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신수라는 사람이 훗날의 출세와 몰락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리 지혜로운 사람도 아니었고, 그다지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비범이 아니라 범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인물에 전부 주눅이 들고 양보를 해서 누구도 자기의 게송을 올릴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당시 동선사의 수준이었다. 중국선종의 본당이라 할 것 같으면 오늘날로 치면 하바드 대학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야만 하는데 달마로부터 겨우 5대째밖에 안된 싯점에서 동선사는 한국의 무허가 신학대학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대학에서 최고 우수학생이 창원대학교 꼴지보다 못한 정도였다.
이 동선사 최고의 수재가 얼마나 한심했느냐 하면 지가 겨우 지어낸 게송을 스승인 홍인한테 내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썼다는 이름조차 쓰지 못하고 도둑놈이 도둑질하다가 똥사고 나오듯이 한밤중에 살슴살금 까치발로 법당에 다가가서 게송을 붙이고 도망쳐 나온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홍인이 법당 밖을 나가보니 응모게송이 한장 떡 붙어있어서 다가가 읽어보니 언넘이 쓴 건지 이름도 없는게라. 그래서 이게 누구의 작품이뇨? 하고 물으니 그제서야 기들어가는 목소리로 '접니다요 스님'하고 쭈빗거리는 화상이 있었어. 보니 신수였다 이말이지.
그때 신수가 제출한 답안지를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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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7 ( 5 ) 구름~~ 2004-12-18 21:07:19 1045
身是菩提樹(신시보제수) : 몸은 보리수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 마음은 거울이로다.
時時勤拂拭(시시검불식) : 틈틈이 털고 닦아서
勿使惹塵埃(물사야진애) : 먼지와 때 묻지 않게 하리라.
이것이 동선사 제1의 수재라는 신수가 응모한 게송이다. 한 눈에 범작임을 알 수 있다. 지극히 평범한 수준의 글짓기다. 사실은 우리집 둘째 현정이한테 주제를 수신이나 수행으로 주고 글짓기 시키면 저 정도 나온다.
그런데 홍인이 이 게송을 읽고는 누구의 작품인지 묻지도 않고(척 보고 신수작임을 알았다고 기록에는 전한다) '썩 좋은 게송이니 누구던지 이 게송을 읊으면서 수행하면 득도하리라'하고 말했다 한다.
그러자 동선사의 모든 땡중들이 머리(이때 머리의 동의어는 장식품이다)를 주억거리면서 '그럼 그렇지, 신수스님의 게송이니 당연 조사님의 맘에 들 수 밖에 없지'하고는 흩어졌다. 당근 다음날부터 동선사 인근에는 신수의 게송이 훗날 해동성국에 유행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맞먹는 대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게나 고동이나 개나 소나 중이나 스님이나 전부 이 게송을 흥얼거리고 다녔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 게송을 지은 신용필이 그날 밤에 스승한테 불려가서 혼이 났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신수의 체면을 생각해서라고 육조단경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동선사의 수준이 들키는 것이 쪽팔렸다는 것이 이유라고 본다. 어쨌건 홍인은 신수를 조용히 불러서 다시 한번 응시할 기회를 주었다. "제발 좀 그럴듯한 걸로 다시 써와라. 너만 믿는다." 이런 주문이었다. 신수는 고개를 푹 떨구고 돌아와서 그날부터 지 방에 처박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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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8 ( 2 ) 구름~~ 2004-12-18 22:11:57 968
절 안의 사람들이 전부 신용필 노래를 부르고 댕기니까 당근 부엌떼기 혜능의 귀에도 이 노래가 들렸다. 하루는 혜능이 신수의 목욕탕가를 부르는 스님을 붙들고 '스님요, 그 노래가 누구 노랜교?'하고 물었겠다. 그러자 스님이 '와, 니같은 오랑캐도 이런 노래 좋은 줄은 아나? 이게 그 유명한 톱스타 신용필이 부른 목욕탕가 아니냐. 우리모두 때를 벗기자.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때를 벗기자 이런 노랜데 어떻노, 노래 지기제?'
'지기기는 개뿔' 혜능이 들어봉께 영 파인 노래였다. 해동성국 방방곡곡 울려퍼졌던 새마을가보다 영양가가 없다고 생각됐다. 문제는 그거였다. 오랑캐 땅에서 글자도 배우지 못한 행자의 눈에 동선사 중들이 하나같이 '조오또 아인 놈들'로 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비록 혜능이 천재였다 해도 동선사의 스님들이 스님들답고 그들의 실력이 선종의 본당다운 것이었다면 혜능이 감히 치받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선사에 온지 팔개월만에 동선사 중들은 혜능의 눈에 '조오또 아닌 놈들'로 비치고 말았던 것이다.
일자무식의 오랑캐 행자눈에 그렇게 우습게 보이고 만만하게 보였다면 그 동선사의 수준은 그야말로 알쪼 아니겠나 이말이다.
이미 동선사 자체가 우스워진 혜능은 신수의 게송을 들은 후부터 갑자기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 배속에 있는 간이라는 놈이 너무 부어올라서 걷기가 힘들어진 것이었다.
불교? 개뿔이라 해라. 교수사? 이건 토끼뿔. 스님들, 이것들은 조오또 아닌 놈들. 혜능이 이렇게 되는데는 긴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동선사 생활 8개월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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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9 ( 1 ) 구름~~ 2004-12-18 23:10:45 936
아시가루 신분에 지나지 않았던 히데요시가 기라성같은 오다가의 무장들 앞에서 자기가 성을 쌓아보겠다고 나섰다면 한가지는 분명하다. 성을 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둘째 문제이고, 그 시점에서 이미 히데요시의 눈에 오다가의 그 많은 무장들이 병신들로 보였다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속으로 "그것도 못하냐, 빙신들. 내가 하는 걸 함 봐바." 이런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이 프랑스 왕당파의 본거지인 툴롱 항구를 공격하는 지휘관으로 자기를 보내달라고 자청했을 때 그의 속마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까짓 항구 하나를 떨어뜨리지 못하는 프랑스 혁명정부의 쟁쟁한 장군들이 얼빠진 인형들 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사람을 우습게 본다는 것. 이것이 천재들의 공통점이다. 천재들이 범인들을 보는 심정은 거의 같다. 그 심리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은 한국밖에 없다 "조오또 아닌 놈들"
혜능도 틀림없는 천재 중의 하나였으므로 동선사에 오자마자 스님들의 실력과 정체를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경멸했다. 그것이 바로 택도 없는 호승심을 불러 일으켰다. 일자무식의 오랑캐 행자가 동선사의 제2인자인 천재스님 신수를 상대해서 조져부겠다는 생각을 하리라고 누가 믿었겠는가? 그러나 이미 동선사 스님들 전부를 밥값도 못하는 놈들로 단정지은 혜능은 신수의 게송을 자기가 밟아버리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정도까지는 글자를 몰라도 천재성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히데요시가 병법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일야성을 쌓은 것과 같은 이치다. 천재성, 그것은 무모한 자신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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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0 ( 6 ) 구름~~ 2004-12-19 10:59:04 1076
설사 행자이고 오랑캐출신에 일자무식의 부엌떼기였다고 해도 8개월이나 나무를 하고 방아를 찧어서 스님들 공양을 해올리다 보면 친한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리고 혜능같은 천재성 인물은 반드시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난다. 매력은 모든 천재들의 공통점 중 두번째이다. 그래서 그 비범함을 홍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이 느끼게 된다. 다만 쥐뿔도 모르는 땡중들 대다수는 교만이라기보다 어리석고 철이 없어서 그저 오랑캐거니 하고 질시하고 천대하면서 우쭐거리는 꼴갑을 떤다. 인간 세상은 구중궁궐이나 심산사찰이나 대현학계나 다를 바 없다.
아마도 성이 장씨인 어떤 스님이 혜능과 다소 친했던 모양이다. 혜능의 부탁을 듣고 혜능이 지었다는 게송을 글로 써준 것이다. 육조단경에는 그 과정이 제법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반은 픽션에 가까운 소리고, 어쨌거나 요지는 혜능이 이틀 동안 신수의 게송을 뭉개버릴 게송을 하나 지어가지고는 글자를 모르니까 한 스님에게 부탁해서 그것을 글로 옮겨 적었다는 사실이다. 엄청난 반란이고, 당돌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가지 결론이 나온다 : 깨달은 결과물이라고 선불교에서 주장하는 게송이 깨달음하고는 무관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왜냐하면 혜능은 이 게송을 지어내기 전에 어떤 공부도 한 바 없으며, 설법도 들은 바 없고, 참선은 더더욱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동선사에 와서 귀동냥 법문도 듣지 못햇다는 증거는 육조단경에 기록된 혜능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혜능은 동자승에게 자기는 홍인이 계시는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어서 신수의 게송이 붙어있는 장소가 어딘지도 모르니 그곳을 좀 가르쳐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혜능의 게송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불교하고는 관계없는 것이며, 달마의 참선(묵조선)의 산물도 아니다.
혜능의 게송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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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1 ( 1 ) 구름~~ 2004-12-19 11:52:53 1034
菩提本無樹(보제본무수) : 보리에는 나무가 없으며
明鏡亦無臺(명경역무대) : 거울 또한 대가 없도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 어느 곳에 먼지와 때가 앉으랴.
이것이 혜능이 짓고 장씨성 가진 스님이 글로 옮겨준 문제의 게송이다. 이것을 얼핏 보면 신수의 게송보다 더 깊이있고 더 한경지 위에 있는 각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표절작이다. 다시 말하면 혜능의 오리지널 창작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4줄의 게송이 모두 신수의 그것을 뒤집은 내용이다. 그러니까 신수가 흑하면 백, 선하면 후로 글자를 바꾼 내용이다. 신수의 게송이 없는 백지에서 이 정도 게송이 나왔다면 선사의 자격이 있다. 하물며 일자무식 행자랴. 그런데 남이 써놓은 시를 뒤집어쓰는 건 일종의 유희고 장난이다. 김시습이 압구정에 써붙여논 한명회의 시를 정반대로 뒤집어 야유한 것이 이와 비슷하다. 김시습의 조롱시가 아주 통쾌하지만 그것은 한명회의 시라는 원판이 있기에 나온 것이다. 우리는 유명 시인의 시나 경구를 비틀어서 얼마던지 그럴듯한 새로운 경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일에 필요한 건 창작력이 아니라 장난끼요 재치다.
혜능이 동선사에 와서 8개월 행자생활을 하는 동안에 많은 스님들의 토론이나 방담을 듣게 되었을 것이다. 부엌일이라고 행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양주보살이나 동자승, 계급이 낮은 스님들도 같이 한다. 8개월 동안 두서없이 줏어들은 불교의 이야기만으로 '본래무일물' 정도는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게송이라는 것이 별달리 깨닫지 못해도 10만원의 상금을 위한 글짓기의 노력으로도 대개 나올 수 있는 소리들이다. 신수의 것이나 혜능의 것이나 찬찬히 읽어보라. 별시리 정각씩이나 요구되는 소리가 아니고, 깨달음씩이나 얻어야 할 수 있는 소리도 아니다. 혜능의 이런 게송 정도는 구르미가 맘만 먹으면 하루밤에 열개도 써낸다. 이건 자랑도 교만도 아니고 사실이 그렇다. 벗님들도 마찬가지다. 하루밤만 긍끙거리고 볼펜 돌리면 저 정도 그럴듯한 소리 네줄은 써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저 게송을 보고 선종의 제5대조사이신 홍인이 끔뻑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뻑 간 거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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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2 ( 3 ) 구름~~ 2004-12-19 12:55:00 1124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원효의 학문과 사유의 깊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누구도 원효의 글과 생각을 흉내내거나 모방할 수 없다. 그것을 비판한 사람도 한국불교 천년에 한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선불교의 게송이나 오도송, 그리고 선문답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다. 읽는 사람이 그럴듯하다고 인정을 해주면 뭔가 가치가 숨어있는듯 아닌듯 헷갈리지만 냉정한 눈으로 보면 시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그냥 말장난이다. 이런 게송 하나로 수행자의 학문과 사유의 세계, 그 복잡한 내면을 짐작한다는 것은 궁예의 관심법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역대 조사들이 그런 관심법의 신통력을 가졌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게송으로 수행의 정도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 가장 좋은 사례가 바로 선의 창시자라는 혜능의 등단이다.
이 사건은 마치 시를 전혀 배우지 않고, 습작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반장난삼아 긁적거린 글을 투고했는데, 이게 신춘문예에 입상을 한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여러 심사위원이 심사하는 신춘문예라면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세상이란 한탕주의,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만약에 신춘문예의 시부문 심사위원이 딱 한사람이라면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유치원 얼라가 맘대로 늘어놓은 글줄이라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대단한 영감을 그린 시로 보이기도 하는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문답은 꿈보다 해몽이다. 그러나 시나 운문이 아니라 산문이거나 특히 논문의 심사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천재의 화려한 등장이라는 사건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선사는 절마다 넘치나게 많지만 용수나 원효는 백년에 한사람이 나온다. 그것도 제대로 된 학풍이 유지될 경우에 그렇다.'
혜능의 게송이 벽에 붙자, 그것을 읽은 동선사의 스님들과 신도들이 쇼크를 받았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혜능의 무때가가 신수의 목욕탕가보다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 차원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는 크게 논란거리가 못된다. 척보면 삼척이고 탁치면 억이다. 더군다나 일자무식의 행자가 게송을 써붙였다는 자체가 화제거리였다. 한 동자승이 홍인한테 쪼르르 달려와서 일러바쳤다. "스님요 스님요, 좀 나와보이소, 혜능행자가 게송을 붙여 놨심더"
홍인은 혜능의 게송을 쓰윽 보고는 "원 익지 않은 풋사과 같고나"하면서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 쓰윽 문질러버렸다.
보고있던 땡중들이 그제서야 "그러면 그렇지 행자 따위가 게송이 당키나 한 소리냐"하면서 돌아갔다. 이렇게 혜능의 무때가는 빛을 못보고 사라져갈 운명이었다. 한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히트를 못하고 죽어있었던 것처럼.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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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3 구름~~ 2004-12-19 13:57:44 947
구름이 볼때 불교 3천년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건이 이때 일어난다.
그 다음날 혜능이 방아를 찧고 있는데 홍인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는 혜능한테 물었다. "방아는 다 찧었느뇨?' 하자 혜능이 대답하기를 "네, 방아는 다 찧었습니다만 아직 키질을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라고 했다.
이 대답을 들은 홍인은 주장자로 땅을 세번 치고는 등을 돌려 가버렸다. 주장자로 세번 땅을 친 것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노라는 뜻이며 통하였노라는 의사표시다.
그날 밤 배불역조의 대사건이 벌어진다. 혜능은 남몰래 홍인을 찾아갔다. 육조단경에는 그 시간이 삼경이었다고 전한다. 삼경은 절의 스님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범죄는 이렇듯이 모두가 잠든 시간에 벌어졌다. 홍인은 일자무식한 행자 혜능을 앉혀놓고 금강경을 설했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이때 홍인이 혜능에게 들려준 구절이 또 그노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었다는 거다.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혜능이 고향을 떠날 때 만난 사람이 들려준 것도 이 구절이요, 홍인이 처음으로 혜능에게 설해준 것도 이 구절이란다. 육조단경을 보면 팔만대장경이 오직 이 한구절 뿐인 것 같다. 이게 다 훗날 지어낸 이야기라는 증거다. 팔만대장경을 통털어서 혜능의 선이라는 삿된 짓에 근거로 삼을 만한 구절이 이것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혜능은 마르고 닳도록 금강경의 이 구절을 지가 만든 야리꾸리한 이단종교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
범죄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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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4 구름~~ 2004-12-19 15:19:37 901
그 직전까지만 해도 자기 이름조차 쓸줄 몰랐던 불학무식한 사람이 야반 삼경이 늦은 시간에 스승과 마주앉아 생전 처음으로 불과 서너 시간 금강경 몇구절을 듣고는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 일체의 의혹이 사라진 대광명에 눈을 떴다고 육조단경은 전하고 있다.
글자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깨쳐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홍인이 그 짧은 시간에 글자를 가르쳤을 리는 없다. 그냥 금강경의 이치를 말로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홍인은 서너 시간의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의 정수를 완전무식한 나무꾼한테 들려주어서 대오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것이 된다. 이 말은 홍인이 석가세존보다 수백수천배 더 설법의 명인이요 탁월한 교사라는 말이거나, 듣는 혜능이 석가세존보다 수천배 근기가 뛰어난 전전생의 활부처라는 말이거나, 불교라는 것이 원래 서너시간 이상 떠들 것도 없고 떠들 이유도 없는 날맹탕이거나의 셋중의 하나가 된다.
그리고 동시에 홍인이 금강경을 서너시간 말로 가르쳐서 혜능을 깨우쳤다면 결국 불교의 진리는 말로써 전달이 가능하고 언어로써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날 밤에 홍인과 혜능이 서로 눈감고 마주앉아서 화두를 물고 참선을 한 것도 아니고 무림의 고수들처럼 손바닥을 마주 붙이고 진기를 불어넣어준 것도 아니고 홍인이 마법을 건 것도 아니다. 오직 홍인은 세치 혓바닥을 열심히 놀려서 금강경을 설해주었을 뿐이다.
선의 창시자인 혜능이 그 스승으로부터 진리를 전수받은 방법은 바로 언어에 의해서였다. 다른 그 어떤 방법도 아니었다. 둘이 워낙 타고난 천재들이어서 소요된 시간은 극히 짧았을 지라도 그 방법은 틀림없는 말에 의한 설명이었다.
만약 그날 밤에 홍인이 혜능에게 들려준 법문의 내용이 전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교의 진수일 것이고, 깨달음의 지름길일 것이다.
그러나 선불교는 깨달음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언어를 여읜 경지에 있다고 가르친다. 홍인의 설법을 듣고 깨친 혜능은 그럼 허깨빈가? 혜능이 대오했다는 그날밤의 사건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희대의 범죄는 달이 지도록 계속되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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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5 ( 2 ) 구름~~ 2004-12-19 16:00:23 998
홍인의 설법을 듣고 크게 깨친 혜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마음이 본래 깨끗하여 더럽힘이 없는 것이며 마음이 나고 죽고 죽음을 분별할 뿐 오고 감이 없습니다. 마음이 열리면 일체 만법이 열리고, 만법이 하나이며 하나가 만법임을 알았습니다."
혜능이 깨친 이 소리를 듣고 홍인이 크게 기뻐하사 가로되, "그대는 이제 하늘과 땅의 스승이요, 부처님이로다." 하셨으니 경배할지어다. 할렐루야~~~~
개뿔.
이 두 황당한 스승과 제자는 그날 밤새도록 오직 한가지만 했다. 둘이서 얘기를 한 것이다. 말로 진리를 전해주었고 그것을 받아 깨친 바를 역시 말로 답하였다. 그리고 그 답이 맞다는 확인과 스승의 기쁨을 역시 말로써 했다. 이 두사람은 오직 언어로서만이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런데도 이 날 이후에 혜능은 모든 출가수행자들의 입을 막아버렸다. 떠드는 자는 알지 못하나니 입닫고 눈감을지어다.
저거 둘은 진리를 주고받고 법통을 승계하면서 참선이라는 것은 단 한순간도 하지 않았다. 참선 따위가 끼여들 여지가 없었다.
어디 멀리서 닭우는 소리가 들려올 즈음에 드디어 5조 홍인의 입에서 불교를 붕괴시키는 최후의 한마디가 나오고 만다.
"이제 그대를 6조로 삼나니 스스로 잘 지켜 널리 중생의 이익을 위해 법을 펴도록 해라."
불교 역사 천년에 드디어 정법은 무너지고 말법의 세상이 도래하는 순간이었다. 팔만대장경의 위대한 학문이 지 이름도 쓸줄 모르고 경이라고는 읽어본 적도 없는 이교도의 촌놈한테 겁탈당하고 능욕당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불교의 역사를 공부하다가 이 대목에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보석이 진흙탕에 떨어지는 순간이요, 보살이 도적에게 업혀가는 순간이었다.
이 날로부터 불교는 사라지고 선불교라는 말법이 세상에 나타났다. 혜능은 건업의 500개 사찰을 불태운 후경보다 더 극악한 불적이다. 이날밤에 홍인이 혜능에게 법통을 넘겨준 것은 불교 몰락의 시작이었다. 정도전이 멸한 것은 불교가 아니라 이 타락한 말법이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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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6 ( 1 ) 구름~~ 2004-12-19 16:45:13 923
혜능이 불학무식의 나무꾼이었다면 2대부처로 숭앙받는 용수는 팔난봉이었다. 심지어는 왕의 궁녀까지 건드려서 수배령이 내리기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용수는 그후 한 도관에 처박혀서 팔만대장경의 숲을 모두 헤쳐나오게 된다. 부처님의 남기신 말씀들을 말 그대로 통채로 삶아먹은 사람이다. 이때 용수가 먹은 지식탕의 이름이 연기다. 용수는 이것을 먹고 중도를 뱉었다. 중도는 연기의 해석론이요 보충설명이다. 석가세존의 가르침과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그러나 혜능은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지 못했다. 글자를 모르니 아예 공부 자체가 불가능했다. 글자는 나이든 후에는 깨치지 못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성룡이 스타가 된 후에 글자를 모르는 것이 한이 맺혀서 거금을 주고 과외선생을 모셨다. 가갸거겨오요우유... 결과는 실패였다. 성룡이 끝내 하지 못한 것이 문자의 해독이다. 그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어떤 천재도 나이 든 후에 글자를 깨칠 수는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결국 까막눈인 채로 죽었다. 동학의 2대교주 최시형도 죽을 때까지 문맹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불교를 모르는 상태에서 혜능이 만들어낸 선은 불교가 아닌 무엇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 불교를 전혀 모르는 혜능이 어떻게 불교와 일치하는 것을 만들어 내겠는가? 만약에 그렇다면 천년의 간격을 둔 두사람인 석가세존과 혜능이 각자 깨친 것이 딱 떨어지게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럴 가능성은 얼마일까?
혜능이 뱉어낸 것은 잡탕을 먹고 만든 선이라는 짬뽕이지 결코 불교가 아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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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8 ( 2 ) 구름~~ 2004-12-19 18:01:47 1037
홍인이 혜능에게 불교를 통채로 넘겨준 이유는 혜능이 천재여서가 아니라 홍인이 무능했기 때문이다.
홍인도 소위 선문답이라는 것을 통해서 4대조로부터 법통을 전수받은 사람이다. 이 절차가 얼마나 헛된 것인가는 그것을 통해서 5대조로 등극한 홍인이 얼마나 무능하고 못난 사람인가를 보면 된다. 동선사에 온지 팔개월이나 되는 혜능이 홍인스님이 거처하고 설법하는 법당이 어디인지를 올랐을 만큼 동선사는 큰 절이었다. 아마도 탱자탱자하는 땡중들이 수천명은 무위도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중들 중에 게송 하나 제대로 지을 줄 아는 넘이 없었다는 것은 1차적으로 홍인의 책임이다. 물론 더 원천척인 책임은 무소의경전(無所依經典)을 지향함으로써 불립문자, 교외별전을 종지로 하는 달마교 자체에 있다. 경전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여 직지인심에만 매달리다 보니 스님들이 공부 안하고 빈둥거릴 수밖에 없다. 공부하기 싫은 백수들한테는 스님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고. 절보다 더 나은 직장이 없는 법이다. 홍인은 이런 백수넘들의 수용소장이었다. 말하자면 사회시설의 관리자에 지나지 않았다. 이게 당시 불교의 현실이었고 오늘날에도 별로 나아진 것 같지는 않다.
홍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스스로 절망하기도 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아직 건강하고 갈 때도 멀었는데 의발을 걸고 양위를 선포했겠느냐 이 말이다.
첫번째 이유는 홍인의 무능이요, 두번째 이유는 혜능의 말빨이다. 혜능은 배우지는 못했지만 천부적인 이빨이었다. 생전 첨 보는 사람한테서 노자돈까지 빌려서 먼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혜능은 타고난 언변가였다는 이야기다. 이 언변이라는 것은 배움과 상관없는 천부적인 능력이다. 자기 이름을 쓸줄 몰랐던 문맹들 중에 대 변설가였던 사람들은 역사상에 상당히 많다. 노예반란을 일으킨 로마의 스파르타쿠스도 그런 사람이다. 글자를 배우지 못한 노예였지만 스파르타쿠스는 능란한 언변으로 노예들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키고 그들을 지도했다. 스파르타쿠스가 노예들에게 했던 연설은 세계의 100대연설에 들어간다. 일자무식의 농꾼이었던 히데요시도 역시 달변가였고 동학의 2대교주 최보따리도 달변가였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사람을 휘어잡는 언변과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었다. 홍인은 그런 점에서 혜능의 적수가 아니었다. 혜능은 불교의 불자도 몰랐지만 타고난 말빨로 홍인의 얼을 빼놓았다. 물론 말했다시피 그런다고 넘어간 것은 홍인의 자질 문제였다.
띨빵하고 한심한 5대제자 홍인의 용서받지 못할 무능함으로 말미암아 불교가 오랑캐 나무꾼 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게 6세기에 중국 불교 내부에서 어느날 밤에 일어난 사건이다.
또 하나 들 수 있는 것은 당시의 불교에 절망한 홍인이 혜능에게서 한줄기 가능성을 보았다는 사실이다. 지가 워낙 졸렬하다보니 혜능이 환생한 부처로 보였고, 몰락한 불교를 중흥시킬 역사로 보였을 것이다.
멸망의 원인은 언제나 외부의 뛰어난 적이 아니라 내부의 못난이라는 사실은 불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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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19 구름~~ 2004-12-19 19:44:49 914
희대의 사기꾼, 카사노바, 사이비 교주들이 한번씩 크게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대부분 그 주인공들이 무학이거나 기껏해야 국졸이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중퇴자가 사법고시 합격자로 가장해서 수십명의 여대생을 잡수신 사건도 왕왕 생긴다. 국졸 교주한테 판검사 부인들이 농락당하고 교수가 전재산을 바친 어이없는 꼴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럴때마다 의아한 것은 어떻게 저 무식꾼들 농간에 최고의 학력을 소지한 지성인들이 홀딱 넘어가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사람들은 깜빡 속는다. 그만큼 천부적인 재능은 후천적인 학습을 압도하기도 한다.
혜능이 사기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편의 게송과 하룻밤의 독대로써 5대조로부터 법통을 받아 쥔 혜능의 놀라운 능력에 탄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날 밤의 대화는 홍인이 금강경을 설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혜능이 홍인에게 선을 강의했을 것이다. 물론 불교가 아닌 혜능작 신종교였겠지만. 불행하게도 홍인은 혜능의 요설이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햇다. 왜냐하면 이미 홍인도 달마독에 중독된 불구의 몸이었기 때문이다.
혜능의 변설에 홀려 얼이 빠진 홍인은 그의 눈앞에 나타난 부활하신 부처에게 지가 오히려 게송을 지어 바친다. 그 게송은 이런 것이었다.
有情來下種(유정래하종) : 뜻이 있어 씨 뿌리니
因地果還生(인지과환생) : 인연있는 땅에서 열매가 생기도다.
無情旣無種(무정기무종) : 뜻도 없으면 씨도 없나니
無性亦無生(무성역무생) : 성품이 없으면 남도 없도다.
이 게송의 수준을 말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혜능의 흉내를 내어볼 따름이다.
下種來有情(하종래유정) : 씨뿌리는데는 뜻이 있나니
還生果因地(환생과인지) : 한생을 돌아 인연있는 땅에서 열매를 얻도다
無種旣無情(무종기무정) : 씨 뿌리지 않음은 뜻이 없어서이니
無生亦無性(무생역무성) : 남이 없으면 성품도 없도다.
이건 구름의 게송이다. 어떻노? 모작이지만 오리지널인 홍인 것보다 더 그럴 듯 하자나. 내가 천년 전에 홍인을 만났으면 선종6대조는 따놓은 당상이다. 조사되는 건 장난이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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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0 ( 15 ) 구름~~ 2004-12-19 22:41:58 1260
흔히들 선의 효용성을 얘기할 때 선종의 3대조사인 승찬과 6대조인 혜능을 예로 든다. 두사람은 모두 선을 알지 못했고 수행을 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사람에게는 진리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이 간절함이야말로 깨달음에 필요한 제일의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두번째 필요한 요소가 인연이다. 혜가가 달마를 만나고 승찬이 혜가를 만난 것과 같은 인연을 만날 때에 한순간에 불처럼 타올라 진리를 깨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간절함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인연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이다. 대입학원의 강사도 매년 자기가 가르친 학생들 중에 몇명은 서울대 보내는데 역대 조사는 몇명이나 이끌어주었나 말이다. 고작 평생에 한명이다. 달마는 혜가, 혜가는 승찬, 승찬은 도신, 도신은 홍인, 홍인은 혜능. 이런 식이다. 이런 방법으로 언제 수억만 사바대중을 교화시키나 말이다. 석가세존이 1,255인의 제자를 기르셨으면 하다 못해 그 10분지 1은 해야 될 거 아니냐 말이다.
선불교는 1000명을 바보로 만들면서 1명의 천재를 찾아내는 교수법이다. 그래서 천년의 세월 동안 고작 100여명의 선사, 조사들이 몇줄씩의 행적을 남겼을 뿐이다. 이것은 석가세존이 바라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선불교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한 마음을 바로보고 그 자리에서 깨닫는다는 선의 요체를 그 개산조인 혜능 스스로가 부정하고 있다. 육조단경의 기록에 의하면 분명히 혜능은 그날 밤 홍인으로부터 금강경 설법을 듣고 크게 깨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종의 법통을 홍인이 넘겨주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때 깨쳤다는 혜능은 그 후 15년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왜 사라져야 했을까?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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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1 ( 3 ) 구름~~ 2004-12-20 18:47:08 1070
무협지는 내용이 황당하고 줄거리가 조잡해도 독자들이 그것 가지고 책잡지 않는다. 독자가 무협지에 요구하는 것이 엄격한 논리성이나 수미일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종의 역사와 조사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건 그야말로 무협지보다 줄거리가 황당한 것이 많다. 조사들의 초능력이나 오묘한 선지식의 경지때문이 아니라 사건의 전개가 무협지보다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 중 압권이 바로 혜능이 홍인으로부터 6대조사로서 법통을 인계받는 과정이고, 그보다 더 골 때리는 것이 바로 그 직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밤새도록 혜능과 대화를 나눈 홍인은 선종의 후계자로서 혜능을 결정하였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 과정을 밝힌대로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 홍인과 혜능 두사람은 무엇을 했을까? 상식대로라면 날이 밝는 즉시 온 사바대중과 스님들을 회당에 다 모아놓고, 교수사인 신수를 일순간에 무색케 만들 만큼 탁월한 선지식과 근기를 갖춘 보석을 부엌에서 발견했노라 공표하고 약속대로 그에게 의발을 물려주는 양위식을 거행하여야 했다. 물론 파격적인 후계자의 발탁에 놀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반발도 있겠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패로 삼고 혜능의 재주를 창으로 하면 그 정도 역풍이야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래야 조사로서의 자격이 있다 할 것이다. 석가세존 당시의 인도는 홍인 당시의 중국보다 더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제자를 발탁하고 그 서열을 메기는데 그 사람의 신분에 별로 구애받지 않으셨다. 그 정도 반발 쯤은 안중에도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셨다.
그런데 우리 대선종의 5대조이신 홍인선사께서는 어떻게 하셨느냐? 날이 밝기도 전에 몇시간 전에 처음으로 대화를 나눠본 후계자의 손을 잡고 도둑놈처럼 살금살금 절을 빠져나가 제자를 멀리 도망보내고 돌아왔다. 이 제자는 그로부터 꼭 15년 후에 다시 중원무림에 파란을 몰고 등장하게 된다. 불교 이야기가 아니고 완죤 무협지다.
왜 홍인은 자기 후계자를 새벽에 피신시켜야만 했을까? 왜 혜능은 그후 15년 동안 세상에 나타나지를 못했을까? 불교 역사 최대의 미스테리를 추적해 보자. 불교판 역사스페샬이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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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2 구름~~ 2004-12-20 21:16:19 952
지금까지 홍인과 혜능의 이야기를 읽어온 독자라면 이쯤에서 이 사건의 본질을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특히 무협지나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은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사건의 형사적 본질은 바로 증인이 없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혜능이 방아를 찧고있을 때 홍인이 나타난 싯점부터 그 다음날 새벽에 혜능이 사라지기까지의 사건은 선불교의 종통이 누구의 손에 넘어가느냐 하는 불교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사건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당사자 두사람 외에는 어떤 목격자도 없이 진행된 사건이었다. 역사의 법정에서 이 두사람의 말 외에는 어떤 증인도 부를 수가 없어서 검사가 기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역대 조사의 후계는 본인들 외에도 목격자가 다수 있어서 그것을 증언하고 있고 기록도 다양하다. 그런데 5대조에서 6대조로 넘어가는 과정은 단 한명의 목격자도 남기지 않았다. 유일한 증인은 그날밤 법당의 서까래 밑에서 찍찍거린 두마리의 쥐뿐이었다. 이 두마리는 그때 마침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이 두사람의 유일한 피의자이자 목격자이자 증인은 두번다시 살아서 만나지 못했다. 홍인이 이로부터 3년쯤 후에 숨을 거둔 것이다. 물론 홍인은 이 유일한 후계자를 찾지도 않았고 후계자 역시 스승의 임종에 나타나지 않았다. 홍인은 그날밤의 범죄에 대해 생전에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않았고, 모든 비밀을 무덤 속에 가지고 가버렸다.
지금 육조단경에 기록되어 전하는 모든 내용은 바로 15년 후에 유령처럼 나타난 혜능의 진술에만 의존한 것이다. 모든 사건의 내막이라는 것은 오직 한사람 혜능이 그렇다고 말한 것 뿐이다. 그런데 이 진술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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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3 구름~~ 2004-12-21 11:02:09 863
이 사건에서 목격자가 있는 마지막 장면이 바로 홍인이 혜능의 게송을 신발로 문질러 버리는 장면이다. 혜능의 진술에 의하면 홍인은 행자출신의 미천한 오랑캐가 감히 선종의 후계가 걸린 게송에 응모했다는 것 때문에 혹시 사람들의 시기를 받아 위험해질까 염려해서였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까? 신수와는 달리 혜능의 게송에는 '작자 혜능'이라고 분명하게 응시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만약에 이게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일이었다면 누구보다도 혜능이 잘 알았을 것이고, 혜능이 불러주는 게송을 문자로 적어준 장씨성 가진 스님이 말렸을 것이다. 그러나 혜능의 진술에 의하면 이때 장씨성 가진 스님은 그런 걱정은 커녕, 5조 홍인의 뒤를 이어 선종의 법통을 잇게되고 크게 깨우쳐 부처님이 되거든 자기를 기억이나 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다. 혜능은 신변의 위험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홍인은 왜 혜능의 게송을 신발로 문질러 버렸을까?
논리적으로 유추해낼 수 있는 유일한 답은 '바로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다. 홍인은 혜능이 동선사에 온 첫날 자기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날까지 홍인은 혜능에 대해 그리 깊이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혜능 자신이 그 사건 이전에 홍인을 한번이라도 배알한 적이 있거나 가르침 한번 얻었다는 말을 안하기 때문이다. 홍인의 기억에 혜능은 다소 당돌하고 당찬 오랑캐 행자쯤 되었을 것이다. 이런 혜능의 게송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장원을 했을 경우에 홍인은 감당하기 어려운 골치아픈 일들을 겪게 된다. 그 중에서도 제일 곤란한 것이 바로 동선사의 수준이 만천하에 뽀록이 난다는 점이다. 일자무식의 행자보다 나은 게송을 지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혜능의 탁월함이 아니라 동선사의 수준이 바닥이라는 사실이 먼저 부각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이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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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4 구름~~ 2004-12-21 10:30:28 866
홍인은 혜능의 게송을 보자마자 '익지않은 풋사과 같은 게송이로다'하면서 신발로 그어버렸는데, 홍인의 속내가 어떤 것이었는지간에 그것으로서 혜능의 응시는 물을 먹은 것으로 봐야 한다. 왜냐하면 선종의 조사인 홍인이 이랬다 저랬다 식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설익은 풋사과'로 단정하고 신발까지 벗어서 문질러버린 게송을 다음날 바로 극찬을 하면서 그 지은이를 후계자로 삼는다면 이건 해괴한 웃음거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홍인이 혜능의 게송을 보고 그것이 실로 깨달은 사람의 게송이고, 혜능이야말로 선종의 후계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면 홍인은 약간의 여지를 남겨뒀어야만 했다. 그러나 홍인은 어떤 번복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채점관의 최종 판정을 해버렸다. '불합격!'
그래놓고 홍인은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 다음날 낮에 혜능이 일하는 방앗간에 찾아갔다. 그리고 '방아를 다 찧었느냐'고 묻는다. 혜능이 '방아는 다 찧었는데 키질만 못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홍인은 주장자를 땅에 세번 짚었다고 한다. 이것을 혜능은 훗날 해석하기를 자기의 말 뜻은 '이미 마음이 다 열려있고 깨쳤으니, 스승님께서 인가만 해주시면 됩니다'라는 뜻이었다고 하고 홍인은 이에 대해 주장자를 세번 두드림으로서 '그리 하겠노라'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는 야밤 삼경에 홍인의 방에 찾아들었다는 것이다.
과연 두사람은 이렇게 척하면 삼척이고 탁하면 억이었을까? 하회를 보자.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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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5 ( 17 ) 구름~~ 2004-12-21 13:47:01 1227
무협소설의 가장 고전적인 스토리는 이런 거다. 부모님을 억울하게 잃은 주인공이 복수를 하기는 해야 하지만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데, 어느날 깊은 산 속이나 동굴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너무나 우연히 은거중인 초절정고수를 만나서 비전의 무술을 전수받은 후 강호에 나와 부모님의 복수를 하고 사부님의 한을 풀고 아름다운 아가씨와 사랑을 한다는... 이런 이야기다. 이럴 때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초절정무공을 전수하는 방법인데, 대부분의 무협소설에서 주인공의 무공은 어느날 하루밤 사이에 수백, 수천배 파워 레벨이 올라가는 것으로 되어있다. 싸부님이 주인공의 등에 손을 얹고 몇시간 동안 진기를 불어넣어주거나, 혹은 신비로운 무공의 비결을 몇구절 외움으로써 주인공은 시골 촌놈으로부터 하루아침에 무림의 최강자와 겨룰 정도의 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무협소설이라 해도 주인공이 아무런 계기도 없이, 이유도 없이, 싸부도 만나기 전에 이미 절정고수로 설정되어 있다면 이 무협소설은 만화방에서도 안받으려 할 것이다. 독자들이 보기에 뻥도 어느 정도 쳐야지 무협이라고 해서 이런 터무니없는 뻥을 치면 책이 안 팔린다.
그런데 우리의 호프 선종의 제6대조사이신 혜능은 이런 무협소설의 기본을 간단히 무시해버리고 등장한다. 혜능은 사부를 만나기 전에 이미 절정 고수이며, 그것도 어떤 공부나 수련, 연마의 과정도 없이 그렇다. 혜능은 홍인을 만난 자리에서 당돌하게 말한다. '방아는 이미 다 찧었노라고' 그는 키질만 하면 일이 끝나는 단계에 있었다고 스스로 진술하고 있다. 만화방에서도 안 팔릴 엉터리 무협소설이 천년동안 베스트셀라에 올라있었던 것이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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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 선불교가 불교가 아닌 이유 26 구름~~ 2004-12-21 17:35:43 855
혜능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밤에 홍인이 혜능을 기다린 이유는 "혜능에게 금강경을 들려주고, 게송 잘지었다고 칭찬해주고,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노라는 엄청난 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미 홍인은 후계자의 게송을 신발로 문질러버린 다음이었다. 홍인이 그 게송을 보고 후계자를 찾았다고 생각했다면 왜 번복의 여지가 없는 최종판정을 분명하게 해버린 것일까? 나는 혜능의 진술을 의심하는 편이다.
나는 홍인이 혜능의 게송을 문질러버렸을 때, 이미 홍인의 결심한 바는 '추방'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당돌하게 겁대가리 상실한 오랑캐를 그냥 절에 두다가는 골치 아픈 일들이 자주 일어날 것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혜능을 멀리 보내기 위해 타이르고 설득하는 자리가 그날밤의 대화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혜능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장 훌륭한 게송을 짓는 자에게 법통을 넘겨주겠노라고 했던 홍인의 약속이 그를 구속하는 바 컸을 것이다. 그 뿐이 아니라 혜능은 의외로 홍인이 짐작했던 것보다 선천적인 근기와 기량이 뛰어났을지도 모른다. 원래는 타일러서 쫓아보내려고 불렀다가 하루 밤이 새는 동안에 설득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설득이라기보다 반했던 것은 아닐까? 혜능과 같은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머리가 좋고, 언변이 유창하고, 인물이 준수하며 자신감이 넘치고, 무엇보다도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다.
나는 전후의 맥락으로 보아 그날밤에 혜능을 만나기 전까지는 홍인의 마음에 법통을 물려줄 생각은 없었다고 짐작한다. 만약 그렇다면 선종이라는 것이 너무나 초라해진다. 그 정도의 짧은 게송 하나로 하루아침에 행자에서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선불교라는 얘기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홍인과 혜능은 긴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컨데 그렇다는 얘기다.
홍인은 혜능의 말빨에 밀려서 결국 그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이미 홍인은 결정을 번복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날 밤에 홍인이 보여준 행적은 실로 기괴해서 한편의 미스테리물이다. 대화를 끝마친 홍인은 혜능을 데리고 절을 빠져 나가 강가로 데려간다. 그리고는 매여져 있는 거룻배 하나를 풀어서 혜능을 태우고는 손수 노를 저어 한참을 간다. 혜능의 진술에 따르면 이날 새벽의 정경은 사랑하는 제자를 멀리 떠나보내는 스승의 자애와 염려가 눈물겹도록 배어나는 한폭의 동화이다.
홍인은 방금 전에 처음 사제의 연을 맺은 혜능에게 자상하고도 간곡하게 당부를 하셨다고 한다. "남쪽으로 멀리가서 법을 펴되 서두르지 말고 때를 기다려라"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때가 혜능이 스물세살이었다고 전한다.
무협소설에 보면 이런 사제간의 이별이나 부모자식간에 헤어질 때는 반드시 등장하는 소품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별의 징표이다. 깨어진 거울조각이던 부러진 칼이던 먼 훗날 부자지간, 사제지간임을 증명할 징표를 주는 것이 보편상식이다. 그러나 홍인은 자신의 말을 훗날 혜능이 증거할 어떤 징표도 주지 않았다.
홍인은 자기 스승인 4대조 도신으로부터 달마의 밥그릇과 옷을 전해받은 사람이다. 역대 조사는 이 의발로서 종통의 적사임을 드러내 보였다. 천하 거지들의 단체인 개방의 조사는 반드시 개방의 상징인 대나무 작대기를 물려받아야 한다. 어떤 곡절로 손에 넣었건 그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있는 사람에게 천하의 거지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달마의 의발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만약에 홍인이 진정으로 혜능에게 후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면 당연히 달마의 의발을 혜능에게 주었어야 했다. 하다 못해 남쪽의 다른 절 주지에게 소갯장이라도 한장 써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홍인은 혜능에게 그 어떤 징표나 언약의 증거도 주지 않았다. '몸조심 해라'는 말 뿐이었다. 달마로부터 5대 2백년을 전해진 의발의 전수는 이로부터 끊어져 버렸다. 이에 대해 혜능은 뭐라고 진술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