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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마틴 루터의 소요리문답서 1
제1부 십계명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위하여
제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무엇보다도 위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2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문 : 무슨 뜻입니까?
답: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그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모독하거나 속임수를 쓰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또는 기만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어떤 고난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며 찬양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3계명
너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지 않고 거룩히 받아들이며, 즐거이 듣고 배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4계명
너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가 부모를 경멸하거나, 노하게 해서는 안되며 그들을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하고 사랑하며 존경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듯 사랑해야 합니다.
제 5계명
너는 살인하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우리 이웃의 몸에 해를 끼치거나 고통을 주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들을 도우고 모든 육의 고난에 협력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Twickenham United Reformed Church
제 6계명
너는 간음하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정결하고 단정하게 생활하고 그와 같이 자기 남편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7계명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우리는 우리의 이웃의 돈이나 재산을 훔치거나 훔친 물건을 사거나 팔지 말고, 그에게 재물과 음식으로 도우며 보호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8계명
너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거짓으로 속이지 아니하며 배반하지 아니하며 비방하지 아니하며 악평을 만들지 아니하고 그에게 사과하며 그에 대하여 좋은 것을 말하고 모든 것을 최상으로 되도록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9계명
너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게 권모술수로써 그의 재산이나 집을 탐내지 아니하며 법의 증거를 빙자하여 우리의 것으로 삼지 말고 도리어 그의 재산이 보호되도록 협조하며 섬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10계명
너는 네 이웃의 남녀 종이나 가축이나 무릇 이웃의 것은 아무 것도 탐내지 말라.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우리의 이웃에 있는 여자나 하인이나 가축을 강제로 빼앗지 아니하며 저버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들이 은혜를 입은대로 살며 행하도록 그들을 보호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 : 하나님은 이런 모든 계명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답 :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주인이요 너희 하나님으로서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 대하여는 아비들의 죄를 삼 사 대의 자손에 이르기까지 갚을 것이나,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축복할 것이다.”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은 이런 계명을 범하는 자들을 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진노를 두려워하며 그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이 계명을 잘 지키는 자에게 은혜와 모든 자비를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그의 계명에 따라 즐거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소 요리문답2
제2부 믿음 (사도신경)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위하여
제 1항
창조에 관하여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나를 창조하셨고, 나에게 몸과 혼과 눈과 귀, 그리고 모든 지체와 이성과 감각들을 주셨으며 더욱이 의복과 신발, 먹고 마시는 것과 집과 뜰, 여자와 아이, 농토와 가축, 그리고 모든 재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육신의 생활을 위하여 매일 필요한 것과 먹을 것을 풍성히 공급하시며 모든 위험에서 지켜주시며 특별히 악에서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노력의 대가나 나의 품격의 대가가 아닙니다.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그를 섬기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제 2항
구원에 관하여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겼고 지옥에 내려가셨으며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A picture of the first church of St. James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 가운데서 아버지로부터 참 하나님으로 탄생되시고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참 인간으로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바 되고 저주 받은 인간인 나를 구원하셨으며 모든 죄와 죽음과 사탄의 지배에서 나를 건지신 내 주님 되심을 믿습니다. 이것은 금과 은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의 거룩하고 값비싼 피와 죄 없이 받으신 고난과 죽음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것이며,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영원 가운데서 살아계시며 통치하는 것과 같이 그의 나라에서 그와 함께 살며 영원한 의와 무죄와 축복 속에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제 3항
거룩에 대하여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아멘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나는 자신의 이성이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을 수 있거나 그에게 갈 수 없습니다. 다만 성령이 복음을 통하여 나를 부르시고 그의 은혜로 눈을 뜨게 해 주셔서 올바른 믿음 가운데 거룩하게 하시고 보존시켜 주시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그가 땅 위에 있는 그의 모든 백성을 부르시고 모으시고 밝히시며 거룩케 하사 예수 그리스도의 바르고 일치된 믿음 안에 있도록 붙들어 주심과 같은 것입니다. 이같이 기독교 안에서 하나님은 나와 모든 믿는 자들에게 매일 모든 죄를 충분히 용서하시며 마지막 날에 나와 모든 죽은 자를 부활시키며 모든 믿는 자와 함께 나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루터의 소요리 문답3
제 3부 주기도문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위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인도하려고 하십니다. 즉 그가 우리의 바른 아버지이며 우리는 그의 바른 자녀인바, 이것은 우리가 위로를 얻고 모든 신뢰를 다하여 사랑스런 아이가 그의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그에게 무엇이든 바라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간구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의 이름은 스스로 거룩하나, 우리는 이 기도에서 그 이름이 역시 우리에게서도 거룩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문 : 이것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답 : 하나님 말씀이 순전하고 온전하게 가르쳐지며 우리 역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그 말씀대로 사는 곳에서는 이런 일이 이루어집니다. 하늘에 계신 사랑의 하나님은 이렇게 되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가르치고 사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해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그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하소서.
두 번째 간구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간구 없이도 스스로 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간구에서 그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문 : 그것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답 :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그의 거룩한 성령을 주신다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가 그의 거룩한 말씀을 믿고 거룩하게, 순간순간 그리고 거기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세 번째 간구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뜻은 우리의 기도 없이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지도록 이 기도 가운데서 바라는 것입니다.
문 :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까?
답 : 만일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악마의 것이며, 세상의 것이며, 우리 육의 의지로써 모든 악한 의도와 뜻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그의 나라가 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깨뜨리고 막아주신다면,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 우리를 그의 말씀과 믿음 안에 굳게 붙들고 도우신다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그의 은혜롭고 선한 뜻입니다.
www.sonofthesouth.net/
네 번째 간구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의 간구 없이도 하나님은 모든 악한 사람들에게까지도 일용할 양식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인식하게 하며 우리가 감사함으로써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받도록 이 기도 가운데 바라는 것입니다.
문 : 일용할 양식이란 무슨 뜻입니까?
답 : 육신의 영양과 필요한 것에 관한 모든 것, 즉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옷, 신발, 집, 뜰, 농토, 가옥, 재산, 경건한 배우자, 경건한 아이들, 일꾼들, 경건하고 신실한 주인들, 선한 통치자, 날씨, 평화, 건강, 훈육, 영예, 선한 친구들, 신실한 이웃들 등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다섯 번째 간구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이 기도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로 인하여 이러한 간구를 거절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받을만한 자격도 없으며, 매일 많은 죄를 짓고 무가치한 벌을 쌓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진심으로 용서받기를 원하며 또한 우리에게 죄짓는 자들에게도 기꺼이 용서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간구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소서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하나님은 그 누구도 시험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간구에서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신이 우리를 속이지 못하며, 불신앙과 의심과 다른 큰 수치와 악습이 우리를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며 붙들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고통을 당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마침내 이기고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간구
우리를 악에서 구원하소서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우리는 이 기도 전체에서 하늘의 아버지가 몸과 영과 선과 영예의 여러 가지 악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오면 복된 임종을 허락하며 이 속세로부터 은혜로 하늘에 들리워지도록 바라는 것입니다.
아멘
문 :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답 : 나는 이러한 간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받아주심으로 응답된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우리에게 그와 같이 기도하기를 원하셨고, 또 그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멘, 아멘”, 이것은 “예, 예, 그와 같이 이루어지이다” 라는 것을 뜻합니다.
제 4부 성례로서의 거룩한 세례
어떻게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쉽게 가르칠까를 위하여
첫째
문 : 세례는 무엇을 뜻합니까?
답 : 세례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에 포함된 물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된 것입니다.
문 :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도대체 어떤 말씀입니까?
답 : 우리 주 그리스도가 마태복음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둘째
문 : 세례가 주는 유익은 무엇입니까?
답 : 세례는 죄의 용서와 죽음과 사탄으로부터 구원해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따라서 믿는 모두에게 영원한 축복을 줍니다.
문 :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어떤 것입니까?
답 : 우리 주 그리스도는 마가복음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셋째
문 : 물이 어떻게 이와 같은 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답 : 물 자체가 그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물과 함께 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물 안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물은 단순한 물이며 세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그것은 세례가 되며 은혜가 풍성한 생명의 물이며 또 그것은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나는 씻음입니다. 이것은 성 바울이 디도서 3장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넷째
문 : 이와 같은 물 세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 :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옛 아담이 매일의 뉘우침과 회개를 통해 물속에 잠기는 것과, 모든 죄와 악한 정욕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매일 하나님 앞에서 의와 정결 가운데서 영원히 살게 될 새 사람이 태어나고 부활하는 것을 뜻합니다.
문 : 그것은 어디에 기록되었습니까?
답 : 성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www.geocities.com/imanua/
어떻게 가장이 그의 가족에게 쉽게 가르칠가를 위하여
문 : 제단의 성례가 무엇입니까?
답 : 이는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의 참 몸이며 피인 바,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떡을 떼고 포도주를 마셔 기념하라 하신 것입니다.
문 : 이것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답 : 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바울서신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문 : 이와 같이 먹고 마심은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답 : 이 말씀들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너희를 위해 주셨으되 죄 용서를 위하여 피흘려 주셨다.” 말하자면 성경에서 우리에게 그같은 말씀을 통하여 죄의 용서와 생명과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 용서가 있는 곳에 생명과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 : 어떻게 실제로 먹고 마시는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답 :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은 먹고 마심이 아니라 그곳에 함께 한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죄 용서를 위해 피흘리셨다” 이 말씀들이 구체적인 먹고 마심으로 성례의 중심입니다. 이 말씀들을 믿는 자는 이 말씀들이 말하는 바, 죄의 용서를 받게 됩니다.
문 : 누가 그같은 성례를 합당하게 받을 수 있습니까?
답 : 금식하고 몸으로 준비하는 것은 훌륭한 외면적 규율입니다. 그러나 너희에게 죄의 용서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이 말씀을 믿는 자가 합당한 자요 잘 준비된 자입니다. 이 말씀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는 자는 성례를 받기에 합당치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를 위한”이란 이 말씀은 오직 믿는 마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http://kr.blog.yahoo.com/soodosa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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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득의론/이양호[연대 교수]
1999년 10월 31일, 종교 개혁 482주년을 맞이하여, 천주교회와 루터교회 사이에 득의론에 관한 공동 선언(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October 31, 1999 in Augsburg Germany)이 발표되었다. 이 선언 마지막 부분에서는 득의론에 관한 한 루터교회와 천주교회가 상호 비난할 일이 없다고 말하였다. "
이 선언에 제시된 루터교회들의 가르침은 트렌트 공의회의 정죄들 아래 있지 않다. 루터교 신앙 고백들 안에 있는 정죄들은 이 선언에 제시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해당되지 않는다."1) 이 선언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1563년에 발표된「트렌트 공의회의 교칙과 교령들」에 나오는 정죄들 중 어떤 것들은 루터란을 암시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만약 어떤 사람이 신앙에 의해서만 불경건한 자가 득의된다고 ... 말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2)와 같은 구절이다. 또한 1577년의 루터교의「일치 신조」에 나오는 정죄들 중 어떤 것들, 예컨대 "'득의한다,' '득의된다'는 것은 죄에서 사면을 한다거나 사면을 받는다는 것과 죄의 용서를 얻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주입한 사랑과 덕 때문에,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유래하는 행위들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사실상 의롭게 되는 것을 뜻한다"3)는 구절은 로마 가톨릭의 주장을 암시하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다.
사실 1999년의 이 공동 선언은 득의론에 관한 해석의 차이가 16세기 교회 분열의 원인이었음을 시인한다. "득의에 관한 성서적 메시지에 대한 상반된 해석들과 적용들이 16세기에 있어서 서방 교회의 분열의 주요 원인이었고, 또한 교리적 정죄들을 야기하였다. 그러므로 득의에 관한 공동 이해가 그 분열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이고 불가결하다."4)
그런데 1999년의 공동 선언에서는 루터교와 천주교의 득의론을 각각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우선 루터교의 득의론이다. "루터교 이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신앙 안에서만 죄인들을 의롭다 한다‥‥‥신앙만에 의한 득의'라는 교리에 있어서 득의 자체와 득의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오며, 그것 없이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삶의 신생(renewal) 사이에 구별은 있지만 분리가 있지는 않다‥‥ 득의와 신생은 신앙 안에 임재하는 그리스도 안에 결합되어 있다."5)다음으로 로마 가톨릭교의 득의론이다. "
가톨릭 이해 역시 신앙을 득의에 있어서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죄인들의 득의는 죄들의 용서와 득의의 은총에 의해 의롭게 만드는 것인데, 이 은총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6) 요컨대 루터교의 득의론에 있어서는 '득의 자체'와 신생은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으며, 로마 가톨릭교의 득의론에 있어서 득의는 죄의 용서와 의롭게 됨이다. 사실상 이 공동선언을 보면,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천주교회는 행함을 강조하고 개신교회는 신앙을 강조한다는 말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루터의 득의론은 루터교회와 정교회 간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1998년에 핀란드의 루터 학자들의 루터 연구서 「그리스도와의 연합: 루터에 관한 핀란드 학자들의 새 해석」이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마네르마아(Tuomo Mannermaa)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앙 안에 그리스도의 임재에 관한 루터의 관념은 루터교회와 정교회 간의 대화의 기초가 될 수 있었다. 루터란 전통 안에서 이해된 그리스도의 내주는 하나님 안에 실제적 참여를 의미하며,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 안에 참여라고 하는 정교회 교리, 즉 theosis의 교리에 특수한 방식으로 일치한다."7) 이어서 마네르마아는 이렇게 말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그의 인격과 사역에 있어서) 신앙 안에 임재하며 이 임재를 통해 신앙의 의와 동일화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 안에 임재한다는 개념은 루터를 따르는 루터주의에서보다 루터의 신학 안에서 훨씬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8) 이 책에서는 "전통적 루터 연구의 철학적 전제들이 루터의 득의론을 실제적 참여 혹은 신화(divinization)의 교리로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였다"9)하고 비판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근대의 루터 연구에는 칸트의 선험 철학이 큰 영향을 미쳤다. 리츨(Albrecht Ritschl)은 "올바른 신학적 인식은 ... 선험적이다.
즉, 우리가 세계에서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의 결과들에만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10) 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리츨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이 그(즉, 그리스도)를 위해 도덕적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11)라고 말하였다. 20세기에 루터 연구를 부흥시킨 칼 홀(Karl Holl)도 선험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칼 홀의 루터 연구의 전체적 구조도 이 선험적 결과 지향에 영향을 받았으며 결정되었다"12) 하고 마네르마아는 말하였다.
결론적으로 마네르마아는 "루터의 개념은 하나님의 의지와 인간의 의지의 연합의 개념을 넘어선다 (루터 르네상스). 또한 그것은 계시 속에서의 행위 혹은 행동의 교류의 개념을 넘어선다 (변증법적 신학).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의 교류를 가리킨다'13)하고 말하였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젠슨(Robert W. Jenson)은 "루터의 교리는 사실상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루터주의보다는 정교회 신학에 더 접근해 있다"14) 하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핀란드 학자들의 루터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루터와 루터주의 사이의 간격을 지적한 것은 옳다고 하겠다. 다음에서 살펴보겠지만 독일 학자인 로제도 이 간격을 인정하고 있다.
한편, 독일에서는 루터의 득의론에 관해서 1920년대에 발터(W. Walther)15)와 칼 홀16)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17) 칼 홀은 루터가 믿는 죄인이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의롭게 된다고 하는 사실에 근거해서만 죄 된 인간의 득의를 가르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발터는 루터가 득의를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로 보았으며 믿는 죄인은 그리스도의 공적으로 인하여 죄의 용서를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가르쳤다고 하였다. 발터는 루터가 초기에는 칼 홀이 말한 개념을 암시하고 있을지라도 그의 후기 저작들 가운데서는 그러한 개념을 나타내는 진술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알트하우스(Paul Althaus)는 이 문제에 대해 루터는 초기에 있어서나 후기에 있어서나 다 득의를 의롭다고 선포한다는 의미와 의롭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의롭다 하다'〔justificare〕와 '득의'〔justificatio〕라는 용어들을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사용한다. 처음부터 득의는 매우 빈번히 인간을 의롭다고 선언하는〔justificatio reputare혹은 computare〕하나님의 판결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곳들에서는 이말이 인간이 본질적으로 의롭게 되는 전체적 사건, 즉 인간에 대한 의의 전가와 인간이 실제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 둘 다를 의미한다(...).... 단어의 이 이중적 사용을 루터의 초기 신학과 후기 신학으로 구별하여 말할 수 없다. 때로는 같은 본문에서 바로 앞과 뒤에서 사용한다."18)
그러나 조지 (Timothy George)는 1988년에 출판한「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에서 다시 발터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피력하였다. 조지는 루터가 초기에는 의의 분여(impartation)를 주장하였으나 후기에는 전가(imputation)를 주장하였다고 하였다. "루터는 전가라고 하는 법정적 용
어를 선호하여 분여/주입이라고 하는 의약적 이미지를 포기하였다‥‥ 우리의 죄들이 실제로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거슬러 죄들로 간주되는 일은 중지한다."19) 또한 조지는 아우구스티누스는 득의를 '의롭게 만드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나 루터는 '의롭다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전통은 그것을 '의롭게 만드는 것' 으로 해석하였으나 루터는 그것의 법적 의미, 즉 '외롭다 선언하는 것'을 강조하였다."20) 조지는 루터의 유명한 표현인 simul justus et peccator에 관해서도 초기에 루터는 이 말을 부분적으로 의인이며 부분적으로 죄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전적으로 의인인 동시에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전에 그는 이 용어를 아우구스티누스적 의미로 '부분적으로' 죄인이고 '부분적으로' 의인,즉 경험적 실재에 있어서는 죄인들이나 미래의 완성의 희망 속에 의롭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루터는 1518-1519년 이후에 simul justus et peccator를 사용하기를 계속하였지만 semper (항상) justus et peccator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믿는 자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일 뿐만 아니라 항상 혹은 완전히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21)
하지만 로제(Bernhard Lohse)는 1995년에 독일어로 출판되고, 1999년에 영어로 번역되어 출판된 「마르틴 루터의 신학: 역사적, 체계적발전」에서 다시 알트하우스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로제는 루터에게 있어서 득의는 죄의 용서와 신생을 다 포함하였으나 멜랑히톤에게 있어서는 전가를 의미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그는 루터교회는 오랫동안 루터의 견해가 아니라 멜랑히톤의 견해를 따랐다고 말하였다. "오랫동안 루터에게 있어서 득의는 단순히 죄의 용서 혹은 사면 뿐만 아니라 신생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였다.
멜랑히톤은 이 교리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에 국한시켰다 루터교 신학은 그를 따라서 오랫동안 득의의 '법정적' 견해를 옹호하였다. 칼 홀이 처음으로 루터에게 있어서 득의는 궁극적으로 완성으로 향한 인간의 전적 신생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22) 또한 로제는 루터에게 있어서는 부분적인 국민과 전체적인 국면이 동시에 나타난다고 주장하였다. " . . . '전체적인 면'과 '부분적인 면,' 즉 그리스도인은 전체적 의미로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의롭다 하고 의롭게 만드는 일을 통해 '부분적인' 의미로 여전히 죄인이고, 그리고 '부분적인' 의미로 이미 의인이라는 것이다."23)
루터의 저작들을 종합적으로 연구해 보면 알트하우스와 로제의 해석이 발터나 조지의 해석보다 더 타당한 것 같다.
루터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545년에 자기의 라틴어 저작들을 편집한 책 서문으로 학자들이 "자서전적 단편"이라고 부르는 글을 남겼는데, 여기서 루터는 새로운 의의 관념을 발견하게 된 과정을 다음과 말하였다.
한편, 그 해〔1519〕동안에 나는 이미 새롭게 「시편」을 해석하는 일에 돌아와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서 로마인들과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성 바울의 서신들과 히브리서를 강의한 후인지라 내가 좀더 숙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확실히 로마서에 있는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열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내 길을 막고 있던 것은 내 심장 주위의 차가운 피가 아니라 1장〔17절〕에 있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라는 단 한 단어였다.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그 단어를 증오하였는데, 이는 내가 모든 선생들의 용법과 관습에 따라 그것을 그들이 형상적 혹은 능동적 의라고 부르는 것으로 철학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의해 하나님은 의로우며 불의한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이해하도록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 나는 죄인들을 처벌하는 이 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아니 증오했다.24)
루터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자신의 이신득의론을 깨닫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마침내 내가 밤낮으로 명상하였을 때,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 나는 "그 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는 말의 문맥에 내 주의를 돌렸다.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의는 의로운 사람이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 즉 믿음에 의해 사는 것임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즉, 그 의미는 이런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의해 나타나는 것인데, 즉, 그 의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믿음에 의해 우리를 의롭다 하는 수동적 의로서, 즉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라고 한 것과 같다. 여기서 나는 내가 전적으로 다시 태어나서 열린 문들을 통해 낙원 바로 그 자체에 들어왔다고 느꼈다.25)
루터는 이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에 관계 시켜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후에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영과 문자」 (The Spirit and the Letter)를 읽었는데, 거기서 나는 내 기대에 반하여 그도 역시 하나님의 의를 비슷한 방식으로, 즉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옷 입혀 주는 의로 해석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지금까지 불완전하게 언급되어 왔으며, 그리고 그가 전가(imputation)데 관한 모든 것들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하나님의 의를 가르친 것은 기쁜 일이었다. 나는 이런 사상들로 더욱 완전히 무장하여 두 번째로「시편」을 해석하기 시작하였다.26)
루터의 소위 이 "자서전적 단편"은 루터 연구가들 사이에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자서전적 단편"에 의하면 루터는 1517년 면죄부를 비판하는 유명한 "95개 조문"을 작성하고 1,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의 "탑 체험"27)이라 불리는 이신득의론에 이르렀으며 그 때까지는 "하나님의 의"라는 말을 죄인을 처벌하는 형벌적 의로 생각한 것이 된다. 그래서 많은 루터 연구가들은 이것은 노령에 든 루터(이 "자서전적 단편"을 쓸 때 루터는 62세였다)가 회상을 잘못한 것으로 여기고 "탑 체험"이라 불리는 이 체험은 시편을 처음으로 강의하던 동안, 즉 1513-4년에 있었거나 아니면 로마서 강의(1515-6년)를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28) 이에 반해 다른 학자들은 루터의 이 "자서전적 단편"의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루터의 독자적 득의론은 루터가 여기서 말하는 것처럼 1518-9년에 와서야 비로소 확립된 것으로 본다.29)
루터는 이 "자서전적 단편"에서 그의 이 체험이 시편을 두 번째로 강의할 때 있었음을 재차 말하고 있으며, 그 전에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를 강의했으며, 그 강의 경험에 근거하여 시편을 새롭게 강의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 분명한 진술은 존중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루터가 이 체험 전에 하나님의 의를 단순히 형벌적 의로 보았다거나 그런 하나님을 증오했다거나 한 것은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루터는 로마서 강의에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그 자신에 있어서 의로운 그 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의롭게 되는 그 의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에 대한 신앙을 통해 일어난다"30) 라고 말함으로써 이미 하나님의 의를 형벌적 의로 보는 관점을 극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루터의 사상은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가 1518-9년에 와서 확립되었으며, 루터는 이 "자서전적 단편"에서 그 점진적 과정을 압축하여 한 단계로 묶고 그의 사상이 확립된 단계를 또 다른 한 단계로 보면서 자기의 이 때의 체험을 부각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루터는 로마서 강의에서 의인인 동시에 죄인을 사실 속에서는 죄인이나 희망 속에서는 의인이라고 해석하며, 이것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환자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환자에게 확실한 회복을 약속해 주는 의사를 믿는 환자의 경우와 비슷하다‥‥ 이제 이 환자가 건강한가? 사실상 그는 아픈 동시에 건강하다. 그는 사실에 있어서 아프나 의사의 확실한 약속 때문에 건강하다. 그는 의사를 신뢰하며, 의사는 그가 이미 치료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그를 치료할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그를 치료하기 시작하였으며, 더 이상 그의 질병을 죽음에 이르는 질병으로 간주하지 않는다‥‥이제 그는 완전히 의로운가? 아니다. 그는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 사실에 있어서 죄인이나, 하나님이 그를 완전히 치료할 때까지 하나님이 그를 죄로부터 구원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확실한 전가와 약속에 의해 의인이다. 그래서 그는 희망 속에서는 전적으로 건강하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죄인이다. 그러나 그는 의의 시작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그는 항상 더욱 더 의를 찾는 일을 계속하지만 그는 항상 불의함을 깨닫고 있다. 31)
루터는 이와 같이 로마서 강의를 할 때 여전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아래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아직 죄인이지만 이미 사실상 의로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의롭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존재에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루터의 이런 의의 관념은 1518-19년에 행한 "두 가지 종류의 의"라고 하는 설교에서 변화되고 있다. 이 설교에서는 인간의 죄에 두 종류, 즉 원죄와 실죄(實罪)가 있듯이 의에도 두 종류, 즉 외래적 의와 자신의 의가 있다고 한다.
인간의 죄에 두 종류가 있듯이 그리스도인의 의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것은 외래적인 의입니다. 즉 밖에서부터 스며 들어온 다른 분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며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 . 이것은 무한한 의이며 모든 죄를 한 순간에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존재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이며, 그리스도가 가진 것과 똑같은 의를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32)
루터의 이 설교에서 첫째 의, 즉 외래적 의라고 하는 점에서는 의가 완전한 의이다. 여기서 의는 무한한 의이며 죄를 한 순간에 없애 버리는 의이며 죄가 조금도 남아 있을 수 없는 의이다. 그러나 둘째 의라고 하는 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두 번째 종류의 의는 우리 자신의 의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의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혼자서 그것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외래적인 첫 번째 의와 더불어 우리가 그것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선한 행실을 하면서 유익하게 보내는 삶의 방식인데, 첫째는 자기에 대해서는 육을 죽이고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둘째로 이 의는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으며, 셋째로 하나님에 대해 온순하고 두려워하는 데 있습니다‥‥
이 의는 첫째 유형의 의의 산물입니다. . . 이 의는 언제나 옛 아담을 제거하고 죄의 몸을 멸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첫째 의를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33)
루터는 1532년「시편 주석」에서 득의의 두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는데, 여기에는 전가와 분여가 다 포함되어 있다. 즉, 득의에는 은총과 은사가 함께 포함되며, 사죄와 조명이 함께 포함된다.
이것들이 득의의 두 부분이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되는 은총이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은혜로운 하나님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더 이상 우리를 고발할 수 없다. 우리의 양심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신뢰를 통해 평화를 발견하였다. 두 번째 부분은 성령과 함께 성령의 은사들을 수여하는 것이다. 성령은 영과 육의 부정에 거슬러 우리를 조명한다(고후 7:1).34)
위에서 살펴본 자서전적 단편에서도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가론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지만,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스콜라 학자들보다 바울의 의미에 더 접근하였다. 그러나 그는 바울에게 도달하지는 못하였다. 처음에 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대로 받아들였으나, 그러나 바울을 향한 문이 활짝 열렸고 내가 이신득의가 사실상 무엇인지 알았을 때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와 불일치하였다."35)요컨대 루터가 보기에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종류의 의, 혹은 득의의 두 부분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였던 것 같았다.
아우구스티누스는〔영과 문자〕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의롭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36)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한편으로는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의롭다고 간주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하며,37) 다른 한편으로는 분여 또는 주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였다.38) 그러나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와는 달리 두 종류의 의 혹은 득의의 두 부분을 구별함으로써 후에 멜랑히톤이나 칼빈이 득의(justification)에서 신생이나 성화(regeneration or sanctification)를 구별하는 것과 같은 일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후에 웨슬리(John Wesley)가 칼빈주의와는 달리 신생(regeneration)에서 성화(sanctification)를 구별해 낸 일과 유사한 것이었다.
루터는 일관되게 득의는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1536년「득의에 관한 논쟁」에서도 "우리는 율법의 행위 없이 신앙에 의해 득의된다"39) 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를 믿고, 그 후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선한 일들을 행한다"40) 하고 신앙 후에 오는 선행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이「득의에 관한 논쟁」에서 득의의 전가의 면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의가 얻어진다는 것은 이 관념, 즉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게 여겨진다는 것을 포함한다. "41) 또한 득의의 완전한 면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득의된 사람은 여전히 죄인이지만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하나님에 의해 충만히 그리고 완전히 의롭다고 여겨진다. "42)그러나 여기에는 점진적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상도 나타난다. "우리는 득의된 사람이 아직 의인이 아니지만 의를 향한 운동 혹은 여행 중에 있음을 안다."43) 요컨대 후기의 루터 사상에 있어서도 득의는 전가의 면과 분여의 면을 가지며, 전체적인 면과 부분적인 면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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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October 31, 1999 in Augsburg Germany, 41. "The teaching of the Lutheran churches presented in this Declaration does not fall under the condemnations from the Council of Trent. The condemnations in the Lutheran Confessions do not apply to the teaching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presented in this Declaration. "
2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3 vols. ; New York: Harper & Brothers, 1919) . 2:112.
3 The Book of Concord, trans. and ed. Theodore G. Tappert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9), 475.
4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October 31, 1999 in Augsburg Germany. 13. "Opposing interpretations and applications of the biblical message of justification were in the sixteenth century a principal cause of the division of the Western church and led as well to doctrinal condemnations. A common understanding of justification is therefore fundamental and indispensable to overcome that division."
5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October 31. 1999 in Augsburg Germany. 26. "According to Lutheran understanding. God justifies sinners in faith alone (sola fide)‥‥ I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by faith alone,' a distinction but not a separation is made between justification itself and the renewal of one's way of life that necessarily follows from justification and without which faith does not exist‥‥ Justification and renewal are joined in Christ, who is present in faith."
6 Joint Declaration on the Doctrine of Justification on October 31, 1999 in Augsburg Germany, 27. "The Catholic understanding also sees faith as fundamental in justification. . . . The justification of sinners is forgiveness of sins and being made righteous by justifying grace, which makes us children of God."
7 Carl E. Braaten and Robert W. Jenson (ed.) .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Grand Rapids. Michigan :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8), 2.
8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2 .
9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3.
10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7.
11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8.
12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8.
13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12.
14 Braaten and Jenson (ed.), Union with Christ: The New Finnish Interpretation of Luther, 24.
15 W. Walther, "Neue Konstruktionen der Rechtfertigunslehre Luthers ," Neue Kirchliche Zeitschrift Ⅱ (1923) : 50 ff.
16 Karl Holl, Gesammelte Aufs?βbe zur Kirchengeschichte Ⅰ: Luther (T? bingen: Verlag von J. C. Mohr, 1948), Ⅲ ff.
17 이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서는 J. L. Neve, 「기독교 교리사」. 서남동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5), 356 ff 참조.
18 Paul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trans. Robert C. Schultz(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70), 226.
19 Timothy George. Theology of the Reformers (Nashville, Tennessee: Broadman Press, 1988). 69.
20 Timothy George . Theology of the Reformers, 70.
21 Timothy George. Theology of the Reformers. 71.
22 Bernhard Lohse, Martin Luther’s Theology : Its Historical and Systematic Development, trans. Roy A. Harrisvill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9), 262.
23 Bernhard Lohse, Martin Luther’s Theology: Its Historical and Systematic Development, 264.
24 Luther, Preface to the Complete Edition of Luther's Latin Wrtitngs. Luther’s Works (이하 LW로 약함), ed. Jaroslav Pelikan and Helmut Lehmann (55 vols.; Philadelphia and St. Louis: Fortress Press and Concordia Pub. House, 1955 ff.). 34:336.
25 Luther, Preface to the Complete Edition of Luther’s Latin Writings. LW 34:337
26 Luther, Preface to the Complete Edition of Luther’s Latin Writings, LW 34:337.
27 루터의 소위 "탑 체험" 혹은 "Durchbruch"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은 Lohse가 편집한 다음 책들에 수록되어 있다. Bernhard Lohse (ed.), Der Durchbruch der Reformatorischen Erkenntnis bei Luther (Darmstadt: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1968) ; Bernhard Lohse (ed.) , Der Durchbruch der Reformatorischen Erkenntnis bei Luther: Neuere Untersuchungen (Stuttgart: Franz Steiner Verlag Wiesbaden GMBH, 1988)
28 Vogelsang. Bornkam 등 많은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한 최근의 연구로는 Alister E. McGrath. Reformation Thought: an Introduction (Oxford: Basil Blackwell. 1999). 110 참조. "it seems that the basic change described by Luther in 1545 took place at some point in 1515."
29 Bizer, Aland 등의 학자들이 이렇게 주장하였다. A. G. Dickens, Martin Luther and the Reformation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77), p.24에서도 이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The present writer finds more convincing the arguments of the scholars who claim that Luther’s ultimate doctrine was really new, and that he did not teach it until late in 1518."
30 Luther, Lectures on Romans, 1:17, LW 25:151, WA 56:172, 3-5. "Et hic iterum 'Iustitia Dei' non ea debet accipi, qua ipse Iustus est in seipso, Sed qua nos exipso Iustiflcamur, quod sit per fidem euangeil."
31 Luther, Lectures on Romans, 4:7, LW 25:260. WA 56:272, 3-21. "Est enim simile sicut cum egroto, Qui promittenti medico certissimam sanitatem credit‥‥ Iste enim Aegrotus nunquid sanas est? Immo egrotus simul et sanus. Egrotus in rei veritate, Sed sanus ex certa promissione medici, cui credit. qui eum iam Velut sanum reputat, quia certus, quod sanabit eum, quia incepit eum sanare nec imputauit ei egritudinem ad mortem‥‥ Nunquid ergo perfecte Iustus? Non, Sed simul peccator et Iustus ; peccator re vera, sed Iustus ex reputatione et promissione Dei certa, quod liberet ab illo, donec perfecte sanet. Ac per hoc sanus perfecte est in spe, in re autem peccator, Sed Initium habens ㅑustitie, ut amplius querat semper, semper iniustum so scions."
32 Luther, Two Kinds of Righteousness, LW 31:297-98.
33 Luther, Two Kinds of Righteousness, LW 31:299-300.
34 Luther. Commentaries on Psalms, 51:2 (1532), LW 12:331.
35 Quoted in George, Theology of the Reformers, 68.
36 Augustine, On the Spirit and the Letter, A Select Library of th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이하 NPNF라 함), First Series, ed. Philip Schaff (Grand Rapids,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56), 5:102. "For what else does the phrase 'being justified' signify than 'being made righteous.' - by Him, of course, who justifies the ungodly man, that he may become a godly one instead."
37 Augustine, On the Spirit and the Letter, NPNF, First Series, 5:102. "Or else the term 'They shall be justified’is used in the sense of, they shall be deemed, or reckoned as just, as it is predicated of a certain man in the Gospel, 'But he, willing to justify himself,'- meaning that he wished to be thought and accounted just."
38 Augustine. On the Spirit and the Letter, NPNF, First Series, 5:113. 'who works in His saints, whilst labouring amidst temptation in this life, their justification in such manner that He may still have somewhat to impart to them liberally when they ask, and something mercifully to forgive them when they confess." "but also by the infusion of the Spirit of grace - they will incur the charge of ungodliness itself, not of this or that particular sin."
39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W 34:153.
40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W 34:153.
41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W 34:153.
42 Luther, The Disputation Concerning Justification, LW 34:152-53.
http://kr.blog.yahoo.com/soodosa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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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신학의 구원론적 동기와 성서적 기초에 관한 연구1/ 許 虎 益(대전신학교)
Ⅰ. 머 릿 말
종교개혁의 핵심은 루터에 의해 제기된 중세신학의 남용과 오용의 개혁이며, 동시에 바울적인 기독교의 옛 교리의 회복이라고 파악한 하르낙은 종교개혁에 있어서 루터의 위치를 강조하여 “루터가 종교개혁 자체였다” 1) A.Harnack(1976), History of dogma,vol.vii,tr.N Buchanan(Mass.:Peter Smith),
p.181.
고 하였다. 개신교 신학의 방향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루터신학의 연구를 통해 개신교신학의 방향을 다시금 가다듬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루터에 관한 이제까지의 연구는 크게 세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루터를 사로잡은 구원과 신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신앙체험의 과정에 대한 전기적 연구,특히 정신분석학적 연구 2) P.J.S.Reiter(1937-41), Mirtin Luther Umwelt,Charackter und Psychose(Kopenhagen,
Leven & Munksgarrd); Otto Shell(1917),Martin Luther: vom Catholizismus zur
Reformation(Tubingen,J.B.C.Mohr); P.Smith(1913),“Luther's Early Development in the
Light of Psychoanalysis,"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XXIV.; E.H.Erikson(1982),
「청년루터」,최연석 역,(서울:도서출판 인간).
와 루터가 제기한 종교개혁의 교리와 신학적 주제에 관한 연구,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이 교회와 사회개혁에 미친 사회학적 연구로 대별된다.
그러나 루터는 교리적, 신학적 체계를 확립하거나 당시의 부패한 교회와 사회를 개혁하려는데 일차적인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기의 루터를 괴롭힌 영혼의 고통(Anfechtung)에서 벗어나 영혼의 평화와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는 혼신의 투쟁과정에서 루터는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수도원에서는 로마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피나는 수련과정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그 한계를 느끼고, 마침내 성서연구를 통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루터의 신학의 골자인 의인론(義認論) 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체험적인 성서적 통찰이 중세 카톨릭 교회의 교리에 대한 전면적인 도전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중세의 교회와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의 촉매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여러 종류의 신학들의 우후죽순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 중에서 신앙의 디딤돌이 되는 창조적인 신학도 많지만, 오히려 신앙의 거침돌이 되는 신학을 위한 신학도 없지 않다. 따라서 바른 신학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루터에 의해 개신교 신학방법의 기초로 정립된 신학의 구원론적 동기와 성서적 기초를 다시금 다져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여 졌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루터의 신앙적 번민의 과정을 더듬어 보고, 성서연구를 통해 구원의 체험과 의인론에 이르게 여정을 살펴 봄으로서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의 구원론적 동기와 성서적 기초를 밝혀보려고 한다.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체험한 루터의 의인론이 결국은 중세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일대 개혁의 골자인 것을 밝히려고 한다.
II. 청소년기의 영혼의 고통(Anfechtung)과 구원론적 동기
루터는 자신의 구원에 대한 내적 불안과 공포로 인해 수도원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카톨릭적인 여러 선행을 통해 염격한 심판을 무마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루터의 심경을 배경으로 하여 “불안이 종교개혁의 출발점” 4) P.Tillich(1983),「그리스도교 사상사」,송기득 역(서울:한국신학연구소),p.287.
이라고 단언하고 이러한 불안이 중세 말기의 일반적인 경향이었음을 지적하였다. 먼저 청소년기의 루터를 번민 속에 빠트리고 불안에 전율케한 몇 가지 요인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1) 체벌 (지겨운 몽둥이질)
당시의 학교와 가정에서는 체벌이 교육의 최선의 방편으로 권장되고 당연시 되었다. 장성한 후 루터는 여러 번 이 지겨운 몽둥이질에 대해 회상하였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어찌나 호되게 매질을 하셨던 지 난 달아나고 말았지. 그 후로 아버지께서 가까스로 내 마음을 돌려 놓기까지는 끔찍한 생각(증오심)을 버릴 수가 없었어.”
“나의 어머니께서는 내가 밤을 하나 훔쳤다고 피가 나도록 때리신 적이 있지. 어머니의 의도야 좋은데 있었지만, 그 규율이 너무 엄격해서 난 수도원으로 도망쳤어.”
“학교에서는 단 하루 아침 나절에 아무 일도 아닌 일로 회초리를 열 다섯 대나 맞았지. 격변화 동사 활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5) R.H.Bainton(1982),「마틴 루터의 생애」,이종태 역(서울:생명의 말씀사),p.23.
자신을 벌주는 아버지에 대한 루터의 증오심은 자신을 법률가로 성공시키려는 부성애적 열성을 보여준 아버지상과 심한 갈등을 일으켜 자신을 괴롭혔으며, 벌주는 아버지상으로 말미암아 하늘 아버지도 복수하는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항상 벌을 받았기 때문에 일생동안 자신이 어떤 범죄자인 것 같은 느낌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2) 성적인 충동
루터의 성적 충동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있으나, 심리학자들은 여러 가지 근거를 들어 루터의 성적 충동이 왕성했음을 주장하고 있다.
라이터(P.J.Reiter)는 루터는 집안 구조상 여러 식구가 좁은 방에서 거의 벗은 몸으로 기거했으며, 낮에 있었던 체벌로 인한 정신적 죄의식과 육체적 고통으로 잠들지 못한 소년 마르틴이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할 기회가 다분히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6) E.H.Erickson(1982), p.68.
스미드(P.Smith)는 루터가 색욕에 심하게 빠진 것은 여자 관계가 복잡했던 때문이 아니라 수음과의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며, 후에 자신이 이를 진정한 장애물(Die rechten Knotten)이라고 고백한 것에서 찾으려고 한다. 7) P.Smith(1911),The Life and Letters of Martin Luther(New York:Houghton Mifflin).
-------(1913),“Luther's Early Development in the Light of Psychoanalysis," American
Journal of Psychology,XXIV.p.362
수사가 된 이후에도 그는 몽정과 낮 동안의 긴장상태에서 자신의 동의없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행해지는 사정(射情)으로 인해 생리적 해방감과 더불어 심한 죄의식과 심리적 갈등에 사로잡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단식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한다. 8) E.H.Erickson(1982), p.185.
3) 미신적인 악마 공포증
특히 루터가 성장한 광산촌에는 미신이 성행하였다. 그들은 폭우와 홍수, 전염병을 가져오고, 인간에게 죄를 짓게 하며, 우울증에 빠지게 하는 것은 모두 악령의 짓이라 생각했다. 루터의 어머니는 이 잡신들이 계란이나 우유, 버터 따위를 훔치는 못된 장난을 하는 것으로 믿었으며, 루터 자신도 이러한 신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사방에 마귀들이 득실거리고 있어” 9) 같은 책, p.64.
라고 루터가 말한 적이 있다. 특히 광산에서는 악마들이 사람들을 약올리고 우롱한다고 생각했다. 또 눈 앞에 환영을 만들어 아무 것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마치 큰 광석 무더기나 본 것처럼 확신케 한다고 믿었다. 루터 역시 그 시대의 아들로서 이러한 원시적이고 미신적인 악마 공포증에 사로잡혀 있었다.
4) 죽음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공포
가정과 학교와 대학의 모든 훈련이 하나님에 대한 공포와 교회에 대한 경외심을 주입하도록 짜여져 있었다. 중세 기독교는 최후의 심판을 전적으로 강조했고, 끊임없이 죽음을 경고(memento mor)하기에 힘썼다. 당시의 베스트셀러로 지옥을 피하는 기술을 적어 놓은 「죽는 기술」이라는 책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어릴 적부터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을 때에는 얼굴이 파리해지고,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엄격하고 격노한 심판관으로만 알고, 또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10) 같은 책, p.78.
라고 할 정도였다.
1509년 문학석사 학위를 마친 후 그의 친한 친구가 죽었고, 두 동생이 열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죽음과 최후의 심판을 골돌히 생각했으리라 짐작된다. 그 해 7월 2일 스토테른하임 마을 가까이서 갑자기 뇌우를 만나 격심하고도 발작적인 공포상태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 그가 나중에도 썼듯이 마치 급사(急死)에 대한 고통스러운 두려움에 완전히 포위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혀 미처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는 “성 안네여 도와 주소서. 저는 수사가 되겠습니다”11) 같은 책, p.103.
라고 외쳤다. 당시에는 수도원이 하늘나라로 통하는 지름길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자기가 정말로 수사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그런데도 그는 암암리에 자신이 한 서약에 대한 구속감을 느꼈고, 그 때문에 그 체험을 하늘로부터의 무서운 부름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기 루터에게 있던 영혼의 번민은 이처럼 복잡한 배경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특수한 용어로서 “Anfechtung"12) 전경연(1978), “루터의 ‘고통의 시련’(Anfechtung)의 연구”,「루터 신학의 제문
제」, 전경연 편(서울:공화출판사). pp.133-141.
으로 묘사하여 왔다. 믿음의 시련, 영혼의 고통을 뜻하는 이 단어는 도무지 한 마디로 번역하기 어려운 특수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해 보려는 믿음의 시련일 수도 있고, 반대로 마귀가 인간을 파멸시키려고 덤비는 공격(tentatio)일 수도 있으며, 죄에 대한 비탄(tristitia)와 죽음에 대한 절망(desperatio)을 뜻하기도 한다.13) 같은 책, p.136.
그 외에도 의심, 소란, 아픔, 겁, 공포, 절망, 황량함, 자포자기 등등 인간의 영혼을 엄습하는 온갖 종류의 시련과 고통을 통칭하는 용어이다.14) R.H.Bainton(1982), p.42.
루터는 자신이 겪은 Anfechtung을 「95개조항의 해설서」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오늘 날에 이르기까지 양심에의 이런 종류의 형벌을 맛본 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나도 한 사람을 아는데 그는 짧은 순간이지만 치열한 지옥과 같은 고뇌를 견디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입으로도 말할 수 없고, 어떤 붓으로도 묘사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믿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그것이 반 시간만이라도, 아니 한 시간의 十分之一이라도 계속된다면 사람은 전혀 견디지 못하여 모든 뼈는 타서 와해되어 버리리라 생각될만한 고뇌였다.15) 전경연(1978), p.138.
루터는 인간으로서는 전무후무하게 극심한 영혼의 고통에 사로잡혀 비참한 죄책감, 죽음과 최후 심판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악마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구원의 확신과 영혼의 평화를 얻기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Ⅲ. 로마교회의 가르침의 한계와 신앙의 의심
루터는 1505년 7월 2일 스토테른하임 마을 가까이서 갑자기 뇌우를 만나 극심하고도 발작적인 공포에 사로잡혀 수사 서원을 하고, 일 년간 수습 수사가 되기 위해 어거스틴계통의 수도원에 들어가게 된다. 로마 교회는 죄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세례를 받고 세례 이후에는 다시는 죄를 짖지 않도록 철저한 금욕적인 생활과 엄격한 고행에 힘쓰도록 가르쳤다. 다시는 죄의 올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철저한 수도생활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지불식간에 죄를 지었을 경우에는 사제 앞에 나아가 철저히 회개 자복하여 사죄를 받도록 가르쳤다. 사제들은 베드로의 사도직을 계승하였으므로 이 땅에서 ‘매고 푸는(마 16:19)’ 즉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여 왔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러한 로마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철저한 수도원 생활을 통하여 영혼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히려 수도원 생활 전반에 대한 회의와 금욕과 고행의 한계 및 고해성사의 모순을 발견하게 되고 신앙의 의심만 쌓이게 되어 고통과 번민을 가중시켰다. 영혼의 시련에서 벗어는 진정한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 갔으나 수도원에서의 생활과 로마 교회의 가르침으로는 진정한 구원의 확신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1) 소명에 대한 의심
루터가 영혼의 안식을 찿기 위해 수도원으로 뛰처 들어 갔으나, 아버지 한스는 루터가 자기의 명을 거역하고 수사가 되는 것을 거의 미친듯이 반대했다. 그 때 마침 역병으로 동생들이 죽은 것을 이용하여 루터의 친구들은 장남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미신적 논리로 한스를 설득했고, 한스는 마지못해 이를 묵과하였다. 수사 서원을 하게 된 하늘 아버지의 부르심에 대한 육신의 아버지의 반대는 루터를 또다른 갈등과 번민에 빠지게 하였다.
사제로 서품되어 첫 미사를 자신이 집전하는 날 그의 부친이 초청되었다. 루터는 미사의 첫 부분에서 “우리는 주님께, 살아계시며, 참되시고, 영원한 하나님께 바치옵니다”16) J.Machinon(1962), Lutter and the Reformation I(New york:Russell & Russell),
p.47.
라는 기도문을 낭독하자마자 완전히 멍청하게 겁을 집어먹었다고 후에 고백하였다.
“내 혀가 뭐길래 감히 그 하늘의 폐하께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인간들도 이 땅의 왕 앞에서는 모두들 부들부들 떨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비천한 인간인 내가 ‘이걸 원합니다. 저걸 주세요’ 하고 말해도 되는가? 티끌, 잿가루, 죄투성이인 내가 살아계시고 영원하시며 참되신 하나님께 감히 입을 열다니.”17) R.H.Bainton(1982), p.41.
하나님께 끌리면서 동시에 배척 받는 자신의 무가치성을 깨닫고 심한 원시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미사 후 자신의 아버지께 위로와 화해를 갈망했던 터에 한스의 “배워먹은 학자 놈아, 그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성구도 못 읽었느냐”는 폭언에 기가 죽어 “그러나 아버지, 제가 세상에 남아있는 것 보다 기도를 통하여 더 많은 혜택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한스는 “제발 그것이 마귀의 허깨비가 아니길 바란다”고 루터의 수도원 생활을 마귀의 유혹(환영)으로 취급하였다.18) E.H.Erickson(1982), p.22.
마귀도 빛의 천사로 위장할 수 있으며, 착각과 환영을 가져 다 준다고 믿어온 미신적 신앙은 그의 소명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그는 전형적인 강박증에 빠져서 점점 그리스도의 빛나는 모습과 같은 최고의 선이 실은 악마의 유혹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는 공포에 사로잡혀 갔다. 그는 그의 상급자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단지 벌을 주러 온 심판관으로서 두려워하고 심지어는 미워하게까지 되었다.
루터의 동시대인 세 사람은 루터가 어느 날 수도원 성가대석에서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신들린 사람처럼 “Ich bin's nit, Ich bin's nit(난 아냐! 난 아냐!)”라고 외치며 황소처럼 소리를 질렀다고 보고했다. 이 성가대석의 발작은 수도사 루터의 내적 갈등의 심도를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19) 같은 책, p.22.
2) 수도생활과 선행에 대한 의심
이러한 영혼의 동요 속에서 루터는 자신을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한 것이 마귀이든 하나님이든 그가 어엿한 수사로서 수도원의 특권으로 주어진 완전한 덕목을 실천하면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로마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 검소, 자선, 순결, 가난, 순종, 금식, 철야, 육신의 극기 등 인간이 자신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남김없이 실천하기로 했다. 그는 정해진 규칙 이상으로 철야 고행과 기도에 전념하면서도 한편으론 정말 제대로 하고있는지 늘 조바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후일 루터는 이렇게 고백하였다.
“난 성실한 수도사였어. 내 종단의 규칙을 얼마나 꼼꼼하게 지켰던지 그 놈의 수도사 생활로 수도사가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면 그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일 거라는 자화자찬까지 늘어놓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 나와 함께 수도원에 있던 형제들은 이 사실이 정말이라고 말해줄거야. 아마 그 일을 더 이상 계속했더라면 철야, 기도, 독서 그리고 다른 일로 죽고 말았을 걸.”20) R.H.Bainton(1982), p.46.
그러나 ‘너 자신을 깨끗이 할 수록 너는 점점 더 더러워진다’고 말한 바와 같이 금욕적이며 고행에 가까운 선행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서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더러움이 더욱 노출됨을 깨닫게 된 것이다.
3)고해성사에 대한 의심
당시의 로마교회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이 교회의 성례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 진다고 가르쳤다. 구원의 은총이 중재되는 수단으로 7성례를 주장하였다. 특별히 세례 이후의 지은 죄에 대해서는 사제 앞에서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이 땅에서 사죄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루터는 철저한 수도생활과 더불어 행여나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가 있을까 하여 고해성사를 통해 이 비상한 사죄의 은총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 몇 차례 씩, 어떤 때는 내리 여섯 시간을 고해했다. 그는 영혼을 샅샅이 뒤지고 기억을 이 잡듯이 털어 갖가지 동기를 저울질하였다.21) 같은 책, p.55.
당시 고해성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체계로 고안된 여러 죄의 항목들 말하자면, 5가지 감각의 죄, 7가지 큰 죄(교만, 탐심, 욕정, 분노, 과식, 시기, 나태)와 십계명의 조목조목을 훑어 내려가면서 고해하였다. 한번 고해할 때마다 이 죄목 가운데서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자신의 일생을 차례차례 훌터 나갔다. 심지어는 고해 후 그 내용을 수정하고 보충하기도 하였다.
하루는 그의 고해 사제가 지겨운 나머지 “이봐요, 하나님께서 당신께 화내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군요”22) R.H.Bainton(1982), p.181.
라고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의 스승 슈타우피츠(Staupitz)는 “여보게, 사죄를 받고 싶거든 뭐 좀 용서할 근거를 가지고 들어오라고. 그따위 시시껄렁한 자질구레한 죄가 아니라 부모살해나 간통과 같은 걸로 말야”23) E.H.Erickson(1982), p.181.
라고 했을 정도이다. 그의 진지한 고해마져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거부한 사제의 태도는 그를 더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했다. 그는 그 순간마다 죽은 시체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는 성인 21명을 수호신으로 정해놓고 세 명씩 교대로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맡아달라고 간청할 정도였다. 이처럼 죄를 피하기 위해 엄격하게 고행을 하고 별 것도 아닌 죄를 철저히 고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진정한 영혼의 평안과 참다운 구원의 확신을 얻지 못하고 다시금 기억되는 죄들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괴로운 것은 그의 비상한 머리로서도 자기가 지은 죄 가운데서 잊어버리고 기억이 되지 않은 죄에 대하여서는 더 이상 고해를 할 수 없다는 사실과 인간 편에서는 죄를 저지를 때나 저지른 후에도 그것을 죄로 느끼지 못하고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아 고해의 필요를 깨닫지 못하는 행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명백히 죄로 정죄받을 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가 없었다. 그의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게 되자, 그는 고해성사의 근본적인 한계를 통감하게 되었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죄나 스스로 죄라고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고해의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고해제도로서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죄 때문에 루터는 다시금 번민과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24) R.H.Bainton(1982), p.55.
각자의 기억나는 죄와 각자가 죄로 인정하는 죄만이 고해성사의 대상일 뿐이라는 루터의 발견은 고해성사에 기초하여 중세 로마교회가 가르쳐온 신앙체계의 근본을 뒤흔든 중요한 발견이었다. 루터는 후에 성서 연구를 통해 회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과 신부 앞에서 고해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께닫고 이 문제 대한 근원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루터는 후에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95개조 항의문의 첫 번째 조항에서 회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이 고해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점을 제시 하였다.
4)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의심
최종적이고 가장 혹심한 의심이 그를 엄습했는데, 그것은 어쩌면 하나님마저 최후심판 때에 공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빠지게 된 것이다.25) 같은 책, pp.59-61.
왜냐하면 하나님은 절대적 존재이므로 인간적인 의(義)의 개념으로 하나님의 의(義)를 제한할 수 없다는 생각과 인간의 업적이 아무리 의롭고 위대할지라도 하나님이 꼭 거기에 합당한 보상만을 할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고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인간을 심판하신다면 인간의 덕행과 고해만으로 최후심판에서 영벌을 면할 보장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루터는 자기가 소속한 수도원의 창시자인 어거스틴의 예정론을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영원 전에 이미 버림받은 자로 예정되었다면 버림받은 자는 제 아무리 발버둥쳐 보아도 버림받은 자일 뿐이요, 구원받은 자는 무슨 짓을 하여도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냐는 단순한 생각에 미치게 되자 심판날에 대한 두려움에다 그 날에 베풀어질 하나님의 의에 대한 의심마저 겹쳐 그의 영혼의 번민은 절정에 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루터에게는 죄의 문제가 행위의 죄인 자범죄가 아니라, 행위의 죄의 근거가 되는 존재의 죄, 다시 말하면 원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루터는 Anfechtung의 절정에서 원죄의 문제는 인간의 자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루터신학의 구원론적 동기와 성서적 기초에 관한 연구2/ 許 虎 益(대전신학교)
Ⅳ. 성서의 가르침을 통한 구원의 체험과 의인론
루터가 이러한 고문 당하는 듯한 영혼의 절망의 심연에 처해 있을 때, 그의 스승 슈타우비츠(Staupitz ?-1524)를 통해 치유적인 암시를 받게 된다. 루터가 그를 ‘복음의 아버지’ 라고 부를 정도로 그는 루터에게 몇 가지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해 주었다. 그는 “참 회개는 형벌하시는 신을 무서워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사랑함으로 시작된다”26) W.Walker(1980),「기독교회사」,유형기 역편(서울:대한기독교문화원), p.367.
고 가르쳤다. 신의 사랑을 기대하여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신의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로 인해 고해에 대한 루터의 의심에 급진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또한 루터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 것이 그리스도일 수 있다는 것을 한 마디로 부인했으며, 루터의 내면에 존재하는 선(善)을 인정하였다. 그 밖에 예정론에 관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만 예정론이 이해되고 발견되는 것이지 그밖의 어느 곳에서도 예정을 말할 수 없다”27) P.S.Watson(1977),「프로테스탄트 신앙원리」,이장식 역(서울:컨콜디아사),p.45.
고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루터가 도덕적으로 진지하고 종교적으로 민감하며 비범한 지능을 지닌 청년인 것을 확신한 그는 루터에게 대학의 설교와 성서 강의를 명하였다. 루터는 “그러한 무거운 짐을 지면 눌려 죽을 것”이라고 주저했지만, “유능한 사람은 하늘에서도 할 일이 많을 터이니 죽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28) W.Walker(1980), p.407.
고 여유 있게 대답하고 루터에게 성서연구를 강권하고, 그를 도와서 신학박사학위와 교수직을 받도록 지도하였다.
1) 성서연구와 탑의 체험
루터는 시편 강의(1513-14)와 바울의 로마서 강의(1515), 갈라디아서 강의 (1516-17)을 맡아 성서연구에 몰두함으로써 청소년기의 Anfechtung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루터는 시편을 통해 히브리의 위대한 신앙인들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Anfechtung과 같은 처절한 고통을 호소한 참회시들을 발견하고는 큰 위로를 얻게 되었다. 영혼의 번민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특히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 시편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면서 시 22편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참회시의 대목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부르짖은 말씀(마 27:46 병행)과 일치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루터는 히브리의 위대한 신앙인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고 내팽개침을 받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렇다. 그리스도께서도 Anfechtung(겟세마네 기도, 채찍, 가시 면류관, 버림받음 등등)이 있었다”29) R.H.Bainton(1982), p.64.
고 확신하게 되었다.
루터가 한 시간의 十分之一이라도 견딜 수 없어 죽을뻔했던 그 고통을 왜 예수가 당하셨는가? 루터는 죄인인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알 수 있었으나, 죄없는 예수의 고통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든 불의를 짊어지셨다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터는 후에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감추어져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극복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30) M.Lienhard(1982),Luther: Witness to Jesus Christ(Minneapols:Augsburg Public
House), p.22.
루터가 청소년기부터 그리스도에 대해 품었던 무지개 위의 심판관으로서의 그리스도가 사실상 십자가 위에서 버림받은 자임을 성서에서 발견하고 놀라게 되었다.
시 31편은 루터에게 새로운 인식을 일깨워 주었다. “주여, 내가 당신께 피하오니 나로 결코 부끄럽게 마시고 당신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라는 귀절을 통해 “이 구절은 ‘나의 의’로 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의’, 즉 신앙을 통해,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의해 우리의 것이 되신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의로라고 말한다”31) 지원용 편(1984), 「루터선집 제5권」(서울:컨콜디아사), p.266.
는 점을 발견하고 크게 놀라게 된다. 루터는 철저한 수도원 생활을 통해 행위로써 흠이 없도록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털끝만한 죄일지라도 철저히 고해하여 하나님 앞에서의 최후 심판 시 의로운 자로서 인정받아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시편 31편 1절의 말씀은 구원에 대한 이제까지의 사고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젊은 수도자로서 루터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힘을 역설하던 유명론자들의 신학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중세교회의 일반적인 신앙형태 역시 신앙의 덕목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가르침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왔으므로 루터는 인간의 구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여야 한다는 틀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서 구원을 얻는다는 시편 31편의 발견은 구원론에 있어서 일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야기시켰다.32) P.S.Watson(1977),pp.68f. 왓슨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인식론에 있어서 코
페르니쿠스적 혁명이듯, 루터의 인의론은 인간 중심적 종교에서 하나님 중심적 종
교로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종교의 영역에서의 또 하나의 코페르니쿠스라고 했다.
시편의 말씀에 이어 로마서 연구를 통해 루터는 새로운 구원의 체험에 이르게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 루터는 ‘천국의 문이 열려짐’과 같은 구원의 빛을 발견한 것이다. 소위 탑상체험(Turmeriebnis)으로 일컬어지는 이 말씀의 빛을 통해 지금까지의 절망과 불안과 공포와 번뇌(Anfechtung)가 일시에 사라지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의 기쁨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후일 루터는 그 때의 체험을 이렇게 회상하였다.
“바울의 로마서를 이해하려고 몹시 애쓰는 나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의였다. 그것은 내가 이 의라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요, 따라서 불의한 사람들을 공정하게 처벌하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나의 상황으로 말하면 수도사로서는 털끝만치도 흠잡을 데가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마음이 괴로운 죄인이었기 때문에 도무지 나의 공로를 가지고는 그 분을 누그러뜨릴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공정하고 성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그 분에게 투덜댔다.... 밤낮 가리지 않고 곰곰히 생각하던 어느 날 나는 ‘하나님의 의’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 나는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께서 은혜와 순수한 자비를 발휘하신 나머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수동적인 의(Justitia Pussiva)라는 것을 터득했다. 그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이었다.”35) R.H.Bainton(1982), p.71.
2) 의인론의 성서적 기초
루터는 시편과 로마서의 연구를 통해 구원의 의미를 새롭게 체험하고 이를 신학적으로 정리하여 성서에 기초를 둔 의인론에 이르게 되었다. 의인론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책을 참고 할 것.
A.McGrath(1988),Justification by Faith(Grand Rapids,Mich.).
---------(1986),Iustitia Dei : A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of
Justfication,2 vols(Cambridge).
먼저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구원에 이른다는 시편의 말씀에 따라 루터가 후에 “두 가지 종류의 의” 라는 논문에서 잘 정리한 것처럼 그는 그리스도인의 의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하나는 외래적인, 즉 외부에서 스며 들어온 다른 분의 의로서 하나님의 의며, 다른 하나는 우리 자신의 의인 내부적인 의라고 했다. 전자를 루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무한한 의며, 모든 죄를 한 순간에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죄가 존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자는 그리스도 안에 존재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자이며, 그리스도가 가진 것과 똑같은 의를 가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그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이는 근본적인 의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모든 실제적인 의의 근거이며, 원인이고, 자원입니다. 이것은 아담 안에서 상실된 원의(原義) 대신에 주어진 의입니다.”33) 지용원 편(1984), p.266.
루터는 우리 자신의 의는 하나님의 의의 산물이라 하여 양자간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나아가 원죄(原罪)와 자범죄(自犯罪)34) R.Seeberg(1985),「기독교교리사」,김영배 역(서울:엠마오), p.316.
제베르그는 루터가 인간의 두 가지 죄, 즉 원죄(peccatum originale)와 자범죄
(peccata actualia)에 대응하여 “두 가지 종류의 의”를 주장했다고 설명한다.
를 원의(原義)로서의 ‘하나님의 의’와 우리 ‘자신의 의’에 대한 유비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자범죄와 달리 원죄가 마치 우리의 행함과 무관하게 다만 아담의 후손에게 주어지는 외래적인 것처럼 원의 역시 우리의 덕행과 상관 없이 다만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 안에 스며들어 온다고 주장하였다.
로마서 주석에서는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를 다른 방식으로 구분하였다. 하나님의 의는 인간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서 주어지는 의며, 인간의 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윤리학」에서 지적한 것처럼 행위에 수반되는 의라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에 있어서는 의가 선행(善行)을 앞서며 의의 결과로서 선행(善行)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36) W.Pauck(ed), Luther: Lectures on Romans(London:SCM),p.18.
무엇보다도 로마교회는 하나님 의가 최후 심판 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가르쳐 왔다. 그리하여 청소년기의 루터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그 때 나타날 하나님의 엄격한 의의 심판 앞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게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영혼의 시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는 로마서 1장 17절의 첫 귀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시간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하나님의 의가 최후 심판시가 아니라 지금 여기,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심하던 차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두 귀절에는 깊은 관련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W.A.Scoot(1988),「개신교 신학 사상사」,김쾌상 역(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p.18.
스코트는 “이 두 귀절의 의미에 대한 바울의 이해 속에 루터신학의 정수가 들어 있다”고 하였
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다’는 구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Justitia Dei)를 능동적인 의(Justitia activa)와 수동적인 의(Justitia passiva)로 구분하였다.37) 이형기(1984), p.27. “From the preface to his Latin Works,1545" 참조.
전자는 의로운 하나님이 불의한 죄인을 벌하는 엄격한 법의 시행자임을 뜻한다. 반면에 후자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불의한 죄인을 의롭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바울의 표현을 통해 루터는 하나님의 의의 개념이 ‘의인을 의롭게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은총을 통해 ‘죄인을 그 죄에도 불구하고 의롭게 인정하는 義認(Justitication)’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죄인을 죄인으로 심판하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의는 최후심판시에 나타나는 것이지만, 죄인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다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수동적인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총인 복음 안에 이미 나타난 것이다. 이 복음을 믿는자에게는 하나님이 그 죄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구원의 은총으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하며 따라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롬 1:17)’는 말씀이 루터에게는 진정한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들려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 들일 때,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서 우리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은총 만(Sola gratia)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은 인간 편에서 볼 때는 오직 신앙 만(sola fides)으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38) J.S.Whale(1955), The Protestant Tradition(Cambridge:Combridge University Press),
p.44.
그리고 이 은총과 신앙은 오직 성서(solar scriptura)의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W.A.Scott(1988),p.20. 스코트는 은총의 원리,신앙의 원리,성서의 원리가 루터신학의 기본적인
세 가지 요소라고 한다.
루터가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복음에 계시된 의로써 우리를 심판하는 의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는 의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수동적인 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하나님의 뜻이라는 복음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는 바로 그리스도의 의와도 같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의 파라독스이며, 십자가의 감추인 뜻이라고 하였다.
Ⅴ. 고해제도의 비판과 95개조 항의문
루터는 자신의 청소년기를 괴롭혀 온 Anfechtung을 시편기자와 예수에게서 발견하므로써 십자가의 감추인 뜻이 하나님의 진노의 극복이요, 은총과 사랑의 계시임을 깨닫게 된다.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수동적 의미로 해석하여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구원의 능력으로 깨달아 내적 영혼의 평화를 얻게된 후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중세교회가 성서의 이러한 기르침에 위배되어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게 되었다.
초기 카톨릭신학의 터를 닦은 이레네우스나 어거스틴은 성서적 신앙을 강조하였으나, 중세교회는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규범으로 보지 않고, 신앙에 관한 교황의 칙령이나, 교회회의의 결정, 교부들의 가르침 등을 모두 신앙의 규범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신앙의 규법들 중에서 성경이 최고의 규범(prima fidei regular)이라 하였다. 성경을 신앙의 여러 규범 중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음은 인정했지만, 성서가 유일무이한 신앙의 유일한 규범(sola fidei regular)이라고 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중세 후기에는 성서의 가르침보다 교회의 가르침이 더 권위있는 신앙의 규범이 되고 말았다.
중세 교회의 이러한 성경관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이는 마틴 루터이다. 루터는 청년기의 극심한 죄의식과 죽음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리하여 쫓기듯이 수도원으로 들어 갔다. 중세교회가 가르치는 금욕과 고해를 통해 구원의 확신을 얻는데 실패를 하고, 시편과 로마서의 연구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께닫게 되었다. 루터는 자신의 체험적인 신앙을 통해 교회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서의 가르침 그것도 성서 원어의 의미에 따른 가르침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께닫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루터는 ‘오직 성서(sola scriptura)' 만을 주장하고 성서로 돌아 갈 것을 호소하여 종교개혁의 신학적의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 혼신을 다해 얻으려고 했던 고해성사를 통한 구원의 확신에 대한 회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1917년 고해성사와 이와 관련된 면죄부 발행 및 교환권의 오류에 대한 쟁점을 95개의 질문으로 자유토론을 요청했다. 면죄부와 교환권에 대한 비판을 이미 오래 전부터 이전의 개혁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계속되어 온 쟁점이었다. 루터의 새로운 점은 고해에 대한 성서적 비판이다.
당시 고해의 성례전은 다음과 같은 체계로 발전되어 있었다. 카톨릭 교회의 7성례전은 피터 롬바르드(Peter the Lombard 1100-60)가 제정한 후 아퀴나스가 전수하였고 플로렌스 종교회의(1438-45)와 트렌트 종교회의(1545-63)에서 확정되었다.39) 이형기(1984),「종교개혁 신학사상」(서울:장로회신학대학출판부), p.71.
이 성례전들은 위계질서적 교직체제와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를 매개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수단으로 이해되었다.
중세 교회는 세례받은 신자들이 세례 이후에 일상생활을 통해 죄를 범할 경우, 사제를 찾아가 통회(Contrifio)하고 자백(confessio)하는 것을 성례로 제도화하였는데 이러한 고해제도는 점차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아퀴나스에 의해 체계화된 고해제도의 4요소는 다음과 같다.40) 고해 행위의 4요소에 관해서는 W.Walker(1980), pp.288f와 P.Tillich(1982),
p.290. 참조.
① Contrition(통회,회오) : 회오는 신께 대한 범죄를 참으로 슬퍼하며 재범치 않 을 결심을 하는 것이다. 아퀴나스는 신의 벌을 무서워하는 최하급의 회오(attritio)로 시작하여 참된 통회(contrition)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41) R.Seeberg(1985), p.307. attritio는 하등 통회로, contritio는 상등 통회로 번
역된다. 전자가 수동적이고 불완전한 통회라면, 후자는 능동적이고 완전한 통회로
구분되어진다.
② Confession(고백) : 신부에게 하는 사적인 비밀 고백(Private Confession)은 7세기의 옛 영국 선교사들의 권유로 시작하여 점점 발전하였다. 아벨라드, 롬바드는 신부에게 참회하지 않더라도 참 회오는 신의 사유를 받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신부에게 참회하면 더 좋으리라 생각했다. 제4차 라테란회의(1215)에서는 성인(成人) 신도들은 누구나 1년에 1번씩 참회할 것을 교회법으로 결의했다.
③ Satisfaction(충족,보속) : 하나님이 비록 참회자의 영벌(etenal punishment)은 사해주지만, 죄의 결과에 따른 현세의 처벌(temporai punishment)은 남아있다고 보았다. 아벨라드가 그 구별을 분명히 한 이후로 이 현세의 처벌을 “회개의 합당한 열매”로 간주하여 이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범죄의 처벌이 충족(satisfaction)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회개의 열매로써 기도,시편읽기,선행,금식,구제,성지순례,고행을 죄의 정도에 따라 신부가 벌과(penalty)로 부과하였다. 후에는 면죄부 구입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④ Absolution(사면,사죄): 참회자의 죄에 대한 통회와 고백에 대한 처벌을 만족키 위한 형벌을 명한 다음에는 그 증거로 신의 대리자인 신부가 죄의 사면을 선언하였다. 신부의 사면없이는 세례 후 죽을 죄를 지은 범죄자등은 구원의 보장이 없으며, 이러한 죄의 사면은 신부의 의무와 권한이라 가르침으로써 사제에 의한 평신도의 제제가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고해제도는 중세 후기에 더욱 개악되었다. 고해제도는 잉여 공로 사상, 연옥설, 면죄부 발매와 연계되어 중세 후기 신앙의 기본 체계로서 확고한 위치를 굳히게 되었으나 이로인한 병폐는 날로 극심하여져서 마침내 종교개혁을 측발하게 되었다.
중세 교회의 병폐는 면죄부 발매로 표출되었으나 그 신학적인 근거는 고해제도로 뒷받침되었다. 신자들이 지은 죄를 신부에게 통회하고 고백하면 사죄와 보속이 가능하다는 고해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피의 공로와 마리아의 공로, 그리고 성도들의 공로는 모든 신자들의 형벌을 속상해 주고도 남는다는 잉여공여설에 의해 신학적 근거를 획득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제들에게 세례 이후에 지은 죄를 사할 수 있는 의무와 권한이 고해라는 성례전으로 보장된 것이다. 고해제도의 최대의 악용은 면죄부 판매와 관련하여 극대화되었다. 면죄부 판매의 기원을 3세기의 키프리안(Cyprian,d.258)과 안키라 종교회의(Ancyra Council,314)로까지 소급시키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것이 보편화된 것은 십자군 참전 용사에게 면죄를 허락한 교황 우르반 2세(Urban II)와 1343년 교황 클레멘트 6세가 내린 칙령 이후이다.42) 면죄부의 기원에 관해서는 이형기(1984), p.73와 W.Placher(1983), History of
Christian Thought(Philadelphia:Westminster Press), p.183 참조 할 것.
그리하여 고해성사를 하면서 죄의 보속(Satisfaction)을 위해 신부가 영벌을 대신하는 현세적 형벌로 부과한 기도, 시편읽기, 선행, 구제, 금식, 성지순례 등이 면죄부 구입으로 대체되었다. 루터 당대의 율리우스 2세(1503-13) 때에는 면죄부 판매로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교회인 베드로 대성당 건립에 필요한 자금이 충당되었다.
면죄부 판매를 가속화시킨 것은 소위 연옥설(purgatory)이다.43) 이형기(1984), p.73.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Ⅳ)는 교황의 칙서(1476년 4월 3일)를 통해 교회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면죄부를 구입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루터 당시 면죄부 판매는 유럽의 전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으며, 독일에서는 마인츠의 대주교인 알베르트가 면죄부의 희년(Jubilee Indulgence)을 선포하고 사제 테첼(Tetzel)을 파송하여 면죄부 판매를 독려했다. 테첼은 심지어 헌금함에 동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의 불에서 해방되어 낙원으로 간다고까지 말하였다.44) W.Walker(1980), p.370.
그러나 루터의 일차적인 관심은 면죄부 판매나 연옥설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청소년기에 자신의 영혼을 괴롭혀 온 Anfechtung을 탑의 체험을 통해 해결한 후, 죄인인 인간은 자신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확신을 바탕으로 하여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 존전에서 참다운 “회개”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 이다. “루터의 결정적인 종교체험은 그가 대속의 속죄를 발견하기 위하여 고투했던 고해의 잘못된 개념의 강조에 의한 고해성사와 관련하여 획득되었다. 이것이 그의 기본적인 종교사상들이 발전하게 된 기점이 되었다”45) R.Seeberg(1985), p.310
고 한 제베르그는 복음적 의미의 회개가 그의 신학의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루터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 1:17)”는 말씀과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 4:17)”는 말씀 사이의 관련성에 착안하게 되었다. 복음을 믿어 의인으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요청된다고 생각되었다.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가르친 것은 신부에게 가서 ‘고해하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았다.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교회에서 가르쳐온 고해제도 자체를 비판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고해제도에 바탕을 둔 면죄부 판매는 자연히 그 근거를 잃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루터는 95개조항의 항의문의 제1,2,3조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가 가르치는 ‘회개’는 교회가 가르치는 ‘고해’가 아님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던 것이다.
“제 1논제, 우리의 주님이시요,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마태 4:17)고
하신 것은 신자의 전 생애가 참회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 2논제, 이 말씀은 한 사제의 주관 하에서 수행되는 성례전적 참회로는 이해될
수 없다.
제 3논제, 그러나 이 말씀은 내적 회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만일 이같은 내적 회개가 육욕에 여러가지 외부적 극기를 나타내지 않
는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46) 지원용 편(1984), 「루터선집 5」, pp.45f.
성서 연구를 통해 루터는 마침내 교회에서 가르치는 고해(poenitentia)는 성서가 가르치는 회개(metanoia)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중세교회는 라틴역(Vulgate)을 사용하였는 데, 라틴역에는 회개라는 말을 고해의 뜻으로 번역하고 그러한 의미로 가르쳤기 때문이다. 루터는 95개 조항 해설서에 희랍어 원어 ‘μετανοειτες’를 라틴어 poenitentia로 번역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성서 희랍어는 고해하라(do penance)의 뜻이 아니라 회개하고 뉘우치라(be penitent)는 마음의 상태의 변화를 뜻하므로 라틴어로 번역한다면 차라리 ‘transmentanini’가 더 정확한 번역이라고한다고 했다.47) 같은 책, p.84.
1517년 이후부터 루터는 완전한 회개(Contritio)와 불완전한 회개(Attritio)를 구분하여 사용함으로써, 전자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마음의 회개인 반면에 후자는 신부 앞에서의 수동적인 후회라고 하였다.
루터는 “회개”의 성서적 개념을 재발견한 후 고해제도의 4항목을 체계적으로 비판하였다.
① Confession(고백)의 비판
기억나는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며, 하나님에게 죄를 고백하면되는 것이지 다른 인간에게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중재 외에 사제에 의 중재를 거부한 것이다.루터는 후에 만인사제설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중재자가 필요 없음을 더욱 분명히 역설하였다.48) 같은 책, p.314.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거룩한 일들을 서로 가르칠 자격이 있다” 같은 책, p.313.
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 루터는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강조 하였다.
② Contrition(통회)의 비판
루터는 고해제도의 참회는 진정한 회개가 아닌 수동적이고 불완전한 회개(attritio passiva,
imperfecta)임을 비판 하고, 진정하고 완전한 회개는 일시적인 통회나 후회가 아니라 삶의 변화를 통해 신앙에 이르게 되고 하나님과의 새로운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한 평생 계속되는 삶의 변화가 진정한 회개인 것이다. 슈타우비츠가 신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회개할 수 있는 것이지, 신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듯이, 루터는 죄에 대한 기억(meditation)이 통회 전에 오는 것이 아니라, 통회가 있은 다음에 죄에 대한 기억과 고백이 생긴다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능히 자기의 잘못을 깨달을 수 없기(시 19:12)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죄를 계시함으로 사람을 참회하게 한다. 완전히 회개하고 공포에 질려 그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려고 한다”49) 지원용 편(1982),「루터선집 6」, p.393.
고 하였다. 고백(Confession)과 통회 사이의 순서가 뒤바뀌었기 때문에 고해의 성례는 기억되지 않는 죄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고해제도의 또 다른 실패는 특수한 죄목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용서받아야 할 대상은 잡다한 죄들(sins)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 상태의 인간 존재 자신(sin)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고 새로운 존재가 용납되는 것이 의인(義認)의 본래적인 의미라고 본 것이다.
③ Absolution(사죄)의 비판
중세 교회는 세례 이후의 죄를 신부가 잉여 공로를 근거하여 용서할 수 있다고 보았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한 죄의 용서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죄 사면하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이므로 그것은 정확히 표현하면 Absolution이라기 보다도 Justification이라 할 수 있다. 전자는 보상을 요구하나 후자는 죄인을 의롭게하는 무조건적인 은총이기 때문이다.
사제의 속죄권은 교회법상의 형벌에 대해서만 그 효력을 발생한다. 교황이라 할 지라도 죽은 사람을 연옥에서 해방시킬 수 없다.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이다. P.Tillich(1983),p.291.
④ Satisfaction(보속,충족)의 비판
중세 후기에는 죄의 보속을 위한 모든 행위가 돈으로 살 수 있는 면죄부로 대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해성사에 있어서도 사죄와 보속의 순서를 바꾸었다고 한다. 먼저 사죄를 선언하고 사죄를 충족시킬 보속을 정하였다. 죄의 용서를 선언하고 이제는 죄가 용서되었으니 면죄부를 구입하도록 강요하였다는 것이다.
루터는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죄, 죽음, 악마와 싸워 이김으로써 죄, 죽음, 악마의 영원한 저주를 정복하였고, 하나님의 진노가 극복되었다는 투쟁과 승리를 주장함으로써 로마의 대리 보상법(penalty)에 근거한 잉여공로설과 충족설의 한계를 극복하였다.50) P.S.Watson(1977), p.226.
루터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의 세력에 대한 우주적 승리를 완수함으로서 인류를 구원하였다고 가르쳤다.51) G.Aulen(1945), 「속죄론 연구」, 전경연 편(서울:향린사). p.114. 아울렌은 속죄론의 세 유형을 구분하고, 루터가 고전적 속죄론의 승리자 그리스도를 강조했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배상이나 충족으로 이해하지 않고 투쟁과 승리로 이해하였다.
이처럼 루터는 “회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고해제도의 근거를 비판하고, 나아가 고해제도로 말미암아 강화된 면죄부와 공로사상을 비판함으로서 종교개혁의 물꼬를 터 놓았다.
ⅤI. 맺 는 말
루터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중세 로마교회의 여러 부패와 연옥설,면죄부와 같은 잘못된 교리와 제도에 대하여 줄기차게 비판을 제기하여 왔으나, 루터에 의해서 종교개혁의 줄기가 잡힌 까닭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로 루터의 주장에는 자신의 실제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구원론적 동기가 아주 강하였다는 점이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루터는 심각한 영혼의 시련에서 허우적거렸으며 죄와 죽음과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구원을 얻기 위한 지름길로 여겨진 수도원에 들어간 것이나, 로마 교회가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 구원을 얻기 위해 금욕적인 생활과 철저한 고해에 매진한 것은 모두 구원의 확신을 얻으려는 강력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터의 경우는 역설적이게도 구원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하였으므로 로마교회가 가르친 금욕과 고해의 결정적인 한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sola gratia)과 이를 믿음으로 받아 들리는 오직 신앙(sola fides)에 의해서만 구원에 이른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다. 루터 신학에서는 신학적 사변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적을 수 밖에 없다. 칼빈과 달리 그의 저술이 대부분 단편적이고 논쟁적인 형태로 제시되어 있으며, 그때 그때마다 제기된 신앙에 관한 문제들을 극명하게 다루고 있는 것도 그 자신의 신학적 관심이 온통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영혼의 안식과 구원의 확신을 얻는 문제에 골몰하였기 때문이다.
둘째로 루터가 영혼의 시련에서 벗어나 ‘새로 태어나서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낙원에 이른 기분에 이른 것’은 로마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서에서 발견한 복음을 통해서 이르게 된 것이었다. 초대교회 이후로 성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학자들이 많았으나, 루터처럼 분명하게 교회의 가르침과 성서의 가르침의 차이를 체험적으로 경험하고 이를 지적한 이는 많지 않다. 사실은 중세 로마교회는 성서의 가르침보다 교회의 가르침 즉, 교황의 칙령이나 교회회의에서 정한 교리와 제도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성서도 신앙의 여러 기준 준의 하나로만 여겼다. 루터는 성서의 가르침을 통해 구원의 길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성서 만이 ‘신앙의 유일한 기준(sola fidei regular)’이라는 강력한 신념에 이르게 되었고, 이러한 체험이 우유부단한 루터로 하여금 로마교회의 잘못된 교리와 제도에 대한 강력한 항거를 제기하도록 이끈 것이다. 루터가 ‘성서로 돌아가자’고 한 것도 단순한 사변적인 신학적 주장이 아니라, 생사를 건 치열한 영혼의 시련을 통해 께달은 구원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처럼 루터는 성서적인 신앙(sola scriptura)을 강조하여 개신교신학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루터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은 다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의인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은 청소년기의 영혼의 시련에서 벗어나 참다운 영혼의 평화와 구원의 안식을 체험하게 되었다. 따라서 루터의 종교개혁신학에는 이처럼 분명한 구원론적 동기와 확고한 성서적 기초가 마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오늘날 한국신학의 모습들을 조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http://kr.blog.yahoo.com/soodosacho/5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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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의 인간이해1-그의 두 왕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김주한 박사(한신대학교 강사, 교회사학)
I. 문제제기
본 논문은 루터의 인간이해를 그의 두 왕국론의 틀에서 분석한다. 그 분석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을 신학적으로 해명한 이론이다라는 전제 위에서 그의 이론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논증한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그의 두 왕국론 혹은 두 정부론은 개인 경건(personal piety)과 공동선(the common good)의 변증법적인 통합 구조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우리는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도대체 무엇을 밝힐 수 있는가? 그것은 아마도 복음이 세상에 대해서 지니는 책임성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일 것이다. 복음은 어떻게 세상과 연관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책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보른캄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그들의 역할과 행동을 고려할 때 거듭 거듭 고용해야 하는 방향에 대한 필수 불가결한 수단들이다”라고 말한다. Heinrich Bornkamm, tr. Karl H. Hertz, Luther's Doctrine of the Two Kingdoms in the Context of His Theology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0), 37.
따라서 루터의 두 왕국론은 복음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전제로 한다. 이는 그의 이론은 윤리적, 정치적인 차원과 행동규범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일부 비판가들은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우리는 정치, 윤리적 함의들(implications)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그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두 개의 서로 분리된 영역-복음(신앙)의 영역과 세속의 영역(정치)으로 분리시킨다고 비난한다. 지금까지 일부 근대 신학자들에 의하면 루터의 신학은 사회변혁보다는 현상유지(status quo)를 도모하고 개인의 경건을 강조한 나머지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는 침묵(quietism)을 강요하는 것으로 비판 받아왔다.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는 루터의 현대적 이미지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루터에 대한 그의 평가는 일방적으로 부정적이다. 트뢸취에 의하면 루터는 “교회에 대한 개념”을 너무 영성화 시켰으며 따라서 “종교적 개인주의”(religious individualism)와 “순수한 영적 윤리”(a pure spiritual ethic)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한다. Ernst Troeltsch,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vol. 2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2), 470-1, 516.
그는 루터의 두 왕국론 신학은 본질적으로 이원론적인 구조, 즉 순수하고 철저한 기독교 개인 윤리와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되고 정해진 공적인 모랄러티” Ibid., 500.
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이원론적인 분열은 그의 산상설교 해석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트뢸취는 루터의 신학을 “순수한 이상주의”라고 규정하였다. 이러한 비판적 평가는 오늘날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트뢸취의 비판은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에게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답습되었다. 니이버는 루터의 두 왕국론은 공동체적 인간 사회에서 정의(justice)를 실현하는 문제와 씨름할 때에 패배주의(defeatism)로 인도한다고 주장한다. 니이버에 따르면 루터의 두 왕국론 이론은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의무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하면서 루터는 “현실적이고 공적인(public)윤리”보다는 “완전한 개인 윤리”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Reinhold Niebuhr,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vol. 2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43), 192-5.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은 루터의 신학은 기독교 복음의 사회-정치적인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에 의하면 루터의 신학은 오직 그리스도인들의 내적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개인윤리에 치중하였다고 한다. 몰트만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프락시스를 위한 어떠한 규준(criteria)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사회에서 세속 윤리 또는 세상 질서의 윤리 인식을 위한 기준을 제시할 뿐이다.” Jurgen Moltmann, Following Jesus Christ in the World Today: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and Christian Discipleship (Elkhart, Indiana: Institute of Mennonite Studies, 1983), 38. 따라서 사회개혁을 위한 종교개혁은 루터와 더불어 일어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근대 루터 비판가들에 의하면 루터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 적인 문제들로부터 탈피(detachment)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그의 두 왕국론 신학은 공적인 도덕성(public morality)과 개인 도덕성(private morality)과의 분열을 합법화함으로서 세상 권력자들에게 과도한 권한(excessive authority)을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본 논문은 루터는 그의 두 왕국론에서 인간을 사회적인 조건과 역사적 상황에서 그 존재를 규정하고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위의 비판들에 답변하면서 그의 두 왕국론의 현대적인 의미들을 살펴볼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철저한 윤리적 요구들(demands)과 사회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의 윤리적인 복잡한 현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해답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루터의 해석에서 사회윤리와 개인 경건과의 윤리적 긴장들과 복합성들이 상당부분 해소되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II. 인간의 두 본성과 두 왕국론 설계
루터의 두 왕국론은 본질적으로 그의 인간 이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 루터에 의하면 인간은 두 가지 본성을 지닌 존재이다. 영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육적인 존재, 내면적인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외적인 존재, 그리고 옛 사람인 동시에 새로운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두 본성에 대한 특성은 그의 칭의론 신학에서 주장하는 “인간은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simul peccator)이다라는 말속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루터에 의하면 인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세속권력: 어느 정도까지 복종되어야 하나”(1523)에서 루터는 인류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
그는 말한다: “우리는 아담의 자손들, 즉 모든 인류는 두 계층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에 속해있는 자들과 세상 나라(the kingdom of the world)에 속해 있는 자들로 구분되어진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신실한 신자들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그 밖의 모든 사람들은 세상 나라에 속하며, 법 아래에 있다. 거기에는 기독교적 삶을 살거나 악을 대적하지 않고 그들 자신도 악을 행치 않는 참된 신자들은 거의 없다.” Martin Luther, Luther's Works, ed. Jaroslav Pelikan, Vol. 45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7), 88, 90. 이하 모든 루터의 저술들은 LW vol., 페이지 순으로 기재함.
루터에게 비 그리스도인(자연인)은 육적인 존재이며 외적인 사람이요 세상 왕국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의롭게 여겨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늘 왕국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루터의 칭의론, 즉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의롭게 된다(justification by grace through faith)라는 주장에서 두 가지 포인트를 동시에 기억해야 한다. 첫째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전적인 죄인이다라는 인간이해와 둘째는 인간의 어떠한 선행도 구원에 상응할 만한 조건은 되지 못한다라는 점이다. 인간 본성은 전적으로 원죄에 의해서 타락했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그 자신의 공로(merits)나 선행(good works)에 의해서 자신의 구원에 공헌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순전한 선물이다. 칭의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악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지금 여기에서 의롭게 된 존재이지만 동시에 여전히 죄인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자신들의 죄 된 본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간 본성의 이중구조(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에 기본적인 틀을 제공한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의롭다라고 칭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할지라도 그들은 세상 권력이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세상 끝날 까지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로마서 강해”(1515-16)에서 루터는 말한다.
우리는 죄인들이다. 하지만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써(imputation)에 의해서 의롭게 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자유 하도록 약속하시는지를 믿는다. 한편 우리는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갈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죄를 우리에게서 취하실 때까지 죄에 저항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 사실상 죄인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하게 치유하실 때까지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계속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확실한 죄 사함의 보증에 의해서 의로운 사람이다. LW 25: 260.
의롭게 된 사람들일지라도 여전히 세상 정부의 칼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은 세상 법의 지배를 받으며 법에 의해서 통제 받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와 악마의 노예들이기 때문이다.” LW 26: 40.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다”라는 이원구조에서 인간 본성을 파악하는 루터의 입장은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의 태도를 기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항상 세상의 악마적인 힘들과 타락의 정도에 대해서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사회의 오류들(faults)은 사회 제도들(institutions)이 아닌 인간의 악한 본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았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루터는 사회나 정부 기관들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악한 사회구조는 악한 인간들에게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개혁 방법은 제도나 기관들의 개혁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인 개혁에 놓여있다. 어떤 점에서 루터의 정치사상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그는 기존 사회 질서나 구조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에게 문제는 세상의 기관들이 아니라 그 기관들에서 일하는 인간이다. 다른 한편 그의 사상은 강력한 도덕적 급진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세상은 인간 본성의 죄 성에 의해서 악하게 타락하였다고 확신하였기 때문에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통치자들과 백성들의 도덕적인 삶의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의롭게 여겨진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행(good works)을 계속해야 한다. 지금까지 루터의 칭의론은 신앙과 행위의 분리를 위한 길을 예비하였으며 따라서 “선행의 완전한 무시”를 가져왔다 라고 빈번히 오해 되어 왔다. 루터와 동시대인들인, 에크(Eck), 코크래우스(Cochlaus), 디이텐버거(Dietenberger), 카제탄(Cajetan)등은 루터가 율법의 완전한 성취를 부인하면서 공로 교리(the doctrine of merit)를 파괴하였다고 비난하였다. Reinhard Hutter, “Martin Luther and Johannes Dietenberger on ‘Good Works,'" Lutheran Quarterly Vol. V1, no. 2 (1992): 127-152: Martin Luther, “The Leipzig Debate" (1519), LW 31: 307-326.
에크는 루터는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을 증오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비난한다. 에크는 선행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가치 있는 어떤 것이다. . . . 의로운 사람은 모든 선한 행위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한 행위는 공적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John Eck, Enchiridion of Commonplaces: Against Luther and Other Enemies of the Church, trans. F. L. Battles, 2nd ed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78), 50, 56.
그들에 따르면 루터의 칭의론은 크리스챤들로 하여금 도덕적 열망을 억제하게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루터의 교리는 모든 선한 행위들을 불필요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이텐버거는 죄인 된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들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제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협력을 함으로써 죄인은 형벌을 면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Vinzenz Pfnur, Einig in der Rechtfertigungslehre? (Wiesbaden: F. Steiner, 1970), 278.
“선행에 관하여”(1520)라는 논문에서 루터는 그의 적대자들을 향해서 선행에 관한 주제를 그가 왜 쓰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내가 믿음을 찬양하고 믿음 없이 행해진 그와 같은 행위들을 거부할 때 그들은 내가 선한 행위들을 금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사실은 나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참다운 선한 행위들을 아주 많이 가르치기를 원한다.”LW 44: 24. 루터는 정열적으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삶 안에서 현실화되고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은 공허한(superfluous)것이다. “베드로후서에 대한 설교들”(1523)에서 루터는 주장한다:“우리는 믿음을 쉬게(rest)하거나 정지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믿음이란 너무 고착 적인(constituted)것이어서 적용과 실습을 통해서 보다 강하게 되며 그때에 비로소 믿음은 소명 받은 자들과 선택 받은 자들에게 확신을 준다.” LW 30: 158-9. 신앙과 행위의 이러한 변증법적인 연결은 루터의 칭의론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의 원칙은 중세 후기 교회의 선행의인화(works-righteousness)신학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또 다른 면으로 세상과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 루터는 말한다:“그리스도인은 아무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모든 만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종속된 모든 만물에 완전히 의무를 다해야 하는 종이다.” LW 31: 344.
이러한 모순된 주장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토론할 것이지만 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의 이중적인 도덕성을 보여준다. 아무튼 루터의 인간 본성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인 이해는 난해하고 복잡한 질문을 제기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윤리적인 계명들을 악이 지배하는 세상 현실에서 실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한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어찌 보면 서로 대립되고 모순된 두 영역에서 동시에 살 수 있는가? 루터는 이 문제를 그의 두 왕국 시스템에 의해서 해결한다. 따라서 루터의 두 왕국론은 죄인이면서 동시에 의인이다라는 인간 존재의 두 본성들에 대한 루터의 이해에 상응하면서 그리고 신학적, 인간학적인 고려들의 기초 위에서 세워진 인간 상황에 대한 방법론적인 해석을 구성한다.
마르틴 루터의 인간이해2-그의 두 왕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김주한 박사(한신대학교 강사, 교회사학)
III. 개인 경건과 공동선의 구조적인 상관관계
루터의 두 왕국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당시 좌파 종교개혁자들과의 첨예한 대립에서 나왔다. 루터는 이 세상 정부와 교회를 혼합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국가 연합 신학을 강력하게 반대하였고 또한 복음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려 했던 종교개혁 급진파들도 비판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복음의 이름 하에서 세상 권력을 지배하려고 함으로써 복음을 위험에 빠뜨렸고 급진파들은 성서에 의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려 했다는 점에서 복음의 본질을 왜곡하였다.
1. 로마 가톨릭 교회와 세속 권력에 대한 견해
중세 로마 가톨릭 교회는 교황권적 군주제에 의해서 설립되고 지배되는 하나의 단일한 보편적인 커뮤니티였다. 중세 교회는 교황권의 지배아래에서 전 세계적으로 교회와 지상 권력을 통괄하려고 하였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세상 통치자들과 잦은 충돌을 빚었다.
중세 로마 가톨릭 교황권은 다음 두 이론에 의해서 밑받침되었다: 두 칼 이론(the two sword theory) 과 교회법(canon law). 두 칼 이론은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서방 교회의 고전적인 가르침이다. 이 이론은 루가복음 22장 38절에서 기원하는데 거기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 칼을 언급하고 있다. 두 칼 이론은 처음에는 세상에서 영적인 권위와 세속적인 권위의 구분을 위한 하나의 근거(rationale)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중세기에 와서 이 이론은 영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모두에서 교황의 권력행사를 정당화 시켜주는 이론으로 사용되었다. 중세기 교황들은 세상 통치자들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교황권으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였다. 교황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들로써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 두 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세상 권력은 기본적으로 교회보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위치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두 칼을 베드로에게 주셨고 그를 통해서 그 두 칼은 다시 교황들에게 전수되었다. 이러한 이론에 근거해서 교황들은 모든 세상 권력들은 교황권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교황 그레고리 7세(1073-1085), 이노센트 3세(1198-1216), 그리고 보니페이스 8세(1294-1303)등은 이 이론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베드로의 후계자로 자처하면서 그들의 교황권을 한층 강화시킨 사람들이었다. 이워트 루이스(Ewart Lewis)는 중세기에 교황권과 세상권력과의 관계구조를 면밀히 조사하였다. 루이스는 중세전반을 통해서 교황제도가 하나님의 “신적인 기관”(divine institution)이라는 주장은 교황들에게 “거의 무제한적 권한”을 부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Ewart Lewis, Medieval Political Ideas, Vol. 2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54), 358. Gregory VII, Innocent III, Boniface VIII의 교황권에 관해서는 다음의 책들을 참고하라. Brian Tierney, The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Toronto: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88); Walter Ullmann, The Growth of Papal Government in the Middle Ages: A Study in the ideological relation of clerical to lay power (London: Methuen & Co Ltd, 1962).
세상 권력보다 교회의 권위가 더 우월하다는 교황들의 주장은 교회법에 의해서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 졌다. 십이, 십 삼 세기에 교회법의 발전은 교황권을 더욱 독립적이며 다른 모든 세상의 제도들을 통합하는(integrate)기관이 되도록 하였다. 교회법은 교회 교리를 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세상 문제들을 다루는 문제에서도 교황을 최고의 입법자요, 행정가며 심판자로 만들었다. 이러한 교회법을 만드는데는 여러 명의 신학자들이 가담하였다. 볼로냐의 사제(a cleric of Bologna) 그라티안(Gratian)과 알라너스(Alanus) 등이 그 대표자들이다. Brian Tierney, The Crisis of Church and State, 1050-1300, 116-124 참고할 것.
2. 종교 개혁 열광주의자들과 세속 권력
급진적인 열광주의자들은 제도권(magisterial) 종교개혁가들의 신학에 반대한 십 육 세기 종교개혁 운동 그룹들을 말한다. 그들은 신약시대의 원시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서 기존의 세상 정부의 권위와 전통적인 교회 권위를 모두 거부하였다. 그들은 신학과 성서에 보다 투철한 입장을 가지고서 접근하였다. 하지만 성서의 가르침들을 세상에서 어떻게 실천하느냐의 방법론에 대해서 그들은 서로 입장이 달랐다. 그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분류 될 수 있다: 복음주의적 분리주의(evangelical separatism)와 혁명적인 묵시주의(revolutionary apocalyptism). 아나뱁티스트들(the Anabaptists)은 첫 번째 유형을 대표하고 두 번째 유형의 대표자는 토마스 뮨쳐이다.
1)아나뱁티스트들; 아나뱁티스트들은 네 그룹으로 나뉘어 진다: 스위스 형제단(the Swiss Brethren), 후터파들(Hutterites), 멜키안들(Melchiorites), 그리고 메노니안들(Mennonites). 이들 그룹들의 공통된 특징은 신약성서의 사도적 교회를 지상에 세우기 위해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강조했고 성서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를 고집하였다는 점이다. “아나뱁티스트”란 말은 원래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세례를 베푸는 행위를 두고서 생겨난 말인데 이 말은 이 그룹을 비꼬는 말(reproach)이다. 그러나 성인 세례는 이들 그룹의 신학적인 입장들을 중에서 단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실제 관심은 세례가 아니라 세상에서 사도적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느냐에 있었다. 베인톤(R. Bainton)은 아나뱁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볼때 “유아 세례는 전혀 세례가 아니기 때문에” 다시 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 사람들을 아나뱁티스트 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을 헐뜯는 말이다. Roland Bainton,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The Beacon Press: Boston, 1952), 99.
일반적으로 아나뱁티스트들은 세상 권력에 관해서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면서 이 세상 질서들로부터 교회 공동체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였다. 정부 조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면서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의 엄격한 종교적인 훈련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진실한 기독교 공동체는 이 세상의 직무들이나 기관들(institutions)로부터의 분리(withdrawing)를 통해서만이 보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들의 경직된 태도 때문에 기존의 권력자들과 심각한 충돌을 빚었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종종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세상 권력에 대한 아나뱁티스트들의 전형적인 태도는 슐라이팀 고백문(the Schleitheim Confession, 1527)에 잘 드러나 있다. 슐라이팀 고백문은 1527년 2월 24일, 스위스 형제단 총회때 채택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초기 스위스 형제단의 교리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교리 문서였다.
이 문서의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조항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칼은 하나님께서 수여 하셨다. 그것은 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사형에 처하며 선한 자들을 보호한다. 율법에 의하면 칼은 악한 자들을 징벌하기 위해서 수여되었고 . . . 같은 칼이 지금 세상의 통치자들에 의해서 사용되도록 부여되었다. . . . 이러한 점들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정부 관리로써 일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정부 관리직은 육(the flesh)을 따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임무는 하늘에 있다; 그들의 시민권은 이 세상 안에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들의 갈등과 전쟁의 무기들은 육적(carnal)인 것이요 단지 육체적인 것에 대항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무기는 영적인 것이요, 악마의 무장(fortification)에 대항하는 것이다.” John Christian Wenger, The Doctrines of the Mennonites (Scottdale: Mennonite Publishing House, 1950), 72.
아나뱁티스트들은 이 세상 영역에 참여 거부와 무저항의 원리를 세상 권력에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들의 교리적인 우선은 거듭난 성인들(saints)의 엄격한 제자훈련에 있었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는 각기 분리되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서 다른 차원에서 활동한다고 확신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영적인 문제에 이 세상 권력자들이 간섭하는 것에 대해서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들은 성서의 윤리를 오직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적용하였다. 그러므로 시 관리가 된다거나 이 세상 통치자들을 위해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 공동체 안에서는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아나뱁티스들은 이 타락한 현 세상과 기존 교회와의 그들 자신들을 철저하게 분리함으로써 원시적인 사도적 공동체를 건설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였다. 이러한 아나뱁티스트들의 태도는 기존 권력자들의 눈에는 기존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였고 이 때문에 아나뱁티스트들은 극심한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그들 스스로를 성서 엄격주의자들(rigorists)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이 세상의 세속인 삶과의 엄격한 분리를 고수하였다. 그들에게 산상설교의 명령들은 신약성서에 있는 사도 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근거였다. 그들은 산상설교의 윤리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산상설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무 지워진”것으로 보았다.Ibid., 100.
모라비안 아나뱁티즘의 리더인 발타자르 허브마이어(Balthasar Hubmaier, 1485?-1528)는 복음의 계율들을 그대로 지키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비판하였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가능 한 것들을 명령하였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능력으로 불가능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Henry C. Vedder, Balthasar Hubmaier: The Leader of the Anabaptists (New York: The Knickerbocker Press, 1905), 197.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서해석에서나 실천강령에 있어서 그들 모두 결코 보조를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산상설교 해석에 관한 한 일관된 입장을 취하였다. 특별히 세상의 직무들(offices)에 대한 참여나 폭력사용에 대한 거부에서 그렇다.
스위스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창시자, 콘라드 그레벨(Conrad Grebel, 1498-1526)은 “그리스도의 고통을 능력으로 삼는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가난한 자들에 의해 수행된 아래로부터의 개혁”을 주창하였다. Heinold Fast, "Conrad Grebel: The Covenant on the Cross," in Hans-Jurgen Goertz, ed. Profiles of Radical Reformers: Biographical Sketches from Thomas Muntzer to Paracelsus (Scottdale: Herald Press, 1982), 124.
그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문자적으로 예수님의 명령들, 특별히 비폭력에 관한 예수님의 교훈 하에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칼을 사용하거나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한다. "Grebel to Muntzer Zurich, September 5, 1524" in Leland Harder, ed. The Sources of Swiss Anabaptism: the Grebel Letters and Related Documents (Scottdale: Herald Press, 1985), 290.
그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갈 때만이 우리의 삶의 질은 향상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레벨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기로 결심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평신도 공동체(a community of lay people)를 세우기를 희망하였다.
화란의 비폭력운동 그룹의 지도자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는 산상설교에서 교회를 개혁하고 초대교회 공동체를 복원하기 위한 어떤 원형(prototype)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메노는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장 43-48)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폭력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메노는 일관되게 절대사랑과 비폭력을 주장하였다. 그는 말한다: “베드로는 그의 칼을 칼집에 도로 넣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원수들을 사랑하라고 명령 받는다. . . .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보복이나, 복수, 가혹행위, 강도행위 등을 성서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지를 나에게 말해주시오.” “Reply to False Accusation, 1552," in John Christian Wenger, ed. The Complete Writings Menno Simons (Scottdale: Herald Press, 1956), 555. 메노는 성서의 가르침들을 공동체의 가이드라인으로 사용하였다. 그는 말한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모든 성서는 우리의 교육이나 훈계,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쓰여졌다.“ Ibid., 159-160.
메노는 모든 폭력은 육적인(the flesh)것이며 악마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에게 폭력에 대한 거부는 교회훈련(discipline)의 본질적인 요소였다. 슐라이팀 고백문(the Schleitheim Confession)의 기초자 마이클 새틀러(Michael Sattler, 1490-1527)는 우리는 적이 침입해 온 순간에도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살인하지 말라”(마태복음 5장 21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Michael Sattler, “Trial 1527” in George H. Williams and Angel M. Mergal, eds. Spiritual and Anabaptist Writers: Documents Illustrative of the Radical Reformation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57), 141.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아나뱁티스트들의 폭력사용에 대한 거부는 세상의 직무들(offices)에 대한 참여를 거부하고 세상과 단절하는 결과를 낳았다. 독일 남부지역의 아나뱁티스트 운동의 지도자 필그램 마르펙(Pilgram Marpeck, 1495-1556)은 마태복음 6장 24절(어느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을 문자적으로 고수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세상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어느 누구도 하늘 왕국에 계신 그리스도와 지상의 영역에 있는 세상 지도자를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아나뱁티스트 들에게 세상일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님의 도덕명령을 거스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은 세상일에 맹세(swearing)하는 일이나 소유(possessions)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성서의 가르침에 순종할 것을 주장하였다.
거의 모든 아나뱁티스트 그룹들은 소유에 대해서 엄격한 태도를 견지하였는데 그들은 사도행전 2장 44-45절 말씀에 의거하여 모든 소유는 공동으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특별히 후터파들(the Hutterians)은 그들 그룹 내에서는 일체의 사유재산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모든 재산의 공동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후터파의 창시자 야콥 후터(Jacob Hutter, 1500?-1536)는 사유재산을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적으로 간주하였다.Lydia Muller, Glaubenszeugnisse Oberdeutscher Taufgesinner (Leipzig: M. Heinsius Nachfolger, 1938), 167f.
후터파 들에게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적인 필수요건 이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재산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참다운 멤버가 될 수 없었다. 로버트 프리드만(Robert Friedman)은 이러한 후터리안들의 생활 공동체를 “사회 종교사에서 참으로 독특한 현상”이었다고 설명하였다. Robert Friedmann, "The Hutterian Brethren and Community of Goods," in Guy F. Hershberger, The Recovery of the Anabaptist Vision (Scottdale: Herald Press, 1962), 83.
아나뱁티스트들은 성서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유일한 권위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산상설교에서 사랑의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그들의 비젼을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제도권 교회에 참여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공동체를 세웠으며 그 안에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패턴들을 복원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성서해석에 있어 아나뱁티스트들의 독특한 점은 성서의 가르침들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기독교의 초기 형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확신에 있었다.
2)토마스 뮨쳐(Thomas Muntzer, 1489-1525)
토마스 뮨쳐의 개혁 프로그램은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개혁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의 급진적인 혁명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도권 종교 개혁자들(the magisterial Reformers)과는 달랐다. 이 지상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그의 시도에서 뮨쳐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이고 영적이며 종교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삶의 차원들을 신자들의 혁명적인 공동체의 이상과 결합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권력자들과도 충돌하였다.
뮨쳐의 사회-정치적 급진주의는 그의 신학적 지향점으로부터 흘러 나왔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 계시를 강조했고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그의 혁명적인 비젼의 자료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판에 새겨져 있는 내적이며 살아 있는 말씀을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궁극적인 계시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쓰여진 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목소리이다. 참다운 신자는 성령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직접 말씀하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을 언제나 듣는다.
뮨쳐는 기독교 진리란 성서의 문자나 성례전, 교회 직제(ecclesiastical hierarchy)들에서가 아니고 주관적으로 경험된 신앙 안에서 발견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뮨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확고한 직접계시(direct revelation)를 강조하면서 그의 신학 시스템에서 축자주의(literalism)를 거부하였다. 1524년 7월에 뮨쳐는 다니엘서 2장을 본문으로 하는 “제후들에 대한 설교”(Sermon to the Princes)를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뮨쳐의 성서 주석 방법론을 볼 수 있다. 그는 성서의 문자적 해석을 거부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직접적이고 개인적인(personal) 계시를 강조 하였다. 뮨쳐는 또한 종말론적 대 격변기에 직면해서 사회의 급진적 혁명을 주장하였다. Michael G. Baylor, trans., and ed. Revelation and Revolution: Basic Writings of Thomas Muntzer (London and Toronto: Associated University Press, 1993), 32, 98-114. 이하 BWTM.
뮨쳐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성서의 문자에 제한됨이 없이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다. 사실 뮨쳐에게 영과 문자(the Spirit and the letter)는 서로 날카롭게 대립되어 있다. 그의 프라하 선언(Prague Manifesto, 1521)에서 뮨쳐는 성서의 문자를 사람의 마음에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목소리”와 대비시킨다. BWTM, 62.
그의 프라하 선언은 성서의 문자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직접계시를 통해서 나오는 성령의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 위한 혁명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뮨쳐는 신자들의 본질적인 변화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음성인 성령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성서는 신앙에 대한 증거이지 신앙 그 자체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뮨쳐에게 성서는 “계시의 과정으로써 역사적으로 제한된 표현”이었다. Carter Lindberg, The European Reformations (Oxford: Blackwell Publishers Ltd, 1996), 148.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는 기존의 세상 질서를 혁명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자원이었다. 뮨쳐는 성령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동일시하였다. 예수께서 산상설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심령이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왕국의 대리자들이다. “고통과 인내를 통해서 심령이 가난” 해지기를 열망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에 의해서 통치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BWTM, 61.
이러한 근거 위에서 그는 선택 받은 자들과 저주 받은 자들을 구분한다:“나는 살아 계신 하나님에 의해서 이것을 확언하고 맹세한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실제로 살아있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나 . . . 죽은 자이며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Peter Matheson, ed., and trans. The Collected Works of Thomas Muntzer (Edinburgh: T.&T. Clark, 1988), 368.
뮨쳐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임박한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의 종들로써 하나님 왕국 건설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기존의 사회 질서를 위한 규범과 가이드이다. 그는 행위가 없는 오직 신앙에 의한 의로움은 “거짓 신앙” 이며 “위선적인 신앙”이다라고 주장한다. BWTM, 64-77, 115.
그는 모든 삶의 성화를 주장하였다.
뮨쳐는 성서의 율법에 기초한 기독교화된 세상을 꿈꾸었다. 따라서 그에게 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한 표준은 성서의 율법이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는 모세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법을 설명하셨다. 그는 말하기를 예수는 율법들을 폐기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완성하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라고 한다. Ibid., 112.
“거짓 신앙에 관한 특별 교훈”(Special Exposure of False Faith, 1524)에서 뮨쳐는 자신들의 영예나 지상의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영원한 천국에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Ibid., 122.
뮨쳐는 “기독교 신앙의 참다운 본질은” 모든 세상 앞에 밝히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Ibid., 119, 163.
이런 점에서 그의 비젼은 혁명적인 율법주의(revolutionary legalism)였다. 뮨쳐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거듭남은 사회-정치적인 관계들의 재편성과 불가분리 연결되어 있다. 아나뱁티스트들과 대조적으로 뮨쳐는 세상과 단절이 아닌 성령 안에서 주어진 신앙과 하나님 말씀의 요구들에 의해서 이 세상을 변혁시키려고 하였다. 뮨쳐에게 삶의 성화(sanctification)는 개인의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영역까지를 포함하였다. 그의 관심은 신약성서에 나와있는 사도 교회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지상의 삶이 하늘로 변형될 수 있기 위한” 하나님 백성들을 위한 진정한 자유였다. Thomas Nipperdey, "Thomas Muntzer: Theologian and Revolutionary," in James M. Stayer and Werner O. Packull, trans., and eds. The Anabaptists and Thomas Muntzer (Dubuque: Kendall/Hunt Publishing Company, 1980), 116.
세상의 혁명적인 변혁을 주장하는 뮨쳐는 이 세상 권력의 역할에 대해서 다소 권위적으로 해석하였다. 그의 정치철학은 1524년의 “영주들에 대한 설교”(Sermon to Princes)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그는 복음을 방해하고 진리를 반대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항해서 칼을 사용하는 일은 이 세상 권력자들의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통치자들에게 칼은 필요하며 그것은 “신 없는 자들(the godless)을 징벌하는 수단”이다. Ibid., 113.
그러나 이 세상 권력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때에 칼은 그들의 손으로부터 빼앗아서 성스러운 혁명가들, 특별히 뮨쳐가 이 세상 권력자들 보다 분명하게 진리를 간파하고 있다고 믿었던 농민들에게 주어질 수 있다. Ibid., 113.
이런 그의 주장 때문에 그 당시 권력자들은 뮨쳐에게 등을 돌렸고 그의 요구나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뮨쳐는 기존의 통치자들을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정치적인 혁명가가 되었다. 그의 종말론적이며 혁명적인 비젼은 농민 전쟁과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그는 농민 전쟁을 기존의 사회가 전복되고 선택된 자들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새로운 사회가 건설 될 수 있는 묵시적인 사건으로 보았다. 그는 이 세상을 경건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려는 것을 막는“육적인 욕망들”(carnal desires)의 그릇(the container)으로 보았다: “누구든지 이 세상이 실제로 기독교 신앙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 Ibid., 105.
따라서 뮨쳐는 모든 이 세상의 욕망들은 제거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들이 성령 안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지금 많은 선택된 경건한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있으며 하나의 중대하고도, 불굴의, 미래의 혁명이 지금 필요하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Ibid., 108-9.
이 세상 권력에 대한 뮨쳐의 신랄한 비판은 이러한 컨텍스트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세상 통치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칼을 그들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독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뮨쳐는 이 세상 정부를 신이 없는 세상과 동일시하였고 이런 점에서 세상 정부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으로 보았던 루터와 달랐다.
마르틴 루터의 인간이해3-그의 두 왕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김주한 박사(한신대학교 강사, 교회사학)
3. 루터의 두 왕국론: 개인 경건과 공동선의 통합
루터의 두 왕국론은 세상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에 대한 두 양식을 말하고 있으며 그 이론은 또한 그의 사회 정치 신학의 기초이다. 이 점에 관해서 에벨링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터의 사상은 언제나 반제(anthithesis), 즉 서로 상이하게 반대되지만 서로 연결된 극단들(polarities)사이의 긴장을 담고 있다: 신학과 철학, 문자와 영, 율법과 복음, 율법의 이중 사용, 인간과 행위, 신앙과 사랑, 그리스도의 왕국과 세상 왕국,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간과 세상에서의 인간, 자유와 노예, 감추어진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 Gerhard Ebeling, tr., R. A. Wilson,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Thought (St. James's place, London: Collins, 1970), 25.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중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늘 왕국에서는 사적인 개인인 동시에 지상 왕국에서는 공적인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은 두 영역에서 동시에 살 수 있으며 각 영역에서 현저하게 모순된 태도들과 행동들을 화해할 수 있는가? 루터의 두 왕국론은 이렇게 분명히 모순된 두 윤리적 태도들에 대한 신학적인 해결을 시도한다.
1)두 왕국론과 두 정부론; 루터는 두 왕국(the Zwei-Reiche)이란 말과 두 정부(Zwei-Regimente)란 말을 서로 구분 없이 사용한다. 루터 자신은 두 왕국론이라는 말을 사용한 적은 없다. 물론 그는 여러 저술들에서 뚜렷하게 대비되는 단어나 개념들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과 대립해서 ‘악마’, ‘그리스도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 ‘영적인 정부’와 ‘세상 정부’ 등 이렇게 대조된 개념들을 쌍으로 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그가 근본적으로 이원론적인 사고를 한 것은 아니다. 즉 서로 다른 두 실체가 존재하며 그로부터 두 왕국이나 두 질서가 구분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말의 두 왕국이란 말은 이 용어에서 루터가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내는데 어려움이 있는데 하나님의 두 통치 방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훨씬 의미가 빨리 와 닿을 것이다. 두 왕국론이라는 말은 독일의 루터란 신학자들이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면서 1924년에 Herald Deim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후로 두 왕국론은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되었다. Herald Diem, Luthers Lehre von zwei Reichen (Munchen: Chr. Kaiser Verlag, 1938).
루터는 그의 두 왕국론을 추상적이거나 조직적인 방식에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적인 상황에서 신학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면서 전개하였다. 그의 두 왕국론은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 열광주의자들의 신학에 대한 비판과 반성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처음에 루터는 두 왕국을 서로 대립된 위치에 놓았다. 여러 저술들에서 루터는 하나님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을 뚜렷하게 대조 시킨다. 이들 두 왕국들은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는 두 왕국이 존재하며 그들은 서로 뚜렷하게 반대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 중 한 왕국에서는 사탄이 통치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에 의해서 그는 ‘이 세상의 통치자’로 바울에 의해서는 ‘이 세상의 신’으로 불리 워 지고 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그로부터 떠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그의 포로가 되게 한다.... 또 다른 왕국에서는 그리스도가 통치하며 그의 왕국은 끊임없이 사탄의 왕국에 대항하며 전쟁을 선포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 이 왕국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그로 인해서 우리는 어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현재의 악한 시대로부터 자유 함을 얻는다.... 세상 왕국은 죄와 죽음, 악마와 신성모독, 절망과 영원한 죽음의 왕국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왕국은 은총과 죄의 용서와 위로, 구원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왕국이다. 영원히 영광을 받으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는 그 왕국으로 인도함을 받았다(골로새서 1: 13). 아멘. LW 33: 287; LW 26: 42.
이렇게 두 왕국을 서로 대립해서 설명하게 된 이유는 어거스틴의 영향 때문이었다. 어거스틴은 인류는 신앙적인 눈으로 볼 때 본 고향이 이 세상을 넘어선 하나님 왕국인 신자들과 이 세상에 살면서 “부도덕한 악마들”에 봉사하는 비신자들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한다. Augustine, City of God, bk. 19, ch. 21 (London: Penguin Books, 1972), 883.
어거스틴에게 하나님의 도시(the civitas Dei)와 악마의 도시(the civitas diaboli)는 세상 끝날 까지 끊임없이 대립한다. 처음에 루터는 어거스틴의 이론을 따라서 이 세상은 하나님과 악마, 아벨과 가인, 선과 악,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보았다. LW 45: 86-8.
그러나 나중에 루터는 하나님의 두 정부론을 설명하면서 그의 초기의 입장을 수정하였다. 두 왕국론에 관한 어거스틴과 루터와의 비교연구에 관하여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Ernst Kinder, “Gottesreich and Weltreich bei Augustin und Luther," in Friedrich Hubner et al., eds., Gedenkschrift fur Werner Elert (Berlin: Lutherisches Verlagshaus, 1955), 24-42; Bornkamm, Luther's Doctrine of the Two Kingdoms, 19-28.
하나님께서는 왼손에 세상 정부를 두시고서 죄 된 인간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시민법과 칼을 고용하신다. 오른손에는 영적 정부를 두시고서 복음과 영을 통해서 사람들을 다스린다. LW 45: 91-2.
구원 받은 자들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하나님의 오른 손 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루터는 그리스도인들도 또한 죄인들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정부에 의해서 징벌의 위협이나 올바른 지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LW 45: 91-2.
나중에 루터는 이 두 정부를 날카롭게 반대되는 것으로 더 이상 간주하지 않았다. 두 정부는 오히려 서로 보충적이고 보완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요하네스 헥켈은 하나님 왕국과 사탄에 의해서 지배되는 이 세상의 죄된 왕국과의 뚜렷한 반대에 대한 루터의 초기 신학적인 강조의 관점에서 루터의 두 왕국론을 이해하였다. 헥켈에 따르면 두 왕국은 그리스도와 사탄과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 존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두 왕국에 동시에 지배를 받을 수 없다. 그들은 단지 영적인 왕국에 속할 뿐이다. 헥켈은 이것을 루터의 최종 입장이라고 이해하였다. Johannes Heckel, Lex Charitatis: Eine juristische Untersuchung uber das Recht in der Theologie Martin Luthers (Koln: Bohlau-Verlag, 1973), 32-50. 알트하우스는 헥켈은 루터의 두 왕국론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하였다고 하면서 그를 반박하였다. Althaus, “Die beiden Regimente bei Luther. Bemerkungen zu Johannes Heckels ‘Lex Charitatis,'" Theologische Literaturzeitung 81 (1956), no. 3, cols. 129-36. 참고. Althaus, “Luthers Lehre von den beiden Reichen im Feuer der Kritik," Luther-Jahrbuch 24(1957); 40-68.
두 정부는 세상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두 가지 방식들이다. 루터에 따르면 하나님은 두 정부, 즉 영적 정부와 세상 정부를 세우셨다. LW 45: 91; LW 21: 109.
세상 정부는 외적인 현세적, 물질적, 지상의 삶을 보존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LW 45: 86-7.
이 정부에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다스리시기 위해서 시민법과 칼을 제정하셨다. 정부 권력자들, 법, 칼과 같은 것 등은 사악한 자들을 다스리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들이다. 그러므로 루터는 세상 권력은 하나님께서 수여(ordain)하신 것으로 간주하였다.
세상 정부는 창조와 의지와 이성의 영역인데 그 정부는 인간의 자연적인 삶이나 육체적인 삶, 즉 결혼, 가족, 국가, 재산, 사업 등을 모두 포함하는 모든 제도들과 기관들, 활동들이 총 망라 되어 있다. LW 21: 29.
그 정부에는 또한 인간의 원초적인 죄 때문에 약함과 부패 그리고 세상 적인 갈등들이 노정 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 정부는 산상설교의 계명들에 의해 지배 받지 않은 다양한 직무(offices)들을 가지고 있다. 시 지배자들, 법, 칼 과 같은 것들은 사악한 자들을 제압하기 위한 하나님의 모든 도구들이다.
세상 정부는 죄와 악 때문에 존재한다. 루터는 “만일 모든 세상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즉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세상 정부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LW 45: 89.
그러나 세상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적기 때문에 이 세상 정부가 없다면 사악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과 이 세상의 평화를 위협할 것이다. 사악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무질서와 파괴로 몰아넣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 세상이 악마적인(devilish) 혼돈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세상 정부를 세우셨다. 루터는 세상 정부가 없다면 “어느 누구도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거나(support) 스스로 먹거나, 하나님께 봉사 할 수 가 없다.” LW 45: 91. 참고 LW 21: 109.
왜냐하면 세상 정부가 주로 죄에서 태어나고 강제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은 주로 악에 대항해서 시민 사회를 변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 정부의 이러한 변호적이면서도 건전한 목적은 공동 선의촉진과 사회 평화 와 질서 보존으로써 적극적으로 이해 될 수 있다. 이러한 목적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도구들은 시민 법, 칼, 폭력, 힘 그리고 권력(authority)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루터는 세상 직무들(offices)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으로 간주한다. 루터는 성서에 근거해서 이러한 주장을 편다. 루터가 종종 인용하는 성서 구절들은 로마서 13: 1-5절과 베드로전서 2: 13-4이다. LW 45: 91; LW 30: 72이하.
루터는 종교적 직무와 세속적인 직무 사이의 어떤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목적을 가지나 하나님 앞에서는 동등하다. 따라서 루터는 중세 사회에서의 교회의 특별한 위치를 평가절하하고 시민 정부를 포함한 모든 세상의 직무들을 높이 평가(enhance)하였다. 루터는 “세상 권력은 사악한 자들을 징벌하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그것은 제한 없이 그리고 사람들에 관계없이, 즉 그것이 교황이나 주교들, 사제들, 수사나 수녀들 혹은 그 밖의 어느 누구에 영향을 주던지 간에 기독교 왕국의 모든 영역에서 그 직무를 자유롭게 수행하도록 남겨두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LW 44: 130.
그러나 루터는 세상 정부의 권력의 수행을 이 지상의 영역들에 즉 재산, 법, 그리고 다른 물리적인 것들에 분명하게 제한하였다. 이점은 개혁자들에 대항해서 교황과 연합한 영주들(세상 통치자들)에 대해서 루터가 비판한 중요한 요소였다. 루터는 세상 권력자들과의 갈등은 재산이나 세상 권력이 아닌 신앙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러므로 갈등은 세상 권력자들이 사법권을 가졌다는 점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유사하게 루터는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충고한다: 이단은 엄격하게 영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힘에 의해서 억제될 수 없다. 우리는 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단은 칼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하며 거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 말씀은 싸움을 해야한다.” LW 45: 114.
교황은 폭력이나 강압을 행사할 권리를 지니고 있지 않다. 루터는 교황의 월권(extension)과 교회의 교직 직무와 세상 권력과의 혼돈을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그들은 잘못된 발에 신발을 말끔하게 신었다: 세상 군주들이 영적인 방식으로 통치하고 영적인 군주들은 세상 적인 방식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그들은(교황들-필자 첨가) 영혼들을 칼로 몸들을 문자로 다스린다.” LW 45: 116.
세상 정부에 대한 이러한 제한을 루터는 사도행전 5장 29절에 근거해서 말한다:“우리는 사람들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해야 한다.” LW 45: 111.
이와 관련해서 칼 홀(Karl Holl)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첫째는 “국가의 이론을 깊게 하고” 둘째는“그 권력의 분명한 제한”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Karl Holl, “Luther's Contribution to the Progress of Western Culture," in Sessions, Kyle C, ed., Reformation and Authority (Lexington: Raytheon Education Company, 1968), 77.
루터는 세상 권력은 그 자체를 오직 인간 삶과 사회의 외적인 문제들에만 관심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권력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졌지만 신앙의 문제들에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LW 45: 105.
루터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인간의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일에 어떠한 폭력을 사용하거나 세속적인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이 세상 정부의 통치자들은 그들의 권력을 절대로 남용해서는 안되고 “오직 잘못이 있는 사람들이 법적으로 비난받은 후에”만 어느 정도의 강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LW 45: 114.
루터는 세상 지도자들이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신중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 권력자들은 그들의 지위와 권력을 언제든지 남용할 수 있도록 유혹에 너무 쉽게 노출 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세상 정부와는 대조적으로 영적 정부가 존재한다. 영적인 정부는 설교와 신앙과 구원과 영원한 삶의 영역인데 그 안에서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풍부한 사랑에 의해서 내적으로 모든 것을 떠날 준비를 하는 그런 곳이다. 영적 정부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설립되었고 그 정부는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어진다. LW 46: 99.
영적 정부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을 복음과 성령으로 다스리신다. 영적 정부는 인간의 양심을 다스리며(instruct)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고, 이 정부의 시민들은 진실한 신앙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선택 받은 자들이다. 이 정부의 목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하게 만들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는 오직 말씀뿐이다: “어떠한 세상 법이나 칼”도 영적인 정부에서는 사용될 수 없다. LW 45: 89, 91, 93.
영적 정부는 전적으로 강제적이지 아니하며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기꺼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인다. 영적인 정부는 인간과 세상을 위해서 법령들을 제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의 권위는 세상 적인 의미에서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 정부와 영적 정부는 순위에 있어서 동등하지 않으며 그러나 서로 서로 밀접하게 교섭(interact)하고 있다. LW 13: 193-4.
이 두 정부들이 다르다 할 지라도 그들은 서로 상보적(complementary)이다: 영적 정부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지상의 평화를 필요로 하며 지상의 정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이 필요하다. 루터에게 두 정부는 하나님의 통치(governance)안에서는 나란히 존재한다. “어느 정부도 상대방이 없이는 이 세상에서 충분하지 않다.” LW 45: 92.
하나님께서는 비록 다른 방식들이지만 선과 사랑과 자비를 가지고서 두 정부안에서 적극적으로 일하신다. 두 정부는 사랑 안에서 이웃들에게 봉사하도록 되어있다. 루터는 사제들과 주교들의 정부를 “파워나 권위의 문제가 아닌 봉사의 직무로써” 정의를 내린다. LW 45: 117.
마찬가지로 세상 정부 통치자들은 사랑 안에서 그들의 파워를 행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루터의 두 왕국론의 기본적인 원리는 사랑 안에서 역사 하는 신앙이다(faith active in love). 하나님께서는 두 정부를 개인적인 영역에서나 사회적인 영역에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세우셨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개인의 경건과 사회적 책임을 동시에 통합(integrate)한다. 따라서 두 왕국은 확고하게 성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웃 사랑의 모델이다. 루터의 두 왕국론의 성서적 기초에 대해서는 LW 45: 87 참조하라.
루터에게 이웃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도덕성의 중심에 서 있다. 위에서 주목한 바와 같이 두 정부는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졌다. 하나님은 두 정부의 창조자이시고 주인이시며 지배자이시고 보호자이시다. 그러나 루터는 두 정부의 역할에 대하여서는 철저한 구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율법과 복음을 혼돈 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간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영적인 정부는 말씀으로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참다운 의로 인도하기 위해서 다스린다; 세상 정부는 지상의 평화와 정의를 유지하기 위해서 칼로 다스린다. 영적인 정부는 신앙과 은총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영역이고 세상 정부는 보복과 징벌을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영적인 정부와 세상 정부는 서로 서로 행동의 반대의 극단에 서 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교황권과 혁명적인 열광주의자들은 두 정부를 혼돈하고 있다고 맹 비난을 퍼부었다. 루터는 말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들이며 복음에 따른다면 어떤 율법이나 권세도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을 이유로 해서 모든 세속 권세와 법률을 폐지하고 복음으로 세상을 다스리고자 한다면 그가 의도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결국 그가 의도하는 것은 야생동물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나 줄을 풀어주어 그것들로 모든 사람들을 물고 뜯게 하는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도 해를 받지 않고, 얌전하게 길들여진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 하는 허황된 의도가 아닌가? 이화같이 사악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미명하에 복음의 자유를 남용하며, 악행을 저지르며, 그러면서도 이미 어떤 자들이 호언 장담하며 헛소리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들이 법과 칼에 복종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한다. LW 45: 91.
루터가 보기에 로마 가톨릭 교황권과 뮨쳐는 교회 권한을 통해 세상 권력을 취함으로써 모든 세상을 다스리려고 확장하려고 시도하였다. 루터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세상 권력에 대한 커다란 잘못된 이해는 두 왕국론에 대한 혼돈 때문이었다. 교황은 이 세상의 권력은 본질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교회의 파워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믿었다. “악마(교황-필자첨가)는 언제나 두 왕국을 서로서로 하나로 요리하고 조합하려고 한다. . . . 거짓 교황들은 . . . 언제나 세상 질서를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그 악마는 양편에서 바쁘고 꽤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르치실 것이다!” Martin Luther, D. Martin Luthers Werke Vol. 51 (Weimar: Kritische Gesamtausgabe, 1883- ), 239. 24, Gordon Rupp, The Righteousness of God: Luther Studies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53), 292 에서 재인용함.
루터는 또한 그의 두 왕국론 신학에 기초해서 뮨쳐를 비판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나 아나뱁티스트 들처럼 뮨쳐 또한 두 왕국사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루터는 주장하였다: 분열주의자들의 영들(spirits)은 “신적인 영역과 세속영역 사이의 어떠한 차이도 인식하지 못하며 각 영역에서의 독특한 교리와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는 이 설교들에서 분명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이점을 강조했고 보여주었다는 점을 자랑할 수 있다.” LW21: 5.
마태복음 5장 9절에 대한 주석에서 루터는 이 세상은 이 세상 법에 의해서 통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여기에서 정부나 그것의 공적인(official) 권위로부터 어떠한 것을 취할 의도를 가지고 계시지 않는다”. LW21: 39-40.
루터는 뮨쳐나 농민들과 같은 광신주의자들이나 종파주의자들을 “복음 안에서 그들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로 간주하였다. LW 21: 107.
루터에 의하면 뮨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심판을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혼돈하였다고 한다. 루터는 말한다: “하나님의 왕국은 분노와 가혹(severity)한 것이 아닌 은총과 자비의 왕국이다. 하지만 세상의 왕국은 분노와 가혹함의 왕국이다. . . . 지금 이 두 왕국을 혼돈 하는 사람은-거짓 열광주의자들이 하는 것처럼- 분노를 하나님 왕국으로 자비를 세상 왕국으로 집어넣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를 하늘에 하나님을 지옥으로 넣는 것과 같다.” LW 46: 70-1.
루터는 결코 세상 개혁 프로그램들을 성서(복음)로부터 끄집어 내지 않았다. 루터는 복음의 계명들에 의해서 세상이 통치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해서 세워진 세상 권력은 혼란을 막기 위해서 법과 정의를 통해서 이 세상에서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루터에 따르면 세상 정부가 질서를 위해서 필요하지만 복음의 원리에 의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 이다라고 말한다.
루터는 뮨쳐의 신학은 율법과 복음의 역할들을 혼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 결과 뮨쳐는 복음을 법률적인 코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루터가 보기에 뮨쳐의 결정적인 오류는 말씀과 영을 혼동한 것이었다. 성령의 내적인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질서를 재편성하려는 뮨쳐에 대항해서 루터는 성령은 절대적으로 외부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확실히 루터에게 말씀은 성령보다 우선성(priority)을 가지고 있었다.
루터는 성서의 말씀과는 유리된 채로 성령에 의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직접계시에 대한 뮨쳐의 호소는 사회질서 재편을 위한 자료와 규범으로써 성서를 이용하는 성서에 대한 그의 신념을 스스로 가치폄하 하고 있다고 말한다. 확실히 뮨쳐는 성화에 대한 그 자신의 신학을 가지고서 루터의 칭의론 신학에 도전하였다. 이것은 루터가 그의 신학에서 성화론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루터가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적절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확실히 루터에게 칭의론은 성화론과 같은 다른 어떤 교리보다도 훨씬 더 우선적이었다. 루터가 보기에 뮨쳐의 입장은 선행에 기초한 중세교회의 도덕관의 다른 측면에 불과 하였다. 뮨쳐에게 단지 선행들은 주로 윤리보다는 개인의 영적 경험의 영역에 위치해 있었다. 뮨쳐는 하나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의 성취(achievement)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루터의 판단이었다.
루터는 또한 열광주의자들을 “새로운 심판관들”(the new jurists), 또는 “분열주의적 영성가들”(the schismatic spirits)이라고 불렀다. LW 21: 5.
루터는 이들이 세상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비난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이들 역시 두 왕국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혼돈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아나뱁티스트들의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 적인 일들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과도 단절시킨다고 비난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아나뱁티스트들은 로마 가톨릭 교회처럼 그러나 보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왕국은 이 세상 왕국과 기본적으로 모순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두 왕국을 혼돈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이 세상을 기독교로부터 배제 시켰다. 루터는 아나뱁티스트들이 이 세상을 회피한다고 비판하였다: “그들은 순전한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 사회로부터 벗어나서 모퉁이(corner)나, 수도원, 또는 사막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이 세상에 관심 하거나 또 이 세상 문제들과 씨름하지도 않으며 단지 하늘의 사고들만 가지고서 스스로 즐기고 있다.” LW21: 32.
루터는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세우신(ordained)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그는 인간에게 가장 성스러운 소명(vocation)은 지상의 재산과 가족을 거느리며 결혼하는 일에 참여하는 일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나뱁티스트들은 모든 그와 같은 세속적인 일들은 참다운 기독교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포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점에서 루터와 아나뱁티스트 들과의 차이점은 전적으로 화해할 수 없게 되었다. 루터는 경건에 대한 그들의 배타적인 태도를 거부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순수성은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가 아니라 모든 것을 순전케(purify)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발견된다.
지금까지의 토론으로부터 다음 몇 가지 진술들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첫째로 루터의 두 왕국 신학은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모든 영역에 대한 주이시고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다른 두 방식으로 세상 안에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둘째로 루터의 두 왕국 신학은 교회 와 국가와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두 영역에 있는 권력자들간의 상호 협력을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 그들의 적절한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셋째로 루터는 보다 정교하고 신학적인 뉘앙스(unanced)를 풍기는-국가의 권력을 제한시키는 동시에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행동하도록 새로운 자유를 주었던 신학- 국가에 대한 개념을 제공함으로써 시민 정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이해를 발전 시켰다. 루터는 “세상 권력: 어느 정도까지 복종되어야 하나”(1523)라는 논문을 평가하면서 말하기를 “사실 나는 여기서 세상 적인 무력이나 정부기관이, 사도시대 이후로는 내가 그랬던 것만큼 그렇게 분명하게 묘사되지도 않았으며, 또한 그렇게 많은 찬양을 받지도 못해 왔음을 공언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적수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LW 46: 101.
2)두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행동 양식: 이웃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과 공적인 사랑
루터의 두 왕국론은 두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의 두 형태를 설정한다: 이웃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과 공적인 사랑. 루터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개별적인 존재들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은 전적으로 이웃을 위한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 영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선포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복음을 만난다. 개인적인 신분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고 이웃으로부터 비롯되는 불의와 남용에도 저항이나 보복 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LW 21: 23, 44, 83, 109.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사랑은 완전히 자기 희생적이고 사심이 없는 사랑(disinterested love)이다. 그러나 사적인 영역에서 자기 희생에 관한 루터의 강조는 불의한 사회 제도를 묵인하라는 말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루터는 개인 영역 못지 않게 공적인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성을 강조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각기 다른 역할과 의무들을 가지면서 이들 두 정부에서 동시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이중의 삶을 살 수 있는가? 영적인 정부에서 그리스도인은 “개인적인 존재”이다. 반대로 이 세상 정부에서 각 사람은 “공인”이며 “다른 사람의 목적을 위한 사람”이다. LW 21: 23, 24, 83, 109.
영적 정부에서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자유를 가지며 세상 정부에서 그는 이 세상의 시민으로써 의무를 이행하도록 되어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을 두 다른 관점에서 본다: 그리스도에 속한 인간과 세상에 사는 인간. 그리스도 속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종속 되어있다. 말씀은 오직 따라야 할 절대적인 기준이다. 반대로 세상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법들을 준수하고 세상의 다양한 소명들과 직무들을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진다. 루터는 말한다: “동시에 당신은 내적으로는 하나님 왕국을 외적으로는 세상 왕국을 만족시킨다. 당신은 악과 불의에 고통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악과 불의를 벌한다; 당신은 악에게 저항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그것에 저항한다. 한 경우에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들을 고려한다; 다른 경우에 당신은 당신의 이웃과 그 이웃의 것들을 고려한다.” LW 45: 96.
루터의 구분은 거의 반대되는 윤리의 화해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은 두 다른 윤리를 고용하고 있지만 이웃사랑의 공통의 근거에서 개인 윤리와 공적인 윤리의 통합을 시도한다. 루터는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제 칼을 제정했던 구절들과 화해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LW 45: 103.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칼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편에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악한 자들을 제압하고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칼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하여야 한다.” LW 45: 103.
루터는 개인으로서의 그리스도인의 행동과 공인으로서의 세상에서의 그들 행동 사이를 구분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악에도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직무의 한계 내에서 세상 인간은 모든 악에 반대해야 한다.” LW 21: 113.
이웃을 위한 사랑의 공동의 근거에서 그리스도인의 룰과 세상 룰은 만나고 화해된다.
루터는 세상 권력은 그 자체의 유익이 아니라 공동의 선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제정되었다고 말한다. 칼의 사용, 사악한 자들의 징벌, 법 제정 등등은 비 이기적인 사랑을 가져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세상 권력들은 필수적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도구들이 될 것이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인들을 그들 이웃의 이익을 위한 세상에 적극적인 참여자로 부른다. 위에 본 바와 같이 루터는 영적인 정부와 세상 정부 그리고 개인과 공인의 기능과 역할들은 구분되어야 함을 분명하게 하였다. LW 21: 23, 109, 113; LW 45: 91.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중의 도덕성으로 부름 받는다: 그들 자신의 편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편에서의 행동. 두 영역들에서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형태들과 기능들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근거는 언제나 이웃의 봉사에서 그 자체를 명백하게 하는 사랑이다. 이런 점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의 행동에서 두 정부안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도덕적인 갈등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데이비드 스타이메츠는 공적인 직무는 “이웃 사랑을 위한 합법적인 출구”를 제공한다라고 말하면서 루터의 칭의론은 결코 사회 정의를 위한 그의 노력을 단절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David C. Steinmetz, Luther in Contex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86), 123, 125.
위에서 본바와 같이 루터에 따르면 개인의 영역과 공적인 임무에서의 그와 같은 완전히 다른 태도와 활동들은 서로 서로 양립한다. 한 개인 과 그의 공적인 직임은 이웃사랑의 행동 안에서 진정으로 연합된다. 한 개인으로써의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임무가 이웃에 대한 직접인 봉사라면, 공적인 임무는 간접적인 봉사이다. 그러나 이 두 경우에 행동의 의미는 이웃을 돕거나 봉사하는데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제기된다. 이 세상 제도들이나 직임 들은 이기심이나 법, 칼등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데 어떻게 비 이기적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는가? 루터는 어떤 직임을 담당하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악하다고 해도 그 직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고 선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직임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LW 21: 277.
따라서 여기서 이슈는 어떤 관원(official)이 경건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아니라 “그 직무의 경향과 목적이 . .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의 교리를 찬양하고 확언(confirm)하느냐의 여부이며 또한 그 직무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명령하시고 제정하신 것과 조화를 이루느냐의 여부”이다. LW 21: 278.
따라서 루터는 줄기차게 인간(the person)과 직무(office)는 서로 서로 혼돈 되거나 분리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루터는 한 개인으로써 그리스도인과 공인으로써의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활동들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한 왕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써 다스리지 말아야 한다. 그가 통치하는 한 그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왕이다. 그 사람은 실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그의 임무나 직위는 그의 신앙과는 별개이다.” LW 21: 170.
로마 가톨릭 교회와 열광주의자들의 커다란 잘못은 개인들과 직무들의 이러한 관계를 적절하게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루터가 이 세상의 직업들과 기관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들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수단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으로부터 금욕적으로 분리하거나 또 세상 제도들을 재편성하거나 지배하려 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제도들과 그 역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것들을 사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 위에서 루터의 두 왕국론 신학은 사회 복지에 관한 루터의 실제적이면서도 실행 가능한 기초들을 세우고 있다.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공적인 신앙에 대한 그의 개념이다. 루터에게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공적인 차원에서 주장되고 양육되어져야 한다. 공적인 신앙에 대한 루터의 개념은 교회 와 정부 관료들과의 협력으로 특징지어진 십 육 세기의 정교한 사회 복지 제도의 발전을 가져오게 하였다. 루터는 정부 관료들의 기능을 부모님의 역할에 비유하였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아버지들이 가지고있는 능력에서 행동하며 국민들을 향해서는 아버지다운 마음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WA 30/1, 152-3.
세상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뜻에 부응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영감된(inspired) 정의(justice)의 원리들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
루터는 가난한 자들의 편에서 일하도록 하는 정부의 역할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신학적 근거를 발전시켰다. 루터는 시 관리들은 가난을 폐지해야 하며 대신에 사랑과 정의의 근거 위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 복지를 촉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말한다:“왕은 가난한 사람들, 고아들, 그리고 과부들을 도와야 한다. . . . 왜냐하면 이러한 모든 미덕은 의의 모든 일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LW 13: 54.
루터는 구걸행위(begging)는 중세시대의 선행 의인화(works-righteousness)에 의해서 유발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자신을 철저하게 청빈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라는 사고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그러한 구걸행위는 가난한 사람들을 객관화 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루터는 구걸행위를 금지하는 대신에 도시와 마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보다 열정적이고도 효과적으로 돕기 위해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을 발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터는 정부는 사회 복지 법을 제정해서 정책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중세의 교회 중심의 자선 행위에서 정부차원에서의 합법적인 제도화를 촉구한 것이다.참고 LW 44: 189-190; Lindberg, Beyond Charity (Minneapolis: Augsburg Fortress, 1993),105-6.]
루터에 따르면 이웃에 대한 공적인 사랑은 정부 관리들의 의무이며 그들은 사회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들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새로운 접근은 가난과 자선(charity)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 시켰다. 중세 후기 시대에 자선은 자선가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자발적인 가난은 영적인 완전으로 가는 지름길로 보였다. 이러한 자발적인 가난은 중세 후기 교회에서 수사들, 신부들, 탁발수도승들 사이에서 현저하였다. 루터는 종교적인 탁발 수도승들을 “악한 불량배들" 이라고 비판하였다. LW 44: 189.
그의 두 왕국론 신학의 근거 위에서 루터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 복지 제도를 건설하고 사회 질서를 재편하고자 하였다. 루터는 가난은 왜곡된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루터에게 자선은 결코 영예를 얻거나 혹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루터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의 특징은 교회와 정부간의 밀접한 상호 관계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협력관계를 위한 실제적인 원리는 세상에서 교회와 세상 통치자들의 의무와 역할, 그 기능들을 새롭게 해석한 그의 두 왕국론에서 기인하였다. 루터의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개인적이고 교회 중심적인 자선 행동의 차원에서 공적이고, 사회적이며, 공동체적인 사회복지 제도로의 변경을 가져왔으며 이웃사랑에 대한 기독교 사랑의 확고한 제도화를 가져왔다.
마르틴 루터의 인간이해4-그의 두 왕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실존방식/김주한 박사(한신대학교 강사, 교회사학)
IV. 맺음말
본 논문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는 관계 적인 존재로서 규정을 하면서 루터의 두 왕국론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루터는 서방 역사에서 바울, 어거스틴 이후로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가장 심각하게 질문하고 거기에 도전했던 사람이었다. 루터는 인간을 결코 무역사적 무풍지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개체적인 존재로서 객체화하거나 대상화시키지 않고 사회-역사적인 지평에서 갈등과 대립과 긴장이 노정 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속인간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그들 삶의 현실적인 실존방식을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함으로써 글을 맺는다. 첫째로 루터의 두 왕국론은 복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메시지이며 그것은 세상을 통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웃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개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모두에서 생생하게 실천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루터의 두 왕국론은 교회와 국가와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두 영역에 있는 권력자들간의 상호 협력을 위한 하나의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그리고 각자의 영역에 그들의 적절한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로 루터는 두 왕국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윤리적 행동의 이중 본질(the double nature)을 설정하고 있다: 1)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거나 내적인 의지에 의해서 촉발된 개인의 경건과 2)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는 데서 출발한 공동의 선. 궁극적으로 개인 경건과 공동의 선과의 역동적인 관계는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 안에서 형성된다.
셋째로 루터의 두 왕국론은 두개의 분리되고 관련 없는 실체들(entities)의 날카로운 구분으로 간주되거나 오용되지 말아야 한다. 루터의 두 왕국 시스템은 그 주요한 목적인 이웃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루터 시스템의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그가 세상을 기독교 신앙의 영역으로부터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두 왕국론은 이웃 사랑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