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창세기를 썼다면,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는 사람들, 히브리인들이 창세기의 독자입니다. 에스라가 모세오경을 편집했다면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 잡혀 온 전쟁 포로, 이런저런 이유로 제국에 끌려온 사람들이 창세기의 독자입니다. 노예들, 잡혀 온 사람들에게 하ᄂᆞ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창1:28)." 노예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노예들에게, 전쟁포로들에게, 잡혀온 사람들을 통치자로 부르십니다. 세상의 위와 아래를 뒤집는 선언입니다. 히브리 사람들, 전쟁포로를, 노예를 통치자라 부르십니다. 가장 낮은 이들이야말로 지존이라 부르십니다.
어떻게 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세상을 통치할 수 있겠습니까? 한낱 전쟁 포로에게 세상을 통치할 자격이 있습니까? 노예들에게 통치할 자격이 있습니까? 성서는 노예라도, 전쟁포로라도, 통치자로서 자격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 존재 근본이 하나님께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하ᄂᆞ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ᄂᆞ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1:27) 이집트,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에 잡혀 있는 사람들의 근본은 ‘하ᄂᆞ님’입니다. 파라오의 근본은 ‘매’요, 로마황제의 근본은 ‘늑대’요, 단군 왕검의 근본은 ‘곰’인데, 히브리 노예들의 근본은 ‘하ᄂᆞ님’입니다. 하ᄂᆞ님에게 근본을 둔 자가 통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ᄂᆞ님을 대리해 통치하는 주권자라는 사상을 창세기는 소개합니다. 이런 생각은 고대 이집트와 동방에 있는 제왕들이 넓은 제국에 자신의 형상을 설치해, 그 형상들로 대리 통치했던 시도를 전복한 것입니다.
"파라오는 그의 제국의 모든 지방에 세운 그의 초상들 속에 현존한다. 이에 상응하여 사람은 땅 위에 세워진 ‘하느님의 주권의 표식’. ‘하느님의 대리자, 땅 위에 있는 그의 영광으로 이해된다." 몰트만(김균진 역),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 Gottes in der Schöpfung》, 한국신학연구소, 318쪽
"고대의 왕은 자신의 주권적 통치의 표시이자 표상으로서 제국의 영토에 자신의 형상들을 자주 세웠다. 그 형상들은 누가 통치하는지를 떠올리게 하는 기념물의 역할을 했다. 하ᄂᆞ님도 창조계에 대한 그분의 소유권과 주권을 우리의 존재를 통해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의 형상으로서 인간을 세우셨다. 우리 인간들은 나머지 창조계에 대해 그분의 임명을 받은 대리자이다." 데이비스 영·랠프 스티얼리(강의식 역), 《성경, 바위, 시간 The Bible, Rocks, and Time》, IVP, 289쪽
하ᄂᆞ님 형상으로서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통치해야 합니다. 통치하지 않는다면, 하ᄂᆞ님께서는 주신 것을 거두어가십니다(마25:28). 통치하지 않으려는 노예로 살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으로서 하ᄂᆞ님께서 주신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역사는 발전해서, 성경의 원리가 세속 국가의 헌법에도 녹아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주권자에게 순종하라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롬13:1) 로마 제정 시대에는 주권자가 황제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순종하는 것이 맞겠지만, 민주 공화국에선 주권자가 시민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은 순종의 대상이 아닙니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대통령과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통치자라면 정의를 말해야 하고, 올바르게 판결해야 합니다. “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시58:1).” 통치자가 정의롭게 통치하지 못하고 바르게 판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ᄂᆞ님의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하ᄂᆞ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통치자는 하ᄂᆞ님의 뜻을 들어야 합니다. 하ᄂᆞ님의 뜻을 모르는 통치자는 '귀머거리 독사'입니다.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시58:5)"
노예였지만, 아니 노예답게 통치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합니다.
파라오의 꿈은 어렵지 않습니다. 살진 일곱 암소가 나왔다가 파리한 일곱 암소가 나옵니다(창41:3~4). 해석이 어렵지 않은 단순하고 빤한 꿈입니다.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옵니다(창41:5~6). 같은 꿈으로 누구나 해석할 수 있는 흉몽입니다. 풍년이 있다가 흉년이 있을 꿈입니다. 이렇게 빤한 꿈을 이집트 왕실에 불려간 점술가와 현인들이 모를 리 없습니다. 이집트의 현인들이 바보일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빤한 꿈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냥 길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흉몽을 말함으로 책임질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임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너무도 또렷한 하ᄂᆞ님 말씀을 듣지 않고 파라오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은 ‘귀머거리 독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귀머거리 독사 같은 현인들이 침묵할 때, 노예 요셉이 담담하게 말합니다. 요셉은 히브리출신의 노예였고,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일 뿐인데, 이집트의 현인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인 요셉이야말로 ‘통치자’이기 때문입니다. 파라오가 아니라 노예가 통치자입니다. 한낱 날짐승 매를 섬기는 자가 통치자일 수 없습니다(창1:2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된 자가 당연히 통치자입니다(창1:26).
통치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라 하십니다. 히브리 노예였고 수인이었던 요셉은 통치자의 시각으로 파로오의 꿈을 보았습니다. 이집트의 점성술사와 현인들은 파라오의 눈치를 보는 것에 그 시각이 좁혀져 있어 보여도 볼 수 없고, 보아도 말하지 않지만, 하ᄂᆞ님의 형상으로 인정받는 노예들, 잡혀온 사람들, 히브리인들은, 그리고 우리 모든 시민들이 진실로 하ᄂᆞ님의 후예입니다(창6:1~4). 하ᄂᆞ님께서 우리를 하ᄂᆞ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하ᄂᆞ님 형상을 닮은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ᄂᆞ님처럼 세상을 통치합니다(시2:7).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ᄂᆞ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모든 사람이 왕후장상의 씨입니다.
하ᄂᆞ님은 사람을 주권자요 통치자로 세우시고, 이름을 지으라 명령하십니다. " 하ᄂᆞ님이 흙으로 온갖 들짐승과 하늘의 온갖 새를 빚으셔서 사람에게 데려다주셨다. 그것들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보려 하신 것이다. 사람이 생물을 무엇이라 부르든 그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창세기2:19)" 우리가 세상을 통치하는 방식은 민주제입니다. 민주제는 선거를 통해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이아무개에게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박아무개에게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심아무개에게 시장, 구청장, 군수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최아무개에게 교육감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하ᄂᆞ님은 우리가 어떻게 이름을 지어주는지 보려 하십니다. 하ᄂᆞ님 형상을 지닌 주권자로서, 하ᄂᆞ님의 영을 지닌 통치자로서, 분별하고 선택하겠습니다. 분별하고 선택해 투표하는 이가 지존입니다.
* 2026년 5월 31일 증보_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6월3일)를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