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실존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재조명하는 작업은 본질적으로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 인물이 실제로 살아간 삶은 신문 잡지 방송 등 각종 자료에 흔적이 남아 있고 또 주변 인물들의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화 작업은 현실 속에서의 실제적 삶과 거리두기를 필요로 한다. 원재료를 가공해서 극적 구성을 갖는 재배치 과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다큐멘타리가 아닌 극영화에서 이러한 허구화 작업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인물의 캐릭터와 본질적으로 위반되는 허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인물을 중심으로 한 전기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경계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 관객들은 특정 사건이나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의 경우, 화면에 비치는 모든 것을 사실로 인식하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영화 속에 묘사된 사건과 인물에 대한 진위 여부의 시비가 끊임없이 제기된다.
역도산은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된 프로레슬링 선수다. 일본에서 10년 동안 스모 선수로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프로레슬링협회를 창립하고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역도산의 필살기는 가라테촙, 즉 당수였다. 1954년 전 일본에 생중계 된 일본 최초의 세계 태그선수권 대회에서 역도산과 유도 선수 출신의 기무라조는 미국의 샤프 형제와 맞서 무승부를 이끌어냈지만, 역도산이 거구의 미국인들을 당수로 거꾸러뜨리는 모습은 그를 순식간에 전일본의 영웅으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송해성 감독은 일본의 영웅 역도산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고민 한다. 한국인임을 숨기고 살았던 그에게서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의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개인의 실존적 고뇌를 부각시킬 것인가. 일본에 프로레슬링을 보급시킨 대표적인 프로레슬러이면서 흥행사이고 프로듀서이기도 한 역도산의 다양한 면 중에서 어떤 것을 부각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영화의 방향과 결부되는 핵심이다. [역도산]은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스포츠 영화는 아니다. 링 위의 화려한 경기도 등장하지만, [역도산]이 말하려는 것은 결국 성공에의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한 남자의 좌절과 절망이다.
그러나 [역도산]은 비틀거린다. 39세의 짧은 생을 살다갔지만 그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했고 그가 생전에 한국인/일본인, 스모/레슬링, 야쿠자/사업가, 모성애를 갈구하는 연약한 심성의 남자와 걸핏하면 여자에게도 폭력을 휘두르는 마초 같은 남자 등 이중적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역도산이라는 캐릭터의 정립을 위해서는 확실한 시선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러나 송해성 감독은 정치적 혹은 상업적 이유로 그 결정을 애매모호하게 만든다.
특히 인간 역도산에 근접할 수 있는 부인 아야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 촬영한 뒤 최종 편집 완성본에서 누락된 부분 중 하나가, 아래층에 부인이 기다리고 있는데 위층에서 다른 여자와 역도산이 섹스를 하는 씬이다. 또 호화결혼식을 하면서도 아야에게는 가짜 반지를 주는 것도 누락되어 있다. 이것은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지나치게 영웅적으로 만드는데 기여를 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또 역도산의 삶이 지나치게 분절되어 등장하는 것도 전체적 흐름을 통일성 있게 끌고 나가는 것을 방해한다. 굴곡있는 역도산의 삶을 드러내다 보니까 에피소드 위주로 전개되었고 하나 하나의 단락들은 사건 정황을 설명하는데 급급해진 인상이 있다. 관객들을 정서적으로 충분히 설득할만한 시간적 여유 없이 각각의 사건은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다.
역도산 역의 설경구는 몸무게를 26kg이나 불리면서 상처 많은 남자의 내면을 선과 악이 교차하는 절묘한 캐릭터로 표현하고 있다. 거칠고 남성적인 마초 이미지의 역도산이지만 그 내면에는 상처많은 아픔이 도사리고 있는데, 설경구는 역도산의 빛과 그림자를 감성적이면서도 폭발하는 에너지로 표현하고 있다. 특히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몸을 던져 찍은 레슬링 장면은 송해성 감독의 뛰어난 연출과 함께 우리를 무아지경으로 몰아넣는다. 중요한 레슬링 장면은 영화 [역도산]에 총 3번 등장한다. 일본 전역에 최초로 생중계된 역도산 기무라조와 미국의 웨츠 형제들과의 대결, 역도산-기무라의 대결, 스모의 스타인 아미즈노미의 레슬링 데뷔전 등이다.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 비하면, 그리고 역도산의 일생에서 레슬링이 차지한 비중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분량이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레슬링 장면은 매우 효과적으로, 그리고 폭발적 에너지를 가진채 삽입되어 있다.
그러나 역도산의 후원자인 야쿠자 보스 칸조 회장 역의 후지 타츠야가 없었다면, 설경구는 상대적으로 빛을 잃었을 것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과 [열정의 제국]에도 출연한 일본의 대 배우는 눈빛 하나로 화면을 제압하는 무서운 내공의 소유자이다. 연륜과 기가 결합된 그의 카리스마는 [역도산] 전체에 광휘로운 후광을 부여한다.
[딱 한 번 사는 인생, 착한 척 할 시간이 어디 있냐]
역도산이 자기 비서에게 하는 이 대사는, 역도산의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준다. 송해성 감독은 선과 악이 교차하는 인물의 내면을 복합적으로 드러내는데 더 과감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역도산]은 비장한 삶의 정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인간의 고뇌를 드러내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이유다.
[역도산]은 한국인이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일본 최고의 영웅이 되었다. 우리가 그 사실만을 갖고도 그를 비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 사실은 한국인이었다는 것은 일본 국민들의 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고 역도산도 한국인임을 밝히는 일이 자신의 삶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생존에의 본능으로 꿈틀거리는 이 남자의 삶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삶의 비정함이다. 송해성 감독은 역도산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 인간의 모순적인 내면과 고뇌에 접근해서 드러내 보여주려고 한다. 부분적인 흠이 있지만 [역도산]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 본질적인 질문이 살아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