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기들도
천지창조를 하신 하나님을 알아서
함께
내 받은 은혜를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추천의 글
독일의 철학자 쇼펜아우어 (Arthur Shopenhower
1788~1860)가 어느 날 인생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면서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오는 사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 사람과 부딪쳤습니다. 그 사람은 화를 내면서,
"당신 누구요?"
쇼펜아우어는 미안한 듯
"그것이 문제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생각하고 노력하는 일은 평생에 해야 할 일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철학적 논제와 과학적인 논제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인생에 대한 대답은 신학적 논제입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간단명료하게 기록한 설순옥교사의 글재주에 놀랐습니다.
독서는 완전한 사람을 만들고, 글쓰는 것은 정확한 사
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Reading makes a full
man; Writing makes an exact man)
설순옥 집사는 일찍부터 독서와 글쓰기를 몸에 익힌 교육자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삶 속에서 경험한 내용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여 기록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펴내게 된 것을 축하하며, 이에 추천하오니 독자 여러분에게도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주후 2003년 8월 15일 58돌 해방 기념일에
안동도원교회 목사 박종석 씀
머리말
인생이라는 한 타래의 실을 풀어간다.
잘 풀려나가던 실이 어느 순간에 엉겨서 엉망진창이 된 채로 내 앞에 놓여졌다. 그 실을 그대로 포기하고 내버릴 것인가? 아니면 잘라서 쓸 수 있는 부분만 쓸 것인가? 그러나 정말 다시 얻을 수 없는 귀한 실이라면 풀어서 써야 할 것이 아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어려운 일이 생기자 나는 절망하지
않고, 엉긴 실을 풀어가듯이 끝까지 내 인생에 충실을 기하고 있다.
한 부분씩 예측 못 하던 부분이 풀어질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은 어디에도 견줄 바 없는 큰 기쁨으로 내 인생을 산다.
나는 평생 글을 썼다.
그 동안 읽은 책들과 무조건 접한 영화들이 나에게 간접적으로 많은 인생 철학을 가르쳐준 것이기도 했겠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영혼에 대한 심오한 고민에서 답을 찾지 못해 막막한 심사일 때가 많았는데, 그 사고
가 나에게 글을 쓰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꽤 자랑스럽게 써서 발표를 했던 수필이 어느 날부터 인지 양념이 빠진 음식처럼 생명이 없는 글로 생각이 되었다.
'인생의 문제풀기'는 하나님을 통해, 내 정서를 가슴에 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가슴이 울컥하도록, 눈물이 찡하도록 감동이 오는 체험을 주제로 하여 잔잔하게 써 내려간 글이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싶다.
누가 하나님을 봤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정말 좋으신 하나님을 보일 수 없는 안타까움을 대신하여 이 글을 쓴다.
이 글이 하나님께 드리는 글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서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기를 원한다.
두서없는 글을 읽어 주시고, 추천의 글을 써 주신 박종석담임목사님께 책을 펼 수 있는 용기를 주심에 감사한다.
2003년 가을의 문턱에 글쓴이 설순옥
*70 여편 중 한 편을 올립니다.
연로한 믿음
부활절 주일 오후예배를 동부교회에서 연합으로 드린댄다. 나는 일찍 준비했다. 늦게 가서 자리 찾는 일이 꽤 분주한 일이어서 아예 일찍 출발했다. 우리 교회에서 꽤나 거리가 되어서 빈차로 가기가 아까와 문 앞에서,
'동부교회 갑니다.'
하고 외치니 교회 마당에서 서성이시던 나이 드신 몇 분이 반가이 차를 타시는 것이었다. 타시자 마자 눈을 감으시고 기도하시니 부족한 나로서는 황공할 따름이었다. 동부 교회 앞까지 가서 보니 시간도 이르고 그 앞으로 안동의 봄나들이 장소인 벚꽂 길이 보이는데, 꽃망울들이 따사한 봄 햇살의 그 열기 탓으로 곧장 꽃봉오리를 터뜨릴 듯 하여서 그 길로 접어들었다. 길 양편으로 수 십 년이나 된 벚꽃들이 똑 같은 빛깔로 보이면서도 가까이 가면은 모두들 다른 느낌으로 맞이하고들 있다. 나는 천천히 도로를 타면서 벚꽃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 이 벚꽃 길은 안동 사람들에게 있어 봄을 향유하는 곳이다. 오래된 가지들이 낙동강 옛길을 그대로 살려 흐드러지게 만개할 때에야말로, 온 시민이 한 번씩은 나와서 봄의 축제에 젖어 긴 겨울을 청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권찰님, 권사님들도 나름대로 꽃에 대한 탄사를 연발하시며 어떤 분은 옛날 시를 외시는 것이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개나리 진달래 꽃이피 네…….'
내 옆에 앉으신 분이 뒷자리에서 노랫말을 외시는 분을 보고 구십 일세라고 위상을 전해왔다. 나는 정말로 믿음이 주는 힘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 연세에 집 안방 구들목이 되어 자녀들 하는 일에 잔소리나 하는 그런 연세가 아닌가? 나름대로 대화가 되고 참 소망을 의지하는 그 믿음들이 너무나 바람직하게 생각이 되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은 사람들이라면 지난 세월이 화려했든 불우했든 지난 세월은 '허'라는 절망 속에 한 번 쯤은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참 진리를 믿는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얼마나 사는 일이 희망적이고 꿈이 있는가? 그러나 그 믿음이 그냥 주어지는가? 세상적인 나 자신을 버릴만한 과감한 용단이 주어지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 자신에 내재한 자의를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기란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내릴 땐 나의 이름과 소속을 물을 만큼 한 교회를 십 년 이상 다녀도 서로 모를지라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믿음은 하나님 한 분으로 서로가 통하는 자리이며 같은 자녀로서의 가까움도 만만치 않다.
매년 피어나는 벚꽃 전경은 정말 자연을 조화롭고도 아름답게 빛내주고 자연의 대 섭리를 깨닫게 해 주기에 충분하다. 해마다 4월 말 쯤이면 '벚꽃 잔치'라는 플랭카드가 안동시민들을 재촉한다. 또한 강변에는 긴 겨울에서 깨어나는 듯 강 주변에는 포장마차들이 저마다 장을 선다. 일제 시대 때 '사쿠라'나무란 이름으로 심어졌다는 벚꽃은 정말 해가 바뀔 때마다 한 번쯤은 만개한 모습을 보아야 봄을 맞는 느낌이 난다. 자연의 대 섭리에 취하여 바쁜 일손을 잠시 덮고 마냥 마음을 열고 꽃 내음에 취하고, 아는 이들과 함께 포장마차의 여유로움을 즐기게도 한다. 그 뿐인가? 봄바람이 한 번씩 질투라도 하듯 불어재킬 때는 우루루 가녀린 잎들이 눈처럼 떨어질 땐 그야말로 자연의 감미로움에 넋을 잃고 만다. 너도나도, 모든 상춘객들도 입을 모아 함박웃음을 머금는다. 안동 옛 강변 길을 그대로 살려 지금은 차도를 막고 인도로만 쓰는데 이 길 뿐이 아니고 새 도로마다도 어린 나무들을 심어놓아 지나갈 때면 앙징스런 꽃 모습에 마음이 온통 즐겁다. 우리 안동은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힐 만 하다.
오가는 사람 모두가 그냥 아름다움에 취하여 먹고 마시는 일로 소일할 것이 아니라 한 번 쯤 반드시 창조주가 누구일까를 생각해 주면 좋겠다.
첫댓글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