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어느 토요일,
모교 월성중학교를 찾다.
월성중학교 2학년 6반 김민욱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노래의 한 구절 중 "비리도록 시원한 날이 되어"이란 구절이 있는데 딱 그말이 맞는 것 같다. 과연 이런 날에 등산할 수 있을까? 예전 토함산 답사 때와 칠불암 답사 때도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내려올 때는 다 그쳤다. 하지만 오늘 비는 영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다. 조회대 위에 권엽이 있길래 물어보니 1학년 6반으로 가란다. 중앙현관문에도 그리 붙어 있었다. 일단 1학년 6반으로 간다.
(월중 올라가는 길. 토요일에도 이 길을 오를 줄이야.)
(교문. 우측 '상고의 화려한 부활'은 저번 무장산 무료셔틀버스에도 붙어 있었던 거다.)
(월성중학교. 중간 로고는 저번에 바람에 날아간 후 계속 붙이지 않고 있다.)
1학년 6반 내에는 벌써 1학년 애들과 창근이, 재홍이 등이 먼저 와 있었다. 3학년 형들은 3학년 반으로 갔다. 애들은 컴퓨터로 볼 영화를 찾고 있었는데 의견이 많이 갈린다. 결국, 다운이 잘 안 돼서 영화 보는 건 실패했다.
(1학년 6반 내부. 지금 답사하러 왔는데 여기서 내가 뭐하는 걸까?)
영화 찾는 게 지겨운지 1학년 애들은 술래잡기하고 있고 그냥 난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정말 아무도 없는 학교는 처음 와본다. 1학년 때 야자 하는거 빼고는 처음인 듯(그때는 어두워서 진짜 괴담 학교 같았다). 그래도 당직 서시는 선생님은 계셨다. 비 오는 토요일, 단 10명 정도만 있는 고요한 학교를 둘러보고 있다.
(학교 운동장 일대. 앞의 옥녀봉은 비구름 때문에 보이질 않는다.)
(학교 복도. 이런 일상생활을 찍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다.)
(가을을 알리는 우리 학교. 생각 외로 우리 학교도 운치 있다.)
(저번 산사태로 무너진 곳을 보충한 제방. 산에 학교가 있으니 이런 위험도 가끔 나온다.)
선생님께서 삼계탕 재료를 사 가지고 오셨고 우리는 가스와 버너, 대형 냄비 등을 수송 쉼터로 옮겼다. 이걸 또 만드는데 적어도 1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니 벌써 지루한 기분이 몰려온다.
(냄비 옮기는 중. 크기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냄비보다는 버너가 더 무거웠다.)
(88서울올림픽 각종 기념품. 이게 왜 우리 학교 중앙현관에 있는지 궁금하다.)
친구들 반응 보면 우리 학교가 유난히 사진 찍으면 좋게 나온다고 한다. 나도 그 생각에 동의하는데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무엇보다 별관이 더 그런 것 같다.
바깥에서 산책하다 보니 비구름이 약간 걷혔다. 이제 옥녀봉의 윤곽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리고 교무실에도 가 보았는데 선생님께서 아무도 안 계셔서 적막감마저 감돈다.
(학교 운동장. 옥녀봉도 차츰 그 윤곽을 드러낸다.)
(가장 고심했던 사진. 과연 이사진을 올려도 될까? 무척 고요하다. 교무실의 색다른 풍경.)
학교 뒤뜰로 가서 닭을 씻으러 간다. 사실 갈 일이 거의 없는 곳인데 처음으로 뒤뜰에 텃밭이 있는 걸 알았다. 설마 우리 학교 급식도 여기서 나오는 건 아니겠지?
생닭을 씻어서 그대로 냄비에 투척한다. 미끌미끌한 생닭을 만져보기는 처음이다. 이제 황기(단너삼), 찹쌀 등 쌀과 각종 한약재를 넣고 푹 끓이면 된다. 넣은 양으로 봐서는 남을 것 같아서 권종훈 선생님과 손승락 선생님께서 근처에 사시는 다른 선생님들도 부르셨다.
(학교 뒤뜰. 제일 끝에 보이는 것은 선도산 등산로이다.)
(뒤뜰 무밭. 급식으로는 양이 턱없이 모자라고, 그럼 이건 누가 먹기 위해 재배하는 걸까?)
(삼계탕 조리 준비 중. 수송 쉼터가 이런 데 도움이 될 줄이야.)
(쉼터 옆 화단. 중앙에는 학교 교훈 비석이 서 있다.)
(삼계탕 끓이는 중. 팔팔 끓여야 닭이 푹 익는다.)
그냥 여담이지만 1학년 때부터 우리 학교를 둘러보면 유난히 네잎클로버가 많다. 평소에 그런 거 찾는 운이 지지리도 없는데 한 대여섯 개를 한 번에 찾은 적도 있었고 내 친구 중 네잎클로버를 굉장히 잘 찾는 친구가 있는데 다 찾은 거 세보면 10개는 족히 넘어간다. 그 밖에도 네잎에 작은 잎 하나가 더 붙어있는 4.5잎클로버(?)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지금은 공사 때문에 사라졌지만 별관 옆쪽에서 운지버섯을 발견하기도 했다(물론 흔한 버섯이지만). 자연이 좋아서 운지가 나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네잎클로버가 많은 이유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옥녀봉과 충효동 일대. 뭔가 깊은 산 중 같아 보이지만 저 산만 넘으면 바로 강.)
(학교 급식소. 평소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풍경인데 오늘따라 신기하게도 멋져 보인다.)
(급식소 가는 길. 봄이나 여름 되면 가장 절정인 장소다.)
어느새 삼계탕이 다 된 것 같다. 꺼내어서 먹다가 약간의 핏기가 있어 다시 삶는다. 처음에 영화 보는 데 실패해서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방송실에서 노래를 틀려고 했다. 예전에 방송반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기계를 다룰 줄은 안다. 그러나 틀면 충효동 전체가 울릴뿐더러 자칫 고장 낼 수 있어서 결국 방송실 컴퓨터만 켜 보고 끝났다.
(거의 완성된 삼계탕. 김이 확 피어오른다.)
(삼계탕 닭고기. 우리 학교 식판에 이런 음식이 담기는 날이 오다니.)
(방송실. 기계나 컴퓨터가 상당히 구식이다. 점심시간 노래를 책임지는 장소.)
삼계탕 닭고기 대신 다들 육수와 닭죽을 먹고 있다. 평소에 육수는 잘 안 먹는데 도대체 뭘 넣은 지 국물 맛이 일품이다. 다들 식판에 죽을 받아간다. 일학년들은 거기 있던 다섯 가지 음료(콜라, 사이다, 오렌지 주스, 식혜, 이온음료)와 닭 육수, 소금 등을 섞은 해괴망측한 음료를 만들어지는 사람이 먹는 게임을 하고 있다. 술을 넣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된다. 한쪽에서는 죽에 소금을 왕창 넣어 짠 도를 넘어 거의 쓴맛까지 도달하도록 해 놓았다.
(식사 중인 우리 답사부. 왼쪽에는 한 일학년을 죽음의 경지로 몰고 간(?) 다섯 가지 음료가 있다.)
(1학년 때 열심히 외웠던 학교 교가. 교가를 적어놓은 글씨체가 꽤 마음에 든다.)
다 먹고 쓰레기를 치우고 설거지를 하며 깨끗하게 뒷정리를 했다. 다들 해산하고 뒤늦게 나도 학교를 나왔다.
사실 오늘을 답사라 하는 건 억지고 그냥 학교 탐방이라 하는 게 맞다. 그리고 거의 삼계탕 조리 과정을 설명한 것 같다. 나중에는 비가 오지 않아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학교에서 이런 경험을 하고 가는 것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여정-(2012. 10. 27. 土)
월성중학교(이 이외에 간 곳이 딱히.....)
새롭게 펼쳐라!
羅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