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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심과 우리의 열심
황부일목사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도 우리 사람처럼 열심히 행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사야9:6-7절에 보면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메시야와 메시야 왕국의 실현에 대한 예고며 언약의 말씀인데 이미 성취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열심이 언약하신대로 이룬 것입니다.
열심이라는 말은 어떤 일에 깊은 마음을 기울이며 힘쓰는 것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열심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신 바를 제 때에 성취하시려 열심하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의 목적은 언약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한 그 나라를 이루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은 특별하신 섭리와 간섭으로 행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열심에는 권능이 있고 말씀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열심히 말씀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했고(겔5:13) 선지자들을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보내셨다는 것도 하나님의 열심 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열심은 진리적이요 진실하심에 있습니다. 이사야25:1절을 보면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 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실함이란 태도나 언행이 정성되고 참됨으로서 하나님의 열심 하심의 한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만세전에 작정하신 대로 언약하셨고 그대로 조금도 다름이나 부족함이 없이 열심히 이루시고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의요 구원의 역사이고 성경 말씀의 성취적인 흐름이고 핵심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홀로 주권적으로 역사하시고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여호와를 찬송할 찌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고 증거한 것입니다.(왕상8:56)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내시고 그에게 언약의 후손과 언약의 기업을 약속 하시고 그것을 피의 언약 안에서 혼자 이루실 것을 보여 주면서 그 자손들이 이방에서 객이되어 그들을 4백년동안 섬기다가 4대만에 이 땅으로로 돌아오리라고 언약하셨는데(창15:12-17) 하나님은 그 언약대로 이삭을 주시고 야곱과 그의 12아들을 중심으로 앞서 요셉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이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가서 번성하면서 애굽의 탄압을 받고 준비된 그릇인 모세를 통해 그들을 이끌어내십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자들을 약속의 기업으로 들이셨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30)는 말씀의 구원의 원리대로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의 역사에 열심 하십니다. 열심히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통치하시며 이 땅에서는 거룩한 교회로 굳게 세워 가시며 성도 개인에게는 야곱처럼 양육하시며 벧엘로 돌아오게 인도하시며 그 뜻을 이루기까지 열심히 간섭하시며 지키시며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욥이 고백하기를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크게 여기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 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 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4:17-19)며 호소할 정도로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며 언약의 백성을 지키시며 인도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신다고 하십니다(겔39:25)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것 같이 땅에서도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잠시도 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열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
우리 인간들의 열심에 대해서는 몇 단계로 분류해서 볼 수 있는데 먼저는 범죄이전 낙원에서의 상태와 그리고 범죄후 타락한 인생들의 상태와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의 상태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신 낙원을 이루는데 열심 하도록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움직이는 생물을 다스리라”(창1:26-28)는 말씀을 따라 그분을 위해 열심히 낙원을 건설해 가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고 범죄하여 버림받은 인생들은 완전히 판도가 뒤바껴 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땅에서 저주받은 자가 되어 먹을 것을 위해 땀을 흘리며 죽을 때까지 그것만 위해 수고하며 열심 하는 헛된 인생 상태가 된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죄와 허물로 사망에 이르고 죽은자의 삶을 따라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잡은 자를 따라 육체의 욕심이 원하는 것을 위해 열심 하는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엡2:1-3) 그래서 다윗은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시39:6)고 했고 솔로몬은 “사람의 수고는 다 그입을 위함이나 그 식욕은 차지 아니 하느니라”(전6:7)고 증거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아래 있는데 다 무익하게 되고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발은 피흘리는데 빠른지라 그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있다고 했습니다(롬3:9-18참조) 죄의 권세에 따라 열심히 죄지으며 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 함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고 하나님이 없는 육체가 되어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이 악하게된 죄의 본성을 가진 육체의 소욕을 따라 형벌의 삶을 열심히 헛되게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들의 열심에 대해 여러모로 증거 하기를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이기기를 다투며 힘써 달음질 한다고 했습니다.(고전9:25-26참조) 참으로 세상이 그렇고 모든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세상 사람들의 열심에 대해 증거 하기를 그들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와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 한다고 했습니다.(벧전4:3참조) 이것이 범죄후 죄인 되고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형벌의 삶을 살아가는 인생들의 열심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죽음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권세에 사로잡힌 열심인 것입니다.
다음은 죄로 인해 형벌의 헛된 삶을 죽어라고 열심히 살던 슬프고 고생스럽고 비참한 인생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새롭게 된 열심이 있습니다.
디도서3:14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아 의롭게 된 하나님 나라의 선한 백성의 모습과 삶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이루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구원을 입고 그 선하심을 구원의 모습에 합당하게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의 요구를 푯대로 삼고 열심히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들로 된것이 성도요 그들에게 요구된 하나님 나라를 이룸이 선한일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열심이 그분의 나라의 자녀된 자들에게 은혜로 실현된 것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열심이 성도에게 통하며 믿음의 열심으로 나타나 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 사역에 대한 자신의 열심에 대해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고 증거했고 또한 성도들의 열심에 대해서는 “너희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된 자들에게 있어 진정한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온전한 구원으로 역사될때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교회에는 잘못된 열심이 많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무리가 열심히 예수를 좇았는데 그 중에는 밤에도 새벽에도 열성적으로 예수를 찾아다닌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니라”(요6:2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예수 이름으로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예배 찬양하며 봉사하며 금식기도까지 하며 헌금하고 하지만 그것이 다 자기 기대의 성취를 위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야 응답받고 복받는 신앙의 열심으로 가르치며 강조하는 지도자들로 인해 조련 되면서 그런 열심이 인정되고 좋은 신앙처럼 여겨지고 간증으로 선전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열심적인 신앙은 소원성취와 안녕을 위해 수 백 번씩 수 천 번씩 복채를 내며 열심히 빌고 절하고 하는 이방종교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당시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하여 증거 하기를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롬10:2-3)
오늘날에도 보면 기독교라 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모르고 세상 사회정의나 평등이나 인륜이나 세상을 공동체로 복지나 박애 등을 부르짖으며 그야말로 열심히 투쟁까지 하며 자기들의 의를 실현 하려는 잘못된 기독교 이상주의자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엔 기독교 신앙을 통한 열심들이 다 자기 기대나 욕망이나 아니면 공감을 통한 공동적인 기대실현에 목적을 둔 인간적 열심이 대 부분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을 가진 인간의 열심은 하나님의 열심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어 보통 인간은 그것을 알 수 도 없고 원치도 않는 것입니다. 그나마 성령이 오셔서 예수를 믿게된 성도의 중심에 하나님의 열심인 성령의 소욕이 작용하고 있어도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육체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과 싸우며 자기 생각의 열심만 고집할 뿐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처럼 자기들의 기대나 소욕에 맞추어 주는 다른복음을 좋아하고 잘도 용납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증거한 것입니다.(엡4:22-24)
사도바울이 그리스도께 잡히기전 유대교에 속해 있을때의 고백을 들어보면 그는 율법에 대해 그리고 유대교신앙으로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어느 연갑자보다 더욱열성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한 것이라고 했습니다.(갈1:13-14) 여기서 우리는 잘못된 신앙의 열심이 얼마나 위험하고 맹신적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그가 보통 성도들이 볼 때 어리석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열심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 온전히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의 소욕은 죽어지고 성령의 소욕이 그를 사로잡아 하나님의 열심으로 쓰신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심도 그리고 우리를 깨끗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 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심도 그리고 참된 열심으로 우리를 변화 시키고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복음의 역사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복음은 성도를 하나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한 일에 온전케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딤후3:17)
요즘에는 자기 욕망을 따라 열정을 가지고 보이는 외형중심 으로 교회 사업을 크게 성공 하려고 하는 잘못된 지도자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교인들은 그 목적에 따라 충성 열심 하도록 조련 시키는 목회방법이나 이벤트식 프로그램과 그런 중심의 집회가 난무하고 인간적인 열심들을 요란스럽게 보이고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전도나 봉사나 헌신이나 찬양이나 기도나 헌금도 인정받고 복받기 위해 열심이고 그리고 있지도 않은 저들 기대의 상급에 빠져 맹신적으로 열심할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성공을 위해 그 열심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 현대교회들인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열심히 표적을 구하는 잘못된 신앙이 판치는 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에 하나님을 이용하는 미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열심은 구원을 이루어 가는 은혜 속에 실현됨을 알고 구원을 이루도록 자라게 하는 순전한 복음을 사모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교회는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열심으로 거룩한 구원을 이루어 가심을 믿고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