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 이야기
일본은 명치유산(明治維新)전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유명한 德川家康(두꾸가
와이예야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무렵은 서로 싸워서 이기면 남자는 다
죽이고 적장의 마누라는 데려다 첩으로 삼았답니다.
그리고 마누라도 20세가 넘으면 後家(고깨)라고하여 뒷방에 믈러나고 새색시
로16~17세의 처녀 장가를 다시 갔답니다.
德川家康(두꾸가와이예야스)는 전쟁에서 이기고 온 부하에게는 後家(고깨)가
된 마누라를 하사(下賜) 하였다합니다. 여자는 그저 물건에 불과했답니다.
중동에는 아직도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조(李朝)때만해도 반가에서는 첩(妾)을 가진것이 보통이였습니다.
(지금도 00구룹 000회장은 해외에 여자가 여럿있어 그 부인이 화가 안풀려
히스테리로 그런 짓을 했고 그 딸들도 엄마의 행동을 보고 배워서.................
가정교육의 위대함이여~)
그러던 것이 이제 우리나라는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이제 마누라 이외의 여자하고 악수도 눈치를 봐가며 해야하는 세상
이 된것같습니다. 아~ 예날이여~~
1966년경 우리나라 담양(潭陽)에서 나오는 죽제품(竹製品)을 푸라스틱 제품
이 나오기 전까지 참으로 많이 수출하였습니다. 담양 5일 장날에는 그동안
여러 집에서 만든 수출품을 가지고 오면 그것을 돈을 주고 사서 창고에
보관하면서 더 이익을 붙여서 수출을 하였습니다.
5일장에서 산 물건들을 창고 안에 쌓아놓고 종류별로 나누고 손질한후 물건마다
Made in Korea라는 라벨을 붙이고 포장을 하여 수출 하였습니다.
그때 그 창고에서 손질하고 라벨붙이고 포장하는 일을 김(金)선생님라는 분이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부인이 두명이였습니다. 두 마누라에서 낳은
자식들이 7명니나 있었으며 제일 큰애가 17살이였으며 전 식구가 다 함께 창
고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부인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할 때 보면 둘이 꼭 붙어
서 다정하게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일을 합니다. 아이들도 형제끼리 아주 사이
가 좋았습니다.
하도 신기하여 지인들이 김선생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김선생님 마누라 두분을
데리고 사시는데 그 두분이 이렇게 다정할 수 없으니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김선생님을 빙그시 웃으시며 대답을 안 하십니다.
그런데 잠잘 때 두 부인이 남편 좌우(左右)에 나란히 함께 누어 잔답니다.......
김선생님은 아마도 일부다처제(一夫多妻制)의 표본이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