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기숙사'는 1993년 12월 1일에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한 달 후, 1994년 1월에는 12쇄를 펴냈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연유에 대한 특별한 인연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93년 겨울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중학교 3학년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등용문인 연합고사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수학하기 위한 최소한의 학력테스트인 셈입니다.
우리 동네 D중학교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타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습니다.
그러나, 예능이나 체육 특기자로 실기를 주로 하는 학생들은 잦은 수업불참으로 성적이 하위그룹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고, 특기자가 아닌 일반 학생 중에도 학업부진으로 연합고사를 걱정해야 하는 수준을 면치 못하는 학생이 몇 명 있었습니다.
연합고사와 관계없이 일찌감치 서울과학고등학교에 합격한 우리 아이에게 크나큰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반에서 가장 성적이 안좋은 Y를 우리 아이와 나란히 짝이 되게 앉혔고, 그 날부터 연합고사 예상문제집을 비롯해 전과목에 걸쳐 학습지도를 맡겼던 것입니다.
언제든지 모르는 문제를 질문하게 했고, 그 아이의 수준에 맞게 쉬우면서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는, 친구를 가르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Y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원로영화배우 Y씨의 막내아들입니다.
아버지를 닮아 훤칠한 큰 키에 잘 생기고 심성이 순수한 아이였지만, 학업성적은 형편없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간곡한 말씀이 있긴 했지만,가르치는 우리 아이의 열성에 다행히 배우는 Y군도 잘 따라주었습니다. 매일 숙제를 내주고, 검사를 하고, 문제를 풀면 점수를 체크하고, 틀린 답은 이해할 때까지 설명을 해주는 일이 매일같이 반복되었습니다.
만약, Y군이 연합고사에 실패하면, 자기의 책임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지, 우리 아이는 얼마나 열성과 정성을 다하는지 보기에 딱할 정도였습니다.어린 마음에 너무 큰 책임감을 느꼈던가 봅니다.
둘이 나란히 앉아서 철저하고 빈틈없이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드디어 내일이면 연합고사 시험일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묻습니다.
"마음을 차분히 안정 시키면서도 머리를 맑게하고 용기를 주는 압봉자리를 알려주세요"
"그런 자리가 있을까? 왜 그런 자리가 필요하니?"
그 당시 나는 고려수지침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내일이 연합고사일인데 Y에게 최상의 컨디션으로 시험 잘치게 해주기 위해서예요"
내 아들이지만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나는 아들 시험 치러갈 때 압봉 부쳐준 기억이 없는데, 친구를 위해 이런 세세한 곳까지 마음 쓰는
아들이 참으로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수지침 책을 찾아가면서 압봉 부칠 손가락 부위를 그려가서, 시험 당일 아침 일찍 Y의 손에 압봉을 부쳐주고 시험 잘치라며 격려하고 와서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Y군의 학력을 올리고 연합고사에 합격해서 무사히 고등학교에 진학 하도록하는 책임은 우리 아이가 아니고, Y군 책임이 첫째고, 담임선생님과 각과목 담당선생님이시지요.
초조해 하는 아들을 보면서 담임선생님에 대한 원망이 살며시 일어났다 사그러집니다.
어린 아이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주신 담임선생님, 만약 합격하지 못한다면 Y군은 물론이고,
우리 아이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가운데도 시간은 정확하게 흘러 발표일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의 정성과 노력이 헛되지 않아 Y군은 거뜬히 합격했습니다.
사실 중학교 과정을 공부한 학생이면, 누구나 다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의 연합고사임에도 워낙 공부를
안한 Y를 위한 특급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당사자보다 더 기뻐한 사람은 우리 아들이었습니다.
나도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 칠 후,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Y군이 곱게 포장한 이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서울대 기숙사' 이 책이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입니다.
우리 아이와는 고등학교부터 헤어지게 되어, 그 이 후는 연락이 없습니다만,
지금쯤, 잘 생긴 늠름한 청년으로 사회에서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첫댓글 조박사는 머리만 좋은청년이 아니라 심성이 따뜻하고 지혜로운 귀한 청년입니다.
어린나이에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성품은 이댁 가정교육의 큰 힘인것 같습니다.
공부잘해 남주나?가 아닌 남주기 위해 공부잘한 조박사님 훌륭한 스승입니다.
언니,과찬의 말씀입니다.
작은 인연 이야기일뿐입니다.
전생에서부터 인연의 끈이 이어져온 결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거리에서 지나가다 소매끝만 닿아도 인연이 있어서라고들 하잖아요.
좋은 善緣이라 더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선배님을 보면 아드님 심성도 알거 같네요 존경스럽습니다,,,
너무 좋게만 봐주셔서,황송하고 민망합니다
훈훈한 이야기를 조근하게 엮어 나가는 글 솜씨도 일품입니다.
칭찬 고맙습니다,언니.
이렇게 자상하고 매사에 성의를 다하는 어머니를 닮은 아들의 책임감 참 놀랍습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성품도 고운가 봅니다. 참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과찬이십니다.
재미있다시니,고맙습니다,언니.
친구를 배려하는 아드님의 심성이 어렸을적 부터 였다니 역시 똑똑한 사람은 어딘가
남다른데가 있나봅니다. 어머니의 글솜씨 또한 뛰어납니다.
심성이 착하고, 선생님 말씀엔 순하는 아이였습니다.
언니,과찬의 말씀에 기분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