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졸업할 땐 1998년 IMF를 맞았죠.. 지금도 그다지 좋은 시기는 아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한 숨이 쉬어 집니다..
언제나 나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갖춘 형과 누나.
형과 누나는 항상 정도를 다녔기에 진학도 취업도 모든지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언제나 나만 뒤쳐진다는 자격지심은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졸업이 또 취업이 막상 눈앞에 닥치기 전 까지는...
전 공고를 나왔고 비록 지방대지만 대학도 순조로웠고, 몇 몇 자격시험도 어렵지 않게 합격했습니다. 주변에 따르는 사람도 많아 자신감에 항상 차 있었죠. 물론 그와 함께 취업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남들은 바쁘게 이력서를 넣으러 뛰어 다닐 때도 저는 몇 개의 자격증과 군 면제로 인한 시간적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유로움은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주변사람들의 취업과 백수라는 현실, 집안의 눈치, 하나하나 저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일년. 그래요 정말 한 거 없이 백수 생활 일년이 지났습니다.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의 자신감 아니 자만심은 내 앞에 닥친 현실 앞에선 저를 초라하게 까지 만들고 있었습니다. 몇몇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았고 서류전형에선 거의 합격을 했지만,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의 이력들을 보면서 '내가 우물안의 개구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사람들 앞에선 정말 내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백수 두해가 지나가고 그 동안 저는 발에 땀나도록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항상 인터넷 구인란을 보면서 살다시피 하고 신문 지면에 사원모집 광고는 하나도 안 놓치고 살펴보고 했습니다.
저의 자신감들은 사라지고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곳에도 없어 보였습니다. 방황하던 그 때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 보내야 했죠. 자격지심이 쌓이고 점점 낙오자가 되어 갔습니다.
백수 2년째가 다 지나갈 무렵 저는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아니 저를 버렸습니다.
"이왕에 안 될 바에는 내 능력과 상관없이 내 하고 싶은 걸 해보자~!! "
그 후로는 제가 하고싶은걸 할 수 있는 곳으로 뛰어 다녔죠.
연고지든 지방이든 사원모집을 하든 사원모집을 하지 않는 곳이든 심지어는 사원모집을 하지 않는 지방까지도 무턱대고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이 일이 하고 싶다며 이력서 넣고 나오기를 반복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쯤엔 다시 한 번 씩 더 돌아 다녔습니다.
"저 예전에 원서 넣은 사람입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한번 들러 봤습니다." 그리고 또 이력서 한 장 넣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가지고 밀고(물론 갖출 예의는 최대한 갖추고요)나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혹시 일을 하고 있느냐??' ' 면접을 보러 오라..'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느냐..' 는 등의 전화가 자주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정확히 만 2년만에 저의 백수 생활은 청산할 수 있었고, 저 나름대로의 위치에서 하는 일에 만족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2)우리들의 자신감과 가치관 - (현재 LG 애드 카피라이터 근무)
최근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불현듯 내가 미국으로부터 고등학교에 전학 왔을 때와 비교해 너무나 달라졌다고 하자 다른 친구들도 이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내가 처음 외국에서 귀국했을 때 나에게서 보았던 자신감에 넘치고 약간 당돌했던 모습이 어느덧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부모님을 좇아 귀국하여 서울에서 생활한지도 벌써 8년째로 접어들었고, 그 사이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쳐 작년에 지금의 직장에 취직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겪었던 어려움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입시위주의 암기식 교육과 획일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고 가끔씩은 획일적 행동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나를 달갑게 봐 줄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습던 때도 많았지만 그 당시에는 고등학교 시절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다행히도 어려운 순간들을 잘 극복하였고 이제는 그 시절이 한때의 추억으로만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친구들의 지적을 받고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변할 필요가 없는 부분까지. 그리고 보니 광고 대행사의 영문 카피라이터로 외국 광고주들과 자주 접하면서 나는 내가 한때 가지고 있던 무언가를 (아마도 내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자신감 있는 태도를 잃어버려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또한 내가 가치 있게 여기던 생각,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동경,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는 태도,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던 것과 같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질서관념, 인간은 외면보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신념) 이러한 것들이 서서히 흐려지고 있으며 더 이상 나의 행동에 투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까지 든다.
그 사이에 나도 모르게 우리 사회로부터 세뇌를 받은 탓일까.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는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물질 지상주의와 치열한 생존경쟁 과정에서 야기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주의가 만연해 있고, 우리의 교육은 획일적 교육방식으로 이 같은 신종주의에 철저히 영합해 왔다. 따라서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비효율적인 요소로 타기 하였으며, 외국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품성은 우리의 신종 주의로 대치되고 말았다.
문제는 외국생활 중 지극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자신감과 가치관을 가지고 귀국한 우리들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국내의 분위기에 위압감을 느껴 자신감을 상실하고 국내적 가치관에 서서히 물든 다는데 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러한 견해를 밝히면 그 다양성보다는 그 이질적 면을 먼저 지적 받게 되므로 우리들은 '왕따'를 당할까 봐 외국에서 습득한 것들을 조금씩 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집단의 요구와 틀에 맞추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부르짖는 우리 사회의 국제화에도 역행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는 한국 광고시장 전반을 취재할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국제적으로 유명한 방송 네트워크에서 일하는 광고 프로그램 프로듀서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녀가 대화의 결론으로 내린 것은 한국이 국제화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예로서 국내광고 대행사들과의 인터뷰 경험을 들었다. 어떤 회사든지 자기 회사에 대한 직접적 홍보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다른 국내 경쟁사가 어떤 내용의 대답을 했는지에만 신경을 쓰더라는 것이다.
그녀가 이해 못하는 것은 그 좋은 기회를 자기 회사의 선전에 활용할 생각을 안하고 남이 어떻게 했는가에 커다란 비중을 두는 우리 사회의 풍토였으며, 이렇게 해 가지고는 진정한 국제화의 길은 요원하다는 평가였다. 이와 같은 그녀의 지적에 대해 나는 우리 사회가 내면보다 외면을 중시하는 경쟁사회이며, 그러한 풍토 속에서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보다 남의 눈치를 보고 상황을 판단하여 상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관행이 몸에 밴 탓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현재의 내 자신의 모습을 지적 받는 것 같은 느낌조차 들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사라져 가는 나의 자신감과 가치관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되찾아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나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수 있는 길은 그곳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자신의 현재 모습을 잃지 말라’는 충고를 해 주고 싶다.
2. 자신감과 관련된 명언들..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그의 경영 신념의 많은 것들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술회한다. 특별히 그가 많은 어려운 경영의 난제들을 풀어나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자신감은 그의 어머니가 심어준 것이다. 4개의 A와 1개의 B를 받은 성적표를 가지고 오면 어머니는 먼저 왜 B를 받았느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언제나 A를 받은 것을 축하하며 그를 안아주었다. 어머니는 그가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 받는 사람인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또 어린 웰치는 말을 더듬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잘 고쳐지지가 않았다. 가끔씩 말을 더듬어서 낭패를 당하거나 우스운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가 말을 더듬는 이유를 잘 설명해주었다.
“그건 네가 너무나 똑똑하기 때문이지. 어느 누구의 혀도 네 똑똑한 머리를 따라갈 수는 없을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가 그에게 심어준 자신감과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은 그가 성공적인 경영자가 되는데 큰 힘이 되었다. 자신감을 잃어버릴 때 모두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러분의 자신감을 회복하라.
(1) 자신감을 기르는 5가지 방법
1. 나에게는 훌륭한 인생을 구축할 능력이 있다.
그래서 나는 절대로 중도에서 그만두지 않는다.
2. 무엇이든지 내가 마음속으로 강렬히 원하는 것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매일 30분 이상씩 성취한 모습을 상상한다.
3. 나는 자기 암시의 위대한 힘을 믿고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될 수 있다는 사고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매일 10분간 정신을 통일하여 자신감을 기르기 위한 '자기 암시'를 건다.
4. 나는 인생의 목표를 명확하게 종이에 쓴다.
다음은 한 걸음 한 걸음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해 가는 것이다.
5. 나는 정도(正道)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는 부(副)도 지위도 결코 오래 가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기적이거나 비열한 방법으로는 성공하지 않겠다.
-나폴레옹 힐-
(2) 성공에 대한 자신감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성공은 성공이 낳는다"
사람은 한번 실패하면 대부분 소심해진다.일을 추진하는 도중 짬짬이 실패의 기억이 되살아나 성공에 대한 확신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무엇이건 새로운 일을 시작 할 때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위험을 두려워해서는 도전할 수 없다. 결국 어떠한 일을 시작하도록 결심을 굳히는 것은 용기이다.
처음부터 자신을 갖고 할 수 있는 것은 전례를 답습하는 일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감에 앞서 용기가 필요하다.
- 후미히꼬 가지의 위기의 성공학 중에서....
(3)자신감
대부분의 위기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데서 오기보다는 결정을 연기하는 데서 온다.
모든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영웅이고 예언자이다.
문제를 피하지 않고 그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면 그 문제는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자기 스스로 만들어 내는 공포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손질된 정원 같아서 항상 풍요로움으로 다른 이들에게 기쁨을 준다. 자신감이 없을 때는 의지도 휘두르지 마라.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힘이 되네여^^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