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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준비, 그 노하우"
올해 화두는, 앞으로 사람의 평균연령이 100세에 이른다는 것이다.
평균적인 정년퇴직을 60세로 잡았을때
40년을 더 살아야 된다는 계산이다.
수명을 90으로 내려도 30년을 더 산다는 얘기다.
95세의 생일상을 받은 노인이 가족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은퇴한지 30년이 넘었다.
그때는 이렇게 오래살줄 몰랐다.
몸에 별탈없이 이렇게 오래살줄 알았다면
뭐라도 계획을 세워 내 일을 했을것이다.
정말 후회된다.‘
준비없는 노후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알게해 주는 일화다.
‘노후-노년의 생활’ 은 모두의 것이지만 그
삶의 질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준비된 노후와 그 반대의 차이는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결국 ‘행복한 노년’ 도 준비하기에
달린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노후’를 준비 하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모를때에는 물어봐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특히 사람의 ‘노후생활’ 은 인간적으로 만나야하는 또 하나의
전혀다른 인생이기
때문에 그 준비역시 중요할수 밖에없다.
준비없이 맞은 ‘노후’ 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는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수
있다.
‘노후준비’에서 가장 큰 함정은 자기는 예외라는 막연한 생각이다.
이 세상에 늙지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노후는 가장 구체적인 ‘현실’ 이다.
그 현실은 아무도 피할수 없다.
다른 한가지는 ‘준비’ 는 준비할수 있을때 해야지 그 때가
지나면 속수무책이된다.
엄격히 말하면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 되어
수입이 생기는 순간부터 ‘노후를 위한’ 저축이 시작되어야 한다.
삼성증권의 김도현 프리미엄상담역은 최소한
소득의 10%를
꾸준히 저축해야 노후 준비가 된다고 말한다.
여유있게 사는 노인들의 공통점은 일찍부터 저축에 열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저축의 방법은 다양할수 있지만 저축 그 자체는 그 속성에서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행복한 노후의 충분조건중 하나는
‘저축-돈’ 인 것이다.
노하우.know-how는,
일을하기 위한 지식, 전문기능, 요령, 비결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행복한 노년을 준비하는 ‘노하우’ 는,학문적인 전문가, 의사,
경험자들이 말해주는 요령과 비결이라는 의미가 있다.
‘모르는 세계’ 를 준비하려면 반드시 노하우가
필요하다.
손실, 중복, 미비, 비효율을 줄이고 같은 조건에서
더 치밀한 계획을 세울수 있기 때문에 노하우는 필요하다.
한가지 유념해야 할것은,
우리사회에서는 미래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업에서 물러난 사람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희한과 지금의 절망
때문에
피폐한 노년을 보내는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30에서 40년을 더 산다는것은 분명히 제2의 인생이다.
그래서 온갖
속박과 갈등, 책임에서 벗어나
흔들림없는 자유인 으로서 새 삶을 살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행복한 노년의 가장 큰 조건이 그
마음가짐이다.
행복한 노년을 준비하는 첫째조건은,
‘늙는다는 현실’ 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건 자연의
섭리이자 인간이 거스를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응하는게 옳다. 그게 출발점이다.
다음은 ‘공간’에서 자유스러워야 다른 조건에서도 자유스러울수 있다.
이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대표적인
공간이 ‘거처-집’ 이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자기의 공간’ 이 있어야 한다.
‘서재’ 는 노후의 안식처이며 자기만의 세계의
핵심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서재의 유무는 삶의 질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어쩔수 없는 일이라 해도 전철, 공원, 무료급식앞에
줄을 선다면
그 노후는 '삶‘ 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건 그저 생존일 뿐이다.
한평도 안되는 쪽방에 노구(老軀)를
눕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음이 ‘돈’ 이다.
700만여명에 이르는 베이비붐세대에 대한 조사에서,
은퇴자금을
준비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자녀의 교육과 결혼자금 48.8%.
당장의 생활비 33% 때문에 여력이 없다고
대답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은퇴준비 5원칙에서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고
자기 미래에 투자하라‘ 는 충고가 있다.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자식에게 올인하는 것은 ‘금물’ 이라고 했다.
베이비붐세대의 2012년도 월평균 생활비는 283만
6000원.
여기에 연간 대학에 다니는 자녀의 등록금이 358만원, 유학비용 46만원, 결혼비용
으로 80만원을 쓰고 있으며 이는
매달 생활비의 35%에 해당하는 100만원수준이 된다.
결국 자기의 노후를 위한 준비는 한푼도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자식이
늙은부모를 책임지는 시대도 아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까지만 책임지고 그 이후는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가정교육이 있어야 하고
자녀의 유학, 결혼등에 소요되는 돈은 자기의 미래을 위해 저축할수 있어야 된다.
베이비붐세대의
70%는 노후의 경제문제에 대해 불안해 하고있다.
그런데 그 불안은 준비안하면 현실이 된다.
노후생활에는 생각보다 많은돈은 들지
않는다.
이미 필요한것들은 거의 장만돼 있기 때문에 새로 구입할게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식생활, 문화생활, 그리고 차량유지비가
전부다.
경조사는 이미 자식들의 몫이다.
현역이었을때는 생활방법에 따라 돈을 썼지만 노후에는 돈에 맞추어 살수밖에 없다.
늙어서
남에게 손 내미는 일만 없으면 된다.
노추(老醜)의 한가지가 늙어서도 돈에 집착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반드시 월정액수의 수입이 있도록
‘저축’ 해야된다.
장기적인 인프레를 감안해도 월정수입이 가장 안전하다.
노후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일까.
그게
무료(無聊-지루하고 심심함) 다.
사람은 죽는날까지 할 일이 있어야 살고있는 것이다.
‘산송장’ 이 안되려면 자기일이 있어야
된다.
돈버는 일만 일은 아니다.
노후의 ‘자기일’ 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텔레비전 리모콘을 쥐고 소파에 누우면
그 인생은 종친것이나 마찬가지다.
오직 늙어 죽기만을 기다리는 인생이 그것이다.
베이비붐세대가 희망하는 노후생활은,
‘취미생활’
이 42.3%로 가장 높았다.
방향은 바로잡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문적인 준비’ 가 필요하다.
그 취미생활은 구체적인
것이어야 하고 그렇게 하려는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예를들어 악기를 하겠다면,악기를 살수있는 큰 돈이 있어야 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것 인가를 결정해야 하며 악기를 배우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다른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손으로 정밀한 작업을 함으로서 동물에 비해 비약적으로 진화했다.
손의 절묘한 동작은 뇌의 여러부분에
관여한다.
따라서 손을 계속 사용하는 취미생활은 정신적 으로도 건강하게 살수있는 방편이 된다.
취미생활이 건전하고 정교한 것일수록
삶의 질은 향상되는것이다.
우리모두가 꼭 명심해야 될것은,인간의 생애에서,
그리고 노후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건강’ 이라는 사실이다.
건강이 없으면 다른것도 없다.
돈을
쌓아놓고도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은
‘당뇨식’ 을 배달받아 먹어야 한다면 그게 바로 비극이다.
그리고 건강은 돈으로 살수없는 것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기도 하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노인의 70%가 한가지 이상의 지병(持病)을 가지고 있다.
노후생활에서 ‘치료비’ 의 지출은
무서운 복병이다.
본인은 물론 가족전체가 큰 재앙을 만나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할 때 건강관리’ 를 시작해야한다.
나이들어
시작할수 있는 운동은 거의없다.
결국 해 오던 운동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모든의사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운동이 ‘걷기’
다.
젊어서부터 걷기운동을 하는 경우 고혈압, 당뇨, 관절염같은
대표적인 노인병-성인병에 걸리지 않는다.
걷기운동은 돈도 들지않지만 ‘의지’ 가 없으면 실천하기
어렵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두정류장 미리내려 직장까지 걸어가고,
퇴근때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걷는다면 건강한 몸으로
노후를 맞게되며 걷기운동도 계속할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들면 ‘테니스’ 같은 과격하고 격열한 운동은 할 수가
없게된다.
장비가 필요한 운동은 힘이들어 하지 못한다.
결국 걷기운동만큼 좋은운동도 없다.
걷기운동만 열심히 할수있다면 건강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한 인간이 같은환경에서 10년을 살았다면 그 환경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셈이다.
나도 이제는
은퇴한지 11년째다.
따라서 작은경험, 체험담은 말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노후생활’ 은 수많은 케이스중 하나일
뿐이다.
나의 체험담이 또다른 분들에게 참고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한것이며
다른이들의 체험담역시 내게는 귀중한 참고가 될수있다.
서로다른 노후는 상대적으로 보완적일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먼저 경험한 이야기는 노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크게 참고가 될 터이다.
이미 밝히바 있지만, 내가
정년퇴임한후 제일먼저 한 일은,
그 지긋지긋한 휴대폰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일이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나를 속박하던 그 물건을
버린다는것은
‘자유’에 대한 확고한 선언이었다.
지금 나는 휴대폰 없이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좋아하는게 책이다.
은퇴후 새 거처로 옮길때 노후를 위해 사둔책이 500여권 이었으며
그것은 내게있어 제일 큰 재산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 책들을 계속 마음껏 읽고있으며, 우리부부는
정기구독분과 신간기준으로 연간 100권정도의 책을 구입해서 읽고있다.
어떤 방해도 없이 내 서재에서 가장
편한자세로
독서에 열중할수 있다는것은 아주 큰 행복이다.
물론 그 책들은 모두 종이책들이다.
나는 서로다른
포털에 4개의 개인블로그를 운용하고 있다.
매주 한번씩 글을 올리고 있으며 아내는 그림을 올린다.
제대로 된 글을 쓰기위해서는
계속해서 공부할수밖에 없다.
A4용지 10매 정도의 글을 매주 하나씩 쓴다는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서 얻는
뇌-정신활동의 향상을 생각하면
그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머리는 쓸수록 좋아진다’ 는 말은 진실이다.
나는 글을쓰기 위한
자료들을 얻기위해 컴퓨터로
대영박물관에서 미 의회도서관까지 정보를 검색한다.
자료들을 수집하는 일은 아주 큰 작업이다.
나는 글을쓸때 볼펜으로 종이에 쓴다.
자판 두드리는 속도는 우리가족중 제일 빠르지만 워드프로세스를 쓰지않고
손으로 쓰는것은 그게 ‘창작’ 이기 때문이다.
악기를 손으로 연주하는 것이 ‘창작’ 이라면 손으로 글을
쓰는것도 창작이다.
중국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리린칭’ 은,퇴임후 도장새기기를 배웠다.
그는 ‘도장새기는 일은 머리와 눈, 손을 모두
써야하기 때문에
노년 건강에 매우좋다‘ 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감사하는것은,
아직까지도 ‘호기심’ 이 왕성하게 살아있다는 점이다.
동년배중에서
나만큼 공부하는 친구는 드물다.
그게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40가지 카테고리로 신문스크랩을 하는것도 호기심과 공부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글을쓸때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인간정신을 가장 크게 오염시키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게 텔레비전이다.
메이저리그의 베이스볼, 축구의 A매치 외엔 전혀 지상파를 시청하지
않는다.
대신 스카이라이프차낼의 128, 129번의 음악전문방송을 집중적으로 시청한다.
국내와 유럽의 우수연주단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에
다양한 고전음악을 시청할수 있다.
이점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TV를 끄면, 새 세상이
열린다.
전혀 다르게 ‘나’ 를 위한 개성적인 생활을 할수있다.
반드시 한번 시도해보기 바란다.
서울대의대
생화학교수이자,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인 박상철 교수는
‘남자가 요리를 해야 노년의 삶이 질적으로 유지될수 있다’ 고
주장한다.
내가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한지도 벌써 3년이 됐다.
해보면 요리도 ‘창작’ 이다.
기본 레시피만 있으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할수 있다.
한식의 경우 밥을 제외한 음식은 모두 ‘반찬’ 이다.
반찬-飯饌 은, 밥에 곁들여 먹는 부식들이다.
따라서
우리음식에서는 밥이 중심이다.
무엇보다 밥이 맛이 있어야 반찬들도 살아난다.
나는 쌀에 대해 많이 연구해봤고, 마지막으로 선택한
품종이 ‘고시 히까리’ 다.
‘히토매 보레’는 값은 비쌌지만 품질은 떨어졌다.
‘서리태’ 는 시골 할머니가 농사지은, 맛이 뛰어난
품종을 찾아내서 구입한다.
지금은, 밥만은 며느리도 내게 부탁하는 수준이다.
나는 일주일에 5일이상 수로의 뚝길을 따라
5킬로를 50분에 걷는다.
걷기운동은 이미 수십년동안 해 오고 있으며 70대중반의 나이에 성인병없이
건강하게 지내는것은 전적으로
걷기운동의 덕이라고 믿고있다.
아무리 날씨가 나빠도 결코 쉬지않는다.
그래서 걷기운동은 ‘다리’로 하는게 아니라 ‘의지’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 9월현재, 우리나라의 치매환자수는 46만9000여명이다.
65세이상 인구 100명중 9명이
치매환자인 셈이다.
노인치매는 한 가족을 초토화 시키는 무서운 질병이다.
나는 매일 100분 기준으로 첼로를 연습한다.
시각,
청각, 촉각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되는 작업이고
악기가 크기 때문에 중노동에 해당된다.
그래서 식사를 아주 잘 한다.
치매예방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것이다.
감각을 집중
한다는것은 뇌의 활동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나이들면 소식-小食 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자칫 연양실조에 걸릴수
있다.
그보다는 소식-素食 을 해야한다.
기름끼가 많은 음식을 피하고 마음껏 먹되 과식은 절대금물이다.
따라서 조금씩 자주먹는게
옳다.
가급적 사과는 매일 한 개씩 먹어야 하며 건과도 자주 먹는게 좋다.
나는 수십년동안 올리브열매를 먹고있다.
나는
지금의 내 ‘노년의생활’ 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한다.
일생을 통해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우리세대는 너무나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되돌아 보기도 싫을정도다.
책임, 속박, 제한, 경쟁, 강박관념없이 내가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수있기
때문이다.
우리세대는 노후를 준비할수 있는 여건은 안돼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 하나 준비한 작은것들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있다.
내게는 ‘무료한 시간’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영화광’ 이다.
--박천복--
"'20세기 최고의 명장' 보 구엔 지압, 역사 속으로"
베트남 독립 영웅 102세로 별세
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이끌어
"자유는 불굴의 의지로 지키는 것"
'디엔비엔푸 전투'는 프랑스 전사(戰史)에서 치욕적인 패배로 기록돼 있다.
2차 대전 종전 후 베트남 식민지를 유지하고 싶었던 프랑스는
1953년 북부 국경도시 디엔비엔푸에 대규모 군대를 투입했다.
베트민(Viet Minh·베트남 독립동맹)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앙리 나바르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1만5000명의 병력과 전차·야포를 배치하고
군용기 활주로까지 건설한 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확신했다.
▶그의 확신이 깨지는 데는 5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1954년 3월 중순 베트민군의 기습으로 시작된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000명이 죽고 1만2000명이 포로로 잡혔다.
프랑스 정부는 베트남 철군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베트민 승리의 주역은 보응우옌잡 장군이었다.
그는 보급부대원들 몸에 밧줄을 묶어 200문이 넘는 대포를 한 번에 1인치씩,
하루에 800m씩 옮기는 방법으로 3개월 동안 프랑스군 모르게 무기를 전선에 집결시켜 기습에 성공했다.
▶허를 찌르는 잡 장군의 전술은 미군과의 전쟁에서도 위력을 발휘했다.
1968년 1월 베트민군은 남북 베트남 국경도시 케산에 2만명의 병력을 투입해
미군의 관심을 돌린 뒤 최대 명절인 구정(舊正)에 맞춰 남베트남 주요 도시의 관공서를 기습 공격했다.
이른바 구정 공세다.
이 전투에서 베트민 측은 3만5000명이 죽는 큰 손실을 입었으나,
TV를 통해 미 대사관이 일시 점령당하는 것을 보여줘 미국 국민들의 월남전에 대한 생각을 뒤집었다.
▶잡 장군은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미국 같은 강대국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나는 세 가지를 하지 않았다.
적들이 원하는 시간,
싸우고 싶어 하는 장소,
그들이 예상한 방법으로 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3불(不)전략이다.
1979년 초 중국이 8만5000명의 병력을 동원해 베트남 국경을 공격했다가
3만명의 전사자를 내고 철수한 것도 잡 장군의 철저한 대비 때문이었다.
▶미국 언론이 '20세기 최고의 명장'으로 칭찬했던 잡 장군(102세)이
10월 4일 노환으로 사망했다고 베트남 정부가 발표했다.
생전에 그를 만난 사람들은 키 160㎝ 정도에 학교 선생님 같은 인상에 놀라곤 했다.
교사와 언론인 경력을 가진 그는 한 번도 군사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1960년대 그는 프랑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힘의 원천은 도덕성과
인민의 지지에서 나온다"면서 "인민의 마음만 단결시키면 소국이 대국을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어느 男子의 一生(^^)**ㅋㅋ/유머"
아내 안볼때 쥐어박자 아들은 까무러치듯 울어댔고
아내가 눈을 부라리며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여보 줘도 되남유?"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 건달이 있었는데
하루는 한적한 마을을
지나려는데
마침 농부가 밭머리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갑자기 시장기가 들은 건달이 농부에게
“밥 한술 신세 좀 집시다” 했더니
마음씨 착한 농부는 “가져온 건 다 먹고 없는데 저기 산 밑에 보이는 집이 내 집이유.
집에 가면 내 마누라가 있을 터이니 내게 말했다 하고 드시고 가시유”라고 말했다.
건달이
농부 집에 도착해서 혼자 있는 부인에게 말했다.
“저∼기 보이는 저 양반이 남편이오?”
부인이 의아해하며 그렇다고 하니까
건달이 하는 말
“남편이 댁을 꼭 한번 먹고 가라고 해서 왔소!”
아낙의 생각으로는 요즘 농사일에
바빠서 밤일(?)을 잘 못해주더니
미안해서 그러는가 보다 생각하고서 멀리 보이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여∼보!!! 이 양반한테 드려도 되남유?”
농부가 일손을 멈추고 말했다.
“걱정 말고 어서
드려!”
건달은 점심 대접에다 오랜만에 남녀간 운우의 회포도 풀고
완전히 대박 터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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