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 진도정부의 최후 전투
(김통정장군 후퇴로)
안녕하십니까?
전라남도 문화관광 해설사 장재호입니다.
저는 원간섭기 고려의 시련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항몽 했던 삼별초군이 진도에 남긴 발자취를
여러분과 함께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삼별초군의 주요 주둔지였던 용장성에 마련된
홍보관에서 삼별초관련 영상과 전시물 관람을 통해
삼별초의 역사적 의미와 흔적들을 한눈에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2011년10월27일.제주에서 해양탐험가 최바다씨가 추자바다를 건너 금갑포구에 도착,기념)
자리를 옮겨 용장성 궁지와 주변산세가 조망되는 지점에 서서
1271년 5월 여․몽 연합군의 총공세로 포위망이 좁혀오는
치열한 전장을 떠올리며 같은 자리에 섰던
배중손장군과 김통정장군을 떠올려 봅니다.
약258만평 면적과 약12.85킬로 길이의 용장성에는
세 군데의 망바위를 갖추고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망바위에 올라 주변을 살펴봄)
해남 삼지원방향을 망보던 병사의 다급한 보고에
상장군 배중손장군은 군사를 이끌고 북쪽 망바위와 선황산이
연결된 해발 50에서 60미터 되는 약900미터의 능선을 넘어
벽파진에서 여몽연합군과 일전을 준비합니다.
여몽연합군 김방경장군과 흔도가 중군를 이끌고
벽파 진의 배중손장군과 전투를 벌이고,
희, 옹, 홍다 구는 좌군으로 노루목에 상륙
남쪽 산을 넘어 용장성을 치고,
대장군 고을마가 이끈 우군은 동쪽 산을 넘어 공격합니다.
(논수골. 전,왕온의 묘 앞에서)
해전에 약한 몽고군을 대비해 세찬 조류의 울둘목을 방어막으로
진도에 주둔했던 삼별초에게 고려수군이 합세한 연합군의 총공세는
버티기 버거운 상대였습니다.
동쪽 산을 넘은 대장군 고을마의 군사들은 벽파진 능선을 넘어
중군과 합세하여 배중손장군 부대를 전멸시킵니다.
사료에 전하지는 않으나 배중손장군은 이곳 벽파진 전투에서
병사들과 함께 최후까지 항전하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차장군 김통정은 전세가 기울자
왕 온을 모시고 서쪽방향 진도읍 쪽으로 퇴각하고
홍다구의 좌군이 이를 추격합니다.
결국 의신면 논수골 전투에서 왕 온은 홍다구에게 사로잡히고
고려군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몽고장수 홍다 구는 왕 온을
참수합니다.
(삼별초궁녀둠벙 정자에서, 돈지벌판을 바라보며, 휴식)
퇴각하던 김통정 장군은 돈지벌판에서 연합군과 일전을 치르는데
삼별초군의 숱한 시체가 돈지벌 들녘에 널리게 되고 그곳에
대분통(합장)이 되었다 전합니다.
큰 피해를 입고 다시 퇴각하던 김통정장군 일행 중
여인들은 몽고군에 잡혀 몸을 더렵히느니 차라리
웅덩이에 빠져 죽기를 선택해 여인들이 몸을 던졌던 웅덩이는
삼별초 궁녀둠벙(여기 급창둠벙)으로 불리며 전합니다.
(거룡리 부녀동 근처)
만길 제를 넘어 금갑 쪽으로 낮은 야산에서도
많은 일행이 전사하여 산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하여
이곳 지명이 송장등(시체가 널려있는 야산) 이라 불려오고 있답니다.
거룡리 앞에 이르러 더 이상 여인들을 데리고 후퇴가 어려웠던
김통정장군이 여인들과 아이들을 남겨두었던 곳은
여인들의 촌락이 이루어져, 지명에 부녀동(여인들의 마을)이라고
적혀 전해옵니다.
(원두리 사마골 주변에서)
원두마을에 이르러 사람도 지치고 말도 지쳐서
마을앞 낮은 고개를 넘을때 뒤 따라오던,
여몽연합군의 화살에 맞아 많은 말들이 죽었다 하여,
이곳 지명도 사마골(사마고개)(죽을사자,말마자)
이라 불러 옵니다.
(제주에서 진도를 왕복 항해한, 0.5톤급,삼별초 호)
(최바다씨 도착환영 행사)
드디어 금갑포구에 도착한 김통장장군 일행은
십여일 간의 전쟁으로 9개월여 삼별초 진도정부를 마감하고
제주도로 퇴각하게 됩니다.
2011년, 제주도 해양탐험가 최바다선생님께서
거센 추자바다를 건너 이곳 금갑포구를 거쳐
용장 성까지 답사 하고 제주도로 향하였습니다.
최바다선생께서 타고오신 배는 현재 진도에서
김양식어민들이 이용하는 관리선 절반정도의 크기로
제주도로 향하는 최바다 선생의 배를 바라보며,
저에게 저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하면
1억을 줄 테니 오라고 하면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저는 못가겠더군요.
여러분과 함께 김통정 장군님의 후퇴로를
돌아보았습니다.
장군은 제주도에서 약2년 동안 항몽하시다가
최후를 맞이하셨지요.
우리 진도에도 소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일부 향토 사가들이 1863년 유숙의 (남도만호부임도 권기)에
삼별초 성 기록이 있다 하여,
배중손장군 사망기록이 없으므로, 진도읍에서 또 다른
후퇴로를 만들어 남도석성에서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이야기와 소설, 극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와 소설은 쓸 수 있으나,
삼별초 진도 마지막 전투는 1271년 5월에 있었고,
금갑진성과 남도진성은 1450년경에 축성된,
조선시대 수군진성입니다.
또한 1271년경에는 금갑포구는 지금의 금갑리 이고,
지금의 남도진성(육지부에 있음)은 1450년대 축성되고,
삼별초전쟁당시에는 구)남도포구(바닷가에 포구)가
있어 조도를 왕래하고 어부들이 고기를 잡이를
다니던 포구는 다른 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진도에서 건너간 김통정장군의
궁금증이 조금이라도 해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재가 2002년부터 2006년까지 강화도, 진도, 제주도를
오가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해보았습니다.
물론 이 내용에 관해 저와 견해가 다른 분도 계실 겁니다.
명확한 기록이 없는 역사에 관하여는 남겨진 흔적과 정황으로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며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후대에 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도 다양한 견해 중 하나로 이해해 주시고
진도에서의 삼별초의 행적을 탐구하시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은 일정 즐겁게 보내시고
가실 때는 진도의 명품을 구입하여
고향의 지인들에게 진도의 정을 전해 주십시오.
감사 합니다.
전라남도문화관광해설사 장 재 호.
2013년 보수교육 시나리오(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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